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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주영 “사랑이 부족해서 망가지는 일들을 막아주고 싶어요”

2025.04.24.김은희

비워두던 출입국신고서 직업란에 차주영은 이제 쓴다. “Freelance.”

재킷, 셔츠, 스커트, 슈즈, 귀고리, 모두 보테가 베네타.

GQ 혹시 바이크 타고 왔어요?
JY 하···, 바이크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예요.
GQ 왜요?
JY 타질 못 해서, 요즘 제 차도 끌 일이 없어 얼마 전에도 (엔진)점프를 두 번이나 해서, 아빠가 바이크는 처분하라셔서 그럼 알아서 해달라 부탁을 드려놓은 상태인데 어떻게 됐는지 행방을 잘 모르겠어요.
GQ 1년 전인가, 작은 혼다 바이크를 타고 절에 가던 모습이 기억에 남았거든요.
JY 아마 2년 전, 응. 이렇게 화보 촬영하러 오는 길에 바이크 타는 것도 제 로망이었는데. 그런데 앞뒤로 뭐가 많아서 매니저와 함께 움직이게 되네요.
GQ 그럼 모찌는요? 모찌는 데려왔어요?
JY 으항항항하. 모찌. 저한테는 정말 의미 있는 귀여운 아이이고, 실제로 많이 의지했거든요 애한테. 공식 석상에서 너무 긴장할 때 멀리 보이는 데 두기도 하고. 그런데 이게 좀···, 꼭 귀여워 보이려고 하는 것 같다는 생각과 이제는 진짜 스스로 자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나 왜 이렇게 진지하게 얘기해.(웃음) 모찌와 좀 떨어지는 시간을 갖고 있어요.
GQ 모찌를 모르는 분을 위해 덧붙이자면 열아홉 때부터 지닌 피글렛 인형이죠?
JY 맞아요. 디즈니 스토어에서 보고 너무너무 귀여워서 그렇게 됐는데, 두어 번 잃어버릴 때만 해도 그렇게 소중한지 몰랐어요. 이제 잃어버리면 절대 다시 구할 수 없다는 게 각인돼서 꽁꽁 절대 안 잃어버리게 하고 다녔어요. 지금은 제 기내용 캐리어에 두었어요. 여권이랑 가까운 곳에. 같이 가야 되니까. 제가 물론 이제 ‘어른 여자’라서 떼어놓고 다닌다고 했지만, 일상에 맨날 데리고 다니는 게 조금 흉해 보일 수도 있고 나잇값을 좀 해야 하니까 그렇지만 여행 갈 때는 같이 가요. 여행지에서 제가 셀피를 잘 안 찍거든요? 그래서 모찌를 피사체로 두고 주변 배경을 찍는다든지 하면서 같이 여행을 다녀요.
GQ 사막 여행 때도 그랬어요?
JY 네, 네, 네. 작년 8월에 갔던. 그 여행 며칠 전에도 생각났는데.

보디 수트, 칼라 디테일 톱, 니트 톱, 팬츠, 모두 미우미우. 팔찌, 루슈어.

