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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맛을 왜 못 잊겠냐면 말이죠, 고향의 맛을 담은 특산품 24

2025.04.10김은희

산지의 생기, 맛의 고향 도감.

① 순천

“순천만 갈대밭에 가면 칠게가 있어요. 뻘에 사는 게인데 어느 지역에서는 낚시 미끼로 쓰기도 하고, 껍질째 간장에 담가 간장칠게장으로 먹기도 했대요.” 갯벌 곁에서 터전을 일구어온 할아버지 할머니, 혹은 보다 이전 대에서부터 이어진 구전을 거쳐 지금은 60대 어머니와 함께 칠게를 다루고 있는 30대 이여린 씨의 비법은, 칠게를 소금에 절여 2년 이상 숙성시킨 후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버무려 만드는 장이다. 돌솥비빔밥에 고추장 대신 한 숟갈 넣어 비벼도, 고기에 쌈장 대신 더해도 맛있다 추천한다. 붉게 피어오르는 어스름한 게 향에 새끼손가락으로 쿡 찍어 맛보니 그대로 라면에 한 스푼 풀면 시원한 해물라면이 되겠구나, 군침이 돈다. 입말음식을 상용제품화한 이여린 씨는 일부러 특허도 내지 않았다며 이 말은 꼭 기록해달라 청했다. “나중에는 없어질 수도 있는 식재료잖아요. 먹을 수 있을 때 귀하게 만들어 다 같이 나눠야죠.” 칠게장 500g 3만5천원, 칠게신화정.

② 대구

5월만 되면 반야월 곳곳에 연꽃이 한가득 핀다고, 연못물이 쫙 빠지면 연근을 캐는 풍경이었다고 대구 출신 김래영 사진가가 유년 기억을 꺼낸다. 실제로 국내에서 유통되는 연근의 절반 이상이 대구에서 난다. 대개 지역 이름을 따서 빵이나 과자로 만든 특산물은 어딘가 황량한 데가 있으나, 대구 반야월 연근 30퍼센트, 버터 30퍼센트, 크림치즈 분말과 우유를 넣어 만든 연근 과자는 그 재료 각각의 맛이 그대로 묻어나서 흥미롭다. 새끼손가락 한마디만큼 두꺼운 두께에 의외로 포송한 식감, 자잘히 씹히는 연근 조각과 담백한 우유 맛의 조화가 좋다. 물론 반야월에서 난 생연근이 먹고 싶다면 ‘반야월 연근’만 검색하면 금세 접할 수 있다. 진흙에서 뽑아 마른 흙을 툴툴 털어낸 연근들, 얇게는 칡만 한 굵기부터 굵게는 어른 장딴지만 한 연근이 박스에 수북이 들어 있는 구매 후기 사진이 즐비하다. 대구 반야월 연근과자 12개입 1만3천5백원, 사람과연근·김춘련호두명과.

③ 청도

“퇴직 후 귀농한 아버지를 따라와 참깨 농사를 300평 지었는데 주변 농부들께서 미쳤다고 하시더라고요.” 깨는 어디서나 잘 자라지만 중간에 솎아주고 잎도 몇 번 따주고, 무엇보다 손으로 일일이 직접 수확해야 하는 힘든 농사라 대부분 자신들 먹을 것, 가족들 먹을 양 정도의 소규모만 한다는 점이 이유였다. 수제 참기름은 진정 알음알음 귀인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중한 것이었다. 일은 쉽게, 생산은 많이 해보고 싶었던 젊은 농부는 올해 5월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신품종 참깨 하니올을 심을 예정이다. 하니올은 낟알이 여물어도 떨어지지 않고 잘 달려 있어 콤바인으로 수확할 수 있는 새 참깨 품종이다. 보다 쉽게, 보다 많은 참깨를 얻고 참기름을 만들 수 있는 시범의 장이 열렸다. “생각해보니 과일은 저마다 품종과 종자 이름이 있는데 참깨, 들깨는 품종에 대한 설명을 많이 보지 못해서 올해는 농사짓는 깨 품종에 대해서도 두루 알리려고요. 무엇보다 맛이 중요할 텐데 말이에요.” 신품종 참깨 하니올로 짠 참기름 맛은 수확하는 9월 이후 알게 될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지난해 내내 시간을 들여 빚은 이 참기름, 기름이 많이 나서 대중적인 참깨 품종인 강유로 짠 이 참기름은 뚜껑을 열기도 전에 고소한 향이 터져나왔다. 햇참깨 국산참기름 350ml 3만4천9백원, 화산농원.

