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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무가 알렉산드로 시아르로니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그냥 그거면 돼요”

2025.11.28.정유진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의 마지막 춤이 서울에 닿았다. 선명한 숨결로, 반클리프 아펠의 문화 예술 공헌 프로젝트,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을 타고.

© Van Cleef & Arpels – Umberto Favretto

반클리프 아펠에게 무용은 무한한 영감의 원천이었다. 이 가치를 지키고 이어나가려는 메종의 사명은 단순한 애호를 넘어, ‘반클리프 아펠 BY 댄스 리플렉션’이라는 이름으로 창작과 전승, 교육을 아우르는 이니셔티브로 확장됐다. 2020년 출범한 이 프로젝트를 통해 메종은 현재 15개국 45명의 예술가에게 창작 활동을 지원하며 안무 유산을 계승하는 중이다. 런던에서 시작해 홍콩, 뉴욕 등 세계 도시를 순회한 이들의 여섯 번째 행선지는 서울. 9팀의 공연이 약 3주간, 서울 도처에서 열리는 이 성대한 축제를 위해 첫 내한한 이탈리아 출신 안무가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를 공연 직전 만났다.

전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개최된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포스터.

GQ 곧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Save the Last Dance For Me’가 공연되죠? 무척 기대됩니다.
AS
이 작품은 이탈리아 볼로냐 지방의 전통 춤인 폴카 치나타 Polka Chinata에서 시작했어요. 100년도 훨씬 전에 탄생한 사교춤으로, 남성들이 함께 추던 춤이죠. 두 명이 마주 보고 회전하며 무릎을 굽히는 동작이 특징인데, 두 무용수가 신체적으로 매우 힘든 움직임을 반복하면서 에너지를 전하고, 또 인간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GQ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어떻게 지어졌나요?
AS 폴카 치나타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어요. 그래서 ‘소멸해가는 이 유산을 구하자’, ‘사멸되는 걸 막자’라는 생각으로 지었죠. 브루스 윌리스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고요.

알레산드로 시아르로니의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 공연.

GQ 처음 무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S 10대 때, 춤이 너무 좋아 댄서가 되고 싶었어요. 다만 어린 마음에 춤을 추고 싶은 열망이 스스로 조금 부끄럽게 느껴져서, 20대에 연극 배우로 처음 커리어를 시작했죠. 이후, 배우를 그만두고 첫 번째 무용 작품을 만들었는데,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작품으로 무용 페스티벌에 초청받았어요. 저는 그때 마치 무용계로 ‘입양’된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돌이켜보면 10대 시절의 열망을 찾은 셈이네요.
GQ 당신에게 춤은 어떤 의미인가요?
AS 춤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해보세요, 어렸을 적 우리 모두 춤을 즐겨 췄어요. 심지어 음악 없이도요.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본능을 잃은 것 뿐이에요. 그 본능을 오래도록 지켜낼 수 있다면, 더 자유로운 삶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춤과 특수 효과를 결합한 올라 마시에예프스카의 ‘로이 풀러: 리서치 Loie Fuller: Research’ 공연.

GQ 반클리프 아펠과 2020년부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요. ‘댄스 리플랙션 BY 반클리프 아펠’로 함께한 첫 프로젝트는 어떤 작품이었나요?
AS ‘올랜도 Orlando(Turning-Orlando version)’였습니다. 몸이 스스로 회전하는 작품인데, 그 시리즈에는 제가 직접 추는 솔로 버전과 프랑스 리옹 국립 오페라발레단과 협업한 버전, 그리고 대규모 버전이 있어요.
GQ ‘마지막 춤은 나를 위해’처럼, 회전을 반복하는 춤인가요?
AS 맞습니다. 작품마다 하나의 움직임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작업하는데요, 회전이라는 개념을 주제로 여러 작품을 만들었어요. 회전은 단순히 도는 것을 넘어, 변화와 진화를 의미합니다.
GQ 공연, 특히 무용은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오직 몸짓만 있으니까.
AS 네, 그래서 전 무대 위의 무용수들이 느끼는 감정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무용수의 감정이 관객을 공감하게 만드니까요.
GQ 당신은 그 무용수의 감정을 어떻게 불러내나요?
AS 공동체. 과거의 저는 개념적 가치에 몰두했어요. 아이디어를 붙들고, 그 아이디어를 완성해나가는 과정을 정말 좋아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특히 아티스트에게는요. 중요한 건 작품을 만드는 사람들과의 관계예요. 저는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매 작품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고.
GQ 이번 작품을 통해 관객들이 느꼈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나요?
AS 숨겨진 의미나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메시지는 없어요. 물론 신비로움은 존재하지만, 저도 그 신비를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거든요.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느끼는 것, 그냥 그거면 돼요. 관객들이 단지 아름다운 춤이나 무용수의 기량만 보는 게 아니라, 무대 위의 무용수를 한 인간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표현하는 감정을 느꼈으면 합니다. 그거면 충분해요.

발레리나 클립.


GQ 당신에게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은 어떤 의미인가요?
AS 물론 사회 문화적으로도 유의미하지만, 개인적으로도 매우 각별한 프로젝트입니다. 콘텐츠와 형태에 대해 아티스트의 자유를 완전히 보장해주기 때문인데요. 이탈리아는 현대 예술 연구에 크게 투자를 하지 않기에, 저에게 댄스 리플렉션의 지원은 매우 소중합니다. 어떤 가치를 전하기 위해, 이만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함께 나아가는 프로그램은 없다고 생각해요.
GQ 어떤 가치는 이를테면 폴카 치나타를 말하는 건가요?
AS 맞아요. 오늘도 ‘댄스 리플렉션 BY 반클리프 아펠’ 덕분에 한국에 폴카 치나타의 존재를 알리잖아요. 메종과 함께 폴카 치나타의 전통을 알리고, 예술로 관객에게 울림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보람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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