GQ 왜 사막으로 떠나야겠다 싶었어요?
JY 그러니까 제가 이런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예요. 사막이라는 데를 갑자기 가고 싶었어요. 메신저 상태 메시지에, 그거 제가 잘 안 해놓는데 몇 년 전에 “사막을 가고 싶다”라고 써놨어요. 언제 가지 하다가 가‘졌’어요. 사막에 대한 지식이나 엄청난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고 막연히 ‘아··· 가보고 싶다’ 했는데, 가졌어요. 제가 생각하는 거 다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말이 이상하죠?
GQ 아뇨, 어느 사막이었어요?
JY 사하라사막. 모로코에서 들어가는 사하라사막. 두바이니 뭐니 다른 데서 가는 좀 ‘이지’한 경로로 가고 싶지 않았어요. 제대로 된 사하라의 노른자에 어렵게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모로코까지 가서 거기서 사막까지 차를 타고 미니멈 8시간에서 10시간 또 들어가야 되거든요? 제가 알기로 두바이나 다른 데서는 30분 정도 지프차 타고 가면 사막이래요. 그런데 그게 무슨 사막이야. 난 진짜 끝에 끝에 끝까지 들어가서 진짜 사막을 보고 싶었거든요. 사람의 손이 안 탄. 모로코에서 12시간 반 걸려서 들어갔어요.
GQ 어땠어요?
JY 경이로워요. 너무 힘들었고, 위험하기도 하고, 그건 성별 상관없이. 그렇다고 2명, 3명이 가면 안 위험하느냐? 그것도 보장할 수 없어요. 그리고 같이 가더라도 싸울 것 같아요, 힘들어서.(웃음) 여러모로 추천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추천하고 싶은 곳. 죽기 전에 한 번은 꼭 가봐야 되지 않나. 가서 그냥, 저한테 중요한 사람들이 딱 떠올랐어요. ‘같이 오고 싶다’ 이런 사람들. 가족을 포함해 몇 안 되는 사람들이 떠올랐어요. 그리고 뭔가를 정리하려고 간 것도 아니고 막연히 간 그곳에서 무언가 명쾌하게 정리되는 순간을 맞이하는 경험을 했어요. 저는 종교가 없기 때문에 힘들거나 복잡할 때 나만의 방법을 막연하게나마 찾아가는 편 같은데 그 당시에는 그게 사막이었던 것 같아요. 힘들 때 나한테 엄청난 힘이 되어줄 것 같은 여행이었어요, 그 여행이.
GQ 어떤 여행자예요? 가야겠다 하면 불현듯 비행기표를 끊는 여행자인가요?
JY 네.
GQ 사막을?
JY 네.
GQ 혼자?
JY 네. 삿포로도, 아키타라는 데도. 눈이 보고 싶어서 자다가 새벽에 눈을 뜬 거예요. 눈이 보고 싶은데? 그런데 한국은 이제 눈이 끝났잖아요. 그럼 눈이 오는 데가 어디일까? 깊숙이 들어가고 싶은데? 눈이 오는 도시를 찾았어요. 내가 가고 싶은 데 가는 거예요. 아침 비행기 끊어서. 그런 여행자예요.

드레스, 페라가모. 레드 스트랩 슈즈, 질 샌더. 반지, 루슈어.

GQ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에 크게 두려움이 없어요?
JY 물론 두려움이 있어요. 막상 떠나려다 보면 귀찮기도 해요. 그런데 갔을 때 좋을 거라는 걸 저는 분명히 아는 것 같아요. 힘들지만 가면 결국 좋을 거라는 걸 알아서 해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만약 열 번이면 열 번 다 좋은 경험만 있을 수는 없어요. 제가 진짜 자주 가는 도시가 있는데 별의별 일을 다 겪고 나서 ‘아, 여기 그만 와야겠다’ 할 때도 있어요. 근데 그거는 인생 살면서 확률적인 어떤 것이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겪을 수 있는 부분이지, 그 단면 안 좋은 걸로 내 다음 행보에 브레이크 거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아요. ‘운이 나쁘게 이런 일도 있었던 거야’ 해요. 회복 탄력성이 좋다고 해야 하나. 위기 대처 능력이 괜찮고. 힘들고 두려운 걸 앓을 만큼 많이 앓기도 하는데 그러고 나서 거기 잠식돼 있지 않으려고 빨리 다음을 도모하는 것 같긴 해요, 응.
GQ 10대 시절부터 타국에서 유학한 경험이 기반된 걸까요?
JY 반반 같아요. 제가 제 의지와 상관없이 놓인 그 환경에서 습득된 나의 기질과 함께 타고난 기질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저는 친구들이랑 놀더라도 그 시간이 길지 않았어요. 보물찾기를 하더라도 애들은 쪽지를 찾고 보물을 얻으니까 얼마나 신나. 그게 아이들의 보편적인 기질이잖아요. 저는 그거에 흥미가 없어서 보물 쪽지 찾으면 친구 줬어요. 다 같이 우르르 노는 거에 큰 흥미가 없었어요. 그게 내 타고난 성향, 기질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때는 그걸 인지를 못 했죠. 그냥 조금은 외롭고, 조금은 동떨어져 있고, ‘나는 왜 친구들이랑 잘 안 어울리게 될까?’ 하는. 유학 가서도 이방인이기도 하고 이겨내서 내가 살아남아야 되긴 하는데 기질적으로 혼자가 편한 애다 보니까, 혼란스러운 와중에 후천적으로 더 가미된 건 아닐까 해요.
GQ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의 의지대로 길을 걸어오다 내 인생은 어디 있나, 내 인생을 내가 꾸려봐야겠다 하여 찾은 길이 지금에 이르렀다고 알아요.
JY 맞죠. 맞고, 그렇다고 제가 막 대단히···. 그러니까 우리 부모님이···. 참 이게 말이 어려운 게, 어떻게 말하면 우리 부모님이 너무 대단하지 않은 사람처럼 보이고, 또 어떻게 말하면 너무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까 봐 어려운데, 얼마 전에는 무슨 메시지가 왔어요. “대단한 유학생인 것처럼 이미지 메이킹 좀 그만해라 야.” ‘아이고, 저도 그 이미지 좀 탈피하고 싶어요 정말’이라고 스토리에 올리려다가 제 메모장에 적고 말았어요. 내 인생 자체를 다 풀어놓을 수 없을뿐더러 한순간의 감정은 금방 사라질 걸 알았고, 지금 너무 바쁘고. 당신의 인생을 잘 사셔라 응원해드리고 싶었지만, 나중에 내가 하고 싶은 작품 다 하고 선생님들 정도의 경력을 쌓고 배우로서 할 얘기도 다 했다 싶을 때, 그때 제 얘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안 하는 것뿐이에요. 또 어떤 프레임이 씌일 거고, 내가 얘기하는 것에 뭔가가 덧붙여질 거고. 저는 그냥 지금은 연기하는 인물로서만 보이고 싶거든요. 그런데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으니 하는 건데···, 음···, 어려운 것 같아요.

