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와 술, 그 이유 있는 만남.
박성배 수석 셰프
온지음 레스토랑ㅣ조화로우며 검박하고 절제된 고유 정신을 바탕으로 한 레스토랑.

실험 중 고추장, 간장, 된장을 넣고 발효한 술을 빚어보고 있어요. 쌀로 만든 술에 직접 띄운 메주와 누룩을 활용해서요. 간장으로 발효한 술은 감칠맛이 있어서 생선 조림에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소주로 증류한 술은 소스, 잡내 없애는 용, 약과를 바삭하게 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죠. 예전에는 술을 약용으로도 마셨어요. 술로 마시면 좋은 성분이 흡수가 잘되어서 효과가 더 좋거든요. 대표적으로 지초를 써서 피를 맑게 해주는 감홍로가 그래요. 술을 약으로 쓴 오랜 지혜를 활용하면 음식도 약처럼 쓸 수 있죠.
술 빚는 재미 술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참 신기해요. 증류하면 또 다른 향과 맛을 갖게 되고, 시간에 따라 맛이 변화하는 게 느껴져요. 범벅으로 술을 만들면 리치하고 고소한 맛이 나고, 떡으로 빚으면 깔끔함과 풍부함이 공존하고, 고두밥으로 빚으면 깔끔하고 청량한 맛이 나요. 젖산 발효하면 사과 같은 신맛이 올라오고, 오픈해두면 풍미가 많아지고요. 여러 경우의 수를 조합해 원하는 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재밌죠.
지금 익고 있는 술 시간 날 때마다 만들고 있어요. 지금처럼 추울 때는 삼해주를 만들죠. 온지음 지하 창고에서는 여러 가지 술이 익어가고 있어요. 백향과, 진피, 죽순 껍질, 트러플, 석이버섯, 누룽지, 모과, 무···. 오미자술에 김치 국물을 넣어 발효한 술도 있는데 향이 되게 재밌어요. 김치 국물이 젖산 발효를 돕고, 자연스러운 감칠맛이 담겨 고기 요리와 잘 어울려요. 실패한 메밀 면을 버리기 아까워서 술로 빚은 다음 소주를 내린 적도 있어요. 백향과 청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로 만든 소주가 있는데, 이것도 참 ‘물건’이에요.
에이징 숨을 쉬는 항아리에 술을 숙성하면 부드러워져요. 오래 숙성한 술은 페트병으로 옮겨 숙성을 멈추죠. 나중에는 빈티지를 표기해 온지음 소주로 출시하고 싶어요. 여기 익고 있는 술들은 모두 당장 빛을 보기 위해 만드는 게 아니라 앞으로 5년 뒤, 10년 뒤를 내다보고 계속 만든 거예요. 실험하면서 꾸준히 데이터를 모으는 중이죠.
술의 확장 바 제스트와 협업해 요리 & 칵테일 페어링을 준비하고 있어요. 이제는 요리 그 자체보다 패션, 건축, 칵테일 같은 다른 분야에서 영감을 받는 일이 더 많아요. 온지음은 단순히 음식을 보여주기보다 우리나라 문화를 보여주고 싶고, 이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려 하거든요. 전통과 현대를 70:30 정도의 비율로 두고, 아름다운 균형을 이뤄나가고 싶어요.
좋아하는 술 맛있고, 스토리가 있는 술을 좋아해요. 가령 한영석 명인의 청명주, 동정춘, 백수환동주 같은 술이 그렇죠. 바람이 있다면 이 술은 이래서 맛있고, 저 술은 저래서 맛있고. 우리나라도 각자 맛있는 이유를 지닌 술이 다양해졌으면 좋겠어요.
잘 빚으려면 정성, 올바른 마음. 원하는 술을 만들려면 아기 돌보듯, 정성스럽게 들여다봐야 해요. 맛있는 술은 절대 저절로 나오지 않아요. 과학적으로 접근해 다양한 실험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죠.
기필코 발효 관련 책을 쓰고, 거기에 술 섹션을 두고 싶어요. 오래된 조리서를 보면 절반이 술 레시피죠. 지금 준비 중인 발효 연구소가 완성되면 온지음만의 술을 출시하고, 레스토랑에서도 활용할 수 있게 납품하고 싶어요. 술 하나로도 온지음의 철학이 드러날 수 있게 가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어요.
