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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북극항로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부산의 새 시대는 올까?

2025.09.08.신기호

북극항로라는 기회는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달콤한 미래인 동시에 전략적 과제다.

2025년 5월 14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부산 서면의 한 유세장에서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의 부산 이전’ 공약을 공식 발표한다. 이는 부산, 울산, 경남으로 묶이는 ‘부울경’을 메가시티화해 대한민국의 ‘해양 수도’로 만들겠다는 거대한 정책적 로드맵의 공개였다. 그리고 여기에는 곧 전제가 따라붙었다.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선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필수 불가결하단 내용이었다. 이후 이재명 후보의 일명 ‘해수부 이전’ 공약은 대통령으로 취임된 뒤 정부의 주력 과제가 됐고, 현재 이전 과정은 연내 진행을 목표로 속도가 꽤 붙은 모양새다.

【 부산이 열린다 】

해수부의 부산 이전 목적은 앞서 언급한 정부 계획인 ‘부울경 메가시티’ 구상의 마중물인 셈이다. 대한민국이 해양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현시점을 놓쳐선 안 되고, 이를 성공시키려면 현장 중심의 정책을 펼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판단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해수부를 부산으로 옮겨 조선과 물류, 그리고 ‘북극항로’라는 새로운 과제의 개척 등 앞으로 도래할 첨단 해양산업 정책의 집행력을 현장에서 확보하겠다는 전략이 현 정부의 계산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관한 이야기는 꽤 오랫동안 거론돼온 내용이다. 정책이 버려지지 않고 이어져 왔다는 것은 그 가능성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도 그럴 것이 부산에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수산물 거래소가 있고,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이 모여 있는 데다, 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BJFEZ)으로 불리는 신항만 지구는 세계 2위 규모의 환적항과 세계 7위 수준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처리되는, 그야말로 동북아 최고의 물류 중심지가 있기 때문이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을 짚으며 ‘해수부 이전’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한반도 남단에 새로운 경제 권력과 성장 엔진을 만드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를 위해 업계와 학계 인사들과 함께 ‘북극성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정책적 설계를 짜왔죠. 북극성 프로젝트의 핵심은 해수부의 부산 이전을 통해 부산을 북극항로로 열리는 새 시대를 선도하는 도시이자 거점으로 만드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북극항로라는 새 시대의 기회,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는 것인데,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시각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의 발언을 들여다보면, 정부의 ‘부울경 메가시티’ 계획과 해수부의 부산 이전 사이에는 ‘북극항로’라는 기회가 놓여 있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이 ‘부울경 메가시티’ 완성의 첫걸음이라면, ‘북극항로’라는 기회는 자원 혹은 동력인 셈이다. 해수부의 이전이 올 12월 안에 완수되리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 이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다음 스텝, ‘북극항로’라는 기회에 있다.

