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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현 “새 신발을 신고 새로운 곳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2025.01.22김은희

이수현이 움켜쥔 주먹 안에는.

톱, 스텔라 매카트니.

GQ 새 신을 신어보니 어때요? 데뷔작인 <가족계획>을 두고 새 신발 같다 했죠.
SH 맞아요. 새 신발을 신고 새로운 곳을 걷는 기분이었어요. 액션 신이라든지 감정 신, 제가 기대한 장면들을 다 봐서 기분이 좋아요. 되게 궁금했는데. 완벽하진 않지만 생각한 것보다는 괜찮게 나온 것 같아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GQ 지금껏 이수현이란 이름은 모델로 적혔는데 어떻게 배우의 길에 닿았어요?
SH 일단 <가족계획>은 오디션을 봤어요. 지우가 돼버렸어요.
GQ 돼버렸군요.(웃음)
SH 헤헤헤. 처음 본 오디션이었는데.

톱, 스텔라 매카트니. 웨스턴 부츠, 지미 추. 팬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배우로서 처음 본 오디션에 바로 합격한 거예요?
SH 아, 그 전에 하나가 더 있긴 한데 그건 아예 준비를 안 하고 본 거라서. 뭔가 준비하고 오디션을 본 건 이번 <가족계획>이 처음이에요.
GQ 무엇을 무기로 들고 갔길래요?
SH 생각해보면 대화를 많이 했어요. 처음에는 지우 쪽대본으로 감독님과 미팅했고, 2차 때는 평소에는 어떤지 얘기를 나눴고, 3차 때는 쪽대본 세 개 정도를 같이 보면서 작가님과도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처음 쪽대본으로 본 장면은 달걀 프라이 신이었는데 그 신은 오디션 내내 계속 있었어요.
GQ 매번 짜증만 내던 지우가 엄마한테 진심을 말하는 장면이잖아요. 메이킹 영상에서 수현 씨가 어려운 신이라고도 소개하던.
SH 오디션 때는 그렇게 진지한 장면인 줄 몰랐어요. 그때는 앞뒤 서사를 모르고 사춘기 소녀구나 싶었는데, 그래서 대본 받아 들었을 때 새롭게 다가왔어요.

톱, 앨리스앤올리비아.

GQ 새 신을 신으면 익숙하지 않아 물집이 잡히고 아프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돌아보자면요?
SH 연기를 처음 하다 보니 발성이나 발음 연습 등 많은 부분에서 지금까지 제가 경험한 것과 많이 다르긴 했는데, 그 다름이 저는 좋았어요. 약간 힘든 과정이 있었는데 그래도 그 과정이 있음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서, 그리고 저는 모든 그런 힘든 과정을 아주 즐기는 편입니다.
GQ 수현 씨가 묘사한 백지우는 “스모키 화장만큼 기가 참 센, 그리고 집에서 가장 목소리가 큰 반항적인 17세 소녀”죠. 10대 이수현은 어땠나요?
SH 활발한, 언성이 높은, 이 부분이 비슷했어요. 아빠, 엄마, 남동생, 저, 이렇게 네 가족인데 제 목소리가 가장 컸거든요. 부모님과 같이 보는데 “그냥 너네” 그러시더라고요. 그래서 “헉? 내가 저렇게 나쁘게 했다고? 아니야” 그랬지만 부모님은 그냥 너라고 놀리셨어요.
GQ 실제 가족이 보기에 싱크로율이 상당한가 보군요.
SH 프흐흐흐. 엄청 좋아라 하시면서 놀리시고 그러는 부분들이 저는 은근히 뿌듯하더라고요. 앞으로도 많은 작품을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레이스 크롭트 톱, 래그앤본. 스커트, 아크네 스튜디오. 카디건, 스텔라 매카트니. 부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첫 화부터 시원했던 지우의 발차기나 액션도 수현 씨가 한 것으로 알아요.
SH 연달아서 한 건 아니지만 태권도를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 때까지 배우고 중학생 때도 잠깐 했어요. 아빠가 태권도 선수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 아빠의 영향으로 했죠. 활동적인 걸 좋아하고 무언가 배우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나름 시범단이었습니다. 잘하는 친구들 모아서 품새나 자세를 보여주던. 그러다 아예 다른 데로 전향해서 다른 거에 몰두했죠.
GQ 그렇잖아도 수현 씨와 아버지에 대해서도 궁금했어요. 배두나 씨가 우스갯소리로 회식하다 수현 씨 아버지에게 혼났다던 에피소드를 듣고요.
SH 으하하하. 그것은···, 저희 아버지가 되게 엄하시거든요. 친할아버지가 군인이셨기 때문에 아빠도 엄하세요. 그날은 촬영 끝나고 가족(배우)들이랑 와인 마시러 갔는데 그때 제가 아빠한테 연락을 못 드리고 그냥 즐겨버렸죠.
GQ 통금 시간이 있어요?
SH 통금이라면 요즘은 막차 끊기기 전까지인데, 제가 기분이 너무 좋은 바람에 아빠한테 얘기를 안 하고 더 놀던 와중에 전화가 와서 옆에 계시던 선배님을 바꿔드렸죠. (풀 죽은 강아지처럼) 죄인마냥 이러고 있었죠.

