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남자들이여, 최소한 이런 변명은 하지 말자.
“생일 선물 주기 싫어서…“
20대 중반에 사귄 남자 친구가 있다. 친구의 친구로,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나 사귀게 됐는데 만나면 만날수록 서로 연애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하는 타입이라면, 그는 연애 초반에 뜨겁게 불태우는 남자였다. 그래도 남자친구는 매주 나를 만나러 서울에서 수원까지 찾아왔고 보통의 연인처럼 관계가 깊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귄 지 3달째 되던 어느 날 돌연 열흘 정도 연락이 뜸해지더니 전화로 헤어지자는 것이 아닌가? “왜? 나 내일 생일인데 오늘 꼭 헤어지자고 해야 해?”라고 물었더니 그의 황당한 대답. “어. 생일 선물 주기 싫어서…..” 말문이 막혀서 나는 “그래…”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최지현(카페 운영)
“엄마가 싫어해….”
우린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다. 썸이었다. 자상하고 쾌활한 성격, 그리고 무엇보다 잘 생긴 외모 때문에 본격적으로 사귀어볼까 했지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다. 나와 데이트 할 때마다 엄마와 길고 짧은 통화를 자주 하는 것. 좀 더 두고 보잔 심산으로 데이트를 계속해가던 어느 날, 그가 선수를 쳤다. 날 만난 적도 없는 엄마가 나를 싫어한단다. 당시엔 너무 구차한 변명이라 대꾸도 못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변명이 아니라는 의심도 든다. 그래, 엄마랑 살아, 평생. 박수현(프리랜스 에디터)
“솔직히 걔가 좀 내 스타일이긴 하잖아….”
바람 피워서 헤어진 남자 친구가 있다. 바람의 징조가 하나 둘씩 느껴질 때쯤 결정적인 증거를 잡았고 더 이상 뻔뻔하게 양다리 걸치던 남자친구를 봐줄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다. 그런데 헤어지고 나서 한참 뒤 우연히 술자리에서 그 녀석을 다시 마주쳤다. 나는 술이 취해 그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었고 그는 전혀 예상치 못한 답을 들려줬다. “걔가 좀 내 스타일이긴 했잖아. 이해할 수 있지 않냐?” 그때 그 녀석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때리고 이렇게 얘기 못 한 게 한이다. “사실 너도 내 스타일 아니었어.” 임유정(회사원)
“해외에 사업하러 가야 해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 할 때 손님에서 연인으로 발전한 남자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는 사귄 지 1달 만에 해외로 떠난다고 이별을 통보했다. “아는 형님이 해외에서 사업을 하는 데 좀 도와달라고 하네. 다음 달에 다 정리하고 떠날 거야.” 여기서의 신변을 정리하고 해외에 따라가거나 가지 말라고 붙잡을 만큼 남자 친구를 사랑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데려가서 생계를 책임지거나 결혼을 할 만큼 나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린 그냥 덤덤하게 헤어졌다. 그런데 몇 년 뒤, 페이스북 친구 추천에 그 사람의 이름이 뜨는 게 아닌가. 화들짝 놀라면서도 궁금한 마음에 그 계정에 들어가 봤더니 글쎄,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결혼해서 잘 살고 있었다. 김다혜(유학생)
“다 네 탓이야….”
사랑할 땐 목숨을 내놓아도 아까울 것 같지 않던 남자 친구. 헤어질 때가 되니 원수가 됐다. 그것도 서로 치부를 쥐고 제일 아픈 말을 할 수 있는 원수였다. 가시 돋친 말을 주고받다 보니 우리 사이에서 정상적인 대화는 더는 불가능했다. 이성의 끈을 놓은 남자 친구가 남긴 마지막 말은 이렇다. “다 네 탓이야. 네가 이상해서 그래. 넌 비정상이야.” 글쎄, 연인 간에 생긴 문제가 과연 한 사람의 잘못 때문일까? 지금이라도 그에게 이런 말을 남기고 싶다. “우린 그냥 안 맞았던 것뿐이야.” 한송이(취업 준비생)
“…(무응답)…”
이별 중에서도 사람 제일 피 말리는 게 ‘잠수 이별(상대방이 잠수 타고 헤어짐)’이라고 들었는데 그런 일이 나에게도 일어났다. 사소한 다툼이 있었던 다음 날, 그는 잠수를 탔다. 화가 나서 언제 연락이 오나 기다리고 있었는데 감감무소식. 문자를 보내도 답이 없고 전화를 해도 받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얘기하기 싫다거나, 차라리 헤어지자거나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내 앞에서 어른인 척, 세상의 풍파를 다 겪은 척하던 사람이 어린애처럼 구는데 어이가 없었다. 한 달 뒤 다시 나타난 그에게 아무 말 없이 사라진 이유를 묻자, “난 평화주의자야. 싸우기 싫어서 그랬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나마 코딱지만큼 남아 있던 연민마저 싹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김진영(여행 작가)
“네가 시험 떨어진 게 내 잘못인 것 같아…”
대학교 편입 시험을 준비할 때 만난 남자 친구가 있다. 한참 공부하느라 바쁜 시기여서 자주 만나진 못했지만 남자친구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시험이 끝나길 기다려줬다. 나를 배려해주는 남자친구가 늘 고마웠다. 그런데 시험이 끝난 그때, 안 그래도 편입 시험에서 떨어져서 속상한데 대뜸 헤어지자고 통보하는 것이 아닌가.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내 동생도 같은 학교 편입 시험을 쳤는데 걘 붙었고, 넌 떨어졌어. 이게 다 내 잘못인 것 같아.”라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시험에 떨어진 장본인인 내가 괜찮다고 하는데도 한사코 자신의 마음이 불편하다며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대고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우리가 왜 헤어졌는지 알지 못한다. 이은정(대학원생)
- 에디터
- 글 / 김윤정(프리랜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