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K리그는 억울하다

2018.09.11GQ

K리그가 문제 투성이라는 것은 한국 사람이라면 다 안다. 누구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지만 하여튼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K리그로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다.

K리그는 미운 오리 새끼다. 한국 축구를 위해 필요하긴 한데 그렇다고 대중의 사랑을 받지도 못한다. 박지성과 손흥민 등 K리그에서 뛰지 않고도 유럽 무대로 날아가 펄펄 나는 선수들을 봐 온 이들은 이렇게 특정 선수 몇 명만 잘 키워 유럽으로 보내는 편이 한국 축구를 위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늘 K리그는 흥행과 관중이라는 단어보다는 ‘썰렁한’, ‘그들만의’, ‘외면받는’ 등의 말이 더 잘 어울렸다. K리그에 대한 인식은 변해야 하고 K리그도 변해야 한다.

자국 리그의 발전 없이 대표팀이 성적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 반대로 얘기해볼까. 자국 리그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지성, 손흥민처럼 유럽으로 날아가 경쟁력을 발휘하는 선수들이 더 늘어날까. 어린 나이에 이승우나 이강인처럼 명문 유소년팀에서 뛰는 선수가 지금보다 많아질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한국 축구의 돌연변이들이다. 유소년 시스템에서 엄청난 경쟁을 뚫어낸 천재 중의 천재다. 자국 리그를 없애고 선진 축구를 경험시키는 것으로 천재를 키워낼 수는 없다.

박지성이나 손흥민, 혹은 이승우나 이강인 같은 선수들이 더 많이 나오려면 역설적이게도 자국 리그가 더 강해야 한다. 이제 한국 축구는 학원 축구 시스템에서 클럽 축구 시스템으로 넘어갔다. 전통 있는 학원 축구 대회에도 사립 축구 클럽이 참가한다. 기존 학교 축구부는 이제 K리그 구단 산하 유소년팀이 돼 이름만 ‘XX고등학교’로 쓰고 있다. 학업만 학교에서 관리할 뿐 어린 나이부터 K리그에서 육성한다는 의미다. 협회와 연맹이 스포츠토토 기금을 받아 이걸 각 구단에 배분하고 구단은 유소년 육성에 쓴다. K리그가 사라지고 이 시스템이 깨지면 제아무리 천재라도 경기에 뛸 수 없다.

K리그는 최근 들어 의미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준프로 계약 제도다. 기존 K리그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해야 프로에 입성할 기회를 줬지만 준프로 계약 제도 도입으로 많은 게 달라졌다. 이제는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K리그 구단 산하 유소년 선수도 준프로 계약을 체결한 뒤 K리그 경기에 나설 수 있다. 수원삼성 유소년팀인 매탄고등학교 3학년 골키퍼 박지민은 K리그 최초의 준프로 계약을 체결한 선수로 지금 매탄고와 수원삼성을 오가며 훈련 중이다. 고등학교 3학년생이 훈련장에서 데얀과 염기훈의 슈팅을 막으며 실력을 키우는 중이다. 전북현대와의 빅매치에 나서지는 못했어도 엔트리에 들어 벤치에 앉아 있었다.

K리그는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낼 수 없다. 하지만 박지민의 사례에서 보듯 K리그는 한국 축구의 근간이자 희망이다. 박지성이나 손흥민처럼 K리그를 거치지 않고 슈퍼스타가 된 이들도 있지만 K리그에서 경험을 쌓고 이를 바탕으로 더 큰 무대에 진출한 이가 훨씬 더 많다. 기성용과 이청용이 그랬고 권창훈과 이재성도 도전 중이다. 미울 때도 있고 화가 날 때도 있지만 K리그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지금도 K리그에는 권창훈과 이재성이 되고 싶어 땀 흘리는 이가 수두룩하다. 실패하는 선수가 훨씬 더 많지만 도전하는 선수의 수가 늘어날수록 성공하는 선수의 숫자도 늘어난다.

최근 끝난 2018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은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모든 선수가 다 제 몫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주세종과 윤영선의 활약을 잊을 수 없다. 얼마 전 인터뷰를 위해 경찰대학에서 만난 주세종은 아직도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신병이었다. 윤영선은 상주상무를 제대한 뒤 K리그2 성남FC로 복귀한 선수다. 이 둘 모두 K리그2에서 뛴다. K리그1도 관중과 관심이 부족한데 K리그2는 그 누구도 관심이 없다. 취재하러 가면 취재진이 아예 없을 때도 많다. 독일을 2-0으로 격파한 게 놀라운 이유는 이 2부 리거들이 전 세계인이 보는 무대에서 피파 랭킹 1위에 맞섰기 때문이다.

