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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손톱만큼이라도 알고 싶을 때 던지는 질문들

2025.09.04.김은희

당신은 무엇이 궁금합니까?

【 참가자 】
성해나, 소설가 · <두고 온 여름>, <혼모노>
김문, 서점 소수책방 대표
박정민, 출판사 무제 대표

【 규칙 】
① 타인을 손톱만큼이라도 알고 싶을 때 던지는 질문을 적어주세요.
② 그 질문을 익명으로 다음 타자에게 전달할 것이며, 당신에게도 미지의 타인이 보낸 질문을 드립니다.
③ 이러한 과정과 질문에 대해 에디터와 대화를 나눕니다.

성해나가 하는 질문들

① 어릴 때 즐겨 가던 나만의 아지트는?
② 아주 사소하지만 특별한 나만의 재능은 뭐가 있을까요? (예: 알람 없이도 제시간에 일어나기.)
③ 어른이 되어도 절대 하지 말아야지, 했던 것 중 지금 하고 있는 건 뭔가요?
④ 최근 속으로 ‘와, 나 진짜 멋지네···’ 했던 순간은?
⑤ 하루 중 어떤 시간이 가장 좋나요? (참고로 저는 오후 3시입니다.)
⑥ 내 하루에 제목을 붙인다면, 오늘은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요?
⑦ 만일 마음속에 방 하나가 있다면 내 방에는 어떤 가구가 가장 어울릴 것 같나요?

성해나의 응답들

저를 아시나요? 알고 싶습니다.
몇 시에 주무세요? 저는 올빼미형이라 주로 새벽에 잠듭니다. 보통 2~3시에 취침하는데, 그날의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보다 더 늦게 자기도 합니다.
식사는 잘 하시나요? 잘 챙겨 먹으려 애쓰는 편입니다. 오늘은 난젠완쯔를 먹었어요.
지금 직업이 마음에 드시나요?, 왜 하고 싶으셨어요? 만족합니다. 속단을 즐기지 않는 제겐 천직이란 생각도 들어요. 문학에는 뚜렷한 답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답을 찾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고 글을 썼지만, 늘 의문만 늘고 명쾌한 해답은 생기지 않더라고요. 요즘은 의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 성장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답이 있으면 답습하고 섣불리 판단할 수도 있지만,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는 늘 다른 선택지를 찾고 가보지 않았던 지점으로 발을 뻗으니까요. 그 과정이 의미 있습니다.
존경하는 사람 한 명만 알려주세요. 부모님 빼고. 전태일 열사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을 그 자체로 사랑했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한 그의 정신을 숭고하게 여깁니다. 그를 닮고 싶고, 그를 좇아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이들을 지지합니다.
요즘 읽은 책, 영화 중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하나씩만 말씀해주 세요. 제임스 볼드윈 <단지 흑인이라서, 다른 이유는 없다>와 션 베이커 <아노라>.
시답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을까요? 매번 하죠. 터무니 없는 몽상도 시시때때로 이어가고, 현실 도피적 상상이나 실체 없는 희망을 품기도 합니다. 무엇이 시답잖은지 판단할 수 없지만, 허황되고 시시한 사유를 이어가다 보면 그 안에서 의미 있는 논의가 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유는 중요하다고 봐요.
품속에 아직 세상에 내보내지 못한, 하지만 꼭 내어놓아야만 할 이야기가 있을까요? 비밀. 우리가 만날 날이 있다면 그때 알려드리죠.

