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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두 번째 지방시

2018.04.17박나나

비 내리던 늦은 겨울, 날씨만큼 차갑고 은밀한 지방시 옷이 쏟아졌다.

클레어 웨이트 켈러의 두 번째 시선은 베를린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베를린 장벽 너머로 들려오는 데이비드 보위의 ‘Heroes’를 따라 부른 그 시절. 라디오에선 암울한 얘기만 들려왔지만, 클럽에선 매일 밤 뉴 오더와 디페쉬 모드가 흘러나온 1980년대 말이다. 당시 베를린의 젊은이들은 거칠고 강했다. 불만과 치기와 기개가 끓어 넘쳐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젊은이들을 2018년 가을 겨울 지방시 패션쇼에서 다시 만났다. 전깃줄처럼 배배 꼬인 캣워크를 성큼 걸어 나오는 여자 모델들을 보자 영화 <아토믹 블론드>의 샤를리즈 테론이 생각났다. 날카로운 금발과 창백한 피부, 풍성한 모피 코트와 세련된 가죽 지퍼 부츠, 단단히 조여 묶은 벨트와 그 위에 달린 검고 은밀한 클러치. 영화 속 클럽 장면이 불쑥 떠올랐다. 한편 남자 모델들은 액션 장면의 샤를리즈 테론을 떠올리게 했다.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맥시 롱 코트, 사이키델릭한 레깅스, 하드한 양가죽 수트, 그리고 스파이의 숨겨둔 무기처럼 앞코가 뾰족한 부츠. 순식간에 코트 깊숙한 곳에서 이니셜이 새겨진 단검이라도 뽑아들 기세였다. 모든 모델이 캣워크를 두 바퀴씩 돌고 나자 지방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클레어 웨이트 켈러가 등장했다. 지난 컬렉션보다 더 수줍고 어색한 채로 엷은 미소를 지으면서. 본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고 했지만, 클레어의 두 번째 지방시는 확실히 나아 보였다. 이 쇼를 계기로 클레어의 다음 편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겼으니까.

 

    에디터
    박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