조셉 리저우드 셰프
에빗ㅣ한국 역사와 전통에 경의를 표하는 셰프 조셉 리저우드의 창의적인 실험을 마치 연극 보듯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

별안간 술에 빠진 까닭 유튜브 채널에서 한국 전통주 30종류를 테이스팅한 적이 있어요. 파인 다이닝에서는 음식과의 페어링이 중요한데, 어떤 술은 단독으로는 맛있어도 요리와 조화를 이루기 어려웠고 어떤 건 맛은 훌륭해도 패키지가 아쉬웠어요. 좀 더 섬세하고 가벼우면서도, 맛과 패키지 비주얼 모두 훌륭한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첫 결과물이 오미자와 목련을 조합한 스파클링 약주였어요. 가볍게 톡 쏘는 느낌과 브뤼 샴페인 같은 드라이 뉘앙스를 품고 있어요.
준비 중 미담 양조장과 막걸리를 만들고 있어요. 미담 양조장은 누룩을 사용해 전통 방식으로 막걸리를 만들어요. 저는 그 점이 좋았어요. 한국에서 막걸리를 1만원 넘는 가격에 팔면 사람들이 화를 내잖아요?(웃음) 그런데 미담은 6만원에 팔아요. 거기엔 전통 방식을 고수하는 데 드는 공, 수고, 정성의 가치가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술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이 과거의 양조 방식을 돌아보고 재발견할 수 있었으면 해요.
한국 술, 쏘 쿨 기본적인 파우더만 있어도 술을 쉽게 만들 수 있지만, 진정한 한국 술을 만들려면 누룩으로 시작해 점차 발전시켜야 해요. 모든 한국 전통 술은 쌀, 물, 누룩 세 가지 요소에서 출발하죠. 이 세가지 기본 재료만으로 엄청나게 다양한 스타일과 맛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한국 술의 가장 매력적인 점이라고 생각해요. 또 ‘박국’이라는 한 가지 효모를 사용하는 일본 사케와 달리 지역마다 효모가 다르다는 점도 흥미로워요. 각 지역의 특성을 그대로 담아내고, 술이 가진 고유한 맛을 지니죠. 그 점이 아주 멋져요. 미담 양조장과의 프로젝트에서도 야생 누룩을 써보고 싶었지만, 수익적인 문제 때문에 시도하지 못했어요. 다만 이번에는 협업이라는 점이 중요했고, 맛과 패키지도 만족스러워요. 이제는 맛과 디자인을 넘어 이 술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어떤 원료를 사용했는가 같은 과정 자체가 더 중요한 요소로 다가와요.
좋아하는 과정 따뜻한 물에 찹쌀가루를 넣어가며 발효시키는 방식, ‘Very Cool’하죠. 전에 전통 소주를 만드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데, 한 사람이 불을 지피면서 소주 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계속 공들여 주시하고, 하루 12시간씩 불 조절을 하면서 온도를 잡더라고요. 소주는 휘발성이 강해서 작은 차이에도 쉽게 타버리기 때문에 아주 세심한 조절이 필요하거든요. 멋진 과정이죠. 저는 어릴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매력을 느껴왔어요. 그래서 한국 술이 더 흥미롭고 이런 과정이 재미있게 다가와요. 짧은 역사를 지닌 호주와 달리 한국에서 몇천 년 역사를 가진 문화를 쉽게 마주할 수 있죠. 몇 백 년 된 건물이 아니라, “15세기에 지은 건축물이에요”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짜릿해요.
셰프의 영감 외국인들에게 한국 술은 ‘쌀과 물로 만든 술’ 정도로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단 세 가지 재료로 출발했을 뿐인데 약주, 막걸리, 탁주, 소주 등 아주 다양한 술이 존재하죠. 술지게미로도 또 다른 술을 만들잖아요. 저는 이 점이 한국 음식과도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많은 전통 음식과 술이 어려운 과정 가운데 만들어졌죠. 오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술을 발전시키고, 다양한 스타일이 탄생했어요. 단순히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 속에는 깊은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는 것을, 한국 술을 배우면서 느끼고 있어요.
