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식은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진짜와 다르다고 고쳐 말하지 않았다. 모든 이야기가 자신인 동시에, 아니기도 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물속에서도 편안해 보여요. 물을 좋아해요. 물속에서 찍는 화보 한번 해보고 싶었는데, 기회를 주시니 냉큼 들어갔죠.
물을 왜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축구하고 땀 흘리는 것보다 물에서 하는 운동을 좋아했어요. 스쿠버다이빙은 18미터까지 내려갈 수 있는 오픈워터 자격증을 땄죠. 어드밴스드 자격증을 따서 30미터까지 내려가보고 싶어요. 거긴 나 혼자만의 세상이거든요. 물소리랑 숨소리 밖에 안 들려요. 훅, 하고 들이쉬면 살아 있구나 싶어지죠. 이틀 뒤에 필리핀 팬미팅 가서 또 할 거예요.
<힘쎈 여자 도봉순> 이후로 찾는 곳이 확실히 많아졌나요? 제2의 전성기라고 해야겠죠? 예능 프로그램 <진짜 사나이>가 시작이었다면 이번 작품은 배우로서 조명받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해외 팬미팅을 돌고,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가 확 늘어날 때 작품 하나의 힘이 대단하구나 느꼈어요.
<진짜 사나이>로 주목받고 연기 활동을 본격적으로 했을 때, 자신을 당겨진 활시위 위에 놓인 화살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죠. 지금은 어때요? 계속 날아가고 있죠. 달려가고 있어요.
과녁은 보이나요? 아직 안 보여요. 일단은 제가 목표로 한 과녁을 맞추기 위해서 가고 있는 중이지만, 조금이라도 바람이 세게 불고 비가 내리면 불안해지죠. 지금 딱 그런 상태인 거 같아요. 그래서 더 곧게 나아가야지, 하고 마음을 다잡아요.
지금 불고 있는 비바람은 어떤 건가요? 이제까지는 잘해온 것 같은데, 다음 작품인 <슈츠>를 앞두고는 좀 불안해지는 게 있어요. 이전까지는 뭘 모르니까 무식하게 막 달려들었죠. 그런데 이젠 내가 준비가 잘되어 있나? 잘할 수 있을까? 자꾸 나 자신에 대해 의심하고, 질문을 던져보는 거죠. 뭐가 불안한 걸까 생각해보면,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인 것 같아요. 작품에서 부담하는 게 많아지기 때문이겠죠.
연차가 쌓이면 생각도 많아지죠. 열여덟 살에 데뷔해서 지금까지 달려오게 만든 근원은 뭔가요? 되게 간단해요. 저는 아직까지도 철이 안 들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거든요.
좋아하는 게 뭐죠? 노래랑 연기요.
다 일이네요. 그렇죠. 그걸 직업으로 가졌기 때문에 지금까지 할 수 있었던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고, 그 직업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 것만 하려고 하냐면, 항상 “싫어”를 달고 살아서 엄마는 저한테 ‘노맨’이라 그래요. 그런 제가 두 시간밖에 못 자도 싫은 소리 없이 하는 게 너무 신기하대요. 엄마가 “그렇게 좋니” 하면 저는 “나 되게 재밌어. 난 이거 말고 할 게 없어” 이래요.
노래와 연기가 왜 그렇게 좋나요? 어릴 때 되게 사고 뭉치였어요. (뺨을 가리키며) 여기도 화상 자국인데. 다섯 살 때인가 호기심에 빨대를 불에 대봤다가, 녹으면서 튀는 바람에 실명할뻔 했다니까요. 항상 사고 쳐서 혼나기만 하던 제가 유일하게 칭찬 받을 수 있던 건 노래였어요. 할머니댁에 차를 타고 갈 때 틀어놓은 음악을 따라 부르면, 부모님은 늘 “우리 아들 잘하네”라고 칭찬해주셨죠. 그게 그렇게 좋았나 봐요. 연기는 뮤지컬로 시작했는데, 무대에서 제 연기에 사람들이 웃는 걸 보고 재미를 느끼게 됐죠. 물론 일이 되니까 즐기기만 할 순 없어요. 이젠 좋아하는 걸 잘해야 하는 거예요. 얘기하다 보니, 그런 고충쯤은 감당해야겠단 생각이 드는데요?
해온 작품들을 보면 박형식은 멜로 연기에 특화된 배우 같아요. 어떤 작품이든 이성뿐 아니라 연적인 동성 배우와도 정서적인 뉘앙스를 살리죠. 음, 그건 제가 남한테 잘 맞추는 사람이라 그런 걸지도 모르겠어요. 연기를 할 때 내가 준비한 게 있어도, 상대가 하는 게 느낌이 오면 내 걸 버리고 그 연기를 받거든요. 내 감정과 캐릭터가 방해되는 수준만 아니면요. 평소에도 그래요. 여럿이 여행을 가도 누가 밥 먹자면 밥 먹고, 쉬자면 쉬고. 하고 싶은 게 없는 게 아니라 그냥, 나는 뭘 해도 좋으니까.
상대가 혼자 돋보이려는 연기를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럴 때도 맞춰주나요? 보영 누나가 그러는데, 제가 진짜 둔하대요. 누가 욕심을 부린 건지 뭔지도 몰라요. 왜냐면 저는 그냥 저대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저는 이렇게 하면 되죠, 뭐.