재킷, 셔츠, 버뮤다 팬츠, 귀고리, 모두 버버리. 반지, 루슈어.

GQ 그런데 아까 의외였어요. 바이크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연유가 아버지 말씀인 것. ‘의지와 상관없이 행하는 주영이가 아직 있는 걸까?’ 싶었어요.
JY 아아! 그것은 지금 바이크를 탈 시간도 없고, 그전만큼 타고 싶다는 마음이 안 드는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저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던 때 말씀하셔서 “그럼 아빠가 좀 처리해주세요”라고 부탁드린 거지, 전혀요. 어떻게 보면 아빠가 저보다 바이크에 미련이 더 그득해요. 처분 잘 못 하셔. 그런데 저는 ‘한번 해봤어’, 이러면 미련이 없는 스타일이에요.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고.
GQ 해본 것에 대한 미련이 없는 것이었군요.
JY 네. 새로운 걸 들이기 위해서든, 그것이 꼭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아니면 가진 걸 하나둘 정리하는 것의 연장선이든 정리는 해야죠.
GQ 모찌 같은 존재를 애착 인형이라고 하죠. 외로움이나 고독함에 기대야 할 대상이 필요한 사람이었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네요.
JY 그러니까요. 저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스타일도 아닌 것 같고 누구한테 많이 의지하는 스타일도 아니에요. 그래서 연애할 때도 “넌 왜 이렇게 의지를 안 하냐”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마음속에서는 의지했는데.
GQ 한다고 한 건데.
JY 네. 표현도 되게 많이 해요. 그런데 이 사람이 내 옆에 없다고 외롭거나 하지는 않아요. 여행을 예로 들면 저는 같이 가도 시간을 따로 갖고 싶다고 하면 따로 다니기도 하고 잘 맞추는 타입인데, 그럴 바에는 그냥 혼자 가서 나의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 걸 너무 좋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이런 게 사람들이 얘기하는 외로움인 걸까?’ 싶은 생각이 조금 드는 거예요. 맛있는 걸 먹어도 이걸 나중에 같이 공유할 사람이 없잖아요. 나만 알고 있는 거야, 프흐흥. 그래서···, 모르겠어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새롭게 느끼는 것들인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해서 충분히 좋았던 것들을 이제는 누구랑 나누고 싶은 생각도 들어요.

재킷, 셔츠, 버뮤다 팬츠, 귀고리, 모두 버버리. 반지, 루슈어.