월요일 오후 3시의 대화

어려운 일이 아니라며 바로 질문지를 보내주셨어요. “실제로 낯을 익히기 위해 묻는 질문과 평소 던지고 싶던 질문을 함께 적어 보내요” 하고. 질문해야 서로 친해지고 가까워진다고 할까요? 그래서 원래 질문하는 것도 좋아하고 자주 해요.
낯을 익히기 위해 실제로 자주 하는 질문은 뭐예요? 아주 사소하지만 특별한 재능은 무엇인지, 이 질문. 아주 가깝지는 않은데 친해지고 싶은 분들한테 물어봐요. 스몰 토크 식으로. 엄청 선을 건드리는 질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엄청 깊은 질문도 아니고. 서로 ‘어? 이런 능력도 있구나, 습관도 있구나’ 하면서 알아가는, 상대를 조금 더 잘 알 수 있는 질문 같아요. 또 특별하게 기억해주시기도 하더라고요. 종종.
예시로 적어둔 알람 없이도 제시간에 일어나기는 작가님의 재능인가요, 아니면 갖고 싶은 재능인가요? 갖고 싶은 재능. 하하하하. 저는 절대 그 렇게 못 일어나고 알람 무조건 몇 개씩 맞춰야 돼요. 선생님은 뭐예요?
그러게요, 나는 무슨 재능이 있나. 작가님 질문지를 받은 다음 답변자는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기”래요. 아! 좋네요. 전혀 사소하지 않은데요.
작가님은 뭐예요? 저야말로, 다른 분들 다 그렇지 않을까 싶은 사소하고 평 범한 점인데 저는 누군가의 변화를 잘 발견해요. 머리 스타일을 좀 바꿨다거나 속눈썹을 연장했다거나 여행 갔다 와서 피부가 조금 탔다거나 그런 변화를 잘 찾는 것 같아요. 무례한 게 아니면 “머리 바뀌었네?”, “염색했구나?” 이런 식으로 하면 좋아하더라고요 다들.
발견해주는 거니까. 네. 그리고 관심일 수 있으니까.
익명의 질문자가 보내준 질문지를 보고서는 어떤 생각이 들었어요? 간결 하지만 어떻게 보면 당연히 필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어요.
몇 시에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이런 질문 말이죠? 네. 어떻게 보면 별것 아닌 질문일 수도 있지만 사람 사이를 연결해주는 데는 꼭 필요한 질문이라고, 중요한 질문이라고 여겼어요. 그런데 답하기는 또 어렵더라고요. 존경하는 사람은, 저는 답하는데 별로 어렵진 않았거든요. 직업이 마음에 드냐는 질문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몇 시에 주무시냐, 식사는 잘 하시냐, “저를 아시나요?”···, 뭐라고 해야 할지 좀 생각했어요. 아, 시답지 않은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도. 사실 저는 매일매일 생각하는데, 그런데 시답지 않은 것에 대한 정의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 질문에 답할 때는 생각 많이 했어요.
그러게요, 시답지 않다는 건 뭘까요. 질문을 하신 그분은 어떤 것들을 그렇게 여기는지도 궁금했고. 제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질문을 하신 그분은, 출판사 무제의 박정민 대표입니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 했던. 왠지! 왠지 톤이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저를 아시나요?”, 이거 박정민 님 같은데? 그랬어요.
신기하네요, 질문에 지문이 묻어나나 봐요. 물론 그와 책, 예술, 여러 교집 합이 있겠지만요. 그런 것 같아요.
질문자를 알고 나서는 그럼 “저를 아시나요?”라는 물음에 대한 답이 달라 질까요? 아뇨. 몇 번 뵀을 뿐이라서 온전한 그분을 알지는 못 해요. 그래서 답변 그대로 괜찮습니다.
작가님에게 질문지를 보낸 그에게 역으로 질문을 던진다면 무엇을 물어 보고 싶어요? 저는 항상 누군가의 슬픔에 대해서 알고 싶거든요.
슬픔. 그걸 소재로 쓴다거나 그런 의미로 하는 질문은 절대 아니고, 그냥, 서로의 슬픔을 좀 더 깊이 알 때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요즘 나를 가장 애달프게 하는 건 뭘까? 그게 어떤 사건이든 혹은 사람이든, 관계든, 그런 것들이 궁금해요.
왜 특별히 슬픔이 서로를 가까워지게 하는 데 힘을 발휘한다고 생각해요? 기쁨을 같이 떠안을 때도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당연히. 그런데 슬픔을, 어떤 마음의 짐을 같이 떠안을 때는 그 무게가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가장 아픈 한 점을 공유했을 때 서로가 조금 더 면밀해진다고 여기고, 그런 경험이 많았어요.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슬픔이라는 건 꺼내놓기 힘든 속마음이기도 하잖아요. 맞아요.
그럼에도 타인과 서로 슬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는, ‘비결’이라고 하기에는 좀 이상하지만, 작가님의 방법은 뭐예요? 우리가 슬픔을 서로 나눌 수 있게 질문으로든 답으로든 끄집어내고 바깥으로 표출하게 하는 데는 분명히 어떤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그걸 되게 여러 번 생각해봤는데, 물론 제가 잘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 공감을 제가 완전하게 잘하는 건 아니지만, 공감이 뭘까 정리해봤을 때 그 공감 안에 내가 없고 타인만 있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러니 까 우리가 누군가의 말을 들어줄 때 “나도 그런데”, “나는 있잖아” 이런 식으로 서두를 꺼내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거를 제하고 그냥 “너는? 너는 어때?”라고만 얘기했을 때, 판단하지 않고 그냥 그 말만 들어줬을 때, 사람들이 더 자기 아픔이나 슬픔을 잘 꺼내고 또 치유받는 것 같아요. 그 질문이나 답 안에 내가 없이 상대만 있고, 상대 마음만, 마음의 결만 잘 쓸어줬을 때 그게 가능한 것 같아요.
속단을 즐기지 않기에 천직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금 직업이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 답하셨던 문장이 문득 떠오르네요. 제 천성인 것도 같은데, 저는 어디 묶이고 하는 게 싫거든요. 카테고리로. 내가 그게 싫으니까 타인한테도 그걸 적용하고 싶지 않은가 봐요.
의문 속에서 인간이 스스로 성장한다 생각한다고 하셨죠. 그 연장선에서 요즘 갖고 있는 의문이 있다면요? 요즘 갖고 있는 의문은요, 항상 생각 하는 건데, ‘이 시대의 표피가 아니라 내피는 뭘까?’라는 걸 맨날 생각해요. 요즘은 그게 회피와 관련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어···, 그 런데 제가 마지막 질문에 답을 안 한 것도 이 이유인데, 징크스가 있어요.
그럼 하면 안 되죠. 그걸 말하면 항상 그 작품이 잘 안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질문지 마지막 질문에도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할까 하다가 그냥 ‘아이 됐다’ 한 것이기도 한데, 해서, 제가 제품으로 보여드리는 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이건 말할 수 있어요. 제가 처음 작품 활동 시작할 때 발표한 첫 작품이 ‘오즈’라는 소설이었는데 위안부 할머니 관련 이야기예요. ‘오즈’를 발표한 2019년에는 스물다섯 분 정도 생존해 계셨는데 지금은 다섯 분만 계세요. 그래서 할머니들이 돌아 가시기 전에, 그리고 그 역사가 완전히 소멸되기 전에, 그에 대한 장편 작품을 하나 써야겠다는 마음은 계속 가지고 있고, 지금 쓰고 있어요.
‘쓰고 싶다’가 아니라 ‘써야겠다’, ‘쓰고 있다’네요. 네, 맞아요.
다른 사람들은 무슨 질문을 던지면서 살까, 궁금했어요. 이를 결론짓기에는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결국 좋은 질문이란 뭘까 더듬게 돼요. 가부를 논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어떤 질문이든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묻는 행위 자체는 다 좋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 사람이 궁금해서 묻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냥 그 분위기를 좀 부드럽게 풀든 혹은 그 사람을 편안하게 하건 간에, 내 얘기만 계속 쏟아내고 답만 계속 쏟아내는 것보다 뭔가를 물을 때 더 서로가 괜찮아지는 것 같아요.
괜찮아진다. 그래서 모든 질문의 행위는 그냥 다 좋다.

