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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과 여기에 관한 사진가 볼프강 틸만스와의 대화

2025.09.01.임채원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준비시킬 수 없었지만, 모든 것은 이 순간을 위한 준비였다.

퐁피두 전시 관련 일정을 위해 지난밤 파리로 돌아온 볼프강은 시차로 온 졸음을 물로 깨우며, 앉았다가 일어서고 침대에 엎드리거나 방 안을 맴돌면서 인터뷰 내내 위치와 자세를 바꿨다. 전시마다 사양이 바뀌는 그의 사진처럼 자유로운 이 광경은 계속해서 셔터를 누르고 싶은 풍경이었고, 상냥한 미소에서 흘러나오는 언어와 소리는 7월 아침 햇살을 받아 평화롭게 반짝였다.

Wolfgang Tillmans à la Bpi, janvier 2025 © Centre Pompidou

GQ 뉴욕에서 보낸 여름휴가는 어땠어요?
WT 롱아일랜드 해안가에서 아침마다 걷고 수영을 했어요. 물론 촬영도 했죠.
GQ 무엇을 포착했나요?
WT 식물과 나무에 깃든 바람의 매우 느린 움직임이요. 60초 동안 하나의 대상을 본다고 상상해보세요. 짧을 것 같지만, 피어나는 꽃을 관찰하기로 마음먹고, 이를 적극적으로 촬영해보면 시간은 아주 느리게 흘러요. 21초, 22초, 23초···. 뷰파인더로 그 속도를 느꼈어요.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빠르게 지나쳐버리는 시대에, 1분이라는 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건 매혹적인 일이에요. 일 년 중 단 며칠만 개화하는 선인장의 밝고, 노란 꽃들은 아주 특별했어요.
GQ 오늘 밤엔 도록의 메인 에세이를 쓴 피터 센더 교수와 대담이 있죠.
WT 사진으로 포착하는 행위의 본질과 자연과 맺는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거예요. 지금 이 안에서도 광학 작용이 일어나고 있어요.(그가 앞에 놓인 유리 물잔을 들어 눈앞으로 가져다 댄다.) 잎사귀의 빗방울은 그 자체로 렌즈고, 오랫동안 가려져 있던 사물이 햇빛을 받으면 그림자가 남긴 사진을 얻죠. 자연이 만든 포토그램처럼 사진은 카메라 바깥, 삶의 모든 순간에서 생성되고 있어요.

The State We’re In Courtesy Galerie Buchholz,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Maureen Paley, London, David Zwirner, New York

GQ 장대한 시간을 거슬러, 첫 챕터로 가볼게요. 처음 카메라를 든 순간은요?
WT 열 살 생일에 받은 작은 망원경에 카메라를 달았어요. 달을 찍었지만 흐릿했죠. 아버진 6×6 카메라를 쓰는 아마추어였지만, 원래 부모님의 길은 따르고 싶지 않잖아요. 오히려 그림이나 음악, 옷 만드는 일에 더 몰두했어요. 그러다 스무 살에 제가 사진을 통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고, 지금까지 사랑하고 있죠. 사진에는 여전히 새롭게 발견될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해요.
GQ 어릴 적에 옷을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운데요.
WT 잠깐이지만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어요. 다른 무언가로 변할 수 있는 옷의 가능성에 이끌려요. 접힌 직물을 찍은 사진도 많죠. 옷감은 또 하나의 피부 같아요. 극도로 평평한 천이 신체를 덮을 때 아주 흥미로운 조각적 순간이 탄생해요. 굽이진 옷감, 입체적 몸, 평면의 종이 사이의 관계를 봐요. 사진술은 3차원의 세계를 평면 화면으로 번역하는 작업이죠.

이미지 없는 청음실, ‘I want to make a film 2018’

GQ 역으로 사진 안에서 질감, 속도, 소리 같은 감각을 끌어와 시각의 2차원적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를 하시죠. 비에 젖는 우림을 포착한 ‘Sound is Liquid’와 바다 한가운데서 촬영한 듯한 ‘The State We’re in’은 공통적으로 물과 관련된 작업인데, 이 둘을 전시의 도입부에 배치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WT 당신이 관찰한 그 관계가 실제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두 사진이 매우 근본적인 이미지들이기 때문일지도 몰라요.
GQ 그 말은 설치 중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다는 뜻인가요?
WT 목업의 흥미로운 지점은 즉흥성에 있어요. 모형을 짜는 건 드넓은 공간을 혼란 없이 채우기 위해서고, 현장에서는 이 벽과 저 벽에 무얼 둘지 유연하고 우발적으로 결정해요. 전시장 바닥에서 작업한 3주간 모든 것은 계속 변화하고 움직이며 유기적으로 발전했어요. 모형의 목적은 예견된 프로그램이 아니에요. 제 작업은 항상 우연과 통제의 혼합이에요. 잘 계획하되, 멈춰야 할 때와 우연을 허용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해요. 균형을 이루면서. 우리의 인생처럼요.

