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작품과 좋은 캐릭터를 고르는 것은 당연히 배우의 역량이다. 그런데 그것이 숫제 영화의 흥행 여부나 캐릭터의 비중이 아닌, 작아도 의미 있는 영화, 그리고 다른 캐릭터를 위해 잠시 뒤로 물러나줄 수도 있는 캐릭터를 고르는 게 기준이 된다면, 그 배우의 역량은 꼭 짚어줘야만 한다. 이제훈은 올해 <박열>과 <아이 캔 스 피크> 두 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둘 다 중저 예산 영화로, 각각 일제강점기의 항일운동가이자 무정부주의자, 위안부 피해자가 주인공인 영화다. 작지만 큰 영화를 선택한 것도 미덕이지만, 그가 선택한 캐릭터가 지닌 양보와 존중의 미덕을 먼저 말해야 한다. <박열>에서 주인공 박열을 맡은 이제훈은, 주인공임에도 종종 빛나는 순간을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에게 넘긴다. 극중 박열은 이렇게 말한다. “내가 후미코에 대해 말하는 것은 그녀의 감정을 상하게 할 수 있으니 그녀의 주체적 진술에 맡기겠소.” 실제 박열이 한 말인 이 대사는 존중의 의미를 곱씹게 한다. <아이 캔 스피크>에서도 마찬가지다. 민원왕 할머니 나옥분(나문희)과 티격태격하면서 가까워져 그를 진심으로 지지하고 응원하는 공무원 박민재는 나옥분을 보조하는 역할에 가깝다. 그렇다고 박민재 캐릭터가 덜 중요한가? 사람들은 박민재의 시선으로 나옥분을 이해하며, 나옥분 또한 박민재 덕에 “I can speak”를 외친다. 남자 ‘원톱’ 영화와 ‘투톱’ 영화, 혹은 남자 ‘떼거지’ 영화가 대다수였던 한국영화판에서 우악스런 어깨싸움 대신 박열과 박민재를 택한 배우 이제훈을 올해의 안목으로 꼽는다. 둘 다 기대 이상의 흥행을 거뒀다는 점에서 세속적인 기준에서도 좋은 선택이었음은 틀림없다.
- 에디터
- 이예지
- 일러스트레이터
- Kimi&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