김문이 하는 질문들

① 사랑의 근원에 가장 근접했을 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나요?
② 자연이 말을 한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말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그들로부터 듣고 싶으신가요?
③ 반복적으로 하는, 목적성이 없는 무용한 행동은 무엇인가요?
④ 영원한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불가능하다면, 왜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⑤ 침묵은 말의 그림자, 무덤, 뿌리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음이 넓다고 생각하시나요?
⑥ 우주가 넓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음이 넓다고 생각하시나요?
⑦ 당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이 있나요?
⑧ ‘새롭다’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⑨ 인간이 ‘답’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⑩ 사랑은 당신을 취약하게 만드나요, 강하게 만드나요?

김문의 응답들

어릴 때 즐겨 간 나만의 아지트는? 철거 예정인 아파트의 빈집.어렸을 때 살던 아파트 단지가 철거됐어요. 우리 집은 좀 늦게까지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과 친구들이 하나씩 나가고, 놀러갔던 집에 다시 놀러 갔을 때 휑한 공간만 남아 있었죠. 그곳에 남겨진 친구들과 신문지나 돗자리를 깔고 놀았던 것 같아요. 처음엔 무서웠지만 나중에는 가장 아늑한 곳을 찾게 되었고 매번 그곳에서 만나서 놀았어요. 원래는 제 방이라고 말하려고 했지만, 아지트의 개념은 내 방이 아닌 외부 공간이며 내 방처럼 편안하다고 느끼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그때의 빈집을 말해드리게 되었습니다.
아주 사소하지만 특별한 나만의 재능은 뭐가 있을까요? (예: 알람 없이도 제시간에 일어나기.) 싫어하는 사람 좋아하기. 저는 싫어하는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내 그것을 증폭시켜서 그 사람을 좋아할 수 있어요.
어른이 되어도 절대 하지 말아야지, 했던 것 중 지금 하고 있는 건 뭔가요? 연애. 어렸을 때 출가하려고 했거든요.
최근 속으로 ‘와, 나 진짜 멋지네···’ 했던 순간은? 누군가 나의 말을 적고 있을 때. 원래는 일 끝나고 새벽 3시에 헬스장에 가서 운동한 것을 말하려고 했는데, 그것보다는 좀 더 멋지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말하게 되었어요. 멋지다고 느끼는 건 타자의 반응이 전제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 제가 한 말을 적으면 내가 좀 의미있는 말을 했나 보다, 생각하게 돼요. 특히 가까운 지인이 그럴 때 더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은 생각보다 그 말을 적거나 하지는 않으니까요.
하루 중 어떤 시간이 가장 좋나요? 참고로 저는 오후 3시입니다. 오후 5시를 제일 좋아해요. 제일 슬프거든요. 중학교 때 제가 이사하면서 친한 친구들이랑도 멀어지고, 부모님도 마침 맞벌이를 시작하면서 항상 방에 혼자 있었어요. 그러다 5시가 되면 노을이 창밖으로 들어왔는데, 그럴 때면 방바닥에 누워서 들어오는 노을을 보며 혼자 자주 울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울고 나면 그래도 좀 괜찮아졌거든요. 부모님이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또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여전히 5시가 슬프고 여전히 5시가 좋아요.
내 하루에 제목을 붙인다면, 오늘은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요? 산양과 거짓말, 그리고 뽀송한 양말.
만일 마음 속에 방 하나가 있다면 내 방에는 어떤 가구가 가장 어울릴 것 같나요? 없어요. 빈방 그 자체가 저에게는 가구로 느껴지거든요. 하나의 가구를 들이면 그 가구가 만들어내는 시각이나 육체성 때문에 그 가구와 어울리는 다른 가구를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가구를 선택함으로 인해서 선택에서 소외된 가구들이 다시 마음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느새 저는 마음속 방에는 그 무엇도 두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렇게 되면, 제가 들어가 있는 이 방을 보고 있는 또 다른 저 를 느끼게 되니깐 방 그 자체가 가구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화요일 낮 12시의 대화