GQ 차주영 씨를 잘 아는 사람들은 꾸러기라고 부른다고 하죠. 그래서 팬들을 부르는 이름도 ‘꾸러기의 꾸러기’, 꾸꾸이고.
JY 맞아요. 꾸러기의 꾸러기, 꾸러기와 꾸러기.
GQ 차주영이 가장 꾸러기 같았던 순간은 언제예요?
JY 대단히 많은 순간이 있었죠. 응···, 아무래도 연애할 때 그러지 않을까? 흐항항하하. 사실은 신인 때도, 저는 그렇게 어린 나이가 아니었잖아요. 예를 들면 아이돌 친구들은 연애하면 큰일이라고 조심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저는 그런 걸 말하는 데 무서울 게 없었단 말이죠. 배우로서 가져가야 할 어떤 것들이 있는 건 알지만(웃음)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아요. 꾸러기스러울 때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GQ 아까 잠깐 언급한 바로는 사랑을 많이 표현하지만 ‘그 사람이 없으면 안 돼’의 입장은 아니라고 했죠?
JY ···네. 흐항하하. 물론 영원을 꿈꾸기는 하는 것 같지만 그건 참···. 진짜 운명 같은 일이고, 내 것이 아닐 수도 있고. 그 당시에 최선을 다해 사랑하기는 하지만, 끝나봐야 아는 것 같아요. 끝나봐야 그게 진짜 사랑이었고 내가 앞으로 가져볼 수 없는 사랑이었다고 저는 끝나봐야 조금 아는 것 같아요.
GQ 끝나면 너무 아프잖아요.
JY 너무 아프죠. 무너지죠. 아프죠. 그런데 만나는 동안은 내가 아쉬울 게 없어 보인대요. 고양이 같대요. 내가 애교 부리고 싶을 때 부리고. 프흥. 그래도 그 속에서 발붙이고 꾸러기스러운 모습이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사랑과 신뢰가 밑바탕이 되는 게 확인된 사이에서 같아요. 그 안정감, 단단함이 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얼마나 위대한 건지 아는 나이가 된 것 같아요.
GQ 참 신기한 게 말이에요, 요 몇 달 만난 분들과 대화가 자꾸 사랑으로 흘러요. 전혀 의도하지 않는데 말이에요.
JY 하···. 결국은, 결국은 사랑인 것 같다는 생각을 저도 근래 많이 해요.

베스트, 메종 마르지엘라. 이어커프, 톰 우드.

GQ 지겨워요. 사랑 지긋지긋해요. 하지만 결국은 사랑인가 봐요.
JY 그쵸? 저도 그래요. 흐항항항하. 사실은 이건 우리 회사에서 좋아하시지 않는 얘기인데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 사람에 대한 니즈가 없어요. 다 내 마음 같을 수 없잖아요. 기질의 연장선 같은데,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의 사람이 있다면 저는 애당초 사람을 좋아하는 성향이 아닌 거예요. 보는 사람들이 저를 정이 많다고 하지만 ‘나 그렇지 않아’ 얘기해주고 싶고, 알고 보면 정이 있는 듯 없다고 느껴지는 저는 그냥 모순덩어리의 사람인 건데, 그런데 나중에 제 여력이 되고 저 스스로 바로 섰을 때 내 손으로 직접 도울 수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늘 생각해요. 거창하게 “봉사하며 살고 싶어요” 이런 말은 아니고요, 제가 직접 제 손이 닿는, 어떤 힘 닿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 일도 사랑이더라고요. 사랑이 부족해서 잘못된 길로 가게 되거나 사랑이 부족해서 망가지는 일들을 막아주고 싶어요.
GQ 사랑이 부족해서 사랑을 주는.
JY 웃긴 얘기인 거야, 사람을 싫어한다는 애가 사랑이 필요하다고 무엇보다 느낀다는 게.(웃음) 그래서 빨리 더 내가 조금 더 단단하고 괜찮은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때때로가 아니라 많은 순간 저는 여기저기서 볶여서 ‘아, 그냥 다 닫고 나만 생각하며 다 끊고 살고 싶다’ 하다가도, ‘아니야, 네가 마음을 조금만 예쁘게 먹으면 주변의 많은 사람이 행복할 텐데. 예쁘게 마음 쓰는 법을 좀···. 오늘도 반성하고 자라’ 그래요. 알 것 같다가도 모르겠는 마음으로 저도 늘 살아요. 나의 기질과 내가 바라고 가고자 하는 방향이 언제 가까워질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은 하고 있어요. 많이, 많이 다듬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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