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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현 “우는 게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2024.12.27전희란

박지현의 역할.

화이트 러플 디테일 셔츠, 에르마노 설비노. 와이드핏 데님 팬츠, 이자벨 마랑.

GQ 어릴 때부터 역할극을 좋아했다고요. 오늘 촬영에서 부여한 역할은요?
JH 교과 과정에 맞지 않게 너무 뛰어난 학습 능력을 지닌 아이라고 상상했어요. 천재라서 이미 다 아니까 수업 내용이 너무 지루하고, 시간이 아까운 거예요. 손을 들어도 너무 똑똑해서 선생님이 발표 안 시켜주는 그런 학생요.(웃음)
GQ 실제로 박지현도 그런 학생이었어요?
JH 전혀요.(웃음)
GQ 촬영할 때는 몰랐는데, 말할 때는 굉장히 아이 같아요. <히든페이스> 조여정 배우도 인터뷰에서 박지현을 두고 굉장히 아기 같은 면이 있다고 했고요.
JH 그래요? 그런데 정신 연령은 애늙은이 같기도 해요. <히든페이스>의 미주가 어리숙한 면이 있어서 그렇게 느끼셨나 봐요. 평소에는 또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랑 많이 어울리고, 대화가 더 잘 통해요. 거의 띠동갑만큼 차이나는 언니들도 많아요. 왜일까···, 두루 공감을 잘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GQ 공감을 잘하는 면이 자신에게 장점으로 느껴져요?
JH 연기에 있어서는 장점일 수 있는데, 삶을 사는 데는 조금 피곤한 것 같기도 해요. 타인의 감정을 잘 모르면 더 바보같이, 이기적으로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거든요. 감정을 살피면 더 신경을 써야 하니까요. 그래서 노력하는 편이에요. 신경을 덜 쓰려고. 노력하니까 조금씩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하면 남들에게 큰 상처를 줄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시어링 봄버 재킷, 올세인츠. 리본 디테일의 블랙 미니 드레스, 마크 제이콥스. 이어링, 톰 우드.

GQ 주변 신경을 덜 쓰려고 노력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JH 저는 타인으로 인해 제 감정이 쉽게 변하는 편이 아니에요. 남들이 제 감정을 신경 쓰지 않아도 별로 타격이 없어요. 그걸 깨달은 순간부터였어요. 나처럼 감수성이 풍부하고 예민한 사람도 괜찮은데 남들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거든요. 요즘은 가끔 “너 T야?“라는 말도 들어요.(뿌듯)
GQ “너 T야?”란 말이 좋게 들리나 봐요.
JH 좋죠. 제 노력이 효과가 있었던 거니까. 제가 ‘INFP’인데 자기 MBTI에 자격지심 있는 유형이거든요. 새로운 유형으로 보인 것 자체로 뭔가 뿌듯한 거죠.
GQ 저도 INFP입니다.
JH 아시죠?(웃음)
GQ 연기하면서 희열을 느낀 첫 순간이 기억나요?
JH 와, 진짜 옛날이다. 연기 학원에서의 일이에요. 막 연기를 시작할 때였죠. 학원에서 당시 3개월에 한 번씩 오디션을 했어요. 자유 연기 독백, 즉흥 연기, 특기 총 세 가지를 했는데, 저는 자유 연기로 코미디 대본을 택했어요. 코미디 연기를 너무 좋아해서 희극인이 되고 싶었거든요. 독백 창고라는 카페에서 찾은 대본 중 한가인 선배의 대사 “왜, 내가 너무 예뻐? 예뻐서 눈을 뗄 수가 없나?”를 제 식대로 바꿔서 했어요. 거의 <개그콘서트>였죠. 제 연기를 보고 심사위원들이 막 웃는데, 그때 처음으로 되게 큰 희열을 느꼈어요. 사람들의 반응을 바로 제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다니. 저는 사람을 웃기는 게 늘 되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GQ 이거는 된다, 반드시 웃긴다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JH 잘 살리면 웃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은 연기 학원에서는 웃기기가 쉽지 않아요. 심사위원이 다들 냉철하게 평가하니까요. 그래서 더 신기했죠. 3개월 뒤에 같은 오디션에서 지금의 소속사 실장님이 저를 보시고 나무엑터스로 오지 않겠냐고 제안해주셔서 여기 오게 되었어요.
GQ 연기로 웃기는 것과 울리는 것 중 어떤 쪽이 더 희열이에요?
JH 웃기는 거요. 울게 하는, 감동을 주는 건 스토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은 배우가 울 때보다 울지 않을 때가 더 슬픈 경우가 많아요. 상황이 슬프면 관객들은 울 수 있어요. 그런데 코미디 연기는 다르죠. 배우의 리듬과 호흡이 정말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코미디언분들 진짜 존경해요.

시스루 블라우스, 버튼업 데님 팬츠, 모두 구찌. 블랙 브라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메탈 프레임 안경, 젠틀 몬스터. 이어링, 톰 우드.

