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최고의 시계 및 주얼리 박람회인 제46회 바젤월드 보고서.
바젤월드 규모의 축소
올해 바젤월드의 규모는 대폭 축소됐다. 메인 전시관의 한 층이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원래 바젤월드의 메인 전시관 1, 2층에는 이름만 들으면 모두가 아는 브랜드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올해는 원래 3층에 부스를 갖고 있던 브랜드들이 대거 2층으로 내려오고, 3층에서의 전시는 열리지 않았다.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메인 호스트인 스와치 그룹과 LVMH 그룹, 롤렉스, 파텍필립 같은 굴지의 독립 브랜드들이 있는 1층뿐이었다. 이러한 사건의 배경에는 전 세계적인 장기 불황, 럭셔리 업계의 큰 손으로 군림해 온 중국과 중동 시장의 축소, 매출 저하 등 여러 요인이 있다. 하지만 시계 업계가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박람회장 측이 대관료를 협의해주지 않은 영향이 가장 크다고 관계자들이 입을 모았다. 물론 아직까지 규모 면에서 바젤월드의 아성을 위협하는 시계 박람회는 없지만, 박람회장의 이러한 정책 때문에 시계 업계의 분위기 자체가 위축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마트 워치의 변화
올해부터 바젤월드 주최 측은 전자 기기 회사가 스마트 워치로 바젤월드에 참석하는 것을 막았다. 그러나 시계 전문 제조사가 스마트 워치를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를 하지 않았다. 작년 메인 전시관 2층에 대형 부스를 만들어 참가했던 삼성전자는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바젤월드 참가가 됐다.
올해 처음으로 스마트 워치를 선보인 브랜드로는 위블로와 프레드릭 콘스탄트가 있었다. 먼저 위블로의 빅뱅 레프리 2018 피파 월드컵 러시아는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반적인 사용자보다 축구 경기 심판을 위한 용도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다. 프레드릭 콘스탄트는 하이브리드 매뉴팩처라는 세계 최초의 기계식 스마트 워치를 발표했다. 기계식 무브먼트의 오토매틱 와인딩으로 동력을 공급하고, 여기에 스마트 워치 모듈을 결합한 방식이다.
‘인하우스 무브먼트 개발 붐’의 종료
ETA가 비 스와치 그룹 브랜드로의 무브먼트 판매를 중단하기로 한 2020년이 2년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소프로드, 셀리타, STP 같은 ETA 클론 무브먼트 제조사들이 시계 브랜드에 원활한 공급을 이어감에 따라 ‘ETA의 무브먼트 공급 중단’ 사태는 더 이상 두려운 미래가 아니게 됐다. 때문에 ETA가 타사로의 무브먼트 공급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기로 선언한 시점부터 최근까지 시계 브랜드에 몰아닥쳤던 ‘인하우스 무브먼트 개발 붐’은 사그라들었다. 오랜 기간 ETA의 범용 무브먼트만 사용하다가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탑재한 신 모델을 발표한 브랜드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전부터 인하우스 무브먼트 개발과 상용화에 성공한 브랜드들은 높아진 브랜드의 위상을 소비자들에게 각인시켰다. 대표적인 브랜드가 오리스다. 사실 오리스는 스위스 기계식 시계가 일본산 쿼츠에 밀려 매출이 급감했을 때도 ETA의 기계식 무브먼트만을 사용해 시계를 만들어 온 것(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브랜드 중 유일하게 단 한차례도 쿼츠 무브먼트 시계를 만든 적이 없다)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TA가 오리스에 무브먼트 공급을 줄이기 시작한 바람에 셀리타 무브먼트로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에 절치부심한 듯 2014년에 인하우스 무브먼트인 핸드 와인딩 110(창립 110주년 기념의 의미가 크긴 했다)을 내놓았다. 이후 매년 110을 수정한 새 버전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새로운 플래그십 모델에 적용했다. 올해도 이러한 빅 크라운 프로파일럿 칼리버 114를 발표했다. 튜더도 오리스와 비슷한 무렵부터 ETA 무브먼트보다 인하우스 무브먼트 적용 모델에 집중하고 있다.
그린 컬러 열풍
블랙과 화이트 다음으로 인기 많은 다이얼 컬러는 블루다. 하지만 특정 브랜드의 컬렉션 중에는 블루 다이얼 버전이 블랙과 화이트의 인기를 누르는 경우까지 있다. 한마디로 블루는 ‘제2의 블랙’이 됐다. 최근 그린 컬러 시계의 인기 상승 폭이 가파르다. 예전 롤렉스가 서브마리너의 그린 베젤과 그린 다이얼 버전을 선보였을 때만 해도 매우 생소하고 유니크해 보였다. 그러다 지난해 라도가 그린 하이테크 세라믹으로 다이얼과 케이스뿐 아니라 브레이슬릿까지 만든 모델을 선보여 큰 관심을 모았고, 올해 오리스, 쇼파드, 태그호이어, 글라슈테 오리지날, 해밀턴 등의 수많은 브랜드가 그린 컬러 모델을 선보이며 대중화되는 조짐을 보이는 중이다.
여전히 리바이벌 워치의 강세
작년과 재작년은 유난히 리바이벌 워치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시계 애호가들의 수집욕을 자극하는 컬렉팅용 모델의 대부분이 리바이벌 워치였으며, 누가 더 오리지널 버전의 느낌을 충실히 살렸는가를 경쟁하는 듯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올해도 이어졌다. 브랜드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미도의 경우 필수적인 선택이었고, 이 방면 전통의 강자인 오메가와 태그호이어 역시 걸출한 모델을 내놨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시계들은 가격대가 높다. 하지만 해밀턴의 카키 필드 메커니컬은 무브먼트까지 원작의 분위기를 충실히 반영하고도 매우 합리적인 가격대로 출시됐다.
독립 시계 메이커들의 약진
자금 사정이 넉넉한 시계 컬렉터들 중 극단적으로 희소성이 높은 독립 시계 브랜드에 눈길을 주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바젤월드 박람회장 메인 전시관 2층의 한 섹션은 이러한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부스로 가득 차 있고, 별관에서도 몇 개의 하이엔드급 독립 시계 브랜드를 찾을 수 있다. GPHG(제네바 시계 그랑프리)를 수상하기도 한 안데르센 제네바와 어반 융겐센, 유니크 피스 워치 전문 브랜드인 아티 에이 등 다양한 메이커의 부스를 둘러봤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쇼파드의 공동 회장 칼 프리드리히 슈펠레가 독립적으로 운영해 나가는 페르디난드 베르투. 이 브랜드의 시계는 퓨지&체인과 투르비용을 전 모델의 기본 사양으로 삼고 있으며, ‘모빌 파워 리저브 콘’이라는 독자적인 팽이 모양의 장치로 파워 리저브 잔량을 읽어 표시한다. 높은 경도와 낮은 강도를 동시에 갖춰 코스매틱 가공이 몹시 어려운 사파이어 크리스털 글라스 소재로 무브먼트 브리지를 만들어 모서리에 베벨링 가공을 더하기까지 했다. 이러한 시계들도 브랜드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판매가 중요하다. 다행히 독립 시계 제작자들의 부스를 오가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이것이 바젤월드의 축소에도 불구하고, 시계 업계 전체를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였다.
- 에디터
- 김창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