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아가 수집하는 온기.

GQ 리아 씨의 옷장 속 물건을 속속들이 챙겨와줘서 감사해요.
LA 신나게 짐을 쌌어요. 지금 집에 돌아가면 난장판이에요. 프흐흥. 원래 짐 챙기는 데 오래 걸리는 스타일인 데다 이번 기회에 하나둘씩 구석에 있는 것들까지 꺼내다 보니까. 그런데 너무 좋았던 게, 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형식이어서 새롭기도 하고 뜻깊은 촬영이겠다 싶었어요.
GQ 가수가 아니었다면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던 이야기를 듣고 궁금했거든요. 실제로 빈티지 아이템 쇼핑을 즐긴다고도 알고요.
LA 맞아요. 그런데 그 꿈은 어릴 때 “장래 희망이 뭐야?” 가볍게 물을 때의 이야기고 준비나 공부해본 적도 없기 때문에 감히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럽지만, 어릴 때부터 그냥 옷을 정말 좋아했던 것 같기는 해요. 옷도 옷인데 인테리어 소품처럼 꾸미는 것들, 분위기를 전환해주는 것들을 좋아했어요. 그게 기분도 전환해준다고 여겼어요. 예뻐 보이게 해주는 게 옷의 중요한 포인트이기도 하지만 그런 것보다는 저의 기분이라고 할까요? 그날의 무드를 표출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걸 꼭 ‘언제 어떻게 입어서 이렇게 뽐내야지’라고 하기보다는, 우선 저는 색감을 무척 좋아해서 컬러가 예쁘다 싶으면 구매욕이 생기고, 그렇게 하나둘씩 수집해온 개념 같아요. 사실 오늘 가져온 것 중에 아직 한 번도 착용해보지 않은 것도 많아요. 직업 특성상 꾸며주시는 대로 입거나 아니면 연습복이니까 평상시에는 활용할 일이 없거든요. 이 기회에 꺼내올 수 있어서 즐거웠어요. ‘이럴 때 빛을 발하는구나’ 그런 느낌.

GQ 숙제가 아니었어서 다행이네요.
LA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짐을 싸다 보니까 평상시에는 몰랐던, 예를 들어서 제가 엄마 모자를 (집에) 가져온 게 정말 많은 거예요. 원래 제가 모자를 좋아하거든요? 새삼 나의 취향이 엄마 영향을 받은 걸 수도 있겠다 싶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크고 보니까 엄마도 스무 살 무렵엔 멋쟁이였구나, 엄마도 나처럼 이렇게 색깔 있고 귀여운 거, 꽃무늬를 좋아했구나, 둘 다 취향이 대쪽 같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정말 재밌었어요.
GQ 오늘 입은 노랑색 꽃무늬 니트도 리아 씨 어머니 옷이라고 했죠?
LA 맞아요. 강남역 지하상가 같은 데 행거 많이 두고 빈티지 물건 파는 곳 있잖아요, 연습생 때는 버스 타기 전 그 틈틈이 가서 행거 사이에서 옷 발굴하는 것 자체를 좋아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엄마 옷장도 혼자 보다가 예쁜 거 다 챙겨온 거예요. 엄마는 솔직히 몇 개는 제가 가져갔는지도 모르실 수 있어요.
GQ 엄마 몰래 가져온 거예요?(웃음)
LA 말한 것도 있을 거고 안 한 것도 있을 거고.(웃음) 엄마도 워낙 버리지 않는 성격이시다 보니까 옛날에 쓰시던 추억의 물건이 많아서, 요즘 엄마가 안 쓰시는 것 중 내가 건질 수 있는 걸 한번 싹 가져왔어요.

GQ ‘내 취향이 엄마로부터 왔구나’, ‘어린 날의 엄마는 이런 걸 좋아했구나’, 옷에 묻은 시간이 사람을 참 감성적으로 만들어요. 그렇죠?
LA 사실 엄마는 정작 그때 기억이 잘 안 나시는 것 같아요. “엄마, 이건 언제 산거야?” 그러면 잘 모르겠다고 하시고, 대신 이런 이야기가 더 많죠. “그때는 그 사이즈가 맞았는데.” 프흐흐흐. 그런데 제가 항상 엄마한테 하는 말이 있어요. 저희 엄마 젊을 때 사진 보면 진짜, 진짜 미인이셨거든요. 우리 엄마라서가 아니라 정말로. 그리고 현재 모습을 제가 알잖아요. 그래서 농담 삼아 엄마한테 “엄마 젊었을 때가 나보다 훨씬 예쁘니까 나는 늙으면 기본적으로 엄마보다 못생기겠다” 그래요. 그런데 가끔 팬분들이나 멤버들, 회사 직원분들이 엄마가 공연 보러 오시면 말하지 않아도 리아 어머니라고 다들 알아보세요. 솔직히 저는 그렇게 닮았는지 모르겠는데 많이들 닮았다고 하시면 기분이 묘하고 좋아요. 입매는 제가 봐도 닮긴 닮았어요. 성격은 확실히 닮았고.
GQ 어떤 성격이 닮았어요?
LA 감정적이고, 감성적이고, 그리고 표현을 많이 해요. ‘소녀 소녀’ 하세요, 저희 어머니는. 그런데 엄마가 저보다 한 수 위라는 느낌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말이 진짜 많고 횡설수설하는데, 엄마는 저보다 더 그래요. 그래서 항상 서로 보면서 거울 치료 하거든요. 그래도 저는 엄마와 아빠의 합작이니까, 보다 이성적인 아빠의 면이 융화된 느낌이어서 엄마가 저보다 조금 더 심한 걸로.(웃음)
GQ 소장품에서는 소유자의 취향이 묻어나죠. 오늘 리아 씨 물건들을 보는데 깔끔한 와중에 색깔이나 패턴, 아기자기한 디테일들이 눈에 띄었어요.
LA 그런 거 좋아해요. 너무 좋아해요.

