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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윤 “포장하지 않는 게 제 팁이에요”

2025.06.23.김은희

흩어진 고무라기를 모아 품는 장동윤의 손이 닿은 곳은.

톱, 팬츠, 모두 발렌티노. 네크리스, 발렌티노 가라바니.

GQ 고무라기라는 단어를 어떻게 하면 알아요?
DY 부스러기라는 뜻이죠, 떡 부스러기 그런.
GQ “흩어진 고무라기마냥 더듬거리는 그의 입술에는 / 주걱처럼 생긴 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국어사전을 찾아봤어요. 열일곱 살 장동윤이 쓴 시를 읽다가.
DY 제가 쓴 ‘삼대째 내려온 카누는 지상으로 간다’라는 시, 네.(웃음) 그때는 제가 문학 소년이어서. 문학을 좋아하다 보면 표현력이 풍부해집니다.
GQ 초등학생 때부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시를 썼다고 했죠. ‘고구마화물열차와 검은 말’, ‘발바닥을 보다’, ‘빗자루’···. 온라인에 일부 공개된 수상집을 통해서나마 읽었어요.
DY (인쇄해온 시들을 보며 웃는다.) 얼마나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이···. 제가 샤프로 썼던 원본들도 아직 집에 남아 있어요.
GQ 그런데 저는 이 화자의 시선이 어딘가 쓸쓸하게 느껴졌어요.
DY 그런 시니컬함이 있었어요, 제가. 사춘기가 심해서 세상을 약간 비관적으로 봤어요.
GQ 그렇죠?
DY 계층 간의 어떤 그런 것에 되게 시니컬한 게 있었어요. 이게 심지어 순해진 거예요.(웃음) 중학교 때 쓴 시를 보면 이상해요. 중2병 딱 그런 느낌으로 ‘세상은 쓰레기야’ 이런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고등학생 때는 그게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시선으로 옮겨져서, 그러니까 이게 저도 제가 의도한 게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을 관찰해야지, 어떤 시를 써야지, 어떤 작품을 만들어야지 의도한 게 아닌데 지금 여기 시들 보면 포장마차 붕어빵 아저씨, 고구마 파시는 분, 청소부 아저씨, 노숙하는 사람들···, 지나치기 쉬운, 표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대상에 저는 좀 끌렸어요.

아우터, 렉토.

GQ 지금도 시를 쓰나요?
DY 안 쓴 지 오래됐죠.
GQ 이제는 안 쓰는구나.
DY 예. 요즘은 사진 배우고, 그러니까 그게, 연출로 바뀐 것 같아요.
GQ 매체가 바뀌었군요, 시를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DY 매체가 바뀐 거죠. 영화도 제가 중학생 때부터 좋아하기도 했고, 종합 예술이라서 재밌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 미숙하지만. 그래도 할수록 점점 더 재밌어요.
GQ 장동윤 씨가 연출도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금융학도가 편의점 강도를 잡고 한 뉴스 인터뷰를 계기로 배우 데뷔한 일만큼이나 갑작스럽게 느껴졌어요. 물론 시를 쓰던 문학 소년이었지만. ‘갑자기’라는 표현이 좀 그럴까요?
DY 접점이 없었죠.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 갑자기고, 연출은 학생 때 제가 시도 썼지만 시나리오도 썼어요. 그런 창작 욕구는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고 싶다. 내 이야기를. 그런데 교육열이 높은 학군지에서 자라면서 공부 외 다른 것은 방법도, 길도 전혀 몰랐죠. 그러다 배우가 되고 나서 오히려 접근할 수 있게 된 거죠 이제.
GQ 지름길을 찾은 셈이네요.
DY 그렇죠. 배우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면서 오히려 연출에 가까워진 거죠.

톱, 마틴로즈 at 아데쿠베. 팬츠, 이자벨 마랑. 슈즈, 코치. 캡, 디젤. 왼손 약지 링, 벨트는 모두 스타일리스트의 것.

