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영화 <레토>로 벼락같이 등장한 배우 유태오는 고향을 찾지 않는다. 쾰른, 뉴욕, 런던, 서울, 상트페테르부르크, 단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는다.
오늘 밤은 쌀쌀하네요. 꽤 오래 걸었어요. 전 좋아요. 더티 비치스의 ‘Lord Knows Best’가 흘러나온다고 생각하면서 걸었죠.
이 시간쯤엔 보통 뭘 해요? 영화 보고 책 보다 자요. 요즘엔 출국을 앞두고 있어서 실감이 안 나는 상태라 잠이 잘 안 오네요. 인터뷰 준비도 하고 경쟁작 파악도 하고. 러시아 영화인데 배급사는 프랑스 쪽이라 여러 국가가 걸쳐져 있어 열심히 준비 중이에요.
록스타 ‘빅토르 최’를 연기한 러시아 영화 <레토>로 칸 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어요. 한국에선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어요. 저도 그래요. 완전히 압도됐죠.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이 푸틴 정부에 반정부 성향으로 낙인이 찍혔죠. 극장 공금 횡령 혐의로 가택 구금돼 칸에 같이 못 간다고요. 문화적 억압이라고 볼 수 있는 안타까운 일이에요. 감독님이 촬영 5회 차를 남겨두고 체포돼 구금됐을 땐 닭의 목이 잘린 기분이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절망스러웠죠. 영화가 완성되지 못하겠구나. 15년간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또 무명으로 돌아가겠구나, 우주가 또 내 기회를, 희망을 훔치는구나.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요? 일단은 혼자서 울었죠. 둘째 날엔 혼자 흰 장미를 사들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빅토르 최의 묘지를 찾아갔어요. 기도하고, 희망을 빌고, 멍하니 있다가 돌아왔어요. 저녁에 팀원들과 만나서 술을 마시며 마음을 다잡았죠. 감독님이 빅토르 최처럼 저항의 상징이 되었으니, 우리가 더 잘 해내야 한다고.
감독 없는 현장에선 어떻게 연기했나요? 이전에 리허설을 많이 했고, 감독님을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어요. 현장에선 이렇게 말했죠. “지금 내가 내 머릿속에서 키릴이랑 싸우고 있어.” 하하하. 그렇게 5회 차를 마저 찍었어요.
자작곡을 연주하는 영상을 보낸 후 오디션을 봤고, 2천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빅토르 최’ 역할을 따냈죠? 오디션을 볼 때 감독님께 그런 얘길 했어요. 빅토르는 저항의 상징이고 강한 인물이지만, 제가 본 그는 외로운 시인 같다고. 그의 음악에선 어떤 ‘멜랑콜리’가 느껴지고, 그걸 표현하고 싶어서 음악을 했을 거라고. 그랬더니 감독님이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야”라고 했죠. 사실 그건 저를 설명한 말이기도 했어요. 빅토르 최의 음악을 듣고 동질감을 느꼈어요. 감독님은 빅토르와 영혼이 닮은 사람을 찾고 있었다고 해요. 운명이었던 거죠.
유태오도 독일에서 나고 자란 교포라는 점에서 닮은 점이 있을까요? 맞아요. 주변과 다르게 생긴 얼굴로 자랐다는 거. 제가 나고 자란 쾰른엔 동양인이 거의 없어요. 런던과 뉴욕을 거쳐 한국에서 지냈지만 전 어디에서나 이방인이었어요. 해외에서 저는 그냥 외국인, 한국인이었는데, 한국에서는 또 교포라고 불리죠. 어느 쪽이든 선입견을 갖고 대하고요. 소속감 없이 떠돌아다니는 공허함, 불안한 정체성 때문에 고독하고, 그걸 토해내려고 어쩔 수 없이 쓰게 되는 거예요. 시든, 음악이든.
빅토르 최의 음악 중 가장 마음에 든 곡은 뭐예요? ‘나무’요. 들어볼래요? “나는 나의 나무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난 그의 곁에 있을 것이다, 난 나무를 심었다….” 처음엔 듣고 울었어요. 마치 자신의 때 이른 죽음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한 가사죠. 하지만 연기를 할 땐 비관적인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어요.
러시아어는 처음 배운 거죠? 모르는 나라의 언어로 연기하는 건 어땠나요? 전혀 몰랐죠. 러시아 시나리오와 영어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영어 번역이 엉망이라 제가 제3의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했어요. 구글 번역기에 영어와 독일어와 한국어를 동원해 발음 표기를 하고 한 음절씩 끊어서 백 번씩은 발음 연습을 하면서 죽도록 연습했죠.
노래하는 건 더 어려웠죠? 총 아홉 곡의 노래를 했는데, 촬영 2회 차 때 공연장의 수백 명 앞에서 노래한 게 최고로 긴장됐고 무서웠어요. 전설적인 가수니 러시아 인구수만큼의 빅토르 최에 대한 해석이 있을 거 아니에요? 관중과 기 싸움을 하는 기분이었죠. 하지만 저와 감독님의 해석을 믿고 갔어요. 압박이 컸지만 노래로 이해하면 언어가 조금은 쉽게 다가왔어요.