its only love give it away Courtesy Galerie Buchholz,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Maureen Paley, London, David Zwirner, New York

GQ 촬영에 있어서는 때를 기다리는 편인가요, 직접 찾아 나서는 편인가요?
WT 둘 다 있어요. 세심하게 연출하는 한편 순간적으로도 포착해요. 계획한 일과, 일어나는 일이 공존하는 ‘삶’이라는 것을 작업에서도 보여주고 싶어요. 투명성이 항상 현실적인 건 아니에요. 삶이란 순수하지 않으니까요. 삶은 오염이기도, 수분(受粉)이기도 해요. 서로 다른 꽃가루가 섞이는 것처럼, 강물이 바다로 흐르고, 바다가 비를 만들고, 다시 비가 강물에 떨어지듯. 저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온 것들을 나란히 두길 좋아해요. 새로운 의미가 생기니까요.
GQ 공공도서관이었던 전시장의 공간적 특성을 반영한 실험이 있었나요?
WT 벽 없는 열린 공간 자체가 거대한 실험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작품이 길이 7미터, 폭 2미터의 큰 테이블 위에서 이루어집니다. 은빛 커튼 하나만 지나면 나오는 어두운 공간도 처음엔 확신이 없었지만 매우 극적인 전환이 됐지요.

Echo Beach Courtesy Galerie Buchholz,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Maureen Paley, London, David Zwirner, New York

GQ ‘Freischwimmer’ 시리즈 중에는 번호가 아닌 이름이 붙는 작품이 있어요. ‘it’s only love give it away’처럼요. 어떤 기준이 있나요?
WT 동일 연작 중 ‘Muscle’이라는 작품은 선들이 근육 섬유처럼 보여 붙인 이름이에요. 저는 어떤 단어나 문장에 이유 없이 끌리는데, 그것을 작품에 붙여서 그 말들에 ‘집’을 지어줘요. 그 전까진 단어들이 공중에 떠다니지만 작품에 귀속시키면 둘은 하나가 되죠. ‘it’s only love give it away’ 는 2006년 작품인데,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문장은 당신 옆에 살아 있어요.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건 단어를 미래에도 존재하게 하는 방법이에요. 전시 제목도 그래요. 2년 전 거의 시에 가까운 문장이 떠올랐고 그것을 전시에 붙이자 두 문장이 하나로 묶이며 ‘집’을 갖게 됐죠. 단어를 감각할 수 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방법은 노래로 부르는 거예요. 단어가 가사가 되면 생명이 생겨요. 단어는 종이나 화면 위의 기호일 뿐이지만, 시나 문학, 나아가 사진, 회화, 음악과 만나면 다른 삶을 얻게 되죠. 저는 이렇게 단어와 함께 작업하는 걸 좋아해요. 단어가 저를 찾아오고, 저는 언어로 놀며, 그것을 작품의 제목으로 주는 거죠.
GQ ‘I don’t want to get over you’는 저에게 오랜 집 같은 작품이에요. 뉴욕 모마에선 무광의 대형 사진이었지만 퐁피두에선 훨씬 작은 유광 종이로 만날 수 있어요. 전시마다, 시기마다 이미지의 포맷을 달리하는 이유가 있나요?
WT 재료가 곧 메시지예요. 그 둘은 따로 뗄 수가 없어요. 제 작품은 항상 작은 사이즈, 중간 사이즈, 그리고 아주 큰 사이즈 세 가지 규격으로 나뉘어요. 작은 건 주로 인화지에, 큰 건 잉크젯 종이에 작업합니다. 작은 작품은 광택감이 있어야 훨씬 흥미롭고, 큰 작품에서 이런 반짝임은 오히려 방해가 돼요.

