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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록, 최재림 “지금은 ‘지킬 앤 하이드’로 가득차 있어요”

2025.02.20전희란

지금 이 순간 재림, 지금 여기 성록.

왼쪽부터 | 블랙 셔츠, 와이드 팬츠, 모두 질 샌더. 재킷, 팬츠, 모두 제냐. 이너, 링은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네크리스, 포트레이트 리포트.
왼쪽부터 | 팬츠, 타일레. 네크리스, 링, 모두 크롬하츠. 티셔츠, 벨트, 슈즈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블루 코팅 데님 재킷, 팬츠, 모두 솔리드 옴므. 블랙 앵클부츠, 베르사체. 벨트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최재림

GQ ‘지금 이 순간’이 왔네요, 정말로. 어때요? 뮤지컬을 처음 꿈꾸게 된 계기가 <지킬 앤 하이드>의 ‘지금 이 순간’이었잖아요. 공연을 한 달 앞두고 있네요.
JR 의미 있는 순간이죠. 시간이 무의미하게 흐른 건 아니구나, 성장해왔구나, 나름대로 무언가를 이루어내면서 왔구나란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지금 이 순간’을 다른 무대에서 부를 때랑 이 작품에서 부르는 건 정말 다르더라고요.
GQ 뭐가 그리, 어떻게 다르던가요?
JR 전에 부를 때는 음악으로만 접근했어요. 음악적인 구성, 기승전결을 고려하며 불렀죠. 지킬로서 접근해보니 이 노래가 어떤 해답을 찾으려는 여정 속에 방점을 찍는 역할을 하는 넘버더라고요. 숱한 연구에 시달렸던 부담감, 압박감에 대한 해답이 드디어 보이는 순간. 거기엔 짐을 덜어내는 홀가분한 느낌도 있고, 지나온 시간을 돌아볼 때 느껴지는 감정도 있고, 넘버가 진행될 수록 의지가 확신으로, 확신이 즐거움으로 확장되고, 그러다 신의 자리까지 넘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거만함에까지도 닿게 되죠. 연출가분이 에너지를 계속 쌓아서 올려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이 작품 속에서 새롭게 만난 ‘지금 이 순간’은 알던 것보다 덩치가 훨씬 더 크게 느껴졌어요.
GQ 한순간에 소비되는 엔터테이너가 아닌, 관객에게 무언가를 느끼게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뭘까요, 무언가를 느낀다는 것은.
JR 제가 팬분들의 선물을 사양하는데, 편지는 받아요. 편지 좋아하거든요. 제가 받은 손 편지에 이런 내용이 많아요. “최재림 배우의 공연을 보고 삶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선뜻 행동하지 못했던 무언가에 도전할 용기가 생겼습니다. 도전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것 같아요. 제가 연기하는 인물의 상황과 이야기를 보면서 동화되고, 공연이 끝나고 돌아간 뒤 본인의 삶에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투영할 수 있는 계기나 순간이 생긴다면 좋겠다, 그런 지점인 것 같아요.

티셔츠, 메종 마르지엘라.

