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카구치 켄타로와 <지큐>의 두 번째 만남, 첫 번째 커버.

GQ 지난 인터뷰에서 “한번 맺어진 인연은 끊어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했죠. 다시 만났네요, 우리.
SK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미소)
GQ 다시 만난 <지큐>와 촬영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어요?
SK 그동안 저는 일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 언어라고 생각했어요. 모국어가 다른 사람들과 일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그것이 제 선입견이었던 것 같아요. 오늘도 그렇고 한국에서 촬영을 진행하면서 ‘모두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구나’라고 느꼈고, 실은 언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구나 깨달은 순간도 있었어요. 그리고 저는 두 번째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퍼포먼스나 결과물에 따라 두 번째가 오지 않는 경우도 많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영화, 드라마를 하면서도 한번 같이 일한 사람과 다시 만나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처음 만나면 “처음 뵙겠습니다. 사카구치 켄타로입니다”라는 인사로 시작하는데, 두 번째는 이렇게 말할 수 있잖아요. “아, 잘 지냈어요?”

GQ 영상 인터뷰에서 현재를 두고 “내 안의 물을 더 좋은 물로 여과하는 시기”라고 했어요. 내면의 물을 더 좋은 물로 만드는 나름의 방법이 있어요?
SK ‘오늘 아무것도 안 했네’라는 생각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않는 거예요. 물론 해야 할 일은 많지만, 가끔은 아무것도 안 해도 괜찮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것. 그게 제 삶의 질을 높이는, 제 안의 물의 질을 높이는 좋은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비운 만큼 무언가를 하는 날 더 집중할 수 있거든요.
GQ 얼마 전 한 행사장에서 “봄은 만남의 계절”이라고 했다가 바로 정정했어요. “만남과 이별의 계절”이라고요. 왜 그랬을까요?
SK 만남도 인연이고, 이별도 인연이라고 생각해요. 인연이 있어서 만나고, 인연이 있어야 이별이 오잖아요. 일본에서는 3월이 되면 입학식, 졸업식이 있어서 CM 등에서 신입사원이나 성인이 되는 사람들을 그린 내용을 많이 다뤄요. 봄은 왠지 그런 계절인 것 같아요. 인연이 있어서 또 이렇게 여러분과 만날 수 있었던 거고요. 하지만 이번에는 이별은 없죠.(미소)

GQ 이별도 인연이라면, 이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편인가요?
SK 좋아하는 감정과 질은 다르지만, 감정의 움직임이라는 점에서는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비슷하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일본어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쫓지 않는다”라는 관용구 속담이 있는데, 이 말이 저한테는 꽤 맞는 것 같아요. 저는 떠나는 것을 크게 쫓지 않는 편이에요.

GQ 이전 인터뷰에서 “사랑에는 자기 희생이 따른다”고 이야기했죠. 그런데 최근 <이별 그 뒤에도>의 코멘터리에서 “사랑은 인력이다,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의해 끌리게 된다”는 촬영감독의 말이 마음에 퍽 와닿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사랑의 정의나 사랑에 대해 생각이 바뀐 점이 있을까요?
SK 주관이 변하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자기 희생은 굉장히 주관적인 거잖아요. ‘사랑은 자기 희생’이라고 말씀드린 건 제 안에서 끝나는 얘기예요. 하지만 상대방을 놓고 볼 때, 촬영감독님이 말씀하신 ‘인력’이라는 말이 매우 공감되었어요. ‘사랑이 무엇인가요?’라고 물을 때 제 안에서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느냐 없느냐’이지만, ‘우리 둘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서로에게 끌리는 인력, 척력 같은 것. 즉, 둘 이상일 때 사랑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죠. 주관이 달라졌다기보다, 제 안에서 ‘인력’이라는 새로운 관점이 생겼다는 게 더 정확한 거 같아요.

GQ 마음속 이끌림에 잘 따르는 편인가요?
SK 네, 꽤 따르는 편이에요. 저는 여러 가지를 내가 아닌 타인의 입장으로 객관화해서 보는 버릇이 있는데, 한발 뒤로 물러나서 보거나 부감으로 보아도 결국 나아가는 방향이 마음속 생각과 정반대는 아니었어요. 왠지 모르게 마음이 당겨지는 방향으로 끌려가는 느낌이라, 그 감정이 움직였을 때 자신에게 ‘절대 안 돼’라거나 거스르려고 하는 마음은 별로 없는 거 같아요.

