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모금, 작품 한 입.
HERNAN BAS
미소년을 그리는 미국 미술가 헤르난 바스의 그림은 누구나 한 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는 2007년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루벨컬렉션에서 개인전을 가지며 스타로 떠올랐고, 이제 대기 줄이 길어서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작품을 구입하기 어려운 슈퍼스타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을 만날 일이 드물다. 아주 가끔 미술관이나 아트 페어에서 그의 아름다운 그림을 발견하면 반갑고, 부르고뉴 화이트 와인 한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최근 프랑스의 젊은 와인 메이커들이 만든 놀라운 와인을 마시고 나서, 당장 헤르난 바스에게 추천하고 싶었다. 스물여섯 살의 피에르 지라르댕과 스물네 살의 테오 당세가 만든 향기로운 와인들엔 그들이 어린 시절부터 브루고뉴에서 전수받은 자연주의 철학이 드러나 있다. 마치 헤르난 바스의 그림에서 뛰쳐나온 것 같은 사랑스러운 청년들의 열정이 담긴 와인을 마신다면 작가가 좋은 영감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초기에는 헤르난 바스의 작품에서 소년의 모습이 아주 작았는데, 얼마 전부터는 작품의 중심이 미소년이 되었다. 작가는 이 소년들은 소년과 성인의 중간이며, 스스로 누군지 잘 모르는 존재라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애매모호함은 바로 자신과 같다고 했다. 국제적으로 주목받는 작가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작품을 통해 자신이 누군지 정체성을 찾고 있다는 그의 고백이 인상적이다. 그의 초기작은 드쿠닝과 리히터의 추상화를 연상시켰으나, 40대에 접어든 이제는 자신만의 화풍이 완숙기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이 그림의 제목은 ‘개념 미술가’다. 이 연작을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예술가로서의 자아 찾기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스페이스K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2025년 4월 리만머핀 서울 갤러리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이소영(아트 저널리스트)
정현
국립민속박물관 건너편 학고재 갤러리는 고즈넉한 한옥으로 삼청동을 오가는 이들의 시선이 머무는 곳이다. 길게 뻗은 한옥 처마가 있고 그 아래에는 둥근 쇳덩어리가 놓여 있는데, 그 무게와 질감은 궂은 날씨 속 길 건너에서도 느껴질 정도다. 매주 마주하는 삼청동 갤러리 풍경 속 야외 설치 작품은 기분에 따라 다양하게 보이기도 한다. 때론 변색된 작품이 눈에 거슬리고 작품 자체가 식상하다는 생각도 드는데 이 쇳덩어리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덩그러니 있는 게 자연스러워 보여 ‘스스로 그러하다’는 자연(自然)의 뜻에 부족함이 없다고 늘 생각했다. 익숙하고 편안하게 시선을 두던 그 쇳덩어리가 실은 ‘파쇄(破碎)공’으로 쓰인 도구였고, 정현(1956~)이라는 미술가의 발견으로 작품이 되어 그곳에 있은 지 10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놀라 눈에 밟히던 작품을 이제야 들여다보게 되었다. ‘쇠를 부수는 쇠’ 기능을 하는 파쇄공은 16톤짜리 쇠로 만든 공이었다. 제철소 야적장의 크레인에 매달려 약 25미터 높이에서 수직 낙하하며 엉켜 있는 쇠 찌꺼기나 파쇄공보다 더 단단한 것을 용광로에 넣을 만한 크기로 부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 부딪치며 8톤짜리 작은 쇠공이 되었고, 표면에 상처만 남기며 수명을 다했다. 작가는 이 파쇄공에서 느낀 ‘시련의 존중’이라는 감정을 오랫동안 간직하다 작품으로 세상에 선보였다. 그는 파쇄공이 닳는 과정을 두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시련과 견딤이 담겨 있다”라고 설명했다. 어둠 속 뜨거운 불이 가득 찬 공간, 파쇄공이 떨어지는 소리로 시련의 크기를 상상해본다. 불에 그을린 오크통에서 숙성된 위스키를 떠올리며 이 겨울 속 ‘존중받아야 할 시련’을 생각한다. 정진아(커뮤니케이션 사 오운 대표)