【 기회가 열린다 】

‘기회’라는 이름의 북극항로는 무엇인가. 북극항로는 얼어붙어 있던 북극해의 빙하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녹으면서 새로 열리는 뱃길을 말한다. 북극항로는 다시 ‘북동항로’와 ‘북서항로’로 구분되는데, 우리가 이야기하는 북극항로는 ‘북동항로’로 불리는 뱃길로 한정된다. 이유는 이렇다. 북동항로는 러시아 북부 해안을 가로로 따라가며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북서항로는 그 위쪽으로 캐나다 북부 해변을 따라 그린란드로 이어지는 루트를 일컫는데, 문제는 북동항로에 비해 북서항로의 얼음은 녹지 않고 있고, 또 항로도 주요 내륙(유럽, 아시아)과는 동떨어져 있어 현재로선 항로로서의 효율 가치가 적다는 것이다. 결국 지금으로서는 북동항로가 북극항로의 중앙항로인 것이다. 북동항로(이하 북극항로)의 대표적인 가치는 경제성이다. 그 효과가 어느 정도냐 하면, 북극항로를 이용할 경우, 현재 세계 해운 시장의 대표 길목인 수에즈 항로에 비해 운항 거리가 약 40퍼센트 이상 짧아진다. 이를 거리로 환산하면 차이는 더 분명해지는데, 부산에서 출발해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를 기준으로 계산해보면 수에즈 항로를 이용했을 경우엔 약 2만 킬로미터, 반면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약 1만 5천 킬로미터로 그 거리가 무려 약 5천 킬로미터나 줄어드는 것이다. 줄어든 5천 킬로미터를 비용 가치로 짐작해보거나, 자원적 환경적 가치로 바꿔 생각해보면 이는 엄청난 경제적 이점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인 김태유 박사의 견해를 들어보기로 한다. 김태유 박사는 콜로라도 CSM 대학교에서 자원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전문가로, 최근엔 ‘북극항로’를 주제로 한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가 온다>(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라는 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김태유 박사는 북극항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그는 북극항로의 개통은 단순히 또 하나의 물류 통로가 생기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북극항로는 세계 패권 질서의 변곡점으로 지정학과 지경학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습니다. 현재 세계 해운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수에즈 항로의 경우, 남중국해의 해양 영토 분쟁과 양안 전쟁의 위험, 그리고 수에즈 운하와 말라카 해협의 적체와 병목 현상 등으로 그 피로도가 상당한 상황입니다. 특히 2021년엔 단 한 척의 선박 사고(초대형 컨테이너선 에버 기븐호의 좌초 사고)로 인해 수에즈 운하가 무려 6일 동안이나 폐쇄되기도 했고요. 이 때문에 하루에만 약 96억 달러에 이르는 교역 차질이 빚어졌을 만큼 해운 시장 내 물류 대란이 연쇄적으로 지속됐습니다. 이런 배경만 보더라도 북극항로는 현시점 수에즈 운하의 문제들을 보완하거나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인 것이죠.” 세계 해운의 하이웨이로 불리는 수에즈 항로의 하루 평균 선박 통행량은 50~60척. 1년을 기준으로 하면 그 수는 약 2만여 척에 달할 정도다. 이는 전 세계 무역량의 무려 12퍼센트를 차지할 만큼 절대적인 수치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가장 빠르고 경제적인 루트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불안과 불편들로 인해 세계의 해운 시장은 이제 수에즈 항로가 아닌 북극항로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고, 1869년 완공 이후 거의 독점되다시피 했던 ‘수에즈’라는 인공 해상로는 이제 ‘북극항로’라는 더 경제적이고, 더 빠르며, 더 안정적인 새 뱃길의 등장으로 변화의 기로에 섰다.

【 새 바닷길이 열린다 】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의 말에는 과장이 없다. 아득한 시간 동안 꽁꽁 얼어 있던 바닷길이 새로 열릴 땐 과거(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을 때의 어떤 기대와 결코 다르지 않을 것이다. 또 신대륙을 ‘기회의 땅’으로 불렀던 것과 같이, 신항로 역시 기회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주요 해운 국가들은 이미 북극항로를 선점하기 위한 밑작업을 마쳤다. 미국의 경우, 북극항로에 투입할 쇄빙선 15척의 구매를 공식 발표했고, 러시아는 2035년까지 무려 39조원을 북극항로에 투자하기로 했으며, 중국은 작년까지 서른다섯 번이나 북극항로를 시범 운항하며 예습에 몰두 중이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덴마크의 자치령인 그린란드의 매입을 공식화하고 있는데, 그린란드의 주요 자원인 희토류의 개발이 맨 앞의 목적인 건 맞지만, 더하여 캐나다 북부 해안을 따라 그린란드로 이어지는 북서항로의 미래 가치 역시 포함된 접근이라는 것이 마땅한 분석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움직임은 어떠할까.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전문가들은 지금으로부터 빠르게는 2년 뒤인 2027년, 늦어도 2030년 이전에는 북극항로의 연중 운항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편에선 현재의 지구온난화 속도로 봤을 땐 인류의 예측보다 훨씬 더 빠른 시기에 항로가 열릴 것이라고 말한다.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를 평균값으로 어림잡아 그 시간을 예상해보면 D-데이까진 3년여 정도의 준비 기간이 남아 있는 셈이다. 북극항로를 목표로 한 대한민국의 시간이 넉넉해 보이진 않는다. 정부의 한 수 한 수가 묘수가 되어야 할 시점이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민국의 키는 어디를 향해 있는가.

