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난 이주연. 포기를 모르는 남자.
“파도 타듯 인생을 부유하면서 서퍼의 마인드로 인생을 즐기면 멋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불확실하지만 미래를 생각하면 뭔가 설레요. 최근에는 그런 막연한 마음이 희망이라는 감정으로 느껴졌어요“
GQ 오늘은 농구하는 주연을 만나네요. 데뷔 이래 첫 인터뷰를 찾아봤는데,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농구 대회 4강전에서 버저비터를 넣었을 때’를 꼽았을 정도로 농구를 좋아하더라고요. 7년이 지난 지금의 행복은 어때요?
JY 지금의 행복은 뭔가 임팩트가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주변 상황 모든 게 문제 없이, 별탈 없이 돌아갈 때예요. 하고 싶은 거 하고, 먹고 싶은 거 먹고, 친구들과 웃고, 수다 떨고. 올드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사소한 게 행복 같아요.
GQ 일 년에 두 번 <지큐 스포츠>가 발간되거든요? 지난봄엔 ‘스포츠와 연애는 닮았을까?’라는 주제를 여러 명과 나누었어요. 주연에게도 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요.
JY 제가 연애는 아직 해본 적이 없어서···.(웃음) 스포츠와 사랑이라고 할게요. 기쁨과 아픔 두 개가 공존합니다. 그리고 뜨겁죠.
GQ 그런 농구의 정수를 알려준 인생 콘텐츠도 있나요?
JY <슬램덩크>죠. 최애 캐릭터가 송태섭이에요. 원래는 정대만이랑 서태웅이었었는데. 이번에 나온 영화를 보면서 엄청난 연민을 느끼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GQ <슬램덩크>는 명장면도 많잖아요.
JY 정대만이 “내 이름이 뭐지? 내 이름을 말해봐”라고 말하는 장면을 좋아해요. 그 순간 농구 코트 위에서 죽더라도 스스로를 증명하고 말겠다는 집념과 의지가 너무 감동적이라, 엄청 마음이 뜨거워지더라고요.
GQ 올 초엔 NBA의 초청으로 올스타 위켄드도 다녀왔죠? 장신에 팔다리 길기로 유명한 주연이 그 선수들 사이에 있으니 어찌나 조그맣고 귀엽든지···.
JY 다들 실제로 보니까 훨씬 멋있었어요. 올스타전은 이벤트성이라 경기를 좀 대충 해서 아쉬웠는데, 팬 서비스나 쇼맨십 같은 부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농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선수들의 동작 하나, 진짜 별거 아닌 거 하나에 열광하고 환호하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거든요. 저도 관객에게 에너지를 주는 직업이다 보니 스스로도 지금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극이 됐어요.
GQ 파우 가솔 선수와 슈팅 게임도 했던데, 농구 성덕의 NBA 썰 좀 들어볼까요.
JY 올스타 경기를 보고 퇴근하는 길에 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누가 이렇게 걸터앉아 있는 거예요. 야니스 아데토쿤보라고 정말 강백호처럼 열정이 장난 아닌 선수였어요. 저도 모르게 아는 사람을 만난 것처럼 말을 걸었는데 친절하게 받아줘서 신기했어요.
GQ 추억 여행 하나 더 해볼까요. 2019년 첫 단독 인터뷰에서 살면서 한 가장 즉흥적인 일화로, 연습생 때 무박 2일로 부산에 급여행을 다녀온 일화를 꼽았어요. 활동 이후에는 즉흥적인 행동을 하긴 쉽지 않죠?
JY 얼마 전에 일본 스케줄 갔을 때 갑자기 하루 정도 쉬는 날이 있었어요. 뭐 하지 고민하다 그때 함께 부산에 갔던 친구들을 불렀어요. 그동안 제가 너무 바빴기 때문에 여행은 상상도 못 하고 만날 시간도 없었는데, 보고 싶어서 툭 불렀더니 한걸음에 달려왔어요. 일본은 콘서트나 투어 끝나면 아티스트에게 용돈을 주는 문화가 있거든요. 그래서 용돈 받은 걸로 막 재밌게 논 게 작은 일탈이네요.
GQ 주연이 여기저기에서 책 추천해주는 거 유심히 봐요.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서요. 지난번 <지큐> 인터뷰에서는 <강신주의 감정 수업>을 읽고 있다고 했어요.