도서관 책장에 걸린 ‘Lighter’시리즈

GQ 프레스 투어 말미에, “책과 종이에 대한 애정이 이 공간 전체에 흐르고 있다”는 말이 아름다웠어요. 전시장 가장 안쪽에는 당신의 책을 모아놓은 ‘틸만스 도서관’이 있고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도서는 뭐예요?
WT 세 권의 책을 콜라주해 인쇄한 ‘Things Matter’. 매우 실험적인 책이죠.
GQ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책을 버리지 못하잖아요. 평소에 책을 버리나요?
WT 어려워요. 친한 친구 중 한 명인 한스 울리히는 들어오는 책이 있으면 나가는 책도 있어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놀랐지만 그의 논리를 이해할 순 있어요.
GQ 어떤 글을 즐겨 읽나요?
WT 신문을 많이 읽어요. <더 가디언>, <파이낸셜 타임즈> 같은 경제지와 과학과 천문학 기사를 좋아합니다. 사회는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틀이고, 과학은 보고, 듣고, 만드는 기술의 기반이죠. 예술가로서 이런 관심사는 자연스럽다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결국 ‘살아 있음(being alive)’의 경험과 연결되니까요.

9월 22일까지 열리는 전시의 포스터

GQ 잡지는 여전히 당신에게 중요한 매체인가요?
WT 저는 인쇄물을 믿어요. 잡지 역시 아름다운 사물이고요. 소비는 줄었지만 요즘만큼 두꺼워진 적도 없죠. 어떤 건 오백 페이지에 달해요. 오래 남는다는 점이 좋아요. 한 달 뒤면 지난 호가 되지만 30년 동안도 간직할 수 있잖아요. 인스타그램 포스트, 디지털 메시지는 10년 뒤 완전히 사라질 수도 있어요.
GQ 이 인터뷰가 실릴 호를 더 특별하게 해줄 각주 하나를 달아주신다면요?
WT “신문 구독을 고려해보세요.” 우리가 뉴스에 비용을 지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온라인 서비스도 괜찮아요. 그건 우리 자유에 대한 투자예요. 저널리즘이 사라진다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감시하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뜻이고, 분명 위험한 세상이 될 거예요. 우리는 저널리즘을 지지해야 해요.
GQ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이 길고 먼 예술적 여정을 이끄는 힘은 뭔가요?
WT 삶을 사랑해요. 보는 일, 생각하는 일, 듣고 말하는 일을요. 오늘을 살아 있다는 감각을 묘사하고 싶어요. 똑같은 일을 한 과거의 예술가들이 예술의 힘을 믿을 수 있도록 격려해주었어요. 과거와 현재의 이 끊임없는 대화는 내가 오늘 하는 일이 미래의 누군가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요. 예술은 생각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공간이고, 저는 그 점을 사랑해요.

EVERYTHING COULD HAVE PREPARED US

M oon in Earthlight Courtesy Galerie Buchholz, Galerie Chantal Crousel, Paris, Maureen Paley, London, David Zwirner, New York

때는 1월의 멕시코시티였다. 태양이 내리쬐는 라 로마의 식당 콘타르마르에서 토스타다와 스페인산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배를 채우던 나는 Sin Palabras, 와인의 이름처럼 ‘말문이 막히도록’ 황홀한 맛에 취해 갔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는 조각가는 이 옆자리 아시아 사람에게 호기심을 보였고, 3인분쯤 되는 라임 소르베를 나눠 먹게 되자 친근한 대화가 오갔다. “오늘 밤 뮤세오 후멕스에서 어느 멕시코 작가의 회고전을 공개하죠. 오프닝 나이트에 관심이 있나요?” 폴랑코의 미술관과 멀지 않은 애프터 파티장은 멕시코시티의 귀빈뿐 아니라 북미와 유럽의 미술계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푸른빛 미러볼 아래 사람들과 뒤섞이다가 이윽고 샹탈 크루젤의 갤러리스트 옆에 놓였다. 그는 내 전화기 화면을 가리켰다. “이 사진을 찍은 작가와 일하고 있어요. 올여름에 아주아주 큰 전시가 있을 거예요. 파리에서요.”

찬 공기가 맴도는 6월의 파리에서, 잠이 덜 깬 르 마레를 지나 퐁피두 센터에 다다랐다. 얼마 전까지도 공공도서관(Bpi)이었던 이곳은 어느 독일 사진가의 웅대한 이야기가 처음으로 펼쳐질 참이었다. 유럽의 프레스들이 전람회의 앞표지를 하나둘 열었다. 사진부 책임 큐레이터 플로리안 에브너가 소개를 마쳤고, 우리 앞에 선 주인공은 마이크를 들었다. “어두운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었고, 큰 소리가 났어요. 그 순간 문득, ‘짧은 노출 시간으로 빗방울을 멈춘 듯하게 찍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스쳤어요. 그 결과 먼지 입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빗방울로 가득한 사진을 얻게 되었어요. 역사적으로 그림이나 사진에서 비는 줄로 묘사되곤 했죠. 기술의 진화가 새로운 표현을 가능하게 한 거예요. 저는 기술과 예술이 만나는 지점에 늘 관심이 있어요.”