GQ 무언가를 느끼게 하기 위해, 최재림은 어떤 노력을 해요?
JR 제가 공연을 잘해야 해요. 기술적으로는 노래와 연기를 잘해야겠죠. 내가 맡은 임무를 믿음직하게 무대 위에서 표현해야 하고요. 배우마다 목표하는 바가 다를 텐데 저는 배우로서 저의 이야기를 최대한 잘 전달하는 게 중요해요. 제 이야기가 1부터 10까지 있다면 1번, 2번, 3번 순서대로 관객분들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연기해 전달해 드리는 것. 1차적으로 그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2차적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관객분들의 머리에 남겠죠. 가장 좋은 건, 관객이 인물, 인물의 상황에 공감하고 동화해 같이 행복해하거나 같이 슬퍼해 하는 거예요. 결국 관객분들의 시선이 가장 중요해요.
GQ 관객의 시선으로 한 발짝 떨어져서 스스로를 바라보기도 해요?
JR 그 지점은 굉장히 어려워요.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것인가? 명확하게 그 지점으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나 혼자 감정에 매몰되어 혼자 날뛰는 건 아닐까? 한 발짝 떨어져서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데, 어렵죠. 관찰하려고 떨어지고 멀어질수록 이성적이고 계산하게 되니까요.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순간에 푹 빠져서 연기하기가 쉽지 않거든요. 이 밸런스를 잡기가 되게 어려워서 일단은 왔다 갔다 해보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깎고, 굴리고, 맞추는 거죠.
GQ 공연이 한 달 남은 지금은 인물이 얼마큼 몸에 붙어 있는 것 같아요?
JR 아직은 75퍼센트 정도밖에 안된 것 같아요. 러프한 상태죠. 첫 공연 전에 92~93퍼센트까지 몸에 붙이고, 나머지는 1~2주차 공연하면서 100퍼센트까지 올리는 게 이상적인 것 같아요.
GQ 몸에 붙인 정도의 퍼센트를 어떻게 감각해요?
JR 모든 대사, 가사, 동선이 저절로 나오면 한 90퍼센트 된 거예요. 나머지 10퍼센트는 생각, 인식 자체 없이 나오는 상태에서 상황을 통제하면서 채우죠. 90퍼센트가 되면 어떤 장면을 연기하는 데 있어 시작과 목표를 정확하게 알고, 잴 필요가 없으니까 속도를 조절할 수 있죠. 여기서 포인트를 더 줘볼까? 상대방에게 더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97~98퍼센트는 된 거예요. 그리고 무대 위에서 완전해지는 거죠.
GQ 배우로서 최재림이 지닌 가장 큰 자산은 뭐라고 생각해요?
JR 목소리요.
GQ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게 되면 어쩌죠?
JR 망한 거죠. 그만해야죠.(웃음)

블랙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배우로서 무엇을 더 키우고 싶어요?
JR 연기를 더 잘하고 싶어요. 감성적인 연기를 잘했으면 좋겠어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좀 건조해요. 눈물도 거의 없고요. 여덟 살 때까지 평생 울 걸 다 운 것 같아요. 어떤 영화를 보고 눈물이 차오른다거나 시를 읽고 가슴을 탁 치는 일들은 ‘제로’에 가까워요. 슬픔이라는 감정을 못 느끼는 건 아닌데, 감정의 깊이가 좀 얕다고 해야 하나···. 집안이 다 경상도 분들인 영향도 있는 것 같고, 아버지가 군인 출신이셔서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달라지는 환경에서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고 사람들과 섞이느라 내 안의 나를 살펴보는 시간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제 서랍 속에 있는 아이의 영혼을 돌봐주는 게 서툴러요.
GQ 그 서랍을 들여다 보려고, 꺼내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JR 꺼내려고 노력한다기 보다는, 때를 기다려보고 있어요. 나이 들면 봇물 터지듯이 수도꼭지가 열릴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과연 그런 순간이 나에게 올까? 궁금하고, 올 거라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배우니까요.
GQ 마지막으로 울었을 땐 언제예요?
JR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요. 장례식장까지는 울지 않았는데, 입관할 때 갑자기. 참았다가 터진 것도 아니었고, 돌아가셨다는 게 실감난 것도 아니었는데 그냥 왈칵 터졌어요. 스물 여덟 살 때일 거예요. 대성통곡했어요. 한 30초였나?
GQ 스트레스는 어떻게 풀어요?
JR 체념해요. 과정이 이래요. 이 상황이 답답하다고 느끼는 게 길어지면 짜증나, 피곤해, 귀찮아로 이어지는데, 귀찮아 단계까지 가면 체념이에요. 그래서 저는 저를 더 바쁘게 돌려요. 이런 감정을 들고 있어 봤자 도움될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빨리 버려야죠. 지금은 <지킬 앤 하이드>로 가득차 있고요.
GQ 최재림의 ‘지킬’, ‘하이드’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라는 게 있어요?
JR 제 공연을 많이 보신 분들이라면 머릿속으로 그리셨을 거예요. 최재림의 지킬 앤 하이드는 이렇겠지? 그 그림이 대체로 맞을 거예요. 그런데 예상보다는 조금 새롭고 싶어요. 최재림의 지킬은 되게 멋있겠지라고 예상했다면 ‘생각보다 찌질하네?’, ‘생각보다 연약하네?’라든지, 최재림의 하이드는 되게 무섭겠지라고 예상했다면 ‘상상보다 더 무섭네’, ‘생각보다 기괴하네’라든지. 그런 지점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계산하고 연기하지는 않겠지만, 제 해석과 접근이 그런 방향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아마 상상하신 그대로일 거예요.(웃음)