④ 강릉 안반데기

맨눈으로도 은하수가 보이는 청정 지역, 평창과 강릉 사이 해발 1천1백 미터 안반데기에서 자라는 봄나물 눈개승마로 만든 장아찌다. 3월에도 폭설이 내리는 강원도 산지에 5월이 찾아와 봄눈이 녹으면 언 땅을 가르고 눈개승마의 붉은 새순이 올라온다. 데친 두릅보다는 사각사각한 식감과 씁쓰름한 맛에, 질게 지어 물에 만 뜨거운 밥에 턱 얹어 먹고 싶어진다. 눈개승마 5, 백설탕 1, 진간장 1, 양조식초 1, 정제수 2 비율로 장아찌를 만들어두면 여름까지도 신선하게 즐길 수 있다. 안반데기 눈개승마 장아찌 400g 2만원, 강릉안반데기관광농원.

⑤ 부산

3월만 되면 왜 짭짤이 찾는 소리가 들리는지 먹어보니 알겠다. 앞니가 베어드는 감각이 생생할 만큼 두꺼운 외피가 부드러이 갈라지면 부라타 치즈 덩어리마냥 신선하고 크리미한 과육이 밀려든다. 상큼한 단맛 사이 짭조름한 감칠맛이 머문다. 바다와 만나는 낙동강 하류, 하여 염분과 미네랄 영양이 높은 삼각주 땅인 부산 대저동에서 자란 토마토만이 산지 특징과 맛 묘사를 따 대저짭짤이토마토라 불릴 수 있다. 꼭지에서부터 초록 선이 퍼져 나오는 외견이고, 다만 공식 판매처인 대저농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짭짤이 품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일반적 대저토마토들 사이 “무작위로 열리는 로또같은 토마토”다. 제철인 2월 말부터 5월, 가장 맛있는 3월과 4월에 자주 당첨되시기를 바란다. 초록색과 붉은색이 적절히 섞이고 신생아 주먹에 가깝게 작은 크기일수록 짭짤 달콤하다. 대저짭짤이토마토 2.5kg 1만4천원대부터 토마토 크기별 가격 상이, 대저농협협동조합.

⑥ 해남

보성과 하동만 녹차의 성지인 줄 알았더니 전라남도 해남 두륜산과 그 속에 자리한 천년 고찰 대흥사는 우리나라 최초로 차를 다룬 책 <동다송 東茶頌>을 지은 스님초의 선사의 본거지였다. 조선 차의 아름다움을 “비취빛 물결 푸른 향기 아침에 들이니 총명이 툭 트여 막힘이 전혀 없네” 노래한 초의 선사의 자취를 따라 해남군은 훼손된 녹차 자생 지역을 복원하고, 산책할 수 있는 녹차 정원과 직접 찻잎을 따보는 체험장도 마련하고 있다. 벼농사를 지으며 차를 즐기다 알게 된 초의 선사를 좇아 1997년부터 두륜산 남쪽 자락에서 직접 차 씨를 심어 키워내고 있는 설아다원 오근선 대표가 유기농 수제 차를 건네며 보관법을 알려준다. “귀한 차일수록 아끼지 말고 나눠야 합니다. 맑은 향과 함께하는 시간을 나누세요.” 차로 우려 마시기 전에 건엽을 한두 잎 씹으면 입안이 상쾌해진다는 팁을 따라 말린 찻잎을 머금어보니 실로 쌉싸름하니 개운한 푸른 향과 맛에 총명이 꿈틀거린다. 유기농 사월차 세작 20g 3만원, 설아다원.