올 9월부터 5년간 휴관에 들어가는 퐁피두 센터의 마지막 전시 <<Nothing Could Have Prepared Us — Everything Could Have Prepared U>는 그 교차점에서 볼프강 틸만스가 35년간 탐사한 시대, 지식, 현실을 담고 있다. ‘Sound is Liquid’ 작품 설명에서 밝힌 대로, 그는 사진술의 물질성과 삶이란 예술의 우연성을 카메라 안과 밖에서 시각화해왔다. 1980년대 함부르크에서 아날로그 카메라와 암실 작업으로 출발, 1990년대 런던에서 <i-D>, <The Face>등의 잡지와 일하며 이름을 알린 그는 스캐너를 이용한 복사 예술로 사진 실험을 이어가면서 2000년대 들어 설치 작업과 정치·사회적 메시지의 르포타주를 선보였고, 오늘날 전 매체적 접근의 예술로 궤적을 이어가고 있다. 사진의 2차원적 시각을 해체하는 여러 시도들 중 하나는 카메라 없이 만드는 이미지들이다. ‘Freischwimmer’는 빛의 노출 시간과 세기를 조절해 인화지 위의 은염 입자를 서로 다른 농도로 퍼뜨린 작품. 빛의 파동이 가시화된 결과물이다. 서가에서 만나는 ‘Lighter’ 시리즈는 접히고 비틀어지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평면을 통해 사진과 조형의 경계를 누빈다. ‘Silver’, ‘Paper Drop’을 포함한 추상 연작들은 분명 사진이란 물질을 재현했지만, 관람자의 시선을 상상의 내밀한 공간으로 흘려보내어 지각의 미끄러짐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픽션의 독특함도 느껴진다. 그의 사진은 현시대가 요구하는 속력과는 반대로, 시선을 멈추고 느려지기를 요청한다. 그는 관찰이라는 행위를 ‘믿기’ 위해, 보는 것과 아는 것 사이 의도적 시차를 둔다.

볼프강 틸만스는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다정한 시선으로 재구성하는 사진가다. 그의 카메라는 현실의 질감과 사회적 맥락을 세밀하게 읽어내고, 그 순간을 사진에 고정했다. 1990년대 클럽 문화의 어둠과 빛, 퀴어 커뮤니티, 자아를 들여다보는 시선, 천문학과 항공 역사, 전쟁, 정물화, 프랭크 오션의 앨범에 이르기까지, 하나로 관통할 수 없는 주제로 이미지와 사회를 엮는다. 2000년대 이후 그의 매체는 비디오와 음악으로 확장되는데, 자료 검색실이었던 구역은 ‘스스로 배우기’라는 의미의 ‘Autoformation’ 컴퓨터실로 변모해 24대의 스크린에서 1987년부터 2024년까지의 비디오를 모은 ‘Video on Demand’ 작품을 소개한다. 음악에 대한 애정과 서로 다른 문화권의 소리에 대한 탐구는 청각적인 사진들과 이미지 없이 오디오만 출력되는 청음실에서 구체화된다. 그는 “이번 전시가 결코 ‘조용한’ 전시가 아니라”말한다.

그는 설치라는 열린 실험을 통해 사진가의 역할을 재정의한 예술가이기도 하다. 2003년부터 이어온 ‘Truth Study Center’는 현실에 대한 그의 탐구 안에서 중요한 작업으로, 직접 제작한 나무 테이블 위에 이미지와 텍스트를 수평적으로 배열해 시선의 우연한 흐름과 그에 따른 정보의 충돌을 발생시킨다. 허구적 질서를 통해 조건적이고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진실의 성질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에서는 퐁피두의 책상이 역시 그대로 사용됐고 케이트 모스의 초상, 브렉시트 같은 정치적 사건, 각자의 시선에 포착되는 사소한 장면들이 흩뿌려져 있다. 시간의 기록이자 무작위로 수집된 아카이브는 ‘진실은 얼마나 유동적인가?’ 질문을 던지며 틸만스가 경계하는 절대주의를 환기시킨다.

