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잊고 새벽을 기다린다. 2026 F/W 생 로랑 남성 컬렉션.
이제부터는 밤이라 부를 수 있는 9시. 안토니 바카렐로는 2026 F/W 생 로랑 남성 컬렉션을 위해 쇼 시작 시간까지 빈틈없이 맞춰놨다. 엽서 속에 담긴 완벽한 파리의 환상을 구현하기 좋은 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쇼에 초대받은 사람 모두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런웨이를 원탁 삼아 빙 둘러앉은 시팅이었다. 이번에는 딱딱하고 단단한데 등받이 없는 되똑한 나무 의자 대신 부드럽고 온몸을 내던질 수 있는 가죽 카우치를 준비했다. 밤 9시라면 이런 의자가 좋지. 마침 밖은 부슬부슬 비도 내렸다. 우산이 거추장스러울 정도로 소소하게 내려, 찰리 허넴 옆에 앉은 오스틴 버틀러의 곱슬머리는 평소보다 살짝 더 구불거렸고, 라미 말렉의 선글라스에도 미세한 물방울이 맺힐 뿐이었다. 지난 시즌 안토니는 가장 화려한 컬러 팔레트로 런웨이를 물들였다. 더스티 바이올렛을 입은 엔씨티의 텐과 러스트 오렌지의 켄토 야마자키, 인디언 핑크를 입은 배우 이채민과 머스터드 옐로 수트를 입은 코노 스토리가 지난 런웨이를 상기시켰다.

예민한 핀 조명이 켜지고 장중한 오케스트라와 오페라 음악이 들리자 연약함과 강인함이 공존하는 날렵하고 유려한 실루엣들이 등장했다. 익숙한 수트와 친숙한 레더는 과장된 퍼와 날카로운 페이턴트로 변주를 주며 생 로랑 하우스의 새로운 르 스모킹 Le Smoking을 완성했다. 날카로운 어깨선은 드러내되, 전체적인 실루엣은 여미고 감추는 방식을 택했고 강조와 절제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맴돌았다. 갑옷에 가까운 코트와 페이턴트 니하이 부츠는 무게감을 더했고, 실크 애스콧 타이와 와이드 팬츠는 우아하고 풍성한 볼륨감을 부풀렸다. 블랙과 브라운과 네이비 그리고 애스콧 타이의 레드가 다였다. 바카렐로는 1956년 출간된 제임스 볼드윈의 <지오반니의 방 Giovanni’s Room>에서 이번 컬렉션을 시작했다. 연인인 데이비드와 지오반니의 심리적, 성적, 감정적인 긴장감에서 남성성과 남성다움의 의미를 찾아갔다. 특히 그가 매료된 건 새벽녘. 밤 이후의 아침을 떠올리며 생 로랑의 클래식 모티프를 포착했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는 친밀하고도 특별한 이 경계의 시간에서 히치콕의 영화와 헬무트 뉴튼의 사진이 얼핏 스쳐가기도 했다. 쇼가 끝난 뒤 새벽이 가까워진 파리 시내는 유리잔도 물들일 만큼 진한 론 와인이 생각나게 했다. 누군가는 10년 전에 끊은 담배를 다시 피웠다. 파리의 새벽은 여전히 많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