JY 저는 제가 되게 캄 Calm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좋은 게 좋은 거지’ 식의 사람이요. 근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되게 예민한 사람이구나, 그냥 속 시끄러워서 감정을 안 들여다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GQ 들여다봤더니 안에 뭐가 있었어요?
JY 감정의 이유를 알게 됐어요.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뭐가 불편하고, 어째서 좋고, 왜 불안한지요. 예전엔 어떤 감정이 들면 그 바이브 그대로 하루를 살았다면 지금은 내가 왜 그런지 원인을 짚으려 해요. 해결은 못 하더라도 적어도 왜 그런지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러면 뭔가 좀 마음이 나아져요.
GQ 주연 속의 여러 감정에 대해 얘기해보고 싶어요. 당황이라는 감정의 정체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라고 하죠. 내가 생각하는 나와 실제의 나 사이의 간극을 마주할 때 있어요?
JY 데뷔 이후 매 순간이 당황이었죠. 누구에게나 녹음한 목소리가 자신이 생각하는 자기 목소리와 달랐던 경험 다 있으실 것 같은데요? 저도 모니터링할 때, 인터뷰할 때, 무대 위의 나를 볼 때 매번 간극이 커서 굉장히 당황해요. 그런 간극을 점점 줄여나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은데, 이제는 어느 정도 제가 생각한 그대로 비치고 있는 것 같아 크게 당황하지 않아요.
GQ 당황을 만나는 건 어쩌면 행운일 수도 있어요. 당황을 통해 자신의 맨얼굴, 진짜 자신을 찾을 수 있으니까. 주연의 맨얼굴은 뭐였어요?
JY 예를 들어 제가 말을 느리게 하잖아요. 예전에는 말이 느려서 고민이었어요. 근데 그게 또 사람들이 불편하게 느낄 정도가 아니라면 그냥 제가 조금 신중한 거라서 좋아해주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GQ 사람들이 날카롭게 생겼는데 말이 느리고 순둥이인 주연의 반전 매력을 좋아하는 것처럼요?
JY 맞아요. 저는 말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스무 번은 생각해요. 어떻게 보여야지 싶어서가 아니라, 어떤 질문을 받았을 때 이 의미인지 저 의미인지 생각이 많은 편인 것 같아요.
GQ 이번엔 후회요. 후회란 자유로운 결단을 했다고 믿는 것에 수반되는 슬픔이라고 하죠. 살면서 가장 이불킥한 순간은 언제예요?
JY 굳이 안 해도 됐던 말을 해서 상대에게 상처 주거나 섭섭하게 만들 때요. 그게 친구들이건 가족이건.
GQ 다정한 면이 있나 봐요. 자기가 타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무심히 잊고 지나치는 사람도 많은데.
JY 확실히 있나 봐요.(웃음) 저는 엄청 곱씹어봐요. 그래서 제 행동에 대해 고통을 엄청 느끼고요. 그래서 누구에게 말할 때 더 신중하게 하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가깝다 보면 편하게 말이 나오잖아요.
GQ 책에서는 후회가 불행한 이유는 자신이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고 자책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요. 인생을 후회 속에서 보내지 않기 위해 세상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요. 저는 한편으로는 도피적인 해석 같았어요. 우리의 인생에서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것이 있었던가요?
JY 저는 완전 동의해요. 최근에 또 읽은 글 중에 굉장히 인상 깊었던 시가 있어서 메모해뒀어요. “그러니까 내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 이번에는 용감히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리라. 느긋하고 유연하게 살리라. 더 바보처럼 살리라. 매사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더 많은 기회를 붙잡아라”. 나딘 스테어의 시인데 뭐 이런 내용이었어요. 후회가 남을까 봐 안 하는 것도 능사가 아닌 것 같고, 뭔가 다 해보고 후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GQ 인생을 후회 속에서 보내지 않기 위해 주연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JY 현재에 집중하면 돼요.
GQ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의미일까요?
JY 결국 후회를 통해 앞으로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배우는 거잖아요. 배울점은 배우고 현재에 집중해서 잘하면 되는 거죠. 그거면 되는 것 같아요.
GQ 이번엔 희망이요. 희망이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쁨이라면, 그 불확실성은 주연에게 두려움과 설렘 중 어떤 의미로 다가오나요?
JY 제게는 너무 설렘이에요. 기쁨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1백 퍼센트 확실한 것 속에서만 지내다 보면 그렇게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불확실하지만 뭔가 미래를 생각하면 설레요. 최근에는 그런 마음을 희망이라는 감정으로 느꼈어요.
