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가슴에 새기고 기억하게 되는 어른들의 말이 있다. 사람을 살게 하는, 믿음과 사랑의 말 한마디.

가서 구경만 해도 충분한 경험이다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서 난감해하고 있던 스무 살. 사실 특별한 꿈도 반드시 가고 싶던 생각한 대학도 없어 더욱 고민스러웠다. 그때 아버지가 고민의 시간을 1년 더 벌어주셨다. “서울에 노량진이라는 동네에 가면 학원이 많다더라. 원하는 바를 이루면 좋고 그렇지 않더라도 일단 가 봐라. 가서 그 동네 사람들은 어찌 사는지 보고 느껴봐. 그것만으로 충분한 경험이다.” 툭 던져준 아버지의 말씀이 뭐든 시작할 힘이 되었다. 나의 두 딸도 어떤 일이든 겁부터 먹지 말고, 씩씩하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길 바라며 이 얘기를 전한다. (김현진, 회사원)
마니또가 되어줄게
내 인생의 비빌 언덕. 내게 무슨 일이 생겨도 도움을 요청할 미더운 대상이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 “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꼭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말해. 엄마가 한 번은 마니또 해줄게.” 그 귀중한 찬스로 나는 대학원에 갔다. (지중보, 건축가)
쓴소리가 널 강하게 만든단다
나는 칭찬 듣는 걸 좋아하는데 엄마는 늘 부족한 점을 지적했다. “좋은 얘기만 들으면 발전이 없어. 안 좋은 소리도 들을 줄 알아야 사람이 나아지는 거야. 사탕 발린 달콤한 얘기보다 쓴소리가 널 강하게 만든다.” 주입식에 가깝게 반복해서 얘기해줬다. 살아보니 정말 그랬다. 칭찬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조언은 날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해주는 것이었다. (공다연, 축구선수)
우리 공주
엄마랑 나는 자주 언쟁을 벌인다. 한때는 끝장을 볼 때까지 온갖 과거 이야기를 들춰가며 화를 냈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30대 중반이 되고 엄마는 중년의 여자가 되면서 엄마가 날 꼼짝 못 하게 한다. 왜 동생만 예뻐하냐는 유치한 질문에도, 언제까지 심부름시킬 거냐는 투정에도, 어릴 때 왜 일기를 매일 쓰게 시켰냐는 한탄에도 “우리 공주가~”로 시작되는 문장으로 날 누그러뜨린다. 어디 가서 공주 노릇하고 사는 내가 아니기에 엄마가 부르는 공주 호칭은 소중하다. 엄마도 나도 건강하게 오래 살아서 앞으로도 쭉 그녀의 공주이고 싶다. (김소형, 라디오 작가)
함께 슬픔에 빠져줄게
고등학교 시절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다. 모든 선생님이 날 싫어할 정도였다. 당연히 학교에 다니는 일이 힘들었다. 단 한 선생님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밥도 먹어줬다. 밖에서 따로 티 타임도 가졌다. 입시 스트레스까지 겹쳐 우울하던 어느 날, 선생님께 다 망할 것 같다고 마음을 털어놨다. “네가 진흙탕에 빠져도 내가 구해줄 수는 없어. 대신 함께 빠져서 안아줄게.” 내 얘기를 들은 선생님은 이렇게 답해줬다. 좋은 어른이 내 편이라는 생각에 어려운 시기를 무탈히 지나올 수 있었다. (송지현,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