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저씨>의 시대착오적 서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사람은 누굴까? 과연 아이유일까? 문제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중년 남성의 영웅 심리를 구축하기 위해 어떻게 아이유를 소비하는지 짚어봤다.
tvN <나의 아저씨>의 주인공은 당연히 아저씨들이다. 삼형제 중 큰형 박상훈(박호산)은 오래 다닌 회사에서 잘리고 자영업을 하다 가지고 있던 돈까지 홀랑 날려 50이 다 된 나이에 여전히 노모에게 신세를 지고 있다. 막내 박기훈(송새벽)은 한때 천재로 불렸지만 42세가 된 이날 이때까지 성공한 영화 감독이 되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으로 가득하다.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 아저씨, 둘째 박동훈(이선균)은 건축구조기술사로 그럭저럭 큰 회사의 부장이지만 욕심 한번 부린 적 없이 성실하게 살아왔으며, 아내는 자신보다 직급이 높은 대학 후배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작품은 박기훈의 입을 빌려 이 캐릭터를 이렇게 정의한다.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항상 양심 쪽으로 확 기울어 사는 인간. 최고 불쌍해.”
남들처럼 회사 내 ‘라인’을 잘 타서 일찍 승진하지도 못했다. 아주 큰 돈을 번 것도 아니다. 결혼한 이후 새로운 상대와 연애를 한 적도 없다. 하나 하나 따져보면 평범할 뿐 크게 나쁠 것도 없는 인생이지만, 단지 삶에 특별한 이벤트 하나 없이 성실하게만 살아왔다는 이유로 동훈은 쉽게 연민 받으며 불쌍한 사람의 자리에 놓인다. 그리고 <나의 아저씨>는 좀처럼 튀는 구석이라고는 없는 이 중년 남성을 주인공으로 만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는 젊은 여성 이지안(아이유)이다. 21세 지안은 평생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며 살아왔고, 빚은 갚아도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다. 편찮은 할머니를 모시고 있지만 제대로 치료해 드릴 돈은 없으며, 낮에는 계약직으로 일하고 밤에는 식당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밥 사 먹을 돈조차 없어 회사 탕비실에 비치된 믹스커피를 몰래 주머니에 숨겨와 식사를 대신한다.
지안이 동훈에게 누명을 씌우고 대표이사를 도와 동훈을 회사에서 끌어내리려 하면서 둘의 인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만, 결국 이 드라마의 중심은 평범한 중년 남성 동훈이 불쌍한 젊은 여성 지안을 구해내는 영웅 서사다. <나의 아저씨>는 동훈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기 위하여 지안의 고난을 반복해서 전시한다. 지안이 충분히 불쌍하게 보여야만 지안과 동훈이 연결되는 전개가, 평범한 중년 남성이 누군가의 구원자가 되는 전개가 부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한동안 논란이 됐던 작품 속 폭력은 미화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학적이기에 유해하다. 거의 매회 지안이 맞거나 쓰러지거나 바닥에 나뒹구는 장면이 등장한다. “네 인생은 종쳤어, 이 년아. 넌 평생 내 돈 못 갚을 거고 평생 나한테 시달리면서 이자만 갚다가 뒤질 거야.” 지안은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에게 시도 때도 없이 이런 말을 들으며 실컷 두들겨 맞고 피를 흘리며 내동댕이 쳐진다. 회사에서는 오랫동안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해 창백한 얼굴로 앉아있다 기절하듯 바닥에 쓰러진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바깥 구경을 시켜주기 위해 마트에서 카트를 훔쳐 달아나다 자전거에 부딪혀 또 쓰러진다. 드라마는 그렇게까지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폭력을 재현하여 지안을 괴롭히는 방식으로 그가 동정 받아 마땅한 이유를 증명하려 한다.
그리고, 지안을 둘러싼 폭력성은 그를 연기하는 사람이 아이유이기에 어쩔 수 없이 더욱 강화된다. 또래보다 훨씬 더 작고 마른 몸. 남성과 마주 섰을 때 덩치와 키 차이 때문에 지안이 위태로운 상황에 놓이는 장면은 더욱 아슬아슬하다. 맞아서 터진 입술, 멍든 눈가, 피투성이가 돼 버린 작은 손이 클로즈업 될 때 지안이 겪는 폭력은 보는 이들에게 훨씬 더 고통스럽게 다가온다. 이와 더불어 <나의 아저씨>는 아이유의 외모적 특징을 성애적으로 활용하기까지 한다. 추운 겨울에도 양말을 신지 않은 채 살짝 큰 운동화를 신은 발을, 동훈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해서 기습적으로 입을 맞출 때 살짝 든 까치발을, 과거 회상신에서 교복을 입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모습 등을 비춘다. 성인이지만 어린 소녀에 가까워 보이는 아이유의 외모는 극 중 동훈과 지안의 사이를 마치 키다리 아저씨와 도움 받는 불쌍한 소녀처럼 보이게 해 시청자들을 안심시키는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위험한 로맨스처럼 연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작품의 유해함은 모두 아이유의 잘못인가? 하필 이 드라마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아이유 역시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는 <나의 아저씨>가 원래 갖고 있었던 중년 남성 위주의 서사와 폭력성 안에서 실제 아이유의 캐릭터가 나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심지어 드라마는 작고 귀엽고 예쁜 소녀 같지만 절대 만만하지 않은 아이유의 캐릭터를 이용해 일종의 ‘꽃뱀’ 서사를 완성한다. 정작 남성은 불쌍한 소녀를 도와주려 했을 뿐 로맨스로 엮일 가능성을 계속해서 차단해왔는데, 어린 여성이 당돌하게 다가와 자신을 이용하려 하고 유혹하고 급기야는 먼저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를 만든다. 11회에서는 지안이 동훈과 자버릴 거라고, 안되면 “술 먹이고 약 먹여서” 자겠다고 대표이사에게 선언하는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권력을 가진 남성이 여성에게 성폭력을 저지르고, 여기저기서 ‘미투’가 터져 나오지만 그들 대부분이 ‘꽃뱀’으로 몰리는 현실에서,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과연 현실과 픽션의 거리가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을까? <나의 아저씨>는 중년 남성의 영웅 심리를 응원 하는데다 젊은 여성과의 로맨스라는 판타지를 채워주면서 그들을 변명해주기까지 하고 있다. 제작진은 <나의 아저씨>의 기획 의도가 공감과 힐링이라고 밝혔다. 그것이 모두의 공감이나 모두를 위한 힐링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 에디터
- 글 / 황효진(칼럼니스트)
- 사진
- tvN <나의 아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