레이스 크롭트 톱, 래그앤본. 스커트, 아크네 스튜디오. 카디건, 스텔라 매카트니. 부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그냥 너”가 아닌데요? 반항 캐릭터는 아니네요.
SH 반항은 안 했어요. 언성은 높을지언정. 흐하하하. 그런데 저는 다시 태어나도 아빠는 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엄했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스무 살 됐을 때 보통은 술 마시러 가잖아요. 저는 절에 갔어요.
GQ 아버지 권유로요?
SH 아뇨, 제 발로. 남들이랑 똑같이 보내고 싶지 않아서. 가평 어느 절에 가서 친한 친구들이랑 2박 3일 템플스테이 했어요. 새로운 마음으로 경건하게 시작했죠. 너무 좋아서 이번에도 갈 거예요. 같이 템플스테이 가는 팸이 있거든요.
GQ 가면 무엇이 좋아요?
SH 일단 다이어트가 되고, 공기 맑고, 스님들이랑 차도 마시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 거기 가면 스마트폰도 안 하니까 맑아지는 느낌이에요.

톱, 슈즈, 모두 로에베. 진, 캘빈클라인.

GQ 아까 취미 겸 태권도를 하다 전향해서 몰두한 ‘다른 데’는 뭐예요?
SH 아이돌 연습생 생활을 잠깐 했어요. 고 1 때부터 2년 정도. 인스타그램으로 캐스팅 연락이 왔는데 “오? 가자!” 하고 갔죠.
GQ 그래서 ‘Hype Boy’ 춤도 잘 춘 거군요.
SH 춤은 그래도 소질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GQ 그런데 아이돌 데뷔는 하지 않은 셈이네요. 무슨 일이 있었어요?
SH 떨어졌어요. 헤헤헤. 월말 평가마다 애들이 계속 바뀌어요. 그중 저도 한 명.
GQ 평가에서 탈락했을 때 본인 의지로 그만둔 건가요?
SH 거기는 본인 의지라는 건 없어요. 그냥 탈락.
GQ 가혹하네요. 어쩌면 인생의 첫 큰 좌절이었겠어요.
SH 서바이벌이에요. 쓴맛을 배웠죠. 그때는 되게 슬펐어요. 진짜 열심히, 맨날 달마다 바뀌는 노래에 다 같이 계속 열심히 했는데 결론은 떨어졌으니까.

이너 톱, 렉토. 원피스, 아크네 스튜디오. 퍼 재킷, 조이그라이슨.

GQ 그 시간을 어떻게 보냈어요?
SH 그걸 극복하려고 모델 일을 시작했던 것 같아요. 때마침 지인을 통해서 모델 에이전시 연락을 받았는데 그때도 “일단 고”를 했죠. 원래도 바쁘게 사는 걸 좋아해서 텀이 있으면 조금 힘든데 바로바로 일이 이어져서 잘됐죠. 그래서 또 이렇게 운이 좋게 배우에도 닿게 됐고.
GQ 10대의 이수현은 활발하고 언성이 높았다면 지금 20대의 이수현은요?
SH 성격이 많이 죽었죠.
GQ 하하하하. 어떻게, 왜 죽었어요?
SH 덤덤함이 많아진 것 같아요. MBTI도 ‘I’가 된 것 같고,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좀 성숙해졌다. 1년 전만 해도 시끄럽고 친구들 많이 만나는 거 좋아했는데 사람이 변하더라고요. 조용해지고, 차분해지고. 전엔 까불거렸다면,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좀 진정된 느낌. 어른이 된 기분이랄까요?

이너 톱, 렉토. 원피스, 아크네 스튜디오. 퍼 재킷, 조이그라이슨.

GQ 오디션으로도 본 달걀 프라이 신은 극 중 백지우의 심경 변화가 일어나는 변곡점이었죠. 그 예처럼 이수현 인생에 영향을 미친 어떤 계기가 있다면요?
SH 이거 말해도 될라나···? 이번에 인생의 고난과 역경을 겪은, 타격을 좀 받은 일이 있어요. 그런데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말할 수는 없겠어요. 그래서 성격이 좀 변한 것 같아요.
GQ 물론 말하지 않아도 돼요.
SH 뭐 그렇게 막 딥한 상처는 아닌데, 내가 왜 변한 것 같은지 그 변한 과정을 생각해보면 그것 때문이지 않을까.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저는 크게 놀라는 편은 아니어서 그냥 덤덤하게 지나가요. ‘덤더엄’하게. 노래 듣는 걸 좋아해서 노래 들으면서 감성 한번 타고.
GQ 지금은 좀 지나왔어요?
SH 많이 지나왔죠.
GQ 그 시기에 자주 들은 노래는 뭐예요? 이 김에 뽑아봅시다. 이수현이 들으며 힘을 낸 플레이리스트 3개.
SH Lucky Daye ‘That’s You’. SZA ‘Good Days’도 많이 들었고. 리듬이 좋아요. 저는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마지막으로···, 빅뱅 ‘쩔어’.

톱, 이자벨 마랑. 진, 렉토. 슈즈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열심히 사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스스로 ‘갓생러’라고 한 적 있죠. 여전해요?
SH 네, 갓생러. 현재진행형입니다.
GQ 얼마나 열심히 살길래.
SH 일지 써요, 저.
GQ 일기와 다른가요?
SH 네. 일지는 오늘 할 것들을 적어요. 운동하기, 늦게 자지 않기, 일찍 일어나기, 미루는 걸 덜 하기, 책 읽기, 지출 줄이기, 영어 공부하기 그런. 연습생 때 시켜서 쓰기 시작해 연습생 생활 끝난 이후로 2년 정도 안 쓰다가 작년부터 다시 쓰기 시작했어요. 인생을 좀 빡빡하게 살고 싶어서. 너무 늘어진 것 같아서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일지랑 운동이 좋겠다 싶었어요. 아까 훅 보셨죠? 요즘 복싱 배우고 있거든요. 다 연습한 거예요.
GQ 훅에서 중요한 건 뭐예요? 팁 좀 전수해주세요.
SH 허리. 팔의 힘이 아닙니다. 중심 힘입니다. 자세 딱 잡고 허리 힘으로 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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