김대천 셰프
비움ㅣ세븐스도어, 톡톡을 운영하는 김대천 셰프의 비움에서 몸과 마음을 깊이 돌보는 사찰 음식의 오랜 지혜를 맛볼 수 있다.

지금, 비움의 술 청주와 막걸리는 밥을 세 번 지어 만드는 삼양주를 기본으로 해요. 삼양주 방식 안에서도 쌀의 종류, 물의 비율, 밑술을 다르게 하는 방식으로 맛의 차이를 두고 있죠.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고, 가장 빠르게 만들어지는 술도 한 달 이상 걸려요. 발효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정확한 숙성 기한을 정해두지 않고 계절과 기온에 따라 맛과 향을 확인하며 기한을 조절해요.
술을 빚은 까닭 비움은 춘하추동 계절에 따라 다양한 채소, 나물을 내어 드려요. 술 또한 계절에 맞게 그때그때 방문하시는 손님 입맛에 맞게 상에 올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술을 직접 빚게 되었죠.
비움의 추구미 ‘춘하추동’은 자연의 변화와 순환이 펼쳐지는 시공간이며, ‘지수화풍’은 몸과 마음, 일체 만물을 구성하는 요소예요. 이것이 저희가 따르는 가치죠. ‘지(땅 地)’는 땅에서 재배된 곡물과 나물 등을 활용한 요리, ‘수(물 水)’는 해조류와 땅에서 나는 신선한 식재료로 만든 채수 기반의 깊고 깨끗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요리, ‘화 (불 火)’는 불을 사용해 조리한 요리, ‘풍(바람 風)’은 한국의 사계절을 담은 다양한 반찬과 유기농 쌀밥 또는 잡곡밥으로 냅니다.
술에 담기는 춘하추동, 지수화풍 봄 여름 가을 겨울에 나오는 식재료를 이용해 술을 담가요. 보통 3개월에서 1년 정도 걸리는 작업이기에 올해 만들면 내년에 페어링할 수 있게 준비해요.
꿈에 그리던 맛 제가 막걸리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질감이에요. 기존 막걸리가 가진 곡물 가루 느낌의 텍스처보다는, 우유와 같은 밀키함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어요. 삼양주에서 덧술을 할 때 고두밥을 넣는 과정에서 고두밥을 바로 넣는 대신 기존 밑술을 채주해 최대한 고운 질감을 유지해 술을 만들어요. 비움 막걸리에서 느낄 수 있는 복숭아의 향은 알코올 발효 후 온도를 조절해 저온 발효를 통한 양조 과정에서 피어낸 것이에요.
타협하지 않는 것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위생이에요. 양조는 균과 균의 싸움이거든요. 손뿐만 아니라 공기 중에도 수많은 균이 존재해요. 특히 비움 주방에는 다양한 식초와 장이 있어서 공기 중에 초산균, 고초균 등 다양한 균이 존재해요. 쌀을 찌고, 누룩을 빚고, 고두밥과 누룩을 섞는 모든 과정에서 외부 균의 오염을 철저하게 배재해야 해요.
셰프에게 주는 영감 술은 하나의 발효 과정이기 때문에 술 빚기와 요리에는 유사한 점이 많아요. 그래서 술을 만들며 새로운 요리를 구상하기도 하죠. 다만 가급적 그 과정에서 전통 방식을 고수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술과 계절 비움에서 일 년 내내 맛볼 수 있는 막걸리와 청주는 찹쌀 삼양주 막걸리, 청주예요. 두 가지 술 이외에 맵쌀 이양주, 연잎으로 숙성한 하향주, 물 대신 좋은 청주로 빚은 청감주, 향과 산미가 좋은 석탄주 등 다양한 술을 빚고 있는데, 계절에 따라 빚기보다는 요리와 음식 페어링에 맞춰 양조하는 방향으로 하고 있어요.
