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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긴 러닝타임이라니, 최장편 영화 5

2025.03.24박예린

오스카 3관왕 영화 [브루탈리스트]는 인터미션 15분을 부여했고, 개봉 예정인 [아바타] 세 번째 시리즈도 192분이 예상된다. 러닝타임이 길다 못해 한나절을 넘어가는 영화 다섯 편을 소개한다.

5시간이 넘는 압도적 러닝타임 | [해피아워], 328 min

현재 일본에서 가장 촉망받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해피아워]는 3시간 28분도 아닌 무려 5시간 28분이라는 긴 러닝타임 탓에 보기로 결심하는 데만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정작 보기 시작하면 328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길게 느껴지진 않는다. 드라마틱한 사건이랄 것도 없는데 말이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든 네 명의 친구들의 일상과 고민, 일상의 균열이 만들어낸 파문,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이 영화의 러닝타임인 셈이다. 심지어 네 명의 주인공들 모두 전문 배우가 아니다. 감독이 ‘즉흥 연기 워크숍’을 열어 만난 비전문 배우들로 아마추어임에도 제68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공동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았다. 심지어 주인공들이 참가한 중심이란 주제의 워크숍 장면을 보여주는 데만 약 30분을 할애해 영화 속 워크숍에 함께 참가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화려한 촬영 배경이나 효과는 없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공감하게 되는 공허함, 우리와 닮아있는 표정,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군상을 통해 울림을 전달하는 작품 감상에 기꺼이 한나절 정도는 할애할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다.

전 세계 평론가 모두가 극찬을 쏟아낸 |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237 min

1980년대 대만의 뉴웨이브를 주도했던 고(故) 에드워드 양 감독의 1991년작으로, 타이페이를 배경으로 연출한 타이페이 스토리(1985년작), 공포 분자(1986년작)와 함께 ‘타이페이 3부작’이라고 불린다. 3시간 50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품성으로 영화팬이라면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이 작품은 디지털 4K로 리마스터링되어 26년 만에 국내에 정식 개봉하며 시네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1961년 대만에서 처음 발생한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바탕으로 소년이 소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이 작품은 중국 공산당 집권 후 대만으로 건너간 한 가족과 소년을 통해 1960년대 불안한 시대와 폭력의 세계를 담아냈다. 영화는 자극적인 제목과는 달리 서정적이면서 길고 느린 호흡, 인물과 사건을 관조하는 시선으로 처연함과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긴 여운을 남기는 절제된 감정과 잔상에 크게 남는 몇몇 장면들은 기꺼이 234분이라는 긴 여정에 동참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중화권 최고 스타 장첸의 데뷔작으로, 그의 어린 시절 모습과 떡잎부터 남달랐던 연기 재능을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영화의 묘미!

강렬한 데뷔작인 동시에 유작이 된 |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234 min

2018년 중국 영화계에서 최대의 문제작으로 떠오른 [코끼리는 그곳에 있어]. 친구의 자살, 학교 폭력, 원조 교제, 가족의 외면 등 더 이상 바닥으로 떨어질 곳 없는 네 주인공이 만저우리에 있는 동물원 코끼리를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이 영화는 고(故) 후 보 감독의 빛나는 데뷔작이자 유작이다. 234분이라는 장대한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베를린 국제영화제, 토론토 국제영화제, 홍콩 국제영화제, 시드니 영화제, 더블린 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작품성을 인정받으며 평단과 영화팬들의 지지를 얻었다. 청소년부터 청년과 노년 등 각 세대의 사연을 디테일하게 담아내며 중국의 사회 문제를 폭넓게 다룬 이 영화는 4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 안에 인물들의 감정과 현실을 섬세하게 녹여내며 깊은 여운을 준다. 영화를 완성한 뒤 감독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며 데뷔작인 동시에 유작이라는 사실마저 영화의 여운을 더한다. 긴 상영 시간에 웃음기 하나 없이 우울한 회색빛의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영화지만 끝까지 호기심을 놓지 않게 만드는 매력과 힘이 있어 한 번쯤은 도전해 볼 만한 작품.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영화 |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222 min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1939년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뜨는 법이니까” 등 다양한 명대사와 명장면으로 8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회자되고 있는 고전 작품 중 하나다. 영화계의 스테디셀러답게 여러모로 다양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에 러닝타임 3시간 42분짜리 영화를 풀 컬러로 제작했고, 600만 달러라는 엄청난 제작비를 썼다. 이에 힘입어 흑백 영화 시대가 끝난 뒤 치러진 1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10관왕을 휩쓸었고, 222분의 러닝타임으로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중 가장 러닝타임이 긴 영화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는 아름답고 강인한 여성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쟁 전의 평화로운 모습, 남북 전쟁 당시의 다양한 인간과 사회상은 물론 전쟁 후의 황폐함을 극복하려는 남부 사람들의 모습까지 그려냈다. 미국 남북전쟁이 일어나기 전, 남부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땅이었던 조지아 주 타라를 배경으로 하여 남부의 한 강인한 여인과 그녀의 사랑 그리고 갈등을 그린 대하 서사극이기에 222분이라는 긴 러닝타임이 생각보다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통적인 극장 관람 방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 [브루탈리스트], 215 min

지난 3월 2일에 개최된 제9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촬영상, 음악상 3관왕을 차지한 [브루탈리스트]는 작품성 외에도 긴 러닝타임과 인터미션, 가상의 인물, 인공지능(AI) 사용 등 다양한 시도들로 주목받았다. 영화의 러닝 타임은 15분의 인터미션을 포함해 215분인데, 인터미션 때 영화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독특하다. 상영 후 1시간 40분이 지날 무렵 스크린에 주인공 가족의 빛바랜 스틸 사진이 뜨면서 휴식 알림과 함께 15분 카운트다운이 시작된다. 잔잔한 음악이 계속 흐르는 채로 영화관 내 조명이 켜지고 관객들은 화장실에 가는 등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브래디 코베 감독은 처음 영화를 만들 때부터 인터미션을 넣을 생각이었다고. 홀로코스트를 피해 도망친 헝가리 출신 유대인 건축가 라즐로(에이드리언 브로디)가 미국에 어렵게 정착한 후 서서히 건축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하는 전반부, 건축물을 만들어나가면서 정신적, 육체적으로 갈등을 겪으며 피폐해져가는 후반부 사이에 들어가는 인터미션을 영화의 서사를 나누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 것이다. 덕분에 인터미션을 영화에 포함시켜 작품과 극장의 일관성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극의 흐름이 더욱 효과적으로 관객들에 전달된다.

사진
공식포스터, 게티이미지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