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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넬로 쿠치넬리가 말하는 남성복에 대한 진심, 그리고 본질

2025.03.01정유진

이런 옷, 이런 사람이 닮고 싶어졌다.

브랜드 자체가 로컬이 될 수 있을까? 어딘가 순서가 뒤바뀐 것 같지만 읽는 그대로가 맞다. 도시에 뿌리를 내린 브랜드는 쉽게 떠올라도, 브랜드 자체가 로컬이 된 경우는 정말이지 드물다. 밀라노에서 차로 5시간을 내리 달리면 도착하는 움브리아주의 작고 평온한 마을, 솔로메오에는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본사와 공장이지만, 마을을 이루는 도서관, 학교, 포도원, 극장 역시 브루넬로 쿠치넬리가 제공한 것이니 이렇게 표현해도 틀린 말은 아니겠다. 설립 초기,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보온성이 탁월한 몽골 캐시미어와 히르쿠스 염소의 미세 털(목과 배 아랫부분의 속털. 오직 빗질로만 수확한다)을 주원료로 삼은 고품질 스웨터와 수트로 유명해졌다. 명성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사회 환원에 앞장서는 기업이자 고급 캐시미어 브랜드의 대명사가 됐다.

2025년 F/W 시즌,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안주하지 않고 혁신을 시도했다. 플렉 반점 효과가 가미된 새로운 원사와 희귀 섬유를 활용한 니트웨어를 선보인 것. 가공을 거쳐 한층 유연해진 레더 역시 주목할 만한 소재다. 초경량 나일론과 순수 캐시미어 소재는 언제나처럼 가볍고 섬세하게 몸을 감싸고, 시어링 퍼는 특별함을 더했다. 이번 시즌 테마는 아남네시스 Anamnesis. 세계 현상의 근원이 되는 이데아를 회상하는 과정을 뜻한다. 브루넬로 쿠치넬리는 남성복을 아남네시스에 투영해 이렇게 해석했다. “남성복 본연의 정체성을 되찾고, 각각의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균형 있는 스타일을 완성한다.” 여기서 말하는 유기적인 결합은 으레 생각하는 수트 한 벌은 아니다. 상반된 개성의 조합. 브루넬로 쿠치넬리식의 점잖은 위트다. 이를테면 반항적인 데님과 테일러드 재킷, 우아한 수트와 컬러풀한 니트웨어를 매치하는 식. 프레젠테이션 현장, 매끈하게 머리를 쓸어 넘긴 모델들이 이탤리언 특유의 능청스러운 표정으로 대화를 나눈다. 다른 행사장에서, 다른 모습으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지만 태생이 그런 듯(우아한 듯) 자연스러웠다.

귀에서는 감미로운 소나타가 환청처럼 맴돌았다.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여기로 눈을 돌릴 때마다 시선을 훔치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옷들. 그래, 이런 게 남성복이지. 고급 소재와 디테일, 군더더기 없는 세련된 실루엣이 우아한 앙상블을 이뤘다. 캐시미어의 부드러운 감촉, 그리고 와인의 산뜻한 향이 오감을 유약하게 자극하자 머무는 곳은 밀라노였지만 솔로메오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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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넬로 쿠치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