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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는 틀렸다?

2018.07.15GQ

테슬라, 그 시작은 창대했다. 다만.

분명 유명세 덕을 보긴 했다. 포르쉐나 람보르기니처럼 차 때문에 유명해진 사람은 있어도, 사람 때문에 차가 유명해진 경우는 드물다. 일론 머스크가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시끌벅적했던 건 “뭔가 다르지 않을까?”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페이팔로 돈과 명성을 거머쥐고, 민간 우주선 사업에 뛰어들어 화성에 식민지를 세우겠다는 사람이었다.

2008년, 일론 머스크는 첫 차 로드스터로 바람을 잡는 데 성공했다. 아직 자체 플랫폼이 없어 로터스 엘리스의 플랫폼을 빌려 만들긴 했지만, 전기차라는 상징성과 그의 이름에 부족함이 없었다. 한 세기 넘게 차를 만들어온 회사도 긴장할 만했다. 물론 테슬라가 처음은 아니었다. 전기차의 잠재력은 여러 자동차 회사가 오래전부터 간파하고 있었다.

닛산이 2010년에 전기차 리프를 출시해 미국에서 제법 성공하긴 했으나 짧은 주행거리와 부족한 힘은 내연기관 차 앞에서 아직 골프장 전동 카트 수준이었다. ‘0’에서 시작해야 하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문제와 ‘과연 팔릴까?’ 하는 의구심 때문에 서로 눈치만 보고 있던 상황에서 테슬라가 불쑥 나타난 것이다.

테슬라는 모델 S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판을 벌였다. 대량 판매보다는 ‘맛보기’에 가까웠던 전작 로드스터와는 달리 실용적인 5인승 세단이었다. 주행거리가 350킬로미터를 넘는 데다 초반 가속력은 내연기관차의 멱살을 잡았다. 배터리 양을 늘리고 고성능 모터를 탑재한 파생 모델도 속속 등장했다. 모델 S에 실은 ‘오토 파일럿’ 시스템은 자율 주행 시대를 한껏 앞당겼다는 극찬을 받았다. ‘자동차 산업의 무게 중심이 이렇게 쉽게 넘어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테슬라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뜨거워졌다.

일론 머스크는 전기차를 널리 보급하는 게 우리 세대의 임무라며 테슬라가 보유한 특허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전기차가 널리 보급될 수만 있다면 어떤 경쟁자의 등장도 환영한다는 자신감, 볼보가 3점식 안전벨트의 독점 사용권을 포기해 많은 사람을 구한 것처럼 선구자라는 자긍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일론 머스크가 특별한 사람인 건 분명하다. 적어도 ‘기업인’으로서는.

이제 테슬라의 자동차에서 일론 머스크를 지우고 생각해볼 때가 됐다. 그를 이야기 할때마다 지겹도록 등장한 ‘혁신’이라는 단어가 자동차마저 예쁘게 포장한 건 아닌가? 기름이 아닌 전기로만 움직이는 차가 등장했다는 건 분명 굵직한 사건이지만, 테슬라를 ‘현대적인 자동차’라는 좁은 범주로 한정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모델 S의 이곳저곳을 뜯어보면 의심은 확신이 된다. 도어와 도어 사이를 지나는 크롬 장식은 어긋나 있고, 범퍼와 펜더의 단차는 널뛰기를 한다. 보닛이나 도어의 접합부 등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곳의 만듦새는 엉성하다. 중국 자동차 업체인 북기은상의 SUV 켄보 600 이후 처음 보는 완성도였다. 물론 조립 품질이 차를 달리고 멈추게 하는 데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니다. 벌어진 틈으로 들어오는 공기 때문에 풍절음이 커지고, 꼼꼼하지 못한 접합으로 인해 잡소리가 날 확률이 많은 정도다.

문제는 켄보 600의 가격은 약 2천만원, 모델 S는 1억이 훌쩍 넘는 차라는 사실이다. 플라스틱으로 도배한 인테리어도 가격을 고려하면 납득할 수 없다. 기어와 와이퍼 레버, 윈도 버튼은 엉뚱하게도 메르세데스-벤츠의 부품이다. 다른 회사에서 만든 엔진이나 변속기를 사서 쓰거나 함께 개발해 공유하는 경우는 많아도 겉으로 드러나는 부품까지 다른 회사의 것을 사용하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브랜드의 자존심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작은 부품이라도 제작 과정을 없애면 생산 비용을 절감할 수 있지만 ‘우주 명차’가 등장한 것 같았던 떠들썩한 데뷔를 생각하면 김이 빠진다.