GQ 그중에서도 누구를 가장 좋아해요?
JH 문상훈님 좋아해요. 아주 자연스럽게 말하듯 연기하고, 캐릭터 설정도 잘하세요. 그게 다 짜인 대본 안에 있는 건지, 즉흥인 건지 너무 궁금해요. 즉흥이라면 그만큼 두뇌 회전이 뛰어나다는 거고, 대본에 있는 거라면 호흡, 리듬이 대단하신 거고. 이 얘기 꼭 써주세요. 문상훈님 유튜브 나가고 싶어요.(웃음)
GQ 꼭 쓸게요. 2025년 상반기에 공개될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 이야기하면서 “남 모를 아픔을 간직한 인물에 끌린다”고 말했어요. 왜 그런 것 같아요?
JH 어느 배우나 그렇지 않을까요?
GQ 저는 여기서 ‘남모를’에 방점이 찍힌 느낌이었거든요.
JH 진짜 아픔은 남들한테 쉽게 얘기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말 못 할 고민이 있잖아요. 배우로서 그런 캐릭터에 끌리는 이유는, 결국 남 모를 고민이나 아픔이 극 후반에는 드러나게 돼 있거든요. 반전이 있을 때 더 감동이 밀려오고요. 그렇게 드러나기까지 복선을 쌓아가며 서사를 만들어가는 게 재미있어요.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기도 좋고, 저는 그런 인물에게 더 애정이 가요.
GQ 박지현에게도 남 모를 아픔이 있나요?
JH 없는 것 같아요. 그래야 ‘남 모를’ 아픔이니까.(웃음)
GQ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정경을 설명하면서 “외로운 사람이라서 마음이 많이 갔다”고 했어요. 외로운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요?
JH 외톨이를 자처하는 스타일이라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 없어요. 제가 외롭죠. 그런데 외로운 걸 즐겨요. 혼자 있는 게 제일 좋아요. 촬영장에서도 제일 편한 공간이 화장실 칸막이 안이고요.(웃음) 혼자 있을 때 힘이 충전되고, 너무 행복해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2년 정도는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턱시도 베스트, 메시 터틀넥, 레이스 브라, 버뮤다 팬츠, 타이츠, 리본 디테일 펌프스 힐, 모두 돌체앤가바나.

GQ 촬영할 때는 어떻게 이겨내요?
JH 촬영하는 순간에는 아무것도 안 보여요. 사람들도, 카메라도 신경 쓰이지 않고 나와 상대, 대본 속의 세상에 있는 느낌이에요. 집중력이 좋은 것 같아요.
GQ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마지막 촬영 때 엉엉 울었죠. 이번에는요?
JH 하도 울어서 촬영이 끝났을 땐 오히려 기진맥진했어요. 5년 치 눈물을 6개월 동안 다 흘린 것 같아요. 집에서 혼자 울다 나간 적도 있어요. 인물의 정서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것 같아요. 저에게는 감정적으로 힘든 작품이었어요.
GQ 슬픈데, 울어서는 안 되는 신이었어요?
JH 울면 안 되거나 울어야 되는 신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선 울지 않는게 더 좋을 것 같은데’라고 느끼는 신이 있어요. 그럴 때 눈물이 계속 나면 애를 먹죠. 이렇게 눈물을 참으려고 노력해본 촬영은 처음인 것 같아요.
GQ 슬플 때 마음껏 우는 편이에요?
JH 저는 우는 게 웃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똑같이 감정이잖아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우는 걸 부끄러워하고 “남자는 세 번 울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이해가 안 됐어요. 행복할 땐 웃고, 슬플 땐 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우는 감정에 대해 창피해하거나 숨겨야 된다, 참아야 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래선지 눈물 연기는 수월하게 하는 편이에요.
GQ 우는 게 약함을 들킨다고 느껴서 겁을 먹는 사람들도 있죠.
JH 인간의 감정은 표현해야 해소된다고 생각해요. 분노도 화를 내야 해소되고, 슬픔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죠. 그런데 운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잖아요. 다만 내가 왜 우는지, 왜 화가 났는지 정확히 인지만 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시스루 블라우스, 구찌. 메탈 프레임 안경, 젠틀 몬스터. 이어링, 톰 우드.

GQ 자기도 모르게 올라오는 감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추적하는 편이에요?
JH 꼭 그러지 않아도 저는 느끼는 것 같아요. 이유없는 감정은 없는 것 같아요. 연기하다가 저도 모르게 갑자기 다른 감정이 들어올 때가 있거든요. 그때 느껴요. 이 대사가 원래 이건 줄 알았는데 이런 거였구나,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깨달음이 와요. 아, 이게 사실 슬픈 게 아니라 웃겨, 웃긴 게 아니라 슬퍼 같은. 그러니까 ‘눈물이 나서 슬퍼요’가 아니라 ‘슬프기 때문에 눈물이 나요’가 맞는 것 같아요. 연기할 때는 어떤 단어나 상대방의 반응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어떤 단어를 내뱉으면서 감정이 같이 올라올 때가 많아요.
GQ <은중과 상연>에서 ‘내 안에서 올라왔다’고 느껴진 대사가 있었어요?
JH 너무 많았죠. <은중과 상연>으로 저는 다시 태어났어요. 그 작품을 찍으면서 삶을 대하는 제 가치관, 심지어 숨 쉬는 방법까지 달라졌어요.
GQ 문득 궁금해지네요. 박지현이 배우로서 느끼는 가장 큰 칭찬은 무엇인지.
JH 또 같이 작품 하고 싶다.
GQ 그 말을 듣기 위해 어떤 노력 같은 것도 해요?
JH 그렇다고 꾸며내거나 저를 바꾸지는 않아요. 억지로 무언가를 하면 사람들은 다 알거든요.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있는 그대로,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GQ 아직 보여주지 않은 것 중 보여주고 싶은 건 뭐예요?
JH 작품에서 한 번도 사랑이 이루어지는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요. 짝사랑을 하거나 외도하거나, 혹은 전 여친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제는 쌍방의 사랑을 하고 싶어요. 로맨틱 코미디도 하고 싶고요.
GQ 일 vs 사랑 중 선택하라면?
JH 무조건 사랑이죠. (잠깐 쉬었다가) 왜냐하면 일도 사랑이니까?(빙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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