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아닌 다른 걸 하고 있으면 행복하지 않았어요.”
GQ 어떤 연말을 보냈어요?
RS 흐흐흐흐. 저 뒹굴거리는 연말이요. 실은 “나 이거 다 끝나면 여행 갈 거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할 거야!” 막 이렇게 말하고 다녔거든요? 그런데 전혀요.
GQ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더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RS 네.(웃음) 제가 최근 몇 개월 동안 일주일씩 다른 공간에 있었어요. 유럽에 일주일 있다가 미국에 일주일 있다가, 일본, 한국···. 이렇게 지내다 막상 연말이 되니까 집에 좀 있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래, 여행 왔다고 생각하고 지내보자’하고 계획도, 약속도 많이 안 잡았어요. 친구들, 가족들 만나면서 천천히 보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엄마가 집에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어주셔서, 그거 최대한 즐기고 싶은 마음에 밖에도 잘 안 나갔어요.
GQ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했으니 뭐, 완벽한 연말이었네요.
RS 전 좋았어요. 뭔가 막 익사이팅하진 않았지만 오랜만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시간이었거든요.
GQ <지큐>와는 2년 만에 다시 만났어요. 그땐 코첼라 헤드라이너 무대를 앞두고 있었고요.
RS 맞아요, 기억나요.
GQ 그때 코첼라 헤드라이너 무대에 서게 된 소감을 물었는데 로제 씨가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어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일이요!”
RS 사실 코첼라 무대는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정말 꿈같은 기회였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코첼라 이야기가 나오면 “맞다, 우리 헤드라이너였지?” 이렇게 돼요. 여전히 믿기지 않는 거죠.
GQ 그런데 ‘APT.’에 쏟아진 지금의 반응들에 대해서 물어보면 꼭 비슷한 대답이 돌아올 것 같은 거죠. 어때요?
RS 맞아요. 곡 발표 이후의 반응뿐만 아니라 모든 제작 과정이 꼭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굉장했어요. 사이사이 신기했던 경험도 너무 많아서 그런지 지금 생각해봐도 네, 믿기지 않는 것 같아요.
GQ 저는 ‘APT.’를 향한 파도 같은 반응들을 보고선 그때 인터뷰에서 로제 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나를 믿었을 때 늘 결과가 좋았다”라는 말. ‘부르노’에게 ‘APT.’ 샘플링을 보낸 것도 로제의 촉, 로제의 결정이었잖아요.
RS 모든 순간 안에서 제가 좋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저의 선택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함께 즐겨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모두가 좋아할 순 없어도요. 그리고 이건 예전부터 든 생각인데,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들이 무엇인지 잘 들어주는 것. 살피고, 깨닫는 건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굉장히 좋은 태도라고 믿어요. 일기장을 들여다보듯이 내 마음의 소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이더라고요.
GQ 로제의 음악들은 그런 솔직한 감정들로부터 발현되는군요.
RS 쑥스럽지만 그런 것 같아요. ‘부르노’라는 어마어마한 가수를 떠올릴 수 있었던 것도 비슷해요. 1년 전쯤 그의 공연을 보며 너무 즐거워하던 제 모습을 저는 아주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거든요. ‘굉장한 라이브를 하면서도 아티스트가 저렇게 뛰어다닐 수도 있구나’. 그건 커다란 충격이자 감동이었어요. 그러니까 그 감동이 얼마나 컸냐면요, 같은 인간으로서 자랑스러웠을 정도? 브루노에게 ‘APT.’라는 곡을 전할 때 ‘함께했으면 좋겠다, 그럼 평생 소원이 없겠다’ 이런 마음이었는데, 그건 브루노의 공연을 보면서 크게 기뻐하던 저의 솔직했던 감정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와의 작업을 더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것 같아요.
GQ <ROSIE>의 모든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했죠?
RS 맞아요. 사실 지금까진 그룹의 한 멤버로서 늘 도움을 받아왔어요. 앨범은 정말 수많은 결정, 결정, 결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데, 솔로 아티스트로 서보니, 이런 결정 상황에 저 혼자 놓인 느낌이었죠. 그러다 어느 순간 중요한 결정들은 누군가가 대신해주지 않는다는 걸 느꼈고요. 그 뒤론 직접 해보기로 마음먹었어요. 이 프로젝트를 잘 완성하려면 내가 직접 가서 배우고, 공부하고, 부딪혀보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으니까요. 그렇다면 당연히 그래야겠다고 확신했어요.
