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art

봄과 여름 사이, 제철 문학 추천 6

2025.04.19.차동식, 차동식

계절이 바뀔 때마다 꼭 읽어야 하는 시집과 소설이 있다. 봄과 여름 사이,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의 기준이 되어줄 제철 문학 작품을 추천한다.

📚 정끝별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문학동네

문학동네

시력 30년을 훌쩍 넘는 정끝별 시인이 생동하는 언어들로 시집을 한 권 엮었다. 시행의 첫머리나 중간 또는 끄트머리에 동일한 운을 규칙적으로 다는 압운, 단어나 문장을 구성하고 있는 문자의 순서를 바꾸어 다른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애너그램. 이 두 가지가 시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시집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살아 움직이는 단어들을 따라가게 만드는, 그래서 반드시 봄 햇살 아래 읽어야 할 시집이다.

내 숨은/ 쉼이나 빔에 머뭅니다/ 섬과 둠에 낸 한 짬의 보름이고/ 가끔과 어쩜에 낸 한 짬의 그믐입니다./ 그래야 봄이고 첨이고 덤입니다.
– ‘춤’ 중에서

📚 이은규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학동네

문학동네

이은규 시인은 꽃이 피고 계절이 바뀌는 봄에서 아름답고 우아한 단어들을 섬세하게 고르고 엮어 한 권의 시집을 냈다.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는 단순히 계절의 변화뿐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것들, 존재와 부재 등을 탁월하게 포착한다. 시를 정성껏 읽다 보면 한 곳에 서서 생동하는 봄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꽃봄을 줄게, 봄꽃을 다오/ 중얼거리는 사이 저만치 기억이 오고 있다/ 경고에 가깝거나/ 안내보다 먼 문장들에 오래 머뭇거리는/ 꽃잎 한 점 떨어져도/ 봄빛은 줄어든다, 속삭이던 목소리는 이제 없다
– ‘봄이 달력에서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 중에서

📚 오은 <초록을 입고>, 난다

난다

오은 시인은 5월 한 달 동안 매일매일, 서른한 편의 시와 에세이를 눌러 담아 <초록을 입고>를 선보였다. 때로는 가볍게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단어들도 시인의 눈으로 다시 들여다보니, 말장난처럼 재미있다가도 시의 언어처럼 묵직하게 다가온다. 5월의 녹음을 담은 이 책은 여름이 오는 길목에서의 봄에 참 잘 어울린다.

초록이라고 말해보자/ 풀처럼 휘어지자/ 나무처럼 뻗어보자/ 바다처럼 깊어지자/ 지구처럼 둥굴어지자/ 지구처럼 묵묵하게// 열 개의 나이테가 수놓아진/ 초록을 입고/ 한바탕 울창해지자
– ‘5월 20일, 청소년시, 초록을 입자’ 중에서

📚 앨리 스미스 <봄>, 민음사

민음사

앨리 스미스는 격변하는 영국 사회의 현재를 담기 위해 펭귄 출판사와 야심 차게 ‘계절 4부작’을 선보였다. 그 세 번째 작품인 <봄>은 연인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긴 영화감독 리처드, 이민자 추방 센터에서 재소자 처우를 개선한 열두 살 난민 소녀 플로렌스, 플로렌스와 함께 스코틀랜드행 기차에 오른 추방 센터의 감시관 브리터니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앨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쓰레기 더미 위에도 다시 초록의 싹은 튼다는, 치유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음. 바깥 날씨가 되게 이상해. 안에 있어서 아쉬워할 것도 없어, 패드. 내가 기억하기론 손에 꼽을 만큼 최악의 봄이야. 두 주 전만 해도 여기까지 눈이 쌓였거든. 영하 7도에다가. 그런데 지금 좀 봐. 29도야.” / “틀렸어.” 그녀가 말한다. “내가 기억하기론 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봄이야. 초목들이 더 못 기다리고 터져 나왔어. 그렇게 춥더니. 이렇게 푸르러.”
– <봄>, 103쪽

📚 안드레 애치먼 <그해 여름 손님>, 잔 

어느 날 문득 이 소설이 생각난다면, 이탈리아 북부의 여름이 그리워진다는 뜻. 안드레 애치먼의 <그해 여름 손님>은 루카 구아다니노 감독의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 소설이다. 안드레는 감각적인 언어로 열일곱 소년 엘리오와 스물넷의 올리버, 두 사람의 사랑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열하는 햇살과 갑자기 찾아온 사랑의 온도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여름 소설이다.

처음 본 순간부터 좋았어요. 친근하게 다가가는 나에게 또다시 얼음처럼 차갑게 반응할 때조차. 우리 사이에 이런 대화가 이루어졌다는 것, 여름을 눈보라 속으로 가져가는 쉬운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절대로 잊지 못할 거예요.
– <그해 여름 손님>, 24쪽

📚 마쓰에이 마사시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비채

비채

일본 문단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 마쓰이에 마사시의 데뷔작. 인간을 격려하고 삶을 위하는 건축을 추구하는 건축가와 그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열정을 존경하는 주인공 ‘나’의 아름다운 여름날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 경관과 건축에 대한 세밀한 묘사를 읽다 보면, 주인공이 경험한 그 여름날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지도 모른다.

잘 다루지 못하는 새 노를 손에 들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채, 나는 작은 보트를 젓기 시작하고 있었다. 곁눈질하다가는 금방 밸런스를 잃고 말 것이다. 보트는 어느 틈엔지 온화한 만을 빠져나가 망망한 큰 바다의 일렁임 속에서 어설프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 있었다.
–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215쪽

사진
각 출판사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