이끼바위쿠르르
해인사에서 템플스테이를 하던 밤, 멧돼지를 만났다. 어미로 보이는 몸집 큰 멧돼지와 새끼였다. 나는 죽었구나 얼었는데 그들이 더 놀란 듯 가야산 숲으로 뛰쳐 올라갔다. 다음 날 아침, 왠지 모르게 안위를 빌고 싶어져 기도처를 찾았다. 해인사 뒤편, 가야산의 해발 1천 미터에 보물 ‘마애여래 입상’이 있다고 했다. 본래 스님들만 찾던 곳을 지난 2013년 1천2백 년 만에 대중에게 공개한 것. 땀에 젖어 오르니 나무 사이로 불상 하나가 나타났다. 어떤 장식이나 건물 없이 불상은 혼자 가만히 있었다. 나는 주저앉아 오래 얼굴을 살폈다. 모나리자처럼 자주 변했는데 내 마음 상태에 따른 것 같았다. 얼마 전 서울에선 미륵을 만났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이끼바위쿠르르(고결, 김중원, 조지은으로 구성된 시각연구밴드)의 개인전이었다. 그들은 전국의 미륵을 찾아 나섰고 폐허, 농가, 산에서 조용히 미래의 부처가 되길 기다리는 미륵들을 투 채널 비디오 <거꾸로 사는 돌>(2024)에 담았다. 전시장 바닥에 앉아 장면이 전화되는 미륵을 보고 있자니 해인사의 추억이 떠올랐다. 그때보다 조금 더 기뻤는데, 이유는 속세의 한가운데라 언제든 나가서 막걸리를 마실 수 있어서다. 다시 해인사에 간다면, 한잔 기울이며 불상을 오래 관찰하고 싶은데 좀 불경스러운가. 김나랑(<보그> 피처 디렉터)
ELMGREEN & DRAGSET
북유럽 출신의 듀오 작가 엘름그린 & 드라그셋 은 각기 다른 풍경을 그려내면서도 그들 특유의 문법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어떤 독특한 이질감을 창출해낸다. 각각의 장면에 숨긴 이미지 단서들과 이를 통해 기술하는 균형과 질서의 서사로 현실이면서 또한 가상이기도 한, 어떤 시간과 공간을 재현한다. (아모레퍼시픽미술관, 2024)전에서 선보인 그들의 작품 ‘그림자의 집’(2024)은 거실, 주방, 침실, 화장실 등을 포함해 총 1백40제곱미터의 규모로, 집이라는 실재 혹은 비실재의 공간을 마치 실제의 그것과 같은 형태로 구성했다. 이는 엘름그린 & 드라그셋 작업의 핵심인 ‘언캐니 uncanny, 즉 익숙한 낯섦의 감각을 자아내는, 재맥락화한 시공의 연출을 표상한다.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들어서면, 마치 초대받지 못한 공간에 실수로 입장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러한 어색함의 상호작용, 보통의 공간을 특별한 시간으로 전환하는 식의 맥거핀 형 조우는 우리에게 일반적인 보통의 순간을 급작스레 그러한 순간으로 전환하며 관객에게 ‘상호 충돌적’ 경험을 선사한다. 제3의 공간으로 꾸민 작가의 작업 가운데 특히 거실에 놓인 큰 곡선의 소파를 보고 있자니, 문득 이곳에 살았을 것만 같은 어떤 가상의 거주자가 휴식하며 마셨을 법한 한잔의 술이 생각났다. 중간이 텅 하니 빈 원형 탁자에 놓였을 그 술은 바로 ‘추사 40’. 개인적으로 자주 찾는 이 술은 마치 엘름그린 & 드라그셋의 작업처럼 한국 고유의 전통과 서구의 주조 문화를 혼합한, 그래서 왜인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특별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한국의 칼바도스라고도 불리는 추사 40은 은은하게 내는 사과의 달콤함과 매캐한 오크 향, 그리고 맛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스파이시함으로 ‘그림자의 집’ 연출에서 발견한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은근한 온도감을 상상하게 했다. 치열한 삶 속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휴식의 순간을 작가의 작업을 통해 그리며 오늘 밤 추사 40 한잔 기울여보시기를 감히 추천한다.
