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을 하다 서늘한 공기에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조금씩 어둠 속으로 스며들고, 문득 ‘쓸쓸하다’는 단어를 떠올리는 순간. 단순히 감상에 젖은 것일까, 아니면 실제로 계절의 변화와 심리 상태에 연관이 있는 걸까.

계절성 정서장애
의학적으로는 이런 현상을 ‘계절성 정서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라고 부른다. NIMH(National Institute of Mental Health)에 따르면, 대부분의 계절성 정서장애 증상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시작해 봄이 되면 사라진다. 햇빛이 줄어드는 시기에는 생체리듬이 흐트러지고,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며, 수면을 조절하는 멜라토닌이 불규칙해진다는 것이다. 또 비타민 D 생산량이 감소하고, 이는 뇌의 신경전달물질 균형에도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햇살이 줄어드는 계절에 인간은 우울해지기 쉽다.
날이 추워지면 나만 우울한 걸까?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논문에 따르면 SAD 유병률이 약 5%, 그보다 가벼운 형태인 계절성 우울 증상을 보이는 군은 9%에 달했다. 위도가 높고 일조량이 적은 지역일수록 이 수치는 더 높아진다. 한국에서도 계절 변화에 따라 기분과 행동이 바뀐다고 답한 사람이 83.5%, 겨울형 SAD 유병률은 11.4%로 보고됐다. 즉, 기온이 낮아지면 누구나 어느 정도 계절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계절과 사회적 리듬의 상관관계
계절성 정서장애는 일조량 감소뿐 아니라 사회적 리듬의 변화에도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여름엔 퇴근 후에도 밝아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쉽지만, 겨울에는 일찍부터 어두워져 모두 귀가를 서두르는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적 활동은 줄고, 집 안의 시간이 길어진다. 타인과의 접촉이 줄어드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마음은 본능적으로 결핍을 느낀다.

치료가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단기적으로라도 치료받는 것이 증상 악화를 막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조언한다. 일시적인 계절 반응이라고 방치할 경우 일반 우울장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기분이 달라지는 정도를 넘어 수면 패턴이 무너지거나 집중력이 떨어진다면 전문 상담이나 단기 약물치료를 고려하는 것도 좋다. 실제로 SAD 환자에게는 광 치료, 인지행동치료(CBT), 그리고 단기간 항우울제 처방이 병행되기도 한다.
일상적에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
빛을 최대한으로
가능하다면 오전 30분 정도 야외에 머무는 것이 좋으며, 여의치 않다면 조명 아래에서라도 빛을 쬐는 시간을 갖자.
일상 리듬을 유지한다
계절에 따라 활동량이 줄어도 식사, 수면, 운동의 주기를 일정하게 유지하면 생체시계의 혼란이 줄어든다.
신체를 움직인다
잠시라도 시간을 내어 산책하거나 가벼운 유산소를 하는 것만으로도 세로토닌과 엔도르핀이 증가해 기분 안정에 도움이 된다.
관계를 유지하려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사회적 교류는 뇌의 보상 회로를 활성화시켜 스트레스 반응을 줄이고, 우울증세의 악화를 막는다.
지나가는 계절을 건너는 마음
계절이 바뀌면 나무도 잎을 떨구고, 동물도 활동 방식을 바꾼다. 어떻게 보면 인간 역시도 이러한 과정처럼 계절을 인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병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계절에 맞춰 우리의 몸과 마음이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바꿔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