GQ 고등학생 때 쓴 시나리오는 무슨 내용이에요? 어딘가에 공개한 적 있어요?
DY 전혀 안 했어요. 그때는 제가 <스내치>라는 영화를 좋아했어요. 브래드 피트 배우가 나오고 가이 리치 감독이 만든 범죄 오락 영화인데, 그런 시나리오를 쓰고 그랬어요.
GQ <누룩>은 공개할 거예요? 지금의 장동윤이 각본 겸 감독으로 이름을 올리는 첫 장편 영화.
DY 해야죠, 해야죠.(웃음) 작년 초에 촬영 끝났고 올해 극장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인터뷰 후 7월 3일부터 13일까지 열리는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 공식 초청 소식이 전해졌다.)
GQ 빈 화장품 병에 담아와 학교에서도 홀짝일 정도로 막걸리를 사랑하는 양조장 아이, 열여덟 살 다슬이가 사라진 누룩을 찾아 떠나는.
DY 맞아요. 지금은 전혀 다른 영화가 됐는데.
GQ 지금은 전혀 다른 영화가 됐어요?
DY 아, <누룩>이 맞아요. 맞는데, 처음 시작은 평소 저와 이런 작품 만들어보면 어떨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이태동 촬영 감독님이 계세요. 제 지난 단편(<내 귀가 되어줘>, 장동윤 각본·감독 첫 단편 영화)도 감독님이 도와주셔서 카메라 한 대 갖고 찍었는데, 감독님과 코로나 시기 때 그런 얘기를 나눴어요. 예전에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유행할 때 김치를 먹으면 낫는다, 감염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거든요. 거기서 착안해 막걸리의 유익한 균이 코로나를 이겨낼 수 있다는 믿음, 어떤 맹목적인 믿음이 현실화되면서 정치랑 얽히고설키는 위트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자, 재밌는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제가 연출자로서도 경험이 쌓이면 나중에는 고려해야 할 게 많아질 수도 있잖아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 수도 있잖아요. 물론 연출로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서 지금 아니면 못 하겠다 싶어서 한 건데, 뭐냐면 우리 각자가 어떤 신념을 갖고 살아가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사람은 ‘진실해야 돼, 거짓말하면 안 돼’라는 신념일 수도, 어떤 사람은 ‘난 돈이 최고야. 돈을 위해서는 뭐든지 할 수 있어’라고 할 수도 있죠. 각자 신념과 인생 철학을 가지고 사는데, 그게 흔들리는 순간이 오잖아요.
GQ 오죠.
DY 난 열심히 노력하면 보상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살다 보니까 하···, 아니네? 왜 이러지? 흔들릴 때가 있잖아요. 그 흔들리는 모습이 누룩을 바라보는 다슬이의 모습이거든요. 그리고 그런 다슬이를 바라보는 주변 사람들의 어떤 반응···, 그걸 상징적으로 누룩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막걸리와 누룩이라는 소재는 그대로 있습니다. 지금의 <누룩>도 믿음에 관한 이야기예요.

톱, 팬츠, 모두 베르사체.

GQ 그러게요. 사라진 누룩, 다슬이가 그토록 찾고 싶어 하는 누룩이 의미하는 바가 있을 것 같은 거죠. 거기에 감독의 마음도 담겨 있을 것 같고.
DY 맞아요. 이렇게까지 비유적인, 상징적인 영화를 만들려던 건 아니었지만, 어렵게 보면 어려울 수 있는 영화지만, 저는 굉장히 심플하다고 생각해요. 보면 명확해요.
GQ 그래서 다슬이와 누룩은 어떻게 되는지 물으면 스포일러가 되겠군요.
DY 그렇죠, 그건 완전 스포죠.(웃음)
GQ 대신 장동윤 씨에게 누룩 같은 신념은 뭐예요?
DY 저도 그것이 흔들리기 때문에 이런 영화를···. 하하하하. 그런데 요즘의 저는 제 직업으로서 하는 일은 뭐든지 작은 것 하나라도 제대로 열심히 잘 해보고 싶어요. 옛날에는 큰 줄기에 집중하려고 했거든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배우가 연기만 잘하면 되지’라고 생각했다고 해야 하나. 작품을 선택하는 것부터 해서 그 안에서 내가 어떻게 연기할지 그런 큰 줄기에 집중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보면 그 외의 것들에 소홀해질 때가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10시 월화 드라마 많은 시청 바랍니다” 이런 홍보 멘트를 녹음한다 칠 때, 나는 지금 작품에 집중해야 하니까 이 멘트 그냥 빨리 해치우자고 여겼던 것도 같아요. 그런데 그 한 문장도 정성 들여 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하나하나가 쌓여서 굵직해진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된 것 같아요. 요즘은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아요.

톱, 마리아노 at 분더샵. 팬츠, 쿠로 at 비이커 청담.

GQ 이런 궁금증이 들어요. 말했듯 갑자기 배우일을 하게 됐죠. 그러면서 오히려 원래 품고 있던 연출가의 꿈에 가까워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실제로 영화를 만들어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단 말이죠. 단편이든 장편이든, 규모가 크든 작든.
DY 쉽지 않죠.
GQ 그런데 어떻게 하는 거예요? 그냥 하는 건가?
DY 성격적으로는 결단력 있고 추진력 있는 편인 게 제 장점 같아요. 학창 시절에도 리더 역할을 많이 맡았거든요. 배우라는 길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뛰어든 것도 그냥 저는 일단 부딪히고 보는 성격이라서. 처음 단편 영화를 시도할 때도 어떻게 만드는지 주위를 관찰해보고 참여해주셨으면 하는 분들께 다 직접 찾아가서 얘기를 드렸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혹시 참여해주실 수 있을까요? 장소 섭외도 다 제가 했어요. 왜냐하면 정말 열악한···, 돈···, 장편도 사실은 할 얘기가 정말 많지만.