빗속에서 당신은 무엇이 되나요? 저는 비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옛날에 비싼 거, 한 10만원짜리 우비를 샀어요.(웃음) 비가 오면 쓰고 나가요. 우산 아래서 빗소리를 듣는 것과 비를 맞는 건 또 다르거든요.
몸으로 비를 맞는 감각, 좋죠. 진짜 좋아요. ‘강추’합니다.
6월 여름 동안 소수책방에 온 분들께 대표님이 던진 질문 중 빌려왔어요. 질문도 답도 참 재밌더라고요. “긴 문장이 된다”, “‘Don’t Look Back In Anger’ 노래 가사 속 샐리가 된다”··· 너무 재밌죠? 기상천외 한 답변이 많아요. 이 사람들을 모아서 얘기하면 재밌겠다, 그래서 ‘질문 의 밤’ 행사도 만들었어요.
이런 점이 흥미로워요. 모르는 사람끼리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도, 그 자리에 와서 질문하고 답하는 사람들도. 정말 웃겨요. 그런데 또 다들 익명으로 오기 때문에. 책방 질문지에도 처음에는 이름을 쓰라고 했는데 그러면 솔직하게 답을 못 할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이름을 안 써도 되게 하니까 훨씬, 훨씬 재밌어요.
책방에 매달 질문지를 만들어두는 건 어쩌다 시작됐어요? 2023년 12월이 시작이었어요. 그때 손님이 <연말정산>이라는 제목의 책을 찾았어요. 그게 뭐지 검색해보니까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질문들이 적힌 소책자더라고요. 서점에 오시는 분들이 무언가 마무리를 할 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은가보다 싶어서, 제가 그때 한 해를 마무리해볼 수 있는 질문 25개를 만들어서 서점에 오신 분들께 12월 한정 이벤트 개념으로 드렸어요. 저는 어차피 질문을 자주 하는 편이고, 이따 들을 시 창작 수업의 선생님도 질문을 많이 하시거든요. 그래서 질문지를 만들고 사람들의 답변을 읽는데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때부터예요.
어차피 질문을 자주 하는 편이라고 하셨죠. 왜 자주 해요? 질문을 좋아한다고 말해도 되려나요? 그렇죠. 질문할 때 기분이 두근두근해요. 예를 들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잖아요. 그의 심경, 심상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지만, 질문을 하면서 겉의 형태 정도는 알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원인지 세모인지 네모인지, 어떤 느낌인지는 볼 수 있는 것 같고, 그러면서 형태를 빚어가는 느낌이 재밌어요. 그리고 질문을 할 때, 저는 제가 투명해진다고 생각해요. 질문이 가진 수용성, 투명성이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질문을 하고 나면 열려 있는 상태로 듣게 되잖아요.
어, 그렇죠. 답을 얘기할 때는 생각보다 닫고 말하지만 질문을 할 때는 내가 나를 열고 그 사람을 보니까 그 느낌이 좋아요. 그리고 저는 사랑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연애담 듣는 것도 좋아하고, 연애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랑 자체가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책방 질문지에 제가 뭐라고 써놨냐면요, 여기, “사랑하는 상대방이 나에 대해 궁금해하지도 않고 질문도 없다면 우리는 상대방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고 계십니까?”. 저는 질문을 하지 않으면 사람의 안에 있는 것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김문이라는 사람이 보내온 질문지의 시작과 끝이 사랑에 대한 물음이군요. 맞아요.(웃음)
상대가 어떤 답을 할지 유난히 고대하는 질문이 있다면요? 역시 사랑과 관련된 부분. 저는 10번 질문을 계속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를 떠올려보게 됐거든요. 예를 들면 그 사람한테만 취약해지고 나머지한테는 강해지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고, 그리고 기꺼이 취약해지려고 사랑을 하는 것 같기도하고요. 그 사람의 연애나 사랑에 대한 태도를 좀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10번 질문의 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궁금해요.
결국 질문은 관심 같아요. 내가 이 사람을 얼마나 애정하고 알고싶은지에 따라 물음표가 계속 나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습니다, 네.
왜 그렇게 사람이 궁금해요? 타인이 어째서 궁금한가요? 저는 사람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제가 미학을 깊게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관심이 있어서 ‘아름다움은 뭘까’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자연은 아름답다, 예술은 아름답다고 우리는 느낄 수 있단 말이죠. 미학적인 관점에서는 인간이 창조한 예술 작품 혹은 자연에 대해 아름다움의 요소나 키워드, 성찰을 많이 담고 있어요. 그런데 인간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인간이 왜 아름다운가’, ‘인간의 행위가 왜 아름답고, 인간의 생각이나 말이 왜 아름다운가’에 대해서는 다루는 것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저는 인간이 자연물만큼 사랑스럽고, 예술 작품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아름다움의 다른 두 가지 대상(자연과 예술)은 대화가 안돼요. 유일하게 대화할 수 있는 아름다운 대상이 저는 인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계속 사람들에게 질문하고 계속 알아보고 싶어요. 그리고 이건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지금의 결론인데, 극한의 아름다움에서 느끼는 저의 감정은 맑은 슬픔이거든요. 슬픔이 느껴지는데 되게 맑아요. 그건 극한의 사랑을 느꼈을 때의 감각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사랑의 극치에 다다르면 그것에서 또한 아름다움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인간이 아름답다···. 일부러 어떤 경계도 짓지 않고 “영화 장면 하나 이야기 해달라”던 질문에 대다수가 좋은 장면을 꼽았다던 대표님 관찰기가 겹쳐지네요. 정말 그랬어요? 왜 좋은 장면을 떠올릴까. 압도적으로요. 한 달 질문지마다 보통 2백 명 내외가 답변하는데 90퍼센트가 그랬어요. 트라우마나 무의식의 상처와 연결되는 장면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대다수가 좋은 기억을 더 많이 꺼내더라고요. 그리고 이런 것도 있어요. 저한테는 엄청난 감동을 줬는데, “5백억이 있다면 당신은 무슨 일을 하겠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이 공익 사업을 말해요. 5백억이잖아요. 내가 갖고 있는 욕망을 충족시키는 건 사실 10억 혹은 50억 안에서 끝나는 거예요.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럼 나머지는 뭐 하지? 그러면 전부, 정말 다, 대승적인 봉사나 공익, 누군가를 후원하고 싶다고 해요.
마냥 인간이 아름답다고 생각하기는 싫은데 말이에요, 결국 그 아름다움을 믿고 사는 것도 같네요. 아름다움을 믿으면 전부 아름다워 보여요.
말하지 않는 말은 어디로 갈까요? 아! 저는 이래서 질문이 너무 재밌어요. 그 질문을 제게 하실 줄은 몰랐어요.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이달 새로운 책방 질문지에 적어뒀죠? 저는 행동이나 침묵도 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 말은 뜻이기도 형태이기도 하나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고도 생각해요. 그런데 말하지 않는 말에는 진심이 담긴 말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진심이 담겨서, 부정의 말이면 사그라지고, 긍정의 말이면 결국에는 돌고 돌아 나오게 된다고 생각해요. 긍정의 말은 언젠가 나온다. 부정의 말은 사그라진다.
시 수업이 있다고 하셨죠,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즐거웠어요. 감사합니다. 제 질문지를 받아보실 분도 흥미로워했으면 좋겠는데. 너무 힘드시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웃음) 매달 이렇게 인터뷰하면 어떠세요?
즐겁죠. 즐거우면서도 괴롭죠.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해서 상대와 대화를 나누지만 그건 그의 한 조각일 것이고, 어쩌면 그 조각 마저 쥐지 못한 때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 조각이 그 사람의 전체일 수도 있죠. 시 수업을 해주시는 선생님은 서대경 시인인데, 선생님이 말하는 시선 혹은 시들이 가진 속성 중 하나는 겹눈의 시선이에요.하나를 볼 때 두가지를 같이 보는 거예요. 죽음을 볼 때 생을 보고, 생을 볼 때 죽음을 같이 보는. 가벼운 걸 보면 무거운 것도 보고, 원경이 있으면 근경도 같이 있고. 그 사람의 조각이 그의 전체일 수도 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런 겹눈의 시선을 체화하려고 저 혼자 노력하는 부분도 있어요. 그 사람에게 이런게 있으면 이런 것도 있을 거다. 모든 건 겹눈의 시선으로 보자. 그 시선이 제 삶의 태도에 많은 영향을 미치지 않나 싶어요.

