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타쿠마스시’ 총괄 강승현 셰프가 아크테릭스 트레일 러닝 애슬릿 염주호 선수와 ‘뉴 100마일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약 160km의 달리기를 앞둔 그가 써내려간 100일간의 훈련 일지와 손글씨를 이 곳에 공개한다 . 그가 달리면서 생각한 것들.

12월 28일 일요일
‘뉴 100마일러 프로젝트’를 제주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이야기를 마치고서도 머릿속에는 ‘내가 할 수 있나?’ 같은 생각이 가득했다. 산에서 달리는 일 당연히 재밌지,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함께 달리면 더 즐겁겠지. 단, 거리가 무려 100마일이다. 100마일은 무려 160km고. 가늠해 보려 해도 와닿지 않는 거리다. 막막한 마음 대신 가장 좋아하는 말을 떠올렸다.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없던 달리기를 하게 된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를 하자. 일단 그렇게 하자. 어떻게 되겠지. 앞으로 프로젝트까지 100일 남짓 남았다. 여전히 100마일이라는 거리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제는 이 준비 과정 자체가 재미있다. 완주를 해낸 모습을 상상한다.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찬다. 그래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달리기에 집중해 보자!


1월 11일 일요일
작년 12월부터 프로젝트 준비를 위해 장거리 달리기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좀처럼 시간을 내기 어렵다. 100km 정도의 거리는 달려 봐야 할 텐데, 약간 조바심이 난다. 오늘은 눈이 내렸다. 좀처럼 눈이 오지 않는 제주이기에 잠깐 짬을 내서 트레일로 나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을 맞으며 달렸다. 걱정으로 무거웠던 가슴이 가슴이 뻥 뚫렸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1월 27일 화요일
63km를 달렸다. 프로젝트 때 달릴 코스를 역방향으로 뛰며 위험 요소는 없는지, 아스팔트 도로를 피해 갈 수 있는 선택지는 없는지 등을 고려했다. 코스 디렉터가 된 듯한 느낌이 재밌었다.
트레일 러닝이나 요리나 힘을 빼는 게 가장 기본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벌써 13년을 해 온 요리지만, 칼질을 할 때나 초밥을 쥘 때 적절한 힘이 아직도 어렵다. 오늘은 한참을 이 생각으로 달렸다. 내린 결론은 이렇다. 고작 십여 년으로 무슨 얘기를 하겠어? 아직 갈 길이 멀고 배울 것도 많다.
요즘엔 달리기를 할 때 발목과 아킬레스, 무릎 뒤가 아프다. 발을 땅에 닿을 때 힘 빼기가 되지 않아 하체에 부하가 가해지는 것 같다. 신경을 써도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이 부분도 오늘 뛰면서 생각해 봤다. 제대로 맘먹고 뛴지 2년 반이 되었다. 한 번에 모든 걸 이해하고 터득하려는 게 욕심이다.
일도 달리기도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건 없다. 열정을 가지고 겸손하게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쑥쑥 우상향 곡선이 그려지는 날도 있고, 머무르다가 갑자기 좋아지는 계단같은 날도 있겠지. 결과만 보지 말고, 과정과 노력에 좀더 집중해야 겠다. ‘뭉썽 질그랭이 하당보민’ 제주 말로 ‘끈질기고 고집스럽게’ 라는 뜻이다. 다른 곳에 한눈 팔지 않고 곧게 한 길을 걷고 싶다.

2월 7일 토요일
몸이 이상해서 병원에 갔다. 대상포진이란다. 업무와 달리기가 몸에 부담을 준 듯하다. 일주일 간 병원에 다니면서 진료를 받았다. 다시 달리기를 슬슬 시작해 보려는데 몸이 무겁다. 조금만 달려도 금방 피로해진다. 그냥 힘이 없다. 프로젝트까지 한 달 반쯤 남았는데 이게 뭐야. 신경계 회복은 근육의 회복보다 훨씬 더디다고 한다. 그래서 더 푹 쉬어야 한다는 조언을 지인에게 들었다. 당장 달리기를 쉬어야 하는 마음이 무겁다. 프로젝트까지 회복할 수 있을까? 안 되면 어쩌지?

2월 9일 월요일
회복을 위해 잠에 신경을 많이 썼다. 퇴근하면 일단 일찍 자려고 노력했고, 며칠 정말 단 잠을 푹 잤다. 몸이 서서히 풀린다. 일을 하다가 잠깐 틈이 생겼다. 에라 모르겠다! 주방복에 주방화 차림으로 손에는 비닐 장갑을 낀 채, 타쿠마 스시 앞 인도를 왔다갔다 달렸다. 상쾌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고 미쳤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저 달릴 수 있는 이 순간이 즐거웠다. 다행이 피로감이 많이 사라졌다.

2월 24일 화요일
종종 같이 달리는 크루 멤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프로젝트 전 마지막 장거리 달리기를 함께 해 달라고. 고맙게도 이동 체크포인트, CP 지원과 페이스 러너까지 함께 해 줬다. 세 명이 같이 달리고 두 명이 CP 운영을 맡았다. 해가 지니까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면서 몸이 식었다. 너무 추웠다.
제주 말로 ‘험직하게’ 라는 말을 좋아한다. 인스타그램 프로필에 등록해두고 자주 보며 마음가짐을 되새긴다. 대충 되는대로 하지 않고 세심하고 착실히 살아내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의 달리기도 내일의 달리기도 꾀부리지 말고 험직하게 해보자.

3월 7일 토요일
뉴 100마일러 프로젝트의 페이스 러너를 맡을 친구와 함께 트레일 러닝을 다녀왔다. 친구가 내게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기분이 어떤지 물어왔다. 처음엔 100마일이라는 거리가 강한 부담과 압박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그저 즐겁고 기대된다. 세계 여행을 떠나기 전의 그런 설렘이랄까. 물론 엄청 힘들고 고된 길이지만, 그 길이 고통스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완주 여부보다는 이 여행을 행복하게 해내는 게 중요하다. 혼자라면 절대 못했을 거다. 함께해 주는 친구들이 있기에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달릴 수 있었다.

3월 17일 화요일
서울에 업무차 출장을 왔다. 이른 아침 잠깐 시간을 내서 숙소 근처 봉제산에 다녀왔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환경과 지형, 뷰가 새로웠다. 달리기는 이제 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요리가 인생이라면 달리기는 내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