반드시 올해 꼭 만들어보고 싶은 술이 비움만의 백세주예요. 약용 목적이 아닌 쌀과 누룩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맛을 감초, 당귀, 오미자, 산수유 등을 넣어 더욱 비움만의 약주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손종원 셰프 & 김성국 소믈리에
이타닉 가든ㅣ조선 팰리스 호텔에 미쉐린 1스타를 달아준 레스토랑으로, 감각적으로 재현한 한식의 멋진 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술을 만든 까닭 JW | 이타닉 가든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드리는 것, 그것이 저희가 가장 원하고 바라는 거예요. 그를 위해 셰프로서 항상 고민하죠. 기존에 있는 정답같이 맛있는 술을 가져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부딪히고 경험하며 찾아가는 과정에서도 저희가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다른 것’, 유니크한 경험을 만들어간다고 믿고요. SK | 아무리 고급 술을 사용해도 음식과 딱 맞기보다는 옆에서 걸어가는 느낌이 있었어요. 소믈리에로서 아쉬웠죠. 제가 이타닉 가든 요리를 잘 아니까, 이 요리에 맞게 양조한 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통을 고수하는 데서 더 나아가, 전통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표현을 해내는 술을 만들고 싶었죠.
양조장과의 만남 JW | 저는 셰프니까 가장 중요한 건 ‘맛’이었어요. 여러 양조장을 테이스팅해보고 가장 맛있는 곳으로 골랐어요. 물론 추구하는 방향도 잘 맞았고요. SK | 이타닉 가든에서 표현하는 요리에 딱 맞는 커스터마이징 술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려면 맛도 중요하지만 만드는 분의 철학이 중요했죠. 한국 식재료의 본질을 알리고 보다 더 한국 요리를 잘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이 맞아야 했거든요. 그러다 대밭고을 양조장을 만났는데, 다행히 저희와 꾸는 꿈이 비슷했어요.
맑음과 흐림 SK | 맑음은 약주, 흐림은 탁주예요. 탁주, 약주 순서로 주전부리와 함께 내요. 예전부터 농부들은 탁주를 마셨고, 배를 타는 분들은 멀미를 하니까 맑은 술을 마셨거든요. 그래서 곡물 주전부리에 먼저 흐림을 내고, 그다음에 맑음을 서빙해요. 맑음은 투명한 잔, 흐림은 표면의 질감이 다른 반투명한 잔에 따라 시각과 질감으로도 술의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꿈꾸던 맛과 향, 텍스처 SK | 손종원 셰프의 요리는 텍스처가 특히 재밌어요. 그래서 코스마다, 식재료마다 그 질감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밥을 세 번 지어 빚은 삼양주 양조 방식으로 도수를 올리면서 질감을 잘 표현하려고 했어요. 완성하기까지 9개월 넘게 걸렸는데, 그 과정에서 쌀과 대나무 종류, 알코올 도수, 밥 짓는 회수, 재료, 보관 온도까지 거의 모든 것을 바꿨어요. 밥 지을 때는 저온 침용 공법으로 쌀에서 향기를 다 뽑아내고 나
서 천천히 온도를 올리면서 발효시켜서 미네랄이나 꽃 향 발산이 더 잘되었죠.
페어링 JW | 샴페인도 좋지만 전부터 막걸리 한 잔에 기름기 있는 카나페를 매치하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막걸리에 주전부리를 먹는 게 우리나라 문화 중 하나이고, 특별한 한국적 경험이잖아요. 페어링을 잘하면 요리의 맛을 더 위로 끌어준다고 믿거든요. 이것이 아주 어려운 일인데, 옆에 있는 이 분이 훌륭하게 잘해주고 있죠.(웃음) SK | 페어링은 단순히 하나의 요리와 술의 매치가 아니라, 앞뒤 요리와의 합도 고려해야 해요. 마치 블루투스처럼 실시간으로 바뀌어야죠. 그런 면에서 흐림과 맑음이 훌륭한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기필코 SK | 오미자로 캄파리 같은 비터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리고 단기 소비용이 아니라, 계속 숙성하며 마실 수 있는 술이 있으면 좋겠어요. JW | 더 깊이 있는 술을 이타닉 가든 버전으로 완성해보고 싶어요. 이타닉 가든의 요리와 술에 대한 이해가 누구보다 깊고 풍부한 김성국 소믈리에를 열심히 지지하고 지원하면서, 셰프인 저는 요리를 더 잘 하려고요.(웃음)
- 일러스트레이터
- 조성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