GQ 지금 이 순간, 켄타로 마음속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나요?
SK 음, 지금 제 마음은 아주 편안한 상태예요. 아무 생각 없이 말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감정적으로는 매우 편안해요. 그래서 오늘 촬영을 하면서도 전화 신에서 “이 순간에는 연인과 이별했다는 감정으로 임해주세요” 같은 주문이, ‘그런 연기는 못 해’가 아니라 오히려 재밌겠다 싶을 정도의 마음이었어요. 지금 제 마음이 굉장히 자유롭기 때문에요.

GQ 어째서 지금 편안한 상태일 수 있는 거예요?
SK 저는 늘 릴랙스를 잘하는 편이에요. 어쩌면 ‘남들이 뭐라고 생각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제게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사카구치 켄타로라는 존재가 이렇게 보여야만 한다’는 식의 생각이 내 안에 없고, 평상시의 나로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사카구치 켄타로의 평소 모습이 인상을 찌푸리고 살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 또한 그대로 전달되겠죠. 하지만 제 진짜 본질은 지금처럼 편안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작품에 들어가도 별로 변하지 않는 거 같아요.

GQ 전에 말했던 ‘자기애’로 채워져 있어서 가능한 일일까요?
SK 네, 맞아요. 제 자신을 사랑하는 게 기본 전제이기 때문에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알고 있으면 괜찮고, 나만 이해해도 괜찮아요. 그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거 같아요.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을 좋아하면서도, 좋아하는 존재를 조금씩 넓혀가면 점점 더 제 자신이 단단해진다고 느껴요. 가족처럼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옆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는 존재. 내가 한 그루의 나무라고 한다면, 줄기를 더 강하게 만들어주는 존재. 그런 존재를 주변에 많이 만들면 점점 더 줄기가 튼튼해진다고 할까···. 실제로 제 주변에 그런 존재가 많고, 저도 그들에게 그런 존재이길 원해요. 그래서 촬영할 때도 의지하는 것,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혼자서도 잘할 수 있지만, 의지하는 거죠. 의지한다는 건, 스스로도 의지가 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책임도 따르죠. 의외로 의지를 잘 못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혼자서 잘 해내는 게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의지하고 필요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요. 오늘처럼 수십 명이 모여서 작업할 때도 어시스턴트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필요하다는 의식을 보여주면서 일을 한다는 건 제게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GQ 애정 넘치는 현장을 만들고 싶다고 했죠. 오늘 넘치는 애정을 느꼈나요?
SK 그럼요. 각 개인의 주관만을 고집하면서 일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어요. 스틸과 영상 감독님을 비롯해 모든 스태프들이 ‘보여줘야 하는 것’에 대해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고,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면서 원하는 그림에 가 닿기 위해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움직였어요. 자신의 이기심만을 내세우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현장에서는 저도 상대가 원하는 것에 더 응답하고 싶어져요. 그러한 마음들을 다 같이 공유한, 애정 넘치는 현장이었어요.

GQ 애정이 있는 현장을 만드는 것이 켄타로에게는 왜 중요한가요?
SK 누군가에게 친절하고, 솔직하고, 긍정적인 의미의 일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좋아해요. 그 생각이 정말 강해요. 저는 내가 좋아하는 나로 있고 싶거든요. 영화 작업에 들어가면 몇 달 동안 같은 팀과 촬영을 하는데, 제가 너무 긴장하거나 날카롭게 있으면 현장에도 긴장감이 돌고, 반대로 즐겁게 촬영하면 모두에게 즐거운 마음을 만들 수 있는 비중이 커요. 이왕 일한다면 그 시간을 즐겁게 하고 싶어요. 작품의 완성도가 어떻든 간에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다 같이 소통하고,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좋은 기분으로 임했으면 좋겠고, 그렇게 하는 내 자신이 좋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GQ 한국에서는 종종 켄타로처럼 멋진 사람을 두고 “코미디언보다 더 웃긴다”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바라만 봐도 계속 웃게 되니까요. 자신이 유머러스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나요?
SK 농담이 통하지 않을 때가 많지만, 저는 유머가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지난번 <지큐>와 화보 촬영한 후에 “여권 뺏고 싶다”처럼 팬분들이 위트 있는 댓글을 달아주셨는데, 그런 센스가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GQ 이번 화보 결과물이 올라가면 위트 있는 코멘트에 도전해볼래요? 사카구치 켄타로의 유머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될 테니까요.
SK 댓글요? 알겠습니다, 고민해볼게요.
GQ 우리의 인연에는 이별이 없다고 했으니까, 언제 다시 만날까요?
SK 그럼요, 꼭이요. 한 계절에 한 번씩 촬영하면 어떨까요? 옷이 다 다르잖아요. 봄, 여름, 가을,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