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스키니 진

와이드 팬츠가 우리의 숨통을 트였는데 다시 돌아오고야 말았다. 최근 몇 시즌 동안 패션계는 와이드 팬츠와 루즈 핏의 홍수 속에 있었다. 하지만 지나치게 넉넉한 실루엣에 피로감을 느낀 이들이 다시 슬림한 데님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스키니 진은 과거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해소한 채, 스트레치성 있는 소재와 현대적인 핏으로 진화했다.
변화는 언제나 가장 예상 밖의 자리에서 시작된다. 흥미로운 건 Z세대의 반응이다. 일부는 “아직도 스키니 진?”이라며 고개를 젓지만, 다른 한편에선 Y2K와 밀레니얼 감성에 대한 향수로 스키니를 과감히 재해석하는 움직임이 있다.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모델이자 패션 인플루언서 위즈덤 케이. “스키니 진는 여전히 멋질 수 있다”라고 언급하며 스키니 진 스타일링을 직접 선보이며 SNS를 통해 알렸다. 그는 블랙 스키니 진에 부츠를, 그 위에는 오버사이즈 재킷으로 밸런스를 맞춘 아웃핏을 꺼내보였다. 패션은 돌고 돈다. 스키니 진은 한동안 ‘숨 막히는 청바지’ ‘패션 테러’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최근 그 편견에 금이 가고 있다.
올해 빅 이슈였던 켄드릭 라마의 슈퍼볼 무대도 그러하다. 플레어 라인의 딱 붙는 부츠컷 진을 입고 데님 실루엣의 흐름을 한 번에 뒤집어 놓았고, 티모시 샬라메는 Y2K스러운 트루릴리전 팬츠를 고집하고, 그 특유의 여린 실루엣으로 새로운 균형을 만들어내고 있다.
스키니 진을 다시 입는다는 건, 단순히 복고를 쫓는 게 아니다. 그건 과거의 미학을 다시 들여다보고,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쓰는’ 일이다. 한때 패션의 정점이었다가 순식간에 흑역사가 되었던 아이템. 그걸 다시 꺼내 입는 사람들은 유행을 따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기준을 다시 세운 사람들이다. 옷장 깊숙이 심어 뒀던 진을 다시 꺼낼 때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