9년 전 한국에 왔을 때도 시를 외우며 한국어를 익혔다고요. 영국 로열연극아카데미에서 셰익스피어를 공부할 때도 소네트를 먼저 배웠어요. 시는 어떤 나라의 언어를 익힐 때 감수성을 이해하는 첫 단계라고 생각해요. 그때 외운 시는 나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의 시예요. “지나가버린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다웠다. 잠깐이라도 이 낯선 집 추녀 밑에 서서 우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어느 쪽으로든 낯선 곳에서의 고독과 닿아 있네요. 요즘 스스로에 대해 전보다 많이 알아가고 있는데, 예전엔 몰랐지만 어릴 때부터 삶이 참 공허했단 걸 느껴요. 부모님이든 친구든 남들이 주는 사랑과 내가 받고 싶은 사랑이 달랐던 것 같아요. 항상 갈증이 있었죠. 그렇다고 부모님이 제가 하고 싶은 걸 딱히 반대를 한 건 아닌데, 단지 그런 거예요. 재독 한인 광부, 간호사 사회라는 문화 안에서 나올 수 있는 섬세함은 한계가 있잖아요. 2세로 태어난 이상한 놈이 저기까지 간다고 하면, 거기까진 이해해주지 못하는 한계점이 있었어요.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죠.
독일 한인 사회에서 2세가 살아가는 일반적 궤적에서 벗어난 사람이었군요. 그랬죠. 제가 알기론 유럽 국가 교포 출신인 한국 배우 자체가 거의 없어요.
스무 살 이후엔 뉴욕과 런던에서 지내다 한국에 왔어요. <서울 서칭>부터 할리우드 영화 <이퀄스>, 베트남 영화 <비트코인을 잡아라>, 태국 영화 <더 모먼트>, 중국과 인도네시아 합작 영화 <몽심발리> 등 국제적인 필모그라피를 쌓고 있죠. 어떤 궤도에서도 조금씩 이탈하는 길을 걸어왔네요. 제 정체성 자체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흑과 백 사이 회색 같아요. 결과적으로 흥미로운 필모그라피를 갖게 됐지만, 사실 그건 그냥 닥치는 대로 한 거예요. 직접 찾아다니면서 현지의 프로덕션과 일했죠. 현실적으로 저는 유명한 배우가 아니었으니까요.
9년 전 <여배우들>에서 여배우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던 ‘에밀’은 파릇하고 새로웠는데, 그 뒤로 한동안 한국 작품에서 볼 수 없었어요. 한국에서는 저를 교포로만 봐서 한정적인 배역만 들어왔어요. 다른 역할도 해낼 수 있는 팔레트가 있는데 계속 흰색 배역만 주는 거죠. 반대로 해외에서는 저를 한국 배우로만 봐요. 같은 한국에서도 경상도 사람을 보는 시각이 있고, 서울 사람을 보는 시각이 있잖아요. 전 그런 프레임을 통해 사람을 정의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고향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믿지 않아요.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와 외부에서 보는 이미지 사이엔 갭이 있고 나라는 사람은 관계 속에 있으니, 상대를 존중하면서 내 것도 잃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요. 내 정체성, 타인을 이해하는 것, 소통에 대해서 섬세해지려는 거죠.
섬세해진다는 표현이 좋네요. 좋아하는 말이에요. 요즘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슈들도 대개 섬세하지 않아서 발생하는 일들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좀 섬세해질 필요가 있어요.
좋아하는 말과 닮아 있는 사람 같습니다. 곡을 쓰고, 시를 쓰고, 동화 <양말 괴물 테오>를 쓰기도 했어요. 어릴 적부터 소통을 못하던 답답함을 상상으로 풀어내길 좋아했어요. 양말은 항상 한 짝만 없어지니 그것만 먹는 괴물이 있지 않을까? 목화밭에서 대도시까지 온 테오는 엄마 아빠를 그리워해요. 교훈적인 게 아니라 슬픔도 있는 동화였으면 했어요. <성냥팔이 소녀> 같은 동화를 읽는 아이가 감수성이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키우는 육지거북 이름이 ‘모모’잖아요. 미하엘 엔데의 동화 <모모>에서 따온 건가요? 맞아요! <모모>는 제가 다섯 살 때 극장에서 처음 본 영화예요. 거북이는 정적인 동물이에요. 겨울잠을 자다가 4월에 깼죠. 목욕시켜주고 채소를 먹여줬어요.
그런 속도가 잘 맞나요? 네. 천천히 오래. 이제 5년 키웠는데, 우리보다 오래 살지도 몰라요.
동화만큼 미술도 좋아하죠? 단편 <티비 첼로>에선 백남준을 연기한 적도 있고요. 좋아하는 작가는요?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요. 시계 두 개의 변화를 지켜보는 ‘완벽한 연인들’을 좋아해요. 같은 시계라 해도 두 시계의 시간은 서서히 변해가죠. 프란시스 알리스의 행위 예술도 좋아요. 큰 얼음덩이를 밀고 가는데, 나중엔 점점 작아져서 발로 차고 가요. 그 얼음이 다 사라질 때까지요.
빅토르 최의 ‘나무’처럼 결국엔 사라지는 것들을 사랑하네요. 결국엔 그렇네요.
한 시절은 지나갔고, 이젠 배우로서 새로운 국면에 돌입했어요. 이전보다 많은 기회가 생길 텐데 어떤 걸 해 보고 싶나요? 싸이파이 미드 <블랙미러> 같은 믹스 장르에 관심이 많아요. 하지만 미래의 일은 알 수가 없죠. 결국 근육이 어디까지 늘어날까의 문제예요. ‘빅토르 최’도 절대 못 하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해 찢어질 듯이 늘려놓은 거니까. 부딪혀봐야 아는 것 같아요. 살아봐야 아는 거죠.
- 에디터
- 이예지
- 포토그래퍼
- 곽기곤
- 스타일리스트
- 박태일
- 헤어 & 메이크업
- 주우정 at Kalama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