신성록

네크리스, 크롬하츠.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지킬 앤 하이드>와는 두 번째 만남이죠. 같은 작품을 몇 년이 흘러 다시 만날 때의 기분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어떤가요?
SR <지킬 앤 하이드>는 대단히 어려운 작품이에요. 다양한 소리, 다양한 연기를 해야하고, 공연 내내 체력적인 소모도 상당해요. 이 작품은 버텨낸다는 느낌에 가까워요. 처음 이 작품을 할 때는 무대에서 무지막지하게 밀어붙이고, 쏟아내기만 했어요. 얼마만큼 해야하는지 리미트란 걸 몰랐거든요. 생각보다 괜찮네? 초반에 쏟아낼 때는 몰랐는데 한 달, 두 달 지나면서 목에 손상이 오고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죠. 마냥 힘으로 밀어붙여서 되는 게 아니구나. 계산 안에서 보여줄 것은 보여주고, 뺄 건 빼야 더 효과적으로 연기할 수 있겠구나. 말 그대로 이 녀석이 어떤 놈이라는 걸 그때 좀 알았기 때문에 지금은 계산대로 천천히 해나가고 있어요.
GQ 공연을 한 달 앞둔 이 시점에는 어떤 부분에 몰두하고 있어요?
SR 공연의 모든 부분이 다 중요하죠. 날이 날카롭게 서있어야 찌를 때 팍 찌를 수 있으니 다듬어지지 못했던 나를 더 다듬고, 부드럽지 않은 부분을 갈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GQ 같은 작품이라도 새롭게 느껴지는 지점이랄지, 더 새롭게 파고들고 싶은 부분도 있던가요?
SR 지킬과 하이드는 인격이 다르지만 같은 사람이거든요. 인격이 너무 달라서 둘이 같은 사람임을 느끼지 못할 뿐이죠. 지난 번에는 둘을 소리로 다르게 표현했다면, 이번에는 인격을 더 다르게 표현하는 부분에 치중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보시는 분들은 같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아직 공연이 올라가지 않았으니 최종 결정은 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생각은 그래요.

셔츠, 질샌더 at 지.스트리트 494. 팬츠, 메종 마르지엘라. 링, 톰우드. 네크리스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이 작품은 버텨내는 것에 가깝다고 했죠. 그렇다면 신성록이 버티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 같아요?
SR 연습과 경험에서 오겠죠.
GQ 연습할수록 되레 더 지치는 부분도 있지 않나요? 어디까지 갔을 때 ‘이제 됐다’라고 깨닫는 지점이 있나요?
SR 몸이 기억하게 하는 거죠. 몇 년만에 했는데도 그냥 술술 나오는 장면도 많아요. 그만큼 몸이 완전히 기억하도록 연습한 거죠. 공연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연습하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을 해줘요.
GQ 너무 많은 ‘첫 공연’을 해왔지만, 그럼에도 매번 떨리나요?
SR 떨리죠. 어릴 때부터 그런 순간을 자주 견뎌와서 그 떨리는 마음, 스릴을 일부분 즐기는 면도 있어요. 엄청나게 떨릴 때 오히려 엄청나게 집중이 돼요. 왜냐하면, 그 떨림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그 인물이 되는 수밖에 없어요.
GQ 그 인물이 되어 떨림을 이겨낸다.
SR ‘나’라서 떨리는 거잖아요. 나는 신성록이고, 사람들이 신성록을 어떻게 볼까 라는 마음 때문에 떨리는 거잖아요. 그런데 내가 지킬, 하이드로 집중해 연기하면 그 자리에서 내가 없어져버려요. 그것으로 떨림을 극복하는 편이에요.
GQ 그렇다면 긴장감은 신성록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네요.
SR 그런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그런 것 같네요.
GQ 나를 지우고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없어진다. 배우들로부터 종종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궁금해요.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SR 그냥 아예 빠져버리는 거예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안 나죠. 공연 끝나고 나서 내가 한 게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어요.
GQ 그럴 때는 보통 연기가 더 좋나요?
SR ‘복불복’이지만, 보통 좋은 것 같아요. 무아지경에 빠져서 연기했는데 반응이 안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떨리는 나를 인지하면 다음 가사, 다음 동선을 생각하게 되고 상대방과 주고받는 에너지가 깨져요. 저도 사람이다 보니 생각해서 할 때도 물론 있지만, 모든 게 절로 될 수 있게 굉장히 노력을 하죠. 그러다 보면 같은 공연이라도 매일 다르게 하며 더 좋은 게 찾아지기도 해요. 공연은 그런 과정들의 연속인 것 같아요.

