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메스의 멘즈 실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크리스토프 고누 Christophe Goineau는 이 세상 모든 남자에게 실크 스카프와 타이를 권한다.
에르메스의 실크 타이나 스카프는 다른 브랜드의 제품과 어떻게 다른가? 소재, 색깔, 디자인, 모두 중요하지만 제품의 완성도는 디테일에서 판가름이 난다. 그래서 마감이나 끝단 같은 세부를 더 꼼꼼히 체크한다. 럭셔리는 결국 디테일 싸움이다. 첫눈엔 차이를 알아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쓰다 보면 자연스레 알게 된다. 그런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과 만족감이 에르메스의 실크를 더 특별하게 만든다.
어떤 실크를 사용하나? 가죽처럼 상위 1퍼센트, 최상질의 실크만을 사용한다. 브라질이나 중국에서 만든 실크를 주로 쓰는데, 섬유가 길고 품질이 우수하기 때문이다. 감촉도 부드럽고 색깔 또한 선명하게 잘 살아난다.
실크 제품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뭔가? 컬러. 실크만을 위한 별도의 색상 전문가를 두고 있을 만큼 컬러에 공을 들인다. 스카프와 타이를 만드는 리옹 아틀리에에서 열 명 남짓한 컬러리스트가 색깔을 연구한다. 단순히 컴퓨터로 색을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실크 위에 직접 프린팅을 하고 발색을 시험한다. 어떨 때는 스카프 한 장을 위해 서른 장이 넘는 샘플을 만들기도 한다. 또 매주 색상위원회를 소집해 컬러 회의도 한다.
지금까지 만든 스카프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뭔가? 다이스케 노무라가 디자인한 해골과 말 뼈다귀 스카프. 그가 이 디자인을 처음 가져왔을 땐 너무 파격적이라 실제로 상품화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에르 알렉시 뒤마는 이 디자인을 굉장히 좋아했고, 결국 이 스카프엔 ‘C’est la Fete’라는 이름이 붙었다. 시닥시옹 Sidaction이라는 에이즈 퇴치 협회를 위해 만든 타이도 있다. 타이 안쪽에 콘돔을 넣을 수 있도록 작은 포켓을 단 디자인이었는데, 반응이 꽤 좋았다.
기억난다. 에르메스치곤 꽤 파격적인 디자인이었으니까. 모두가 에르메스를 점잖고 전통적인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가끔씩 나조차 놀랄 만큼 과감할 때가 있다.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좋아한다. 사람들 생각보다 훨씬 개방적이고 역동적이다. 에르메스에서 일을 하다 보면 역사와 전통, 동시대적인 감각과 열린 사고가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실크 스카프나 타이에도 트렌드가 있나? 유행하는 컬러나 가공법은 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는다.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이 반드시 더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런 디자인은 유행이 끝나면 생명력을 잃는다. 그건 에르메스의 방식이 아니다. 자신의 언어와 문법을 갖는 게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실크를 여성적인 소재라고 생각한다. 남자의 실크는 여자의 실크와 어떻게 다른가? 이건 매번 내가 스스로에게 하는 질문이다. 새로운 스카프 디자인이 나오면 “이 스카프를 여성 라인에서도 판매할 수 있을까?” 자문해본다. 그렇다면, 남성 컬렉션에는 넣지 않는다. 남자의 실크는 여자의 실크와 달라야 하니까. 그 차이를 분명하게 만드는 것이 내 일이다. 일단 컬러부터 차이가 난다. 여자 스카프는 한 장에 40가지 컬러를 넣을 수도 있지만, 남자 스카프에 쓰는 색은 좀 더 한정적이다. 반짝이는 텍스처를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브러시 가공으로 광택을 누르거나, 캐시미어. 면, 리넨과 혼방하는 경우도 많다. 크기도 다르다. 얼마 전엔 남자 스카프 사이즈를 90센티미터에서 1미터로 키웠다. 남자들이 매듭을 짓지 않고도 스카프를 두를 수 있도록.
남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스카프 스타일링 팁이 있나? 스카프를 잘 매는 남자는 사실 별로 없다. 그래서 몇 년 전엔 다양한 스타일링을 보여주기 위해 실크 하우스 웹사이트를 만들었다. 여기엔 남자들도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실용적인 팁이 굉장히 많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방식은 매듭을 짓지 않고 자연스럽게 두르는 것이다. 그러면 훨씬 쿨하고 캐주얼해 보인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스카프를 어색해 하지 않고 자신 있게 매는 거다.
실크 믹스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남자들에게 실크를 좀 더 재미있고 친근하게 소개하고 싶었다. 베로니크 니시니앙과 예전부터 스카프 프린트로 레코드를 만들면 예쁠 것 같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아이디어를 발전시킨 것이 이번 실크 믹스다. 음악을 들으면 그 노래를 처음 접했을 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처럼, 에르메스 스카프와 타이도 추억을 연상시키는 매개체가 됐으면 좋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여기 있는 음반 중에서 좋아하는 노래를 몇 개만 추천해줄 수 있나? 커 클루드 Camp Claude. 지난 시즌 쇼 배경 음악으로 깔렸던 렝페하트히스 L’Impératrice나 오늘 저녁에 공연할 프랑스 밴드 트리스테스 콩템포렌느 Tristesse Contemporaine도 좋다.
요즘 자주 듣는 노래는 뭔가? 1980년대 음악을 많이 듣는다. 디페쉬 모드는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고, 펑크나 블랙 뮤직도 좋아한다. 이번 여름엔 내내 밥 말리를 들었다.
실크 스카프 프린트와 타이를 좀 더 재미있게 보여줄 방법은 없을까? 이런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에르메스 실크 믹스가 로마와 마드리드를 거쳐 지난 9월 17일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에 오픈했다. 스카프 프린트를 활용한 LP 케이스와 타이 디자인의 카세트테이프로 채운 에르메스식 레코드 스토어. LP에는 지난 8년 동안 남성복 컬렉션에서 쓰인 음악을, 테이프에는 올해 발매된 트랙을 담았다. 방문객들은 원하는 레코드 판을 골라 노래를 들어볼 수도 있었다. 저녁엔 트리스테스 콩템포렌느와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이 이어졌다. 노래가 실크처럼 부드럽게 들렸다.
- 에디터
- 윤웅희
- 포토그래퍼
-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