⑦ 의성

선선하고 서늘한 지방에서 자라는 한지형 마늘 품종인 의성의 마늘은 맛있게 매운 맛과 알싸한 향기의 대표 주자다. 다만 1인 가구에게 마늘 그것도 다진 마늘이란, 통마늘을 사서 다지기에는 과하고, 다져놓은 제품을 사자니 갈변해서 냉장고 구석에 이미 방치돼 있거나 통째로 얼어서 막상 써야 할 때 애를 먹고 마는 냉동고 속 골치덩이가 아른거리게 하는 존재다. 간편하게 즐길 수 있게 고안한 특산물은 그래서 더 기쁘다. 의성 마늘을 다져서 급속 동결 건조시킨 이 블록은 물을 붓자마자 특유의 맑은 마늘 향이 즉각적으로 살아난다. 맛 역시 씁쓸한 끝맛 없이 깔끔하다. 원물의 특장점을 현대적으로 승화시킨 특산물의 변신이 반갑다. 의성마늘 동결건조 다진마늘 큐브형 40g 6천5백원, 빅토리팜.

⑧ 영월

“‘머루와 다래 먹고 청산에 살어리랏다’는 고려가요 구절 속 그 다래”라는 생산자 곽미옥 씨의 설명이 시대적 거리만큼 아득하게 느껴지다가도, 토종 다래를 사시사철 즐기고자 고안한 다래잼을 한 스푼 맛보니 훌쩍 이입된다. 알알이 씹히는 씨앗이 새콤하고 고소해서 8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제철이라는 토종 다래 생과의 생기가 궁금해진다. 다래 생과는 키위와 비슷하면서도 털이 없어 껍질째 먹을 수 있는데, 이로 만든 잼은 베리종으로 만든 잼류 중에서도 진득하고 상큼하다. 요거트나 우유맛 아이스크림에 얹어 먹으면 풍미가 진해진다. 토종다래잼 3개입 3만5천원, 샘말농원.

⑨ 서산

고운 연두색 한지를 닮은 생감태를 혀에 올리니 솜사탕처럼 녹는다. 이어 남는 양분이랄까, 감태의 핵심 줄기들은 꼭꼭 씹히는 즐거움이 있다. 서산 앞바다 갯벌에서 12월부터 3월 사이 추위를 뚫고 채취해 씻고 말려서 만드는 감태는 달걀을 말아 먹어도, 밥과 함께 김밥처럼 먹어도, 그 자체로 맛보아도 바다의 신선함이 전해진다. 사르르 보라워서인지 감태를 맛보고 나면 김이 짙고 차지게 느껴진다. 생감태 5매입 6천9백원, 바다숲.

①⓪ 제주

제주도에서는 집안 경조사에 꼭 돼지를 잡아 손님을 대접했다. 원래 키우는 돼지 외에 갑작스런 대소사에 대비한 돼지 한 마리를 따로 키웠을 정도다. 농촌진흥청과 경상대학교가 2009년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제주 재래 흑돼지는 고기 맛을 좋게 하는 적혈구 수와 헤모글로빈 양이 일반 돼지보다 7.5퍼센트 높고, 근내 지방량이 13배 높은 유전자가 존재한다. 괜히 맛있게 느껴지는 일이 아니었다. 제주 흑오겹 1kg 5만7천5백원, 탐라인 tamrain.com.

①① 영덕

통통하게 오른 다리 살을 쭉쭉 뽑아 먹고, 갈라낸 등딱지 안에 고인 양분에 쓱쓱 밥 비벼 먹게 하는 영덕게의 자비가 캔에 담겼다. 영덕의 영어농조합법인이 영덕게 뚜껑 속에 있는 게 내장을 농축해 캔 참치처럼 제품으로 만들었다. 과연 그 맛이 어떨지, 내장만 그득 모아둔 캔이 생소하여 젓가락으로 조금만 찍어 밥에 비빈 소심함이 무색하게 진한 풍미가 휘감는다. 영덕게 진액을 추출해 농축, 숙성 발효시켜 만든 게간장도 진미다. 뜨끈하게 쪄낸 게 다리를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지는 게 육수의 맛이 난다. 영덕게딱지장 9 0g 9 천원, 영덕게간장 500ml 9천원, 영덕농수산 영어농조합법인.