【 열어야 산다 】

한국의 전략은 거점항만으로서의 역할이다. 더 명확하게는 부산을 북극항로를 대표하는 거점항만으로 자리 잡게 하는 것이 ‘해수부 이전’의 최초 목적이자, 현시점 정부의 최대 목표다. 세계 규모의 거점항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이 얻을 이점은 미래 국가 산업의 기반이 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파급력을 보장한다. 국가 경제의 미래를 걸고 있다는 해양수산부 장관의 말이 더 절실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운항사들의 선박이 부산을 거점으로 입출항하면서 얻게 될 경제적 부가가치는 기본이요, 물량의 이동은 모든 산업 기반의 이동과 마찬가지여서, 간접적으로 습득하게 될 산업적 정보력과 국가적 영향력은 상당해질 것이다. 나아가 세계 곳곳에서 집중되는 물류를 통제하고 운영하면서 성장하게 될 국가 안보력은 여기서 더 견고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하여 세계 무역의 연결고리로서의 주체적 역할을 통해 얻게 될 국가적 신뢰도는 다시 관광과 투자라는 직접적인 결과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기에, 북극항로로 열리는 새 시대는 대한민국에게 절호의 기회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건 방법론이다. 이에 김태유 박사는 대한민국이 글로벌 물류 중심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선 미국, 러시아와의 협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짐작해보면 그렇다. 중국도 거점항만 전략을 세우고 있다. 상하이다. 우리가 북극항로에서 거점항만으로서의 핵심 역할을 선점하기 위해선 당연하게도 상하이와의 경쟁에서 앞서야 한다. ‘빙상 실크로드’ 전략을 바탕으로 북극항로에서의 상업 운항 시도를 발 빠르게 확대 중인 중국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특히 부산에 비해 2배 이상의 물동량 처리 능력을 갖추고 있어 물류 네트워크 환경에서도 불리한 것이 사실이다. 여러 지점에서 중국이 한국보다 한 수 앞서 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과 러시아와의 협력을 이야기하는 김태유 박사의 의도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가장 기대할 만한 것은 국제 역학 관계에서의 중국의 위치입니다. 중국이 팽창하는 것을 견제해야 하는 나라는 당연히 미국이죠. 미국은 북서항로에 대한 전략적 계산도 이미 마친 상태입니다. 중국이 북극항로에서 절대적인 역할을 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죠. 두 나라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거점항만은 부산이 상하이보다 유리할 수 있습니다.” 러시아는 어떨까.

대한민국은 러시아를 통해서만 북극항로에 진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판은 이미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긴다. 하지만 김태유 박사의 생각은 다르다. “놀랍게도, 러시아 또한 우리와 협력하고 싶어 합니다.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대한민국이 가진 조선 기술력에 있습니다. 세계 5대 조선사 중 1위와 2위, 4위 조선사를 대한민국이 보유하고 있죠. 현재 북극해에서 채굴되는 천연가스를 실어 나를 수 있는 쇄빙 등급의 LNG 탱커(배)를 만들 수 있는 나라는 사실상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러시아는 지금 북극해에서 천연가스를 채굴해 유럽과 아시아로 수출하는 전략 프로젝트를 운영 중이에요. 실제로 이를 위해 대한민국의 대우조선해양에 쇄빙 LNG 선박 15척을 발주했고요. 희망은 이 지점에 있습니다. 러시아는 영하 50도에서도 항해 가능한 최첨단 조선 기술을 요구했고, 바로 대한민국이 그 요구를 충족시킨 유일한 국가였다는 겁니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는 단순한 가능성이 아닌, 국가 간 이해관계를 맺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죠. 대한민국과 러시아는 서로의 필요에 따라 북극항로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게 될 겁니다.” 약 3년 뒤, 북극해의 빙하가 녹으면 새 뱃길이 열린다.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해수부를 부산으로 빠르게 옮겨 부산이 미래 거점항만으로서의 중추적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과 역량을 총동원할 계획이다. 정부의 전략대로 부산이 북극항로에서 거점항만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만 있다면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로 급부상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래서 북극항로라는 기회는 대한민국이 맞닥뜨린 달콤한 미래인 동시에 전략적 과제다. 어쩌면 지금의 시간이 국가적 변곡점일 수도 있기에 앞으로 열릴 이 ‘새 항해의 시대’를 우린 주목할 수밖에 없다.

참고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해양수산부, 해양수산부 부처 뉴스, <대한민국 마지막 기회가 온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일러스트레이터
    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