링, 크롬하츠. 티셔츠는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무뎌지지 않기 위한 어떤 노력을 해요?
SR 무대 위에서 상대방에 집중하고 있으면 진짜 같은 마음, 진짜 표현이 나와요. 그렇게 집중하다보면 무뎌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상대방의 눈을 잘 보는 것. 어떻게든 상대방한테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하고, 그것이 제게 새로운 영감으로 작용해요.
GQ 그 눈에서 무엇을 읽어요?
SR 상대방이 주는 에너지.
GQ 아까 듀오 컷(2p 참고) 촬영할 때 지킬, 하이드 중 한 인격을 머리에 품고 촬영에 임해달라고 했는데, 무엇이었는지 말해줄래요?
SR 하얀 티셔츠 입었으니까 처음엔 지킬을 해봐야겠다 했는데, 심심해보여서 유지가 안 되더라고요. 죄송해요. 결국 양면이 공존했어요.(웃음)
GQ 어라, 저는 하이드를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데이비드 스완 연출가와 연습하며 많은 대화를 나눈다고 들었어요. 그와는 <지킬 앤 하이드> 이외에 <드라큘라>라는 작품도 함께 했었죠? 요즘 대화에서는 무엇이 화두예요?
SR 그는 아주 훌륭한 연출가예요. 뻔하다고요? 들어보세요. 그는 내가 본 연출가 중 가장 직업에 충실한 사람이에요. 훌륭한 연출가답게 좋았던 점은 빼고 수정할 부분만 얘기해요. 잘못된 점, 틀린 그림을 어찌나 잘 찾는지.(웃음) 긴 시간 동안 일관된 모습으로 지적하며 저를 일깨워주세요. 그러다 첫 공연 올라가고 나서야 이런 같은 말씀을 해주시죠. “좋았다, 너 오늘 완벽했다”
GQ 지적하면 잘 수긍하는 편인가요?
SR “예스”라고 얘기해요. 예전에는 의문을 갖고 반박하기도 했는데, 결국은 연기로 보여줘서 납득시키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작품에 대한 해석이 사람마다 다르니 누가 맞거나 틀린 게 아니에요. 말로 논쟁하다 보면 이야기만 길어지고 목만 아플 뿐이에요. 연기로, 무대로 보여주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어요. 그래서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직접 증명하려고 하죠. 그러면서도 연출가는 우리가 나갈 방향을 제시해야 하는 사람이니까, 연출가로서의 그의 해석과 역할을 존중하려고 해요.
GQ 이제 한 달 남은 건가요? “너 오늘 완벽했어”라는 말을 듣기까지.
SR 글쎄요. 그 말도 매번 하는 게 아니라서.(웃음) 그런데 연출가를 만족시키는 공연을 하려고 모인 게 아니니까요. 결국은 관객이 중요하죠. 지난 번에는 코로나 때 공연해서 관객분들의 표정도 볼 수 없었고, 소리도 들을 수 없었어요. 이번에는 그들의 표정과 소리로부터 보고 싶고, 느끼고 싶어요. 우리가 바로 여기서 좋은 느낌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포토그래퍼
안하진
스타일리스트
최진영 (최재림), 윤현지 (신성록)
헤어 & 메이크업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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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하이
로케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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