①② 여수

철 따라 가장 귀한 것만 왕에게 올리던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여수에서는 갓을 올렸을 만큼 여수시 돌산읍에서 나는 갓은 여느 갓보다 줄기가 굵고 튼실하면서도 맛은 부드럽기로 유명하다. 갓은 물에 약한데 돌산 땅은 모래가 많아 배수가 잘되는 알칼리성 사질토라서 환경이 주는 힘이 있다. 전국에서 소비되는 갓의 80퍼센트 이상이 돌산 것이고, 그중 70퍼센트는 갓김치로 담가져 유통된다. 그 중심지인 돌산갓장터마을에서는 갓김치 담그기 체험 시간도 열린다. 여수돌산갓김치 1kg 1만2천원, 돌산갓장터마을.

①③ 제주

제주도에서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비가 자주 내리는 때를 고사리 장마라 부른다. 고사리가 자라나는 비다. 이때 채취한 고사리를 제주 사람들은 돼지고기와 함께 육개장으로 끓여 먹었다 한다. 뽀얗게 우려낸 돼지 뼈 국물에 고사리를 가득, 고춧가루는 넣지 않고 메밀가루를 풀어 걸쭉하게. 잔칫날에 반드시 먹던 음식이 돼지고기, 그리고 고사리 육개장이다. 마침 제주 고사리를 즐겨볼 수 있는 잔치가 4월 26일부터 27일까지 서귀포 남원읍에서 열린다. 29년째 매년 봄을 맞이하는 ‘한라산 청정 고사리 축제’다. 고사리를 직접 꺾어볼 수도 있고 이리저리 맛볼 수도 있다. 한라산 건고사리 50g 1만원대, 서귀포시산림조합임산물유통센터.

①④ 해남

이렇게 맛있는 걸 바닷가 사람들만 먹어왔다니. 숨긴 이도 없는데 억울하기도, 아무렴 망망대해에서 일하려면 배가 따뜻해야지, 신성한 노동이 만든 자연스러운 지혜가 탄복스럽기도 하다. 겨울철 싱싱한 물김을 된장에 풀어 간단히 끓여내는 김국은 김을 직접 생산하는 고장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로 통했다. 이를 2010년 해양바이오연구원이 제품화했고, 물김을 동결 건조해 사각 큐브로 만든 현재 형태에 이르렀다. 조리법대로 그릇에 김큐브 하나를 넣고 뜨거운 물(심지어 찬물도 가능하다) 250밀리리터를 붓자 마치 매생이국처럼 금세 그릇 가득 김이 풀어헤쳐진다. 김 큐브 자체에 간장 간이 되어있어 따로 간을 할 필요도 없다. 미역보다 덜 미끈거리고 매생이보다 더 자근자근 씹히는 김의 질감이 금세 몸을 데운다. 담백하게 든든하다. 바다김 그대로 김국 큐브 5g 10개입 1만2천원, 이마도.

①⑤ 광양

빛과 볕이 충만한 광양은 감도 잘 익지만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매화꽃이 핀다. 벌써 올해 3월 7일부터 16일까지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를 축하하는 신춘 음악회 겸매화 축제가 광양 다압면 매화마을에서 열렸다. 매화꽃이 지고 나면 6월부터 동그란 열매가 익어가는데 이것이 매실이다. 다른 곳보다 생장기가 이른 광양 매실은 과즙이 많고 당도와 산도가 높기로 소문났다. 매실장아찌는 매실과 설탕을 1대 1로 넣어 담근다. 피클처럼 쪼글거려도 아삭거리는 매실 식감이 깜짝 놀랍다. 설탕에 절였으니 첫 맛에 단 기운은 돌지만 오독오독 씹을수록 기분 좋은 신맛이 올라온다. 위스키에 먹고 싶은 것 아무거나 타 먹는 게 하이볼의 매력이라던데, 내친 김에 매실장아찌 한 스푼 푹 떠 넣어 휘휘 저어 마셔볼까 싶어진다. 매실장아찌 1kg 1만5천원, 매실다압농업협동조합.