박정민이 하는 질문들

⓪ 저를 아시나요?
① 몇 시에 주무세요?
② 식사는 잘 하시나요?
③ 지금 직업이 마음에 드시나요? 왜 하고 싶으셨어요?
④ 존경하는 사람 한 명만 알려주세요. 부모님 빼고.
⑤ 요즘 읽은 책, 영화 중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작품 하나씩만 말씀해주세요.
⑦ 시답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을까요?
⑧ 품 속에 아직 세상에 내보내지 못한, 하지만 꼭 내어놓아야만 할 이야기가 있을까요?

박정민이 하는 응답들

사랑의 근원에 가장 근접했을 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나요? 점점 두려워지더니, 그 마음이 결국 온몸을 지배하더군요. 다시 생각해보니 그것이 과연 사랑이었을까 싶기도 하네요. 진심을 다하면 보통은 두려움이 앞서, 진심을 회피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자연이 말을 한다면 당신은 그들에게 말하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그들로부터 듣고 싶으신가요? 듣겠습니다. 저는 이미 자연에게 너무 많은 말을 했습니다.
반복적으로 하는, 목적성이 없는 무용한 행동은 무엇인가요? 반복적으로 불안해하고 걱정합니다. 무용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반복하네요.
영원한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가능하다면, 그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불가능하다면, 왜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제 삶이 너무나 유한해서 판단이 어렵습니다. 만약 영원한 것이 있다면 그 것은 ‘진실’이겠죠. 희망이기도 합니다.
침묵은 말의 그림자, 무덤, 뿌리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그게 뭐든 멋진 표현이네요. 이 셋 중에서 고르라고 하면 뿌리라고 생각합니다. 말이 좋은 열매든 썩은 열매든, 뿌리가 건강하면 그 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나갈 테니까요.
우주가 넓다고 생각하시나요, 마음이 넓다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마음도 뇌의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마음의 크기는 앎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봐요. (앎이 지식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인간의 앎에는 한계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마음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지구부터 이기고 와.”
당신이 좋아하는 이야기들의 공통점은 무엇이 있나요? 감각을 자극하는 이야기,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이야기, 그리고 유머를 잃지 않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새롭다’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항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에 늘 동조하지는 않고요.
인간이 ‘답’을 알고 있음에도 스스로 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불편함 때문이지 않을까요. 관성을 거부하는 답은 보통 불편함을 동반하니까요. 저 또한 현상을 전복시키는 일을 참 불편해하는데, 그럼에도 달성해야 하는 답이 있다면 조금씩 변화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겠습니다.
사랑은 당신을 취약하게 만드나요, 강하게 만드나요? 1번 질문의 답변과 비슷하겠습니다. 취약해서 두려워합니다.