GQ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물건 세 가지를 골라본다면요?
LA 미니멀리즘의 반대말이 뭐죠? 맥시멀리스트! 저는 완전 맥시멀리스트인데 특히 추억이 될 만한 물건은 다 가지고 있는 편이에요. 보부상이에요. 오늘 한 참 목걸이 하나는 초등학생 때였나 부모님이랑 디즈니랜드 놀러 가서 산 거예요. 디즈니 캐릭터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목걸이. 이거 예쁘다 싶어서 엄마 아빠한테 “사줘” 졸라서 산 거겠죠? 지금 봐도 너무 예쁘고, 오늘처럼 티셔츠나 스웨트 셔츠에 스타일링해도 예쁠 것 같고, 그리고 그때 추억이 묻어 갖고 있었어요. 하고 나간 적은 없어요. 그냥 갖고 있었어요. 의미 있는 물건이라.
GQ 그 어릴 때의 목걸이를 아직 갖고 있다는 것도 신기하네요.
LA 저 정말 좀 안 버리는 스타일이에요. 말씀드렸다시피 엄마 닮아서. 흐흥. 그리고 또 하나는 오늘 내내 하고 있었던 티파니앤코 하트 목걸이. 이건 어릴 때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도 꼭 하고 싶다 생각한 목걸이예요. 언니들이나 동경하던 아티스트들이 그 하트 목걸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거든요. 그래서 스물한 살 때 아버지랑 같이 미국 여행하다 매장에 가서 샀어요. 처음으로 구매한 브랜드 액세서리였어요. 그때 사서는 한동안 보관만 해놓아 이번에 꺼내보니 녹이 슬어 있더라고요. 오늘을 위해서 열심히 닦아서 가져왔어요. 오랜만에 해보니까 너무 예뻐서 앞으로 다시 하고 다니려고요.
GQ 동경하던 꿈을 이룬 셈이네요. 단순히 목걸이를 구매한 것이라기보다도요.
LA 맞아요. 나도 어른 되면 사야지, 꼭 하고 다녀야지 했던 목걸이였으니까. 오랜만에 그때 그 기억이 다시 났어요. 그리고 마지막 물건은, 음, 제가 직접 만든 액세서리가 있어요. 빨간색 동그라미와 검은색 동그라미, 약간 동양풍의 비즈 느낌으로 만든 목걸이요.
GQ 직접 만든 거였어요?
LA 네. 혼자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데 집에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요리하고, 청소하고, 손으로 뭐 만들고, 그림 그리고, 계속 뭘 하는 걸 좋아해요. 한동안은 액세서리를 만들었어요. 동대문시장 가서 부자재 구입해 액세서리를 만들면 주변분들에게 선물하기도 좋아서 한동안 열심히 만들었어요.

GQ 손재주가 좋네요.
LA 항상 무언가 새로운 일거리를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안 그러면 조금 처지고 무언가를 해야 오히려 에너지를 얻는 편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한 땀 한 땀 재료들을 꿰고 만들던 시간이 나한테 정말 중요한 게 무엇인지 집중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어서 좋았어요. 내 데일리 라이프 안에서 나에게 직접 영향을 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 같아요.
GQ 손으로 감각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때가 있죠. 무엇이던가요, 리아 씨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LA 정말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우리 가족들, 멤버들, 친한 친구들, 내 강아지, 내가 하루하루 먹는 것, 이런 사소한 것이 중요하더라고요. 사소하다는 건 관계가 가볍거나 별일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아주 일상적인 것들, 나의 인프라라고 해야 할까요? 나의 상태, 나의 에너지, 내가 지금 보내는 현재인 거예요. 그래야 그 너머에 있는 것들에 좋은 영향을 전달하는 것 같아요. 이게 예가 될지 모르겠는데, 저는 12월이 되면 꼭 슈톨렌을 사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지나 새해가 될 때까지 매일 한 조각씩 잘라서 먹어요. 그런 소소한 즐거움이 제게는 중요해요. 그게 행복 같아요.

GQ 이 기회에 또 표현하자면 그 슈톨렌을 오늘 스태프들에게 선물해줘서도 고맙습니다. 리아 씨처럼 매일 한 조각씩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볼게요.
LA 감사합니다. 한 팬분이 저한테 편지로 “행복 수집가”라는 별명을 붙여주셨어요. 그 말이 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진짜 그렇더라고요. 옷이든 소품이든, 요리가 됐든 액세서리가 됐든, 저는 항상 일상 속에서 습관적으로 행복을 수집하는 것 같고, 저한테는 그게 나아가는 방법 같아요. 남한테 무언가를 해줬을 때 좋아하는 그 사람을 보는 것도 저한테는 행복감이 오는 일이에요.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해피 뉴 이어입니다.
GQ 문득 궁금해지네요. 리아 씨가 엄마의 옷과 취향을 물려받았듯 언젠가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은 리아 씨의 것이 있다면요?
LA 제가 엄마 걸 물려받아 쓰는 게 엄마가 “이거 써”라고 시켜서 한 게 아니고 제가 봤을 때 예쁘다, 귀엽다 느껴져서잖아요. 나중에 내 자식도 내가 가진 물건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내 취향을 멋있다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그래서 많이 많이 가져가서 써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제가 거울이 되게 잘 살아야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