①⑥ 광주

떡갈비 앞에 붙는 지명의 양대 산맥은 담양과 송정이다. 담양식은 1900년대부터 궁중음식에서 유래한 방식과 비슷하게 소고기를 다져 만들어왔고, 송정식은 1950년대 광주 송정의 식당 주인 최처자 씨가 이가 좋지 못한 집안 어르신을 위해 부스러기 소고기를 모아 만든 데서 시작돼 1990년대 풍요롭지 못한 시대를 거치며 돼지고기를 섞거나 돼지고기만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정착했다. 그 역사가 송정떡갈비거리에 남았다. 광주에서는 어느 떡갈빗집에 가든 돼지 뼈와 무를 넣고 푹 끓인 뼛국을 기본으로 내어주니 떡갈비 한 점, 뼛국 한 입 뜨끈하게 먹고 광주 탐험을 시작해볼 것. 송정식 수제 숯불 떡갈비 6종 1만6천5백원, 소산식품.

①⑦ 김해

“사근사근 씹히는 맛과 싱그러운 향이 일품인 채소 중의 채소”라고 광고 문구가 적힌 박스를 뜯자 말 그대로 풍기는 싱그러운 향에 웃음이 난다. 진실한 문구다. 김해산 파프리카는 생산량의 80퍼센트 이상을 일본으로 보내왔다. 매운맛 대신 단맛이 강하고 색깔이 선명한 매력이 통했다. 요즘은 두바이로도 보낸다. 빨강 피망을 가르면 알큰한 향이 나는데 베어 무니 아삭하고 시원한 식감에 단맛이 퍼진다. 노랑 피망은 보다 연하고 부드러운 맛이나 마찬가지로 상큼하다. 달리 어떻게 요리해볼 작정없이 이대로 썰어 생오이 먹듯 집어 먹어도 맛있겠다 싶다. 명품 파프리카 2.5kg 2만원, 주촌농업협동조합.

①⑧ 영양

일교차가 큰 고랭지 지대에서 재배하는 영양의 고추는 캡사이신 함량이 많고 당도가 높아 맛있게 맵고 단 것으로 유명했다. 그 맛과 품질을 균일하게 유지하기 위해 2006년부터 영양고추유통공사와 한국식품연구원은 빛깔찬이라 이름 붙이고 영양군에서 재배하는 고추 중 최상급을 모으고 관리해 고춧가루, 고추장을 만들어왔다. 뚜껑을 여니 되직하기보다는 마치 연두부처럼 유들유들 흔들리는 덩어리감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 입 찍어 맛보면 고춧가루의 입자가 느껴지는 와중에, 고추장을 만들기 위해 넣은 쌀조청과 매실청 덕분인지 연하게 휘감기는 단맛과 이어지는 매끈한 매운맛, 텁텁함 없이 아주 깔끔한 뒷맛의 조화가 자꾸 찍어 먹게 만든다. 실로 맛있는 고춧가루와 고추장은 반들반들하게 닦여서 태양 아래 놓인 빛나는 태양초의 활기를 닮았구나, 그 이름이 왜 ‘빛깔찬’인지 수긍이 간다. 빛깔찬 고추장 450g 1만7천원, 영양고추유통공사.

①⑨ 상주

“상주에 산이 많다 보니 참나무 원목에 표고버섯을 재배하는 어르신이 많이 계셨어요. 그런데 최근에는 기후도 변하고 인력이 고령화되다 보니 재배하는 농가가 점점 줄어요. 누구나 키울 수 있게 시설 재배화를 개발하고 표고버섯을 더 널리 즐길 수 있는 먹거리들도 만들어보고 있어요.” 귀농한 지 7년째인 청년 농부 김윤영 씨는 지역 먹거리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여 탄생한 표고국수는 표고버섯 가루에 밀가루를 더해 만든 면이다. 면만 끓여도 표고버섯의 향과 맛이 더해져, 버섯을 맛있게 익혀 먹은 후 넣어 먹는 샤브샤브 국수 같기도, 버섯 고명을 올린 담백한 잔치국수 같기도 하다. 표고국수 4인분 9천9백원, 건표고 900g 1만6천원, 백두표고.