월요일 오후 4시의 대화

질문지를 받고 든 생각이 있다면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왜요? 너무 철학적인 질문, 좋은 질문이 많아서. 좀 부끄러웠습니다.
답변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요?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1시간 반 정도?
집중해서 쭉 답을 했군요. 가장 오래 고민한 질문은요? “영원한 것이 있을까?”, “새롭다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라는 질문.
관조자로서도 까다로운 질문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꽤 간결하고 핵심적으로 답을 주셨다고도 느꼈어요. 이렇게 짧게 정리하기가 더 힘들텐데요. 제가 요즘 말을 길게 안 하려고 노력하는 중이라서, 하하하하.
그건 또 왜요? 앞에 한 말, 특히 말을 할 때 앞에 한 말을 만회하려고 자꾸 쓸데없는 부사들이 붙는 것 같아서. 수식어가 붙는 게 싫어서. 글을 쓸 때는 정리가 되니까 좀 짧게 쓸 수 있지만, 말 할 때도 최대한 짧게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답변을 짧게 축약해서 드리려고 노력했죠.
대표님이 질문지를 짜는 데는 얼마나 걸렸어요? 그것도 한 1시간 반 정도.
간단히 툭툭 던진 질문 같다 생각했는데 역시 고심이 숨어 있군요. 그렇죠.
질문을 0번으로 시작한 이유는 뭐예요? 나중에 생각나서.(웃음) 그런데 중간에 끼워넣기가 좀 애매하고, 1번으로 넣고 싶은데 숫자가 이미 매겨져 있어서 귀찮아가지고요.
바로 이해됐어요.(웃음) 그 첫 질문이 “저를 아시나요?”였죠. 그걸 물은 이유가 궁금해요. 누구에게든 묻고 싶은 질문인가요? 네. 그러니까, 저 같은 사람은 보통 저를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대화의 길이 너무 달라져요.
배우라는 정체성 때문인가요? 그렇죠. 아무래도 다른 사람보다는 이름이 좀 알려져 있는 사람이니. 이름이 알려진 채로 그래도 몇년을 살다 보니 제 자신도 사실 그에 좀 익숙해져 있거든요. 상대가 나를 안다는 것에, 나를 알고 온다는 것에. 그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내가 너무 궁금한 사람이 있으면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무심결에 쓴 것 같아요.
상대가 박정민이라는 사람을 배우로서든 출판사 대표로서든 알고 있다고 하면 조금 더 자신을 감추게 돼요? 아니요. 상대방이 자신을 감추는 게 좀 있는 것 같아요.
아. 상대방이 조금 더 조심하는 것 같아요. 저한테.
정작 본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상대가 더 열려 있었으면 하는 건가요? 무의식적으로 그렇겠죠? 이야기를 좀 더 깊이 나누면 좋은데 보통은···.그러니까 저는 제 생활에서 온 어떤 적응 때문에, 이 삶에 적응이 돼서 이렇게 된 것 같은데, 저를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적이 별로 없어요. 개인적으로 누구와 술을 마시거나 만나는 일이 거의 없거든요. 그러면 보통은 이제, 모르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비즈니스 관계가 돼요. 겉핥기 수준으로 서로의 용건만 이야기하는. 관계에서 오는 그런 경험이 너무 많다 보니까, 이제는 그런 삶에 적응이 돼서 내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눠보는 기회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게요. 그에 대한 갈증이라고 해야 하나, 갈급이 있어요? 있겠죠.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그걸 막, 그것 때문에 괴로워하며 살지 않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네. 제 삶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어쨌든 그런 대화들을 하게 되면 굉장히 좋죠.
실제로 제가 계속 박정민 씨를 대표님이라고 부르는 데는 배우로서보다는 출판사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보다 일상적으로, 보다 내밀하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맞아요. 배우, 제 정체성이 배우인 곳에 가면 저는 그때는 정말 말을 잘 못 해요. 제 생각에 대해서 계속 필터링해서 엄청 걸러져요.
배우로서 박정민은 질문을 훨씬 많이 받는 사람이기도 하죠.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어떤가요? 질문을 많이 받는 입장에서 질문이란. 아이 신나죠. 누군가가 저한테 어쨌든 궁금해한다는 사실은 되게 신나고 답변을 하는 것도 신나는데, 갈증이 하나 있다면 ‘내가 궁금한 게 없다’는 거죠.