GQ 해보세요.
DY 하나만 얘기하자면, 저희 아버지가 이제는 정년 퇴임하셨지만 교장 선생님이셨거든요. 그래서 현직에 계신 아버지 동료분들께 부탁해 학교 섭외하고, 심지어 지방 촬영할 때는 예산이 너무 없다 보니까 아버지 동료 선생님 댁에서 같이 살았어요. 촬영 감독님이랑 현장 편집 기사님이랑 저 셋이 남의 가정집에서 아기 돌봐주면서.
GQ 어머. 남의 가정집에서!(웃음)
DY (웃음)그런 게 저는 재밌어요. 그냥 이렇게 막 부딪혀보는. 생생하게. 그런 게 성격적으로 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그렇게 도와주시고 곁을 내주신 분들 덕분이죠.
GQ 그렇게 부탁하고 요청하면 대부분 이루어지는 편인가요? 거절 당할 때는 없어요?
DY 배우라는 타이틀 덕을 봤다고도 생각해요. 부인할 수 없어요. TV에서 저를 본 분이라면 조금 더 호의적이기 쉽잖아요. 그런데 어쨌든 저는 진심을 전달하려고 해요. 거절은 이제 굵직한 것들 있죠. 제작 지원, 배급 지원. 그런데 만드는 과정에서 사람들과의 만남은 괜찮았어요. 다들 너무 많이 도와주셨어요.
GQ 제작 지원, 배급 지원, 그런 굵직한 것에서 거절 당할 땐 어떻게 해요?
DY 될 때까지 하는 거죠. 그건 굉장히 현실적인 부분이라서 어떻게 하냐가 아니라 될 때까지 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요즘 독립 영화의 현실을 얘기하자면 다 힘드니까. 저도 그걸 경험하는 거죠.
GQ 부탁의 수락률을 높이는 장동윤의 팁은요?
DY 포장하지 않는 게 제 팁이에요. 그냥 솔직하게. 예를 들어 학교를 섭외할 때 속일 수도 있잖아요. 이건 어떤 영화가 될 거라고 내용을 속인다든지 아니면 이것이 당신들께 어떤 수혜가 있을 거라고 과장한다든지 할 수 있는데, 그냥 솔직하게. 이런 이야기인데 예산이 없다, 그래서 도움이 필요하다. 이번 영화에서는 아버지 동료 선생님들께 많은 요청을 드려 조금, 조금 수월했죠. 감사하죠. 어쨌든 저는 항상 직접 대면해서, 어디든 찾아가서 직접 뵙고 말씀드리려고 해요. 서면으로 하면 그 진심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으니까.

아우터, 렉토. 팬츠, 사카이. 부츠, 질 샌더.

GQ 타고나는 창작욕이 있는 것 같다던 동윤 씨 말을 이해해요. 알아요. 그럼에도 장동윤은 왜 시를 쓰고 왜 영화를 만들어요? 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DY 고등학교에서 시 수업을 들을 때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자신의 시를 누구한테 공개하는 일은 몸이 발가벗겨지는 것과 똑같다는. 그 당시에도 공감했어요. 왜냐면 내가 쓴 시를 누군가가 읽는 게 너무너무 창피한 거예요. 정말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일인 거죠.
GQ 그렇다기엔 아까 장동윤 자작시를 보여줬을 때 아주 의연해 보였는걸요.
DY 사람들이 보고 반응하는 데서 오는 재미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는 게, 발가벗겨지는 것같이 쑥스러운 걸 이기는 것 같아요. 어떤 거장 감독님이 말씀하신 건데, 본인도 본인의 영화가 어떤 영화가 될지 모른대요. 관객을 만났을 때 비로소 그것이 이루어진대요. 만든다고 끝이 아니라 누군가 봐야 최종적으로 영화가 완성된대요. 내가 쓴 시를 보고, 내 영화를 보고 사람들이 어떤 걸 느끼고 나누게 되는 거잖아요? 그게 묘미 같아요. 그것에 대한 재미가 두려움을 이기는 것 같아요. 칭찬이 아니어도요. 왜 설정을 저렇게 했냐, 왜 캐릭터를 이상하게 만들었냐, 왈가왈부 거친 얘기가 오가도 그것 자체가 문화 같아요. 제가 만든 이야기가 그런 평가를 받는 입장이 된다는 그 재미가 더 커요.
GQ 두려울지언정 두렵지 않군요.
DY 함께 향유하는 거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