②⓪ 공주

5월부터 아른거리기 시작해 6월이면 마을 산이 온통 밤꽃으로 덮여 장관일 정도로 공주는 밤의 고장이다. 차령산맥 사이 일교차가 큰 환경에서 튼실하게 자란 공주밤 1백 퍼센트로 만든 간편 간식인 공주맛밤을 통해서 나마 그 풍미를 느껴보자면, 갈갈이 찢기지 않고 그대로 푸근히 뭉개지는 포슬포슬한 식감이 흥미롭다. 절구에 메치는 떡의 질감이 떠오를 만큼 쫀득쫀득하기도 한 밤 맛의 원천이 궁금해지는데, 공주에는 수확의 계절인 9월부터 알밤 줍기 체험을 제공하는 농장도 많다. 중요한 규칙은 ‘따기’가 아닌 ‘줍기’. 공주에서는 전통적으로 나무를 흔들어 억지로 따는 대신 완전히 익어 저절로 떨어진 밤을 줍는다. 공주맛밤 50g 10봉 3만6천원, 농가애.

②① 광양

곶감 하면 따라붙는 대표 지명에 경북 상주만큼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전남 광양이다. 빛 광光, 볕 양陽. 예부터 빛과 볕이 많은 땅이라서 광양이라 이름 붙은 이곳은 실제로 일조 시간이 길어서, 다른 곳은 대개 10월 첫 서리가 내리는 상강 전에 곶감을 만들기 위한 감을 수확한다면 광양은 11월부터 감을 딴다. 보다 완숙된 감이기에 이로 만드는 곶감이나 감말랭이 맛이 농후하다. 광양에서 2대째 감을 다루고 있는 황성국 대표는 감말랭이를 냉동 보관했다가 먹기 10분 전에 꺼내 슬쩍 녹았을 때 크림치즈를 듬뿍 올려 먹는 걸 추천했는데, 다만 직접 맛보니 설탕 같은 기타 첨가제 일절 없이 빛과 바람으로만 말린 감말랭이 자체로도 한껏 통통하고 달아서 크림치즈는 생각도 나지 않는다. 국대 김말랭이 70g 10팩 기준 2만8천원, 큰집농원.

②② 강릉

강원도 사람은 안다. 막장을 자작하게 바글바글 끓인 일명 빡짝장을 뜨신밥이든 찬밥이든 쌀밥이든 보리밥이든 밥에 턱 얹어 비벼 먹을 때의 충만함을. 막장은 간장을 빼지 않은 통메주를 빻은 후,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나 대체로 보리밥과 소금과 고추씨를 넣어 만드는 강원도식 장이다. 된장보다 거친 질감과 맛이 힘있다. 쌈장, 국, 찌개, 무엇에든 유용하다. 까막장은 특히 검은콩의 일종인 서리태로 만들어 색이 보다 까맣다. 서리태 만능 까막장 1.7kg 1만8천원, 동해식품.

②③ 울산

“울산 울주군 서생면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달고 아삭하게 자라는 배라서 울산배, 울주배, 서생배라고 불려요. 다 같은 이름이에요.” 지역 특산물인 배를 부르는 명칭은 많으나 이를 활용한 먹거리가 드문 점이 아쉬웠던 청년 박은송 씨는 배를 조려서 콩포트를 만들었다. 프랑스식 디저트인 콩포트는 잼보다 묽은 제형으로, 울산배 콩포트에는 새끼손톱만 하게 다진 배 조각이 사근사근 씹힌다. 빵에 곁들이거나 탄산수에 넣어 에이드처럼 마셔도 즐겁다. 울산배 콩포트 210g 1만3천9백원, 미니룸.

②④ 김천

우리나라의 최대 호두 생산지는 경상북도로 국내 소비 호두의 60퍼센트를 담당한다. 그중에서도 김천에서 가장 많이 난다. 백두대간 줄기 삼도봉 아래에서 60여 년간 호두나무를 길러온 산할아버지농장에는 일일이 까서 맛을 전하는 살호두 상품도 있으나 단단한 알호두를 망치로 두드려 깨는 생기가 퍽 재미있다. 아버지에 이어 호두를 키우고 있는 김현인 씨가 인자하게 웃는다. “9월부터 10월 호두를 털고 나면, 힘들지만 호두의 청피를 모두 벗겨서 밭으로 보내 다시 호두나무의 자양분으로 삼아요.” 자연의 순환이 곧 땅의 힘을 지키고 기른다. 햇호두 중간 크기 1kg 2만7천원, 산할아버지농장.

포토그래퍼
김진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