내가 궁금한 게 없다···. 네, 그렇죠. 정말 단적인 예로 영화가 개봉을 했어요. 제가 나온 영화지만 저도 이 영화에 대한 어떤 사견이 있을 거 아니에요?
있죠.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상대방과 의견이 좀 어긋나는 부분이 있으면 토론을 해볼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저는 이 영화를 아껴야 하는 사람이고, 이 영화를 알려야 하는 사람이고, 누구보다 이 영화를 사랑해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실제로도 그렇고. 그렇지만, 그렇기에 내가 나온 영화에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내가 궁금한 게 없어지는 거죠. 상대방이 궁금해 할 수 없는 거죠.
그런 레이어는 모두 제쳐두고 박정민이라는 인물 자체는 질문과 가까운 사람이긴 한가요? 저는 궁금한 게 되게 많은 사람이고, 사실 좀 이상하긴 하지만, 요즘 제가 영화라든지 무언가 개봉하면 누군가의 부탁으로 모더레이터같은 일을 할 때가 있거든요. 관객과의 대화 자리라든지, 아는 사람들이 해달라고 해서 영화 모더레이터를 한다든지, 아니면 우리 회사에서 나온 책과 관련해서 작가님들과 얘기를 나눈다든지. 개인 대 개인으로 당신은 어떤 것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것도 굉장히 궁금한데···, 어쨌든 모더레이터일 때 되게 신나요. 내가 질문하고 상대방이 내가 전혀 몰랐던 사실을 이야기해주면 굉장히 신나더라고요. 그래서, 궁금한 건 많지만 질문에 익숙하지는 않은 사람.
질문하는 게 너무 신나고 재밌지만 아직 익숙하지는 않은 단계다. 익숙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질문을 할 때도 좀 여과가 있어요. 상대방이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다하는 종류의 질문이 많아요. 내 안에서 질문이 30~40개가 나오면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질문은 그 중 네 다섯개 밖에 안돼요.
그게 늘 딜레마 같아요. 그렇다면 박정민이라는 사람이 정말 궁금한 건 뭐예요? 여과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진짜 던지고 싶은 질문, 품고 있는 질문 중 하나는 무엇인가요? 왜 사람들이 점점 극단으로 가고 있는가? 이에 대해서 좀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사실 질문지에도 적을까 하다가 뺐어요. 본격적인 질문을 적기에는 (질문지를 받는) 상대가 아이일수도 있고 모르잖아요. 그런 점에서 우선은 기본적으로 너 몇시에 자?, 뭐 좋아해?, 이것부터 물어봤죠. 저는 모르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진짜 그렇거든요. 제가 지금 적어 보낸 질문 중 대부분이 현장에서 처음 만난 배우라든지, 좀 궁금한데 어색한 사람이라든지 그럴 때, 우선은 신원 파악을 위해서 하는 질문들이라서 그거를 이렇게 적어놓은 건데 (릴레이로 질문지를 준) 상대방은 그냥 바로, 그냥 저를 탁자에 딱 앉혀놓으셔 가지고 어우, 야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부끄럽다 싶더라고요.
박정민 대표님의 질문지를 받은 성해나 작가님은 답변하기 제일 까다로웠던 질문이 “시답지 않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신 적이 있을까요?”래요. 시답지 않다는 것은 뭘까? 그렇다면 당신은 뭘 시답지 않다고 생각 시는가. 저는 제 인생의 모든 것이 시답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시답지 않다는 게 뭐예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 않다. 태도도 그렇고 소재도 그렇고, 제가 생각하고 제가 표현하는 것들이 저는 그렇게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나한테는 중요한데, 이게 내 밖으로 나갔을 때는 사실 별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제가 표현이 조금 틱틱거리는 것도 있거든요. 이게 상대방한테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건데 제가 거기에 막 의미를 부여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그래서 저는 그렇게 표현하는 글들도 좋아해요. 누군가 자기의 생각을 그냥 시답지 않게 표현하는 것.
