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는 산업이 만들어낸 괴물이 산다. ‘거대하다’와 ‘아름답다’는 표현이 겹쳐 있는 피조물이다.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후 빠르게 발전했다. 석유 화학, 조선, 제철 등 굵직한 산업 시설이 쉼 없이 들어서면서 규모의 극한을 탐닉하는 듯한 공장이 도시에 솟구쳤다. 1970년대, 성장을 거듭하던 울산 중공업의 한복판에서 일한 조춘만은 이제 공구 대신 카메라를 들고 괴물을 접한다. 조선소에서 철판을 자르고 이어 붙이는 취부사와 배관 용접사로 일할 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가까이서 본 괴물의 살갗뿐이었지만, 공구를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자 몸통 전체가 보였다. 불붙은 담배의 끝처럼 빨갛게 발광하는 공장의 탑, 씨실과 날실로 촘촘하게 엮은 직물 같은 파이프, 부피를 헤아리기 힘든 화학 제품 저장 탱크 등이 눈에 들어왔고 곧 매료됐다. “중공업 사진을 찍는 작업은 지난날 일한 현장에서 흘린 땀의 기억을 더듬는 과정이었어요. 사진을 배운 후 처음에는 직접 제작에 참여했던 강철 구조물에 대한 애착으로 시작했죠. 그런데 점점 취향에 끌려 사진을 찍고 있더라고요. 그땐 몰랐던 울산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까요.” 취향은 사진에 고스란히 배어난다. 나무나 풀 같은 자연물은 등장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도 작은 점처럼 나올 뿐 무게 중심은 언제나 중공업 시설에 실린다. 비나 안개처럼 기상 때문에 공장이 흐릿하게 보이는 날도 피한다. 그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복잡하고 압도적인 크기의 중공업 시설물 자체에 한정되기 때문이다.
사진가이기 전에 울산 시민으로서, 조춘만은 이제 조금씩 힘이 빠지고 있는 괴물을 걱정한다. 그에게 울산은 사람이 사는 곳이면서 거대한 공장도 쉼 없이 호흡해야 의미 있는 도시니까. “경제 논리에 따라 다른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곳이 많아요. 제 사진에 나오는 시설 중 더는 울산에서 볼 수 없는 것들도 많고요. 하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몰라요. 그렇게 거대한 존재가 통째로 사라졌는데도요.” 울산은 이제 유일무이한 중공업 도시는 아니다. 하지만 철을 다루는 길로 가자며 외친 곳은 분명 울산이었으며 그곳의 공장과 구조물은 여전히 ‘규모의 산업’을 지탱한다. 제철소의 화로가 여전히 뜨겁고 철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는 한, 조춘만에게 울산의 전성기를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 에디터
- 이재현
- 포토그래퍼
- 조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