GQ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RS 네.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려면 처음부터 하나씩, 하나씩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할 수밖에요. 그래서 그 시작이 스튜디오였어요. 처음 스튜디오에 들어갈 때 사실 겁이 많이 났거든요? 왜냐하면 ‘나 혼자서는 못 할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너무 다행히도 첫 세션에 ‘이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느낌이 아주 살짝, 살짝 든 거죠. 물론 아직 부족한 것도 많고, 그래서 배울 것도 아득한데 그때 뭔가 가능성이 좀 보였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얼마 뒤 한국에 들어와서 조금은 소심하게?(웃음) 결과물들을 가족이랑 친구들한테 들려줬어요.
GQ 두구두구두구, 반응은요?
RS 너무 감사하게도 다들 굉장한 응원을 해줬어요. 계속 이렇게 열심히 하라고요. 들려주기 전까진 사실 겁도 많이 나고 그랬는데, 막상 얼른 돌아가서 열심히 작업하라는 뜨거운 응원을 받으니 절로 용기가 빡! 났죠.
GQ 그럼 첫 스튜디오 세션부터 앨범이 나오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RS 꼭 1년 채운 것 같아요. 그렇게 작업만 꼭 1년.
GQ 굉장히 치열한 시간이었을 테고요.
RS 앨범 마무리할 땐 정말 정신없이 바빴어요. 그런데 제작 과정은 음···, 지금 생각해보면 좀 다른 바쁨이었던 것 같아요. 바빴지만 즐거웠거든요.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스튜디오만 오갔어요. 아, 스튜디오랑 훠궈집!(웃음) 진짜 제 동선이 딱 정해져 있었어요. 호텔, 스튜디오, 훠궈. 호텔, 스튜디오, 훠궈. 1년 동안요. 즐거웠어요.
GQ “바빴지만 즐거웠다”는 말이 투명하게 들려요. 1년이라는 시간이 두 가지로 분명하게 정리되는 것 같아서.
RS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그 1년은 제가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본 시간이었어요. 근데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많은 걸 해봤겠구나 싶지만, 저 딱 음악 작업만 했거든요. 그러니까 음악 안에서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본 시간. 음악이 아닌 다른 걸 하고 있으면 행복하지 않더라고요. 나중에는 작업이 취미처럼 됐어요.
GQ <ROSIE>가 특별할 수밖에 없겠어요.
RS 제가 어딘가에도 말한 적 있는데, 이 앨범은 정말 타임 캡슐 같아요. 제가 느꼈던 많은 감정, 그러니까 그 감정들이 어떤 감정인지조차 모를 나이인 20대 초반의 로제가 앨범에 들어 있어요. 나아가 이런 이야기들을 가지고 곡을 만든 1년간의 복잡했던 과정들도 들어 있고요. 그래서 <ROSIE>는 제게 꼭 타임 캡슐 같은 앨범이에요. 5년, 10년 뒤면 이 앨범이 꼭 오래된 일기장 같지 않을까 싶어요.
GQ 앨범을 완성하고 난 후에 로제에게 찾아온 변화라면요?
RS 뭔가 하드 트레이닝을 받은 느낌이거든요? 그래서 변화라면 많이 단단해진 것 같긴 해요. 많이 단단해진 덕분에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을 마주하더라도 극복할 수 있겠다,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용기가 생겼고요. 그런데 이건 가족들, 친구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얻지 못했을 일들이에요. 잠시만요, 눈물 날 것 같아서···. 죄송해요. (잠시 후에) 제가 미국에서 음악 작업만 할 수 있게 다 내려놓고 달려와준 친구들이 있어요. 끝까지 곁에 있어주면서 정신적으로도 지치지 않게 늘 격려해준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 이들이 저를 1년 동안 잘 보살펴주고 키워준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덕분에 사람들의 응원을 받는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다시 깨닫게 됐고요. 잠시만요, 왜 이렇게 울지, 진짜 죄송해요.
GQ 아니에요.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RS (잠시 후) 이제 괜찮아요. 미안해요.
GQ 새해 소원으론 뭐 빌었어요?
RS 제가 얼마 전까지 새해 공포증이 있었어요. 언젠가 많이 아파서 굉장히 힘든 겨울을 보냈는데 그 후로 이렇게 새해가 되면 무조건 행복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 거죠. “아프면 안 돼, 행복해야 돼” 이런 압박감 때문에 힘들어서 생긴 공포증. 그런데 아, 팬분들이 이 인터뷰를 읽을 테니 이 말은 제가 꼭 전하고 싶어요.
GQ 지난번 인터뷰에도 팬들에게 메시지를 남겨줬죠.
RS 네, 꼭 읽을 것 같아서요. 조심스럽지만 만약 팬분들 중 누군가가 행복하지 않아서 힘든 겨울을 지나고 있다면 꼭 행복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말 꼭 전하고 싶어요. 크리스마스, 새해라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다른 날들과 별다를 거 없거든요. 그냥 길거리가 좀 더 반짝이는 정도? 나 혼자만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행복이라는 거, 정말 별다른 게 아니니까요. 아주아주 사소한 곳에도 행복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