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살이 20년 차, 레스토랑 앰버의 리차드 에케버스 셰프가 500번도 더 걸은 길로 우리를 초대했다.
“저는 홍콩을 <제5원소> 같은 미래지향적인 영화와 비교하곤 해요. 정말 미래적인 도시죠. 하지만 홍콩 외곽으로 나가보면, 오늘처럼 숲속 한가운데를 보면, ‘여기가 정말 홍콩인가?’라고 느끼게 돼요. 사실 홍콩은 도시화된 곳보다 초록이 더 많은 곳이에요. 저는 이 도시가 훌륭한 균형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해요.”
내년에 20주년을 맞는 레스토랑 앰버는 2008년부터 무려 16년 연속 미쉐린 2스타를 유지한, 홍콩의 대표적인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다. 동시에 지속 가능한 미식을 추구하는 레스토랑에 별을 부여하는 ‘미쉐린 그린 스타’도 달고 있다.
“보통 파인 다이닝은 5~6년이 지나면 정점을 찍고 다른 새로운 곳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앰버는 홍콩 최고의 레스토랑을 꼽을 때 늘 톱 3에 들곤 해요. 그 비결 중 하나는 우리가 어제 했던 것에 안주하지 않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우리는 항상 어떻게 변화하고 진화하며 다르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요. 저는 호기심이 매우 많아요. 트레일 러닝을 할 때도 항상 ‘이곳이 어디로 연결될까?’ 궁금해하죠. 그럴 때 스마트폰 앱을 켜는 대신 직접 뛰어서 그 끝이 어딘지 확인해요. 홍콩은 그러기 좋은 도시죠. 물론 이런 호기심이 가끔 문제를 일으킬 때도 있지만.(웃음) 요리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모두가 이쪽으로 간다면, 저는 다른 쪽으로 해보자는 주의였죠.”
본업에서 정점을 찍는 동시에 한 달에 두 번씩 48킬로미터 길이의 홍콩 트레일을 뛰는, 내년 1월에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높은 아콩카과 Aconcaqua산 등반을 목표로 하이킹을 생활하는, 그야말로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삶을 리차드는 보란 듯이 실천 중이다. “제 SNS에 하이킹하는 모습을 왜 전시하듯 올리느냐고 물었죠? 제가 한 실수를 다른 사람이 반복하지 않길 바라서예요. 저는 2018년 심각한 건강 상의 문제를 앓았어요. 주방에서 지속 가능성을 말하면서 실제 제 삶은 지속 가능하지 않았거든요. 전 세계적으로 하드 워크, 번아웃으로 얼룩진 F&B 업계 평판을 바꾸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제 삶의 방식부터 바꿔야 했죠. 셰프로 살면서도 ‘워라밸’을 지키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올해 쉰아홉 살인데, 홍콩에 사는 여러 셰프, 바텐더들과도 자주 함께 달려요. 제 변화가 홍콩 F&B 신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그가 500번 넘게 걸었다는 길을 따라, ‘웡척항 Wong Chuk Hang’역에서 시작해 개천을 따라 걷다가 ‘애버딘 저수지 길 Aberdeen Reservoir Road’을 지나 ‘애버딘 컨트리 파크 Aberdeen Country Park’ 입구에 다다랐다. “보이죠? 여기엔 하이킹족 말고도 운동 삼아 오는 올드 레이디가 많아요. 다 제 여자친구죠. 제 아내는 탐탁지 않아 하지만.(웃음)”
12월의 홍콩은 듣던 대로 아름다웠다. 가장 축복받은 하이킹 시기라는 12월의 홍콩을 천천히 걸으며 자연을 수분 크림 바르듯 몸으로 쓱쓱 흡수시킨다. “얼마나 많이 걸은 길인지 이곳의 돌 하나하나, 나무의 조상까지 알고 있어요. 모두 제 벗이죠. 이렇게 홍콩에서 걷거나 뛰면 명상하는 기분이에요.”
토요일 오전 8시 51분의 눈부신 빛이 깃드는 곳을 바라보는 셰프의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나 역시 명상하는 기분에 잠긴다.
“홍콩 도심에서는 침묵이 바로 ‘럭셔리’예요. 어딜 가나 끼이-끼이- 하고 에어컨 소리가 들리니까요. 그런데 하이킹을 하면 알던 홍콩이 다르게 느껴져요. 음악을 너무 사랑하는 저도 하이킹할 땐 음악을 듣지 않아요. 뇌가 자유롭게 생각하도록 두고, 달리는 동안 생각을 정리하죠. 그렇게 곳곳, 구석구석을 밟으며 레스토랑에 도착하면 제 머릿속엔 이미 필요한 답이 나와 있어요. 하이킹이 제게 많은 영감을 주는 이유죠. 사람들은 친절하고, 안전하고, 모든 시스템은 매우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도시. 홍콩은 저에게 많은 것을 구원해준 도시예요.”
셰프 리차드 에케버스의 추천 하이킹 코스
· 윌슨 트레일
“고도가 아주 좋은 곳이에요. 이런 경사의 트레일을 자주 걸으면 발 건강에도 좋죠.”
4.7킬로미터 길이, 소요 시간 3시간 26분. 시작점 ‘Stanley Gap Road’부터 ‘Wong Nai Chung Reservoir’까지 멋진 뷰가 계속되어 인기가 높다.
· 바이올렛 힐
“둔근을 키우기에 아주 좋은 코스. 꼭대기에 도달하면 아름다운 전망을 볼 수 있죠.”
4.9킬로미터 길이, 소요 시간 3시간 37분. 홍콩 섬 ‘Tai Tam Country Park’로부터 연결된다. 꽃이 만발하는 설날에 등산객들이 특히 붐빈다.
· 트윈 픽스
“홍콩에서 가장 악명 높은 하이킹 목적지 중 하나예요. 아주, 아주 가파르죠.”
이름처럼 두 개의 정상을 지닌, 홍콩섬 남쪽의 하이킹 애호가가 애정하는 코스. 1천 개가 넘는 계단을 마침내 올라 스탠리를 바라보면 또 오겠다는 결심을 하고 만다.
홍콩 아웃도어에 관심 있는 이들은 주목하세요
· 2025 홍콩 아웃도어 페스티벌
오는 2월 15일부터 16일까지 이틀간 홍콩의 아름다운 자연과 도심을 배경으로 러닝을 즐길 수 있는 행사. 매년 홍콩관광청에서 홍콩을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에 맞춰 진행하는 이벤트다. 올해는 홍콩의 대표 관광 명소를 배경으로 한 세 가지 아웃도어 러닝 프로그램으로 구성했고, 모닝 러닝부터 나이트 러닝까지 여행자가 원하는 시간대와 스타일에 맞춰 코스를 선택할 수 있다. 홍콩의 상징인 빅토리아 피크 Victoria Peak에서는 대자연 풍광에 포근히 안기는 트레일 러닝, 빅토리아 하버 Victoria Harbour에서는 홍콩의 낮과 밤을 모두 만끽할 수 있는 도심 로드 러닝, 드래곤스 백 Dragon’s Back에서는 과연 아시아 최고의 트래킹 코스라 부를 만한 트레일 러닝을 경험할 수 있다. 페스티벌 참가 신청은 클룩 공식 홈페이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