장진승(미디어 아티스트)
LOUISE BOURGEOIS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열린 루이스 부르주아의 개인전에서 이 작품을 만났다. 부르주아가 작은 손수건에 “지옥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말하자면, 정말이지 멋졌다”라는 강렬한 문구를 수놓은 작품. 어린 시절 가정사에 따른 트라우마로, 평생에 걸쳐 파괴적 감정, 치유와 용서 등 자기 고백적 예술 세계를 선보인 그는 이 작품에서도 블랙 유머를 곁들여 전쟁, 자연재해, 질병 등 인류가 겪는 ‘지옥 같은’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삶을 향한 강한 의지를 꾹꾹 눌러 담아냈다. 얼마 후, 이 작품을 생각지도 못한 공간에서 다시 마주쳤다. 12월에 거짓말처럼 세상을 떠난, 영화 <러브레터>의 배우 나카야마 미호의 비보를 접하고 찾아간 그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다. 나카야마 미호가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업로드한 사진이 바로 내가 직전에 보고 온 부르주아의 작품이었던 것이다.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휩싸여 몇 번이고 포스팅을 곱씹다 보니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작가와 배우의 모습이 작품 위로 겹쳐 보였다. 이 작품에는 버번위스키를 숙성한 오크통에 맥주를 넣어 숙성한 버번 배럴 에이징 맥주가 어울린다. 달달한 흙향을 풍기는 오크의 복합적 풍미, 바닐라, 캐러멜, 코코넛, 딜 등 다채로운 향미가 스며든, 익숙하면서도 독특한 맛, 쌉싸름함과 달달함을 동시에 지닌 술맛이 어쩐지 고통 속 삶의 의지를 그려낸 작품의 의도와도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버번 배럴 에이징 맥주 특유의 깊은 풍미와 깔끔한 끝 맛을 두 예술가에게 바치고 싶다. 백아영(아트 라이터)
윤형근
하늘을 닮은 청색, 땅을 닮은 앰버 컬러가 지배적인 윤형근의 작품 앞에서 술이 그리워질 때 한번도 위스키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때론 그의 그림이 내 식도를 거칠게 타고 내려가는 위스키를 비춰주는 것 같다고 느꼈다면 과장일까. 그것도 10년 이상 숙성한, 그럼에도 여전히 거친 위스키가. 한데 청주시립미술관의 전시 <윤형근_담담 하게>에서 이 작품을 보았을 땐 단번에 네그로니를 주문하고 싶어졌다. 침착하지만 고요하지만은 않고, 복잡하지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은 캄파리로 만든 네그로니는 언제 어느 때 마셔도 싫지 않은 칵테일이다. 이 그림을 언제까지나 좋아할 것 같다는 분명한 확신과 함께 네그로니를 한 모금 들이켜고 싶다. 전희란( 피처 에디터)
DAVID HAMMONS
얼핏 보면 창고의 뼈대만 남겨놓은 듯 보이는 이 철제 조형물은, 천재 예술가 고든 마타-클라크의 ‘Day’s End’(1975)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아나키텍처’라는 개념을 제안한 마타-클라크는 뉴욕 피어 52에 방치된 물류 창고의 벽을 허물고 곡선 모양으로 절단하며 폐 건물을 하나의 거대한 조각으로 탈바꿈시켜 공간 개념을 새롭게 정의했다. 창고는 1979년에 철거되었으나, 해먼스는 피어 52에 그 물류 창고의 모습을 다시 한번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하며, 마타 클라크의 아나키텍처 개념과 그의 작품 세계에 오마주를 표했다. 휘트니 뮤지엄의 새로운 부지를 거닐며, 미술관 내부의 익숙하고 뻔한 화이트 큐브 공간 너머의 밖을 바라봤던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품 세계관이 이 작품에 담겨 있다. 스스로를 ‘아트 갱스터’라 칭했던 그의 작품을 보면, 마치 과거 뉴욕의 갱스터라도 된 듯 정장을 차려입고 <보 드워크 엠파이어>의 스티브 부세미처럼 스카치 위스키를 홀짝여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다만 아직 위스키의 맛을 모르는 필자는 차라리 시원한 아이리시 에일 한 캔을 들고 작품 앞에 앉아, 오랜만에 뉴욕의 공기를 만끽하며 작품을 감상해보고 싶다. 김민지(송은 홍보)
ANTHONY MCCALL
조각처럼 보이지만 조각이 아닌, 실존하지 않는 무형의, 빛으로 만든 조각 작품. 영국 출신으로 1970년대부터 뉴욕에서 활동하며 실험 영화, 드로잉, 조명 설치 등 작업을 해온 앤서니 맥컬의 솔리드 라이트 워크 시리즈 중 하나다. 관람객은 빛 안팎을 이동하면서 공기의 움직임에 따라 어떤 변화를 느끼게 된다. 굉장히 미니멀하면서도 무디한 위 작품엔 ‘Between You and I’라는 제목이 붙어있는데, 여기서 하루키의 <만약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면>을 떠올렸다. 스코틀랜드 안개 속에서 숙성되는 싱글 몰트, 혹은 버번 위스키를 떠올리곤 입맛을 다신다. 투명하고도 불투명한 이 작품과의 조우를 고려한다면 니트 대신 커다란 얼음을 넣어 온더록스로, “나는 잠자코 술잔을 내밀고 당신은 그걸 받아서 조용히 목안으로 흘려 넣기만 하면 된다. 너무도 심플하고, 너무도 친밀하고, 너무도 정확하다”라는 하루키의 구절을 함께 삼킨다. 작품은 내년 봄 푸투라 서울에서 볼 수 있다. 황수아(영화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