GQ 불확실을 즐기는 편이네요.
JY 얼마 전에 누가 저한테 “너는 파도 타는 사람 같아, 서퍼의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 같아”라는 얘기를 해줬는데요, 막연히 미래에도 멋있을 것 같다는 칭찬보다 더 좋았어요. 10년 후의 내 모습을 깊이 생각하는 편은 아닌데, 파도 타듯 인생을 부유하면서 서퍼의 마인드로 인생을 즐기면 멋있겠다, 그런 생각 자체가 희망이 되어줘요.
GQ 주연은 무엇을 욕망하나요?
JY 자유로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보다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게 더 자유로운 사람이래요. 감정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자기가 불행하고 싶은 걸 하고 싶지 않은 거고, 그렇게 감정에 충실한 게 욕망을 받아들이는 방법 같기도 해요.
GQ 자신의 욕망의 출처가 뭔지 파악하고 있는 사람 같아요.
JY 제 욕망과 결핍을 이해하고,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GQ 이렇게 감정에 관해 얘기하다 보니 영화 <인사이드 아웃>도 떠오르는데. 하나의 감정 캐릭터가 될 수 있다면 뭐가 되고 싶어요?
JY 낭만이?
GQ 낭만이 귀엽다!
JY 낭만이라는 단어가 좋아요. 바쁘니까 조금 놓치고 살았던 것 같은데, 낭만적인 걸 인생에서 많이 보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 개그와 유머처럼 유쾌한 캐릭터도 좋겠다.
GQ 곧 있으면 더보이즈의 데뷔 기념일이죠?
JY 저희가 어느덧 말도 안 되게 7년 차가 됐더라고요. 매년 12월 6일쯤 기념 싱글을 발매해왔는데, 이번에도 스페셜 싱글이 나와요.
GQ 새로운 소속사와 시작하는데, 더보이즈는 어떤 챕터 2를 맞이하게 될까요?
JY 더보이즈도, 저 개인적으로도 7년 동안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인간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요. 그래서 사실 큰 두려움은 없어요. 멤버들도 이제 7년차 됐으니까 조금 러프하게 조금은 슬로 다운하자는 생각은 전혀 없어서 그냥 열심히 달릴 것 같아요. 여전히 변치 않는 주연의 속도로요.
GQ 주연의 첫 인터뷰를 읽어봤다고 했잖아요. 열여덟 이주연은 “젊음과 청춘은 벚꽃처럼 아름답고 찬란하지만 짧고 유한하다”고 말했더라고요. 한편 더보이즈에 대해서는 늘 “소년은 영원하다”고 말하곤 했는데. 유한함과 영원은 병행할 수 없는 개념이기도 하죠.
JY 제가 그런 말을 했어요?(웃음) 당시에는 그런 표현이 되게 멋있다고 생각해서 말했었나 봐요. 그럼 바꿔봅시다. 최근에도 청춘은 유한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더 소중하고요.
GQ 지금의 주연은 다음 단계로 넘어간 느낌이에요?
JY 그때는 완전 꽃이 피어나는 시기였고 지금은 어느 정도 무르익은 시기 같아요. 뭔지 아시죠? 제일 익을 대로 익었다고 해야 되나. 물론 아직 더 익어야 되지만.(웃음)
GQ 2017년에 우리가 처음 사랑했던 소년. 그 소년이 지나간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JY 여유요. 예전엔 뭔가 꽃을 피우고 우리를 증명하려고 발버둥 쳤던 것 같아요. 근데 때라는 것이 발버둥 친다고 해결되는 일은 아니더라고요.
GQ 그럼에도 언젠가는 자신의 때라는 것을 만나게 될 거라 믿는 거죠.
JY 지금은 알아요. 사람마다 꽃피우는 시기가 다르고, 자기의 때를 만날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요. 이제는 심적인 여유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더 넓은 시야로 많은 걸 둘러보고 다양한 생각을 하는 이주연이 남아 있습니다.
GQ 이번 화보는 주연이 지난 <지큐> 인터뷰에서 “지큐 화보를 직접 기획해보고 싶다”고 말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성사됐어요. 이번에도 하나 물고 갈래요. 내년에 <지큐 스포츠>와 함께하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요?
JY 수영? 일단 물에서 노는 걸 너무 좋아하고 어렸을 때도 바닷가에서 가족들이랑 엄청 많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테니스는 꼭 한번 배워보고 싶은 스포츠예요. 그때는 정말로 제가 기획까지 해볼래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