독일전에서 주세종은 노이어를 앞에 두고 손흥민에게 기가 막힌 어시스트를 했다. 윤영선은 세계 최강이라는 독일 공격수들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다시 독일과 격돌하면 또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한국의 2부 리그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낄 필요는 있다. 월드컵 무대에서 한국 선수들이 정말 자랑스러웠던 건 평균 관중 4만 명의 멕시코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과 비교해 평균 관중 2천 명대의 K리그2 선수들이 전혀 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런 점만 놓고 보면 한국은 불가능한 도전에 나선 셈이다.

하지만 K리그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매일 언론에 쏟아져 나오는 것처럼 고쳐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중계도 늘어나야 하고 언론의 관심도 부족하다. 지도자의 수준도 더 높아져야 한다. 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가장 반성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시도민구단의 정치색에 관한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K리그의 발전은 요원하다. 과거에는 기업구단이 더 많아 시도민구단이 특별해 보였지만 이제는 오히려 시도민구단이 보편적이다. 그런데 이 시도민구단 중 내부적으로 홍역을 앓지 않는 구단을 찾아보기 어렵다.

영화 <더 킹>의 한 장면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검사들이 무속신앙에 기대 선거 결과를 점치는 장면이다. 정우성은 무속인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시험 답안을 미리 받아든 듯 외친다. “대중이래, 대중이.” 권력 앞에서 한없이 우스꽝스러워지는 엘리트들의 모습에서 K리그가 생각났다. 시도민구단은 정치적인 영향력 아래 있다. 시장이나 도지사로 당선되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단주가 된다. 시도민구단은 낙하산 인사와 보은 인사, 또는 보복 인사를 실행하는 곳이 된다.

얼마 전 만난 한 시도민구단 관계자는 이런 말을 했다. “시장이 바뀔 거야. 그러면 위태로운 사람 많지.” 또 다른 한 시도민구단 관계자는 “구단주가 대표이사를 자르고 싶은데 그러면 자기 과오가 드러나니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고 했다. 시도민구단을 출입하다 보면 늘 듣는 이야기다. 선거 결과에 따라 구단주의 정치색이 달라지면 구단에 칼바람이 분다. 저 사람은 반대쪽 사람이니 목을 치고 이 사람은 나한테 해준 게 있으니 꽂아주는 식이다. 구단 임원만이 아니라 정치적 입장에 따라 감독 목이 날아가기도 한다.

먼저 시장과 도지사가 구단주로 임명되는 법률을 뜯어 고쳐야 한다. 하지만 법률이 바뀌더라도 시장과 도지사가 구단주를 임명한다면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감시자가 많아지는 수밖에 없다. 언론에서 감시하고 팬들이 감시해야 한다. 한 구단은 최근 들어 대표와 결탁해 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던 감독을 팬들의 요구로 내보냈다. 그렇다고 이 구단이 완전히 깨끗해진 건 아니지만 자꾸 주변에서 목소리를 내고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면 조금씩 변하는 건 분명하다. 보는 눈이 많아지면,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구단을 운영할 수 없다.

시도민구단의 탄생은 K리그에 대단히 큰 변화였다. 기업 위주로 운영되던 프로 스포츠에 시민과 도민의 힘으로 운영되는 구단이 등장한 건 충격적으로 긍정적인 일이었다. 시도민구단이 K리그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는 양상은 그리 희망적이지만은 않다. 양적인 팽창에는 기여했을지언정 질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축구가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진 리더를 내세운 집단에서, 이것은 피할 수 없는 결과였다. 시도민구단이 처음 탄생했을 때 꿨던 원대한 꿈은 어느덧 흐릿해졌다.

K리그는 갈 길이 멀다. 문제점은 산적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대로 포기하면 한국 축구 전체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미운 오리 새끼 취급 받고 있지만 결국에는 이런 K리그가 있어 지금까지 한국 축구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K리그도 변해야 하지만 대중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K리그 없는 한국 축구는 있을 수 없다. 자꾸 K리그를 밀어내려 하지 말고 그 안에 있는 문제점을 찾아내고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언젠가 박지민이 유명한 골키퍼로 성장해 유럽 무대로 날아간다면 그를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선수를 체계적으로 육성해내고 있는 건 결국 늘 욕을 먹는 K리그다. 글 / 김현회(스포츠 칼럼니스트)

    에디터
    정우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