도서관 테이블 위에 펼쳐진 ‘Truth Study Center’

전시의 가장 큰 특별함은 이 방대한 세계를 미술관이 아닌 도서관에서 만난다는 점에 있다. 우리 모두는 학교 도서관을 드나들던 시절이 있었고, 그때의 호기심과 순수함으로 전시를 감상한다면 작가의 의도에 훨씬 가까워진다. “이 공간에는 어떠한 연대기적 배열도 없어요. 작품을 바라보는 시선도 직선적이지 않죠. 긴 여정이 담겨 있지만, 회고전은 아니에요. 제 뒤에 있는 세 작품을 보세요. 남자의 꿈틀거리는 팔에서 시작되는 흐름은 ‘Panorama’ 속 선들로 이어지고, 러시아 군대의 행렬로 끝이 나요. 벽 위에 하나의 거대한 너울을 그리죠. 여러분은 다른 걸 볼 수도 있겠죠. 전시에는 서로 다른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연결, 관람자가 스스로 구성해낼 수 있는 대화가 존재합니다.” 이 전시는 그저 끌리는 책을 집던 손가락의 느낌처럼 감상하면 된다.

시간이라는 추상이 어떻게 공간이라는 기하학 속에 녹아들었는지도 설명한다. “2주를 투자해 6,000제곱미터의 도서관 카펫을 전부 제거하는 대신 카펫을 하나의 기회로 보기로 마음먹었어요. 20년 전 회색 카펫을 깔았을 때, 가구를 빼지 않은 채 덮었다고 해요. 이번에 책장과 탁자들을 옮기자 훨씬 이전의 천 조각들이 드러났고, 그 보라색 자국들이 참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마치 도서관이 찍어낸 사진 같았죠. 그 존재의 흔적은 의도적으로 만들 수 없는 하나의 컴포지션이었어요. 마이크로칩 같은 회로기판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틸만스는 거의 모든 것에서 사진의 원리를 발견한다.

문을 연 6월 13일부터 여름 내 파리를 찾은 많은 친구가 이 전시를 관람했고, 그들의 인상을 물었다. 누군가는 작업자의 성실함을, 예술가의 집요함을, 전시장의 캐주얼하고도 명랑한 분위기를, 자유롭게 산책하는 관람객의 태도를 보았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설치에서 느껴지는 신선함을, 장르를 가로지르는 종합 예술의 생동감을 느꼈다. 틸만스는 내일이 있는 세계라면 어디든, 댄스플로어에서 인공위성의 궤도까지, 앞장서 찾아가 사진을 찍는다. 그렇기에 틸만스의 사진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기억 속 비슷한 한 장면을 꺼내올 수 있다. 그의 사진이 친근하면서도 신비로움을 내뿜는 이유는 삶의 보편성과 단순함을 응축하는 동시에, 본능과 탐구를 재료 삼아 사랑을 서술하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하지만 필연적인—충돌하는 삶의 두 진실을 암시하는 전시의 제목은 현재로 향하는 과정 속에 우리가 돛과 노를 함께 쥐고 있음을 알려준다. 그는 무수한 디테일 속에서 포착된 자신의, 그리고 당신의 시간을 관람객 각자의 ‘지금, 여기’의 시간으로 치환한다.

전시장에서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Freischwimmer 234’ 작품 앞이다. ‘자유수영자’를 뜻하는 제목은 빛이 만든 바다를 연상시키는데, 이 그림 같은 사진 속에서 흩어진 은염을 부표 삼아 의식과 마음 사이를 유영하면 추락의 상처, 침잠의 고요, 사랑의 파편 같은 감정들이 등고래의 꼬리처럼 수면을 오르내린다. 틸만스의 사진에선 지구의 바다보다 푸른 것이 많고, 그건 비단 색의 문제만이 아니라 마음의 문제, 넓이와 밀도의 문제, 젊음과 용기, 벌거벗음과 살아 있음, 무방비, 끝나지 않는 질문에 대한 고백이어서 그 푸르름은 눈이 아닌 몸 전체를 활용해 응시할 때 더 많은 것을 내어준다. 볼프강이 만든 노래 ‘Where Does The Tune Hide?’에서 그는 “바닷결을 빗질하고, 그 파도를 두 발로 느끼며, 숨은 삶의 선율을 찾아보라”고 말한다. 그의 사진에는 아무런 준비 없이도 저마다의 고유한 선율을 끌어내게 하는 힘이 있다. 도서관이라는 특수한 장소는 주저하는 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하지만 모든 것은, 이미 우리들 내면 깊숙이에서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