테슬라는 모델 S를 출시한 지 3년 만에 SUV인 모델 X를 내놨다. 2017년엔 가격을 낮춘 보급형 전기차이자 ‘한 방’을 걸고 있는 모델 3를 출시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작 생산 차질로 출고는 지지부진하다. 테슬라는 차를 만들기 전 선주문 계약금을 받아 개발 및 생산 자금을 충당하는데, 모델 3 주문자 다수가 돈을 맡기고 1년째 기다리는 중이다.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는 세계 곳곳에 공장을 지어 가까운 지역의 수요를 소화하는데, 테슬라가 보유한 공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프리몬트 공장 한 곳뿐이다. 신생 자동차 브랜드가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판매 대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보급형 전기차 모델 3 생산을 계획했다면 공장의 생산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수요를 감당할 수 있을지 현실적인 계획을 세워야 했다. 테슬라는 이미 약 43만 대의 사전 계약을 받아놓고 공장 생산 차질 이야기만 반복하고 있다. 원인을 공장의 지나친 자동화라고 하든, 배터리 확보 문제라고 둘러대든, 결과적으로 신차 개발 단계부터 꼬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자금 수급을 위해 다급히 신차 계획을 늘어놨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앞으로의 출시 일정도 촘촘하다 못해 빽빽하다. 2019년에는 준중형 크로스오버인 모델 Y와 전기 트럭 세미를, 2020년엔 로드스터 2세대를 출시할 예정이다. 약 2년 안에 서로 다른 세 가지 장르의 자동차 개발을 완료하고 판매한다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은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일론 머스크의 앞에는 ‘혁신’만큼이나 ‘허슬’이라는 수식어도 함께 붙어 다녔다.

물론 그가 아무 대책 없이 ‘자동차판’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전기차 가격의 반 정도는 배터리 값이다. 테슬라의 배터리는 파나소닉이 공급했는데, 아예 파나소닉과 함께 네바다에 ‘기가팩토리’를 지어 리튬 이온 2차 전지를 직접 생산한다. 전 세계 배터리 생산량을 합친 것과 비슷한 양을 기가팩토리에서 생산할 수 있다. 배터리 공급량을 늘려 평균 가격을 낮추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기존 자동차 제조사도 홈런 맞은 투수처럼 넋 놓고 있진 않았다. 쉐보레는 LG 화학의 배터리를 넣은 전기차 볼트(Bolt) EV를 만들었다. 체급과 주행 성능에서 모델 S와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가격은 모델 S의 절반도 되지 않고 주행거리는 381킬로미터로 테슬라 모델 S(90D)보다 멀리 간다. 1년 뒤 나온 현대의 코나 일렉트릭은 406킬로미터를 달린다. 주행거리 378킬로미터의 1억짜리 차 모델 S든, 350킬로미터의 4천만원짜리 차 모델 3든, 다양해진 경쟁자들 앞에서 여전히 매력적인 자동차인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독일 3사(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는 아직 나서지도 않았다. 담금질이 끝나지 않았는지 뜸을 들이고 있지만, 모터쇼에 전기 콘셉트카를 계속 들고 나오고 있다. 당장 내일 전기차를 내놓는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다. 독일차의 뛰어난 조립 품질과 오랫동안 쌓아온 브랜드 가치를 테슬라가 당해내긴 쉽지 않다. 테슬라가 자랑하던 자율주행 기술도 이젠 독보적이지 않다. 여전히 최고 수준인 것은 맞지만 경쟁자들이 추격을 멈추지 않고 있다. 볼보는 자동차 1백 대로 시행한 시내 자율주행 테스트에 성공했고, BMW는 국내에서 SKT, 에릭슨과 함께 5G망을 이용한 자율주행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랜드로버는 오프로드에서의 자율주행까지 시도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테슬라의 ‘오토 파일럿’을 켜고 달리던 중 사고라도 나면 유난히 크게 보도된다. 사람이 운전하다가 나는 사고의 빈도와 비교하면 매우 적은 횟수지만 ‘개척자’라는 이름이 부담과 책임이 되어 돌아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전기차에 대한 기대치를 훌쩍 올려놓은 것은 분명 테슬라의 공이다. 다른 브랜드의 전기차 개발을 선동한 것도 테슬라의 업적이다. 하지만 자동차는 부동산 다음으로 큰 돈을 들여야 하는 재산이자 내부에 사람을 품는 기계다. 이동 수단에 그치는 시대는 훌쩍 지났다. 그동안 드러난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 후속 모델 찍어내기에 급급하다면 테슬라는 도태되어도 할 말이 없다.

딜러가 없고, 할인도 없으며 광고도 하지 않는 테슬라의 전략은 존중할 만하다. 기존 자동차 회사와는 다른 방식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러나 지금 테슬라가 욕심내야 하는 건 마케팅 혁신이 아니라 가격에 걸맞은 차를 만들고, 대중에게서 믿음을 얻어내는 일이다. 전기를 먹고 빠르다는 것만으론 더 이상 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 그때는 맞았겠지만, 지금은 틀리다. 에디터 / 이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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