작가님도 매번 시답지 않은 것을 생각한다고 답했어요. 응, 그런데 그것이, 사실 그 사람이 말하는 내용은 그렇지 않거든요. 시답지 않은 투로 이야기하지만. 그래서 이 사람한테 그건 뭘지 좀 궁금해요.
또 하나 돌아온 질문으로는 상대가 누구든 간에 그의 슬픔이 궁금하대요. 항상 누군가의 슬픔이 알고 싶고, 그 슬픔을 서로 공유할 때 가까워진다고 느낀다고. 그런데 제가 지금 박정민씨 한테 “그래서 슬픈 게 뭐예요?”라고 해봤자 우리에겐 지금 쌓인 라포가 없으니까 나올 수 있는 얘기가 없겠죠? 어···,그냥 뭐, 답을 하자면 할 수 있는데.
하하하하. 할 수 있어요? 할 수야 있죠. 뭐 저도 슬픔이 있는 사람이니까 할 수는있는데···. 할 수 있죠.
음···. 뭐예요, 그럼? 저는 지나간 모든 것이 다 슬픕니다. 제가 지나온 과정들을 돌이켜보면 음···, 너무 헛된 것이 많아서 좀 슬퍼지죠.
헛된 것이 많았다. 헛된 선택을 했을 때도 많고, 헛된 꿈을 꾼 적도 있고. 그런 거죠.
좀 더 나중에, 한 걸음 더 내밀한 관계가 된다면 그때 다시 여쭤볼게요. 지금은 제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두 가지만 더 묻고 끝낼게요. 자기 자신에게 궁금한 건 뭐예요? 저 자신에게 궁금한 것은, 저는 불안. 그 답변을 질문지에 쓰기도 했지만 제가 좀 불안한, 두려워하는 그런 감정에 좀 취약하거든요. 무엇을 잃을까봐 내가 지금 그렇게 불안해하는지 제일 궁금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사람이 극단적으로 최악을 상정하면서 생각할 때가 있잖아요. ‘결국 나는 모든 것이 최악이 됐을 때 그게 힘들까봐 내가 불안해하는 건가 보다’라고 판단하고 넘어갈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불안해한다는 건 뭔가가 있는 것 같거든요, 제 안에. 뭔가 정의되지 않은 어떤 것이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게요. 두 가지라고 했는데 마지막 질문은 안 하겠습니다. 왜요? 하하하.
별 의미 없는···, 시답지 않은 질문이라서요. 들어나 볼까요?
그러니까, 바보 같은 질문이지만 그렇기에 좇고 있는 건 좋은 질문이란 뭘까 계속 생각하게 돼요. 그런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마지막에 주신 답변으로 그 질문에 답이 된 것 같아서요.아.알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그냥···, 너무 형편없는 질문과 답을 드린 것 같아서 부끄럽습니다.
전혀요. 질문지를 받은 작가님은 그 말씀을 했어요. 오히려 “몇 시에 주무세요?”, “식사는 잘 하세요?”, 이런 질문이 새로웠대요. 저는 그걸로 약간 사람을 파악하는 게 있거든요.
오, 그걸로 파악이 돼요? 어떻게요? 그냥, 모집단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저 사람이 밥을 많이 안 먹어, 끼니를 엄청 챙기는 사람이 아니야’라고 하면 나오는 특징들이 좀 있고, ‘잠을 새벽 3~4시에 자는 사람이야’, 아니면 ‘10시 되면 자는 사람이야’에서 또 나오는 습관, 특징이 있잖아요.
몇 시에 주무세요? 저는 새벽 1시쯤 잡니다.
몇 시에 일어나세요? 일이 있어 나가야 되기 30분 전에 일어나요.
식사는 잘 하시나요? 식사를···, 잘 못 하죠, 제가.
잘 못해요? 그러니까 보통···, 밥을 잘 안 먹는 사람들···, 이건 제 편견입니다, 조금 예민한 사람들이 밥을 잘 안 먹는 것 같아요.
오늘 뭐 드셨어요?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어요.
지금 퇴근하는 길이라면서요? 하루 종일 안 먹었어요? 이제 가서 먹어야죠.
이런 거구나. 네.(웃음)
성해나 작가님이 다른 분께 보낸 질문을 박정민 대표님한테도 드리고 싶어지네요. 아주아주 사소하지만 특별한 자신만의 재능은 뭐가 있을까요? 예시로는 “알람 없이도 제시간에 일어나기” 이런 겁니다. 음, 와, 뭐가있지?
저도 쉽게 답을 못 했는데, 그런데 찾았어요, 작가님이랑 대화하면서. 어떤 거였어요?
저는 매일 두부 먹기요. 아, 두부를 드시나요? 하하하하하.
작가님이 올드보이 같은 아주 특별한 재능이라고 칭찬해주셨어요. 어, 허 허허허허허. 그러네요. 저는, 저는 그런 게 있어요. 저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모든 걸 다 뒤져보는 재능이 있습니다.
아주아주 파고드는군요. 보통 사람에 관해서 좀 더 그런 것 같아요. 좋아하는 연예인, 좋아하는 배우 찾아보고, 그 사람이 좋으면 계속 좋아하고, 남들이 뭐라고 해도 그것을 질려하지 않는 습성이 있는 것 같아요.
특별한 재능이네요. 네. 한번 좋아하면 마음을 퍼주는, 실망하지 않는 재능이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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