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 친구 맞니?”

자주 만나지 못할 때
학창 시절만큼 매일매일 만나진 못하더라도 가끔씩 오래 만나면 좋을 텐데, 자꾸만 미뤄지는 약속에 친구의 얼굴을 까먹지는 않을까 걱정이 드는 순간이 있다. 서로의 스케줄을 비교해 간신히 잡은 약속도 직전 날이나 당일에 파토되는 경우도 부지기수. 회의 때문에, 야근 때문에, 출장 때문에, 외근 때문에 등등. 이유는 다양하고 친구의 입장도 물론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러다가 정말 만날 수 있긴 한 건지 의문이 든다.
매사 조직 중심적 사고로 이야기할 때
항상 밝고 명랑하던 친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이젠 출퇴근에 찌들어 골골대는 직장인의 모습만이 남았다. 수직적인 조직 생활에 찌들어 불만 가득한 기운을 몰고 다니는 친구는 낯설기 그지없다. 열정과 자신감은 사라지고 순응과 복종만이 남은 친구를 보자면 안타까움 반, 두려움 반의 감정들이 몰려온다. 친구를 낯설게 만든 험난한 조직 생활이 나에게도 머지않았다고 생각하면 저절로 우울해지는 느낌이다.
학생일 때가 좋다고 할 때
과제도 싫어, 시험도 싫어, 학생 자체가 싫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고 외치던 친구는 어디로 간 걸까? 하루빨리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고 싶다더니, 직장인이 되더니 오히려 학생일 때가 좋았다고 울부짖는다. 힘든 일이 더 많은 회사 생활이라는 건 이해하겠지만 내 앞길도 막막한데 자꾸만 과거를 회상하며 징징거리는 친구를 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애매해진다.

나에게 사회 생활을 가르칠 때
그 누구보다 나를 잘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던 애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무조건적인 공감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내 이야기를 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던 친구가 직장인이 된 이후 깐깐한 선생님으로 변해버렸다. 이런 경우 초반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화의 끝은 친구의 가르침으로 끝나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내가 지금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 건지 부모님이나 선생님한테 혼나고 있는 건지 헷갈린다. 배울 점이 많은 친구는 좋지만 가르치기만 하는 친구는 피곤할 뿐이다.
공감대나 라이프스타일이 다를 때
서로가 공유하던 생활 공간이 달라짐에 따라 공감대나 라이프스타일도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된다.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마음속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 적어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명 예전에는 척하면 척. 눈빛만 봐도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어느 정도의 노력을 수반하거나 이런 저런 부연 설명을 하지 않으면 대화가 통하지 않을 때가 많다.
업무 관련 이야기만 할 때
대화의 반 이상이 친구의 업무 이야기로 가득 차게 되는 순간만큼 난감할 때가 없다. 친구가 힘들 땐 힘을 불어 넣어주고 속상해할 땐 같이 울어주고 싶은데 업무 관련 이야기만 나오면 어떻게 반응해야 맞는 건지 모르겠다. 무작정 들어주는 경우가 많지만 전혀 이해도 공감도 되지 않아 숙연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럴 때면 “친구야, 우리 둘 모두가 아는 이야기를 하는 건 어떨까?”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왔다 갔다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