<힘쎈 여자 도봉순>에서 인상적인 건 민혁이 “나 좀 봐줘, 나 좀 사랑해줘”라고 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런 대사를 하는데 하나도 구질구질하지 않던데요. 구걸하는 게 아니라, 고백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사랑해줘”지만 “사랑해”인 거죠. 그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 돋는데…. 보영 누나도 똑같진 않더라도 비슷한 걸 느꼈기 때문에 그런 장면이 나온 게 아닐까 해요. 스태프들이 많은데도 거기에 둘밖에 없는 것 같았어요. 우주에서 이야기하는 듯한, 공기가 멈춘 느낌. 봉순이 민혁을 볼 때 터질 것 같더라고요. 캐릭터들이 쌓아온 감정선도 있고, 누나가 잘해준 것도 있었겠죠.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우리 아들 사랑해”, 저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달고 살았거든요. 친구들한테도 거리낌 없이 해요. 저의 애정 표현이죠. 하지만 습관처럼 하는 건 아녜요. 좋아하지도 않는데 사랑한다고 하진 않거든요.
좌우명이 ‘서로 사랑하며 살자’죠. 그건 서로 배려하며 살자는 거예요. 사람들이 너무 치열하게 살잖아요. 제국의 아이들 활동할 때 좋은 거 하나가 있으면 멤버 아홉 명이 다 갖고 싶을 거 아녜요? 양보가 안 되면 싸움이 될 거고.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게 배려죠. 저는 그런 걸 굉장히 중시해요.
남에게 맞추는 게 편하다고 하더니, 자기 몫에 대해서도 초연하게 말하네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세상을 알게 된 경험이 있어요. 보이스카우트에서 2대대 부장을 했는데, 저는 맡은 임무는 충실히 해내는 아이라 선생님이 되게 예뻐하셨거든요. 졸업식 날 상을 받기로 하고 리허설을 했어요. 엄마는 옷도 사 입히고 머리도 해주고 친척들에게 보러 오라고 전화까지 돌렸죠. 그런데 당일에 상장을 수여하는데 1대대 부장 이름이 불리는 거예요. 그애가 올라가서 상을 받아오고선 저를 툭툭 치더니 “너 거야” 하고 주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애 어머니가 학부모 회장이셨고 입김을 넣으신 거죠. 그때 그 분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는데…, 영화에나 나올 법한 전형적인 악당의 표정을 하고 계시더라고요. 억울하고, 쪽팔리고. 울었나? 울었는진 모르겠어요. ‘세상이 이렇구나, 나 혼자 살아가야 하는구나’ 느꼈죠. 하하.
그 기억이 일종의 방어기제가 된 걸까요? 그때부터 성격이 “그냥 너 다 해” 이런 식이 된 것 같기도 해요. 상처받기 싫으니까. 내가 상장 받는다고 가족들, 친척들 다 부른 건데 이렇게 되어버렸잖아요? 애초에 내가 관심이 없었더라면 ‘누가 받든 괜찮아’ 이러고 말 수 있었던 걸. 그런데 내가 그걸 너무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다 같이 상처를 받았잖아요. 그래서 뭐가 있어도 그냥 너 해, 하는 게 편해요. 바보 같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광희 형이 저한테 “너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가지고 싶은 거 없어? ”하고 자주 물어봤어요. 제가 표현을 잘 안 하니까. 저는 남들 안 보는 구석에서, 새벽에 혼자 나와서 연습하고 그랬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 박형식의 또 다른 모습이 있나요? 파이팅 넘치는 사람은 아녜요. 보기보다 차갑고 말도 툭툭하고, 직설도 날리는 편이죠. 사람들과 잘 지낼 순 있지만 사실 그걸 좀 피곤해해요. 쇼핑도 안 하고, 돈도 안 써요. 그나마 쓰는 게 컴퓨터. 좋은 사양으로 맞췄어요. ‘검빨’로 맞췄는데 부팅하면 예뻐요. 요즘엔 배틀 그라운드 엄청 열심히 하고 있고 장르물도 좋아해요. 어릴 때 <배가본드> 같은 만화를 즐겨 봤죠. 언젠가 뱀파이어 역할을 해보고 싶네요.
좀 의외의 취향이군요. 쌓인 걸 이렇게 푸나봐요. 하하하. 저 운전도 좀 과격한 편이에요. 엔진 소리 듣는 게 좋아서 음악도 안 들어요.
예능에서의 이미지와 유복한 가정환경 때문에 밝고 반듯해 보인다는 이야기가 많았죠. 그런 말을 들으면 어때요? 제가 그런 캐릭터로 보인다는 걸 알아요. 저는 방송에서 최선을 다 하려고 하는 거예요. 예능은 예능이니까 높은 텐션을 유지해서 어떻게든 ‘마’가 안 떴으면 좋겠고, 재미있는 멘트를 날렸으면 좋겠고, 다른 사람도 도와줬으면 좋겠고, 잘 웃으면서 마무리가 됐으면 좋겠는 거죠. 컷 사인 나면 아 너무 좋았다, “수고하셨습니다!” 하고 행복하게 거길 나오는 거고요. 하지만 누군가 그걸 보고 박형식이 어떤 사람이다, 라고 생각하면 그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겠죠.
미지의 영역은 알 수 없는 부분으로 남겨둘까요? 제가 이런 분위기에서 이런 상태로 지금 드는 생각을 말하는 걸 라이브로 보고 계시지만, 텍스트로 넘어가면 또 그 느낌이 안 나겠죠? 지금 저의 모습은 여기 제 앞에 있는 사람 빼고는 아무도 모를 거예요. 사실 저는 절 보여주고 싶지 않아요. 굳이 내가 누구라고 알리지 않아도, 친화력 좋은 막내도, 세상은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이렇게 약간은 냉소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도 저예요. 남들이 안 알아줘도 나는 나니까요.
- 에디터
- 박나나, 이예지
- 포토그래퍼
- 홍장현
- 스타일리스트
- 이윤경
- 헤어
- 임정호
- 메이크업
-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