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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곧 스포, 세기의 대결을 다룬 실화 영화 모음

2025.04.14.박예린

조훈현 대 이창호 사제 대결을 다룬 실화 영화 <승부> 외에도 많다.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라이벌의 ‘세기의 대결’을 그린 실화 영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바둑판 위 양보 없는 사제 대결, <승부> 바둑

영화사 월광

1990년대를 배경으로 전 세계가 인정한 한국 바둑 레전드 조훈현과 그의 제자 이창호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던 승부를 담아낸 <승부>가 개봉 11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하는 등 거침없는 흥행세를 보이고 있다.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바둑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즐길 수 있고, 바둑이라는 정적인 소재를 긴장감 넘치는 전개와 치열하고 역동적인 승부로 풀어내 호평받고 있는 것. 영화는 전 세계 바둑을 제패하고 최정상의 자리에 오른 조훈현과 그가 제자로 맞은 소년 이창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데, 두 사람은 혹독한 스승과 그 스승의 가르침을 묵묵하게 따르는 제자의 관계로 나아가지만 첫 공식 사제 대결에서 스승이 제자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하면서 두 사람 사이의 진정한 승부가 시작된다. 특히 조훈현의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 그를 뛰어넘으려는 이창호의 조용하지만 강렬한 열망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병헌과 유아인의 열연이 돋보인다. 실제 조훈현이 이병헌의 연기 장면을 촬영한 사진을 보고 자신으로 착각했을 정도였다니 조심스럽게 장기 흥행을 예측해 볼 수밖에.

전 세계가 주목한 가장 극적인 체스 경기, <세기의 매치>

판씨네마

체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승부로 손꼽히는 1972년 세계 챔피언 타이틀 매치는 ‘소리 없는 3차 세계대전’으로 기록될 만큼 이목을 끌었다. 이 경기는 미국을 제패한 체스 천재 바비 피셔와 무패 신화의 전설적인 체스 황제 보리스 스파스키의 대결이었을뿐만 아니라 냉전이라는 특수한 시기였기에 전 세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과 소련은 자유주의와 공산주의 진영을 대표하며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체스 대결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었던 것. 이 극적인 대결 실화를 그린 영화 <세기의 매치>는 냉전 시기 국가의 자존심까지 걸머진 스포츠 영웅의 압박감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대부분의 초점은 바비에 맞춰져있는데, 패배를 싫어하고 무승부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늘 불안감과 압박감에 시달리는 체스 천재의 이면 모습도 볼 수 있다. 매 수를 둘 때마다 150수 이상을 앞서가는 바비와 한 수를 두는 데 평균 3초밖에 걸리지 않는 보리스, 두 천재의 운명적인 대결의 결과는 영화에서 확인해 보자. 물론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역사 자체가 곧 스포일러지만.

세기의 테니스 남녀 성 매치,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

20C Fox

US 오픈 테니스 대회는 1973년 세계 테니스 4대 그랜드슬램 대회 가운데 최초로 남녀 선수들의 상금 차별을 철폐, 남녀 선수들에게 같은 액수의 상금을 지급했다. 이는 테니스뿐만 아니라 모든 스포츠 종목을 통틀어 최초의 사건이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미국이 낳은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이자 세계 스포츠계의 양성평등을 이끈 빌리 진 킹이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1973년 9월 20일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날 여자 세계 랭킹 1위인 빌리 진 킹과 전(前) 남성 윔블던 챔피언 바비 릭스가 성 대결을 펼쳤는데, 두 사람의 빅 매치는 전국에 TV로 생중계될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양측이 내거는 명분은 여권 신장을 위해와 여자의 열등함을 증명하기 위함. 세기의 남녀 대결에 도박사들은 바비 릭스의 승리에 걸었지만, 예상과 달리 빌리 진 킹이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승한다. 그 후 세상이 달라졌다. 이를 계기로 1973년 전미 오픈을 시작으로 2007년 윔블던까지 4대 메이저 테니스 대회의 남녀 상금은 똑같아졌다. 테니스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역사적인 대결은 <빌리 진 킹: 세기의 대결>에서 볼 수 있다.

한국 프로야구 최강 라이벌의 뜨거운 승부, <퍼펙트게임>

롯데엔터테인먼트

국내 프로야구 팬이라면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경기로 1987년 5월 16일 롯데와 해태의 대결을 꼽을 것이다. 영화 <퍼펙트게임>은 전적 1승 1패의 팽팽한 상황에서 대결로 내 몰려야만 했던 최동원과 선동열의 마지막 맞대결을 다루고 있다. 지역주의와 학연으로 분열과 갈등이 계속되던 1980년대 당시 대한민국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 전설적인 존재이자 최강 라이벌이었던 최동원과 선동열이 펼친 세 번의 경기는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었다. 특히 두 선수가 맞대결을 펼친 세 번의 경기 중 마지막이었던 5월 16일 경기는 연장까지 15회, 장장 4시간 56분간 이어진 두 사람의 치열하고도 고독한 승부로 스포츠 그 이상의 감동을 선사했다. 맞대결 후 ”앞으로 프로야구를 이끌어갈 최고의 투수는 선동열이다.”, “최동원 선배라는 거대한 목표가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라며 서로를 향한 끈끈한 우정을 드러내 대결 이상의 감동을 선사하기도 했다. 영화는 두 사람의 뜨거웠던 승부와 동시에 롯데와 해태, 경상도와 전라도, 연세대와 고려대 등의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그들의 라이벌 관계 속 숨겨진 이야기까지 그리며 오랜 야구 팬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두 남자가 펼치는 서킷 위 황홀한 레이스, <러시: 더 라이벌>

롯데엔터테인먼트

<러시: 더 라이벌>은 F1 역사상 가장 뜨거운 명승부로 기억되는 1976년 독일 그랑프리에서 숙명의 라이벌 대결을 펼친 두 천재 레이서 제임스 헌트와 니키 라우다의 실제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타고난 천재 레이서 제임스 헌트와 철저한 노력파 천재 니키 라우다, 스타일과 성격이 매우 다른 두 사람은 매 경기 라이벌로 부딪히며 치열한 접전을 벌인다. 특히 1976년 시즌, 매 라운드 번갈아 1위를 차지하며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었던 두 천재 레이서의 라이벌 대결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러던 중 레이서들의 무덤이라 불리는 독일 그랑프리 서킷 10라운드에서 악천후 속 경기를 강행하지만 죽음의 트랙에서 한 대의 차량이 문제를 일으키며 불길에 휩싸이게 된다. 생명이 위독한 상황을 넘기고 레이스에 다시 복귀하며 모든 것을 걸었던 세기의 대결의 최후의 승자가 누구였는지는 영화를 통해 확인할 것. 마치 F1 경기장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실감 나고 박진감 넘치는 레이스 장면들과 스피디하게 진행되는 매력적인 전개 방식으로 F1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영화를 충분히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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