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무엘은 지난 9월 발표한 앨범 <Unity>를 뒤로하고, 모든 대화에서 내년에 나올 3집에 대해 말했다. 아직 2019년을 말하기는 이른 시점이다. 그는 3집을 만들기 위해 지금까지 달려온 사람처럼 보였다.
한 인터뷰에서 새 앨범이 갈색일 거라고 했어요. 내년에 나올 3집 얘기였어요. <Unity>는 갈색 이전에 초록색이죠. 그동안 고민이 많았어요. “네가 뭘 하고 싶던 지금은 타협할 시기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러는데 미쳐버리겠더라고요. 이미 편한 음악 많은데, 내가 한 다리 걸친다고?, 이게 무슨 공식인가? 했죠. 하지만 얼마 전 케니 샤프를 만나고 확신이 생겼어요. “룰은 부수라고 있는 것”이라고 했거든요. 처음으로 그렇게 얘기해준 성공한 아티스트였어요. <Unity>는 3집 이전에 내려놓는 작업이었달까.
근데 왜 초록색인가요? 나무를 생각했어요. 이게 나뭇잎이고, 화합이라면 3집에서는 뿌리로 가겠다. 저는 혼자 하는 것에 만족감을 느껴왔어요. 혼자 만든 소리일수록 제 가사가 더 잘 전달될 거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Unity>에서는 연주자들에게 그걸 위임하고, 3집 이전에 하나의 실험을 한 거죠.
3집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딱 내가 듣고 싶은 것만 가지고 앨범을 만들면 어디까지 가나, 얼마나 퍼지나 실험해보고 싶었어요. 저한테는 3집이 되게 큰 게, 3집부터 좋아하는 밴드가 된 경우가 많아요.
제일 좋아한다는 마릴린 맨슨도요? 그 사람은 예외고요. 하하. 슬립낫 3집을 진짜 좋아해요. 대개 1집은 데모 성격이 짙고, 2집은 3집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같아요. 3집부터 한결같은, 예측 가능한 음악이 나오는데 그게 너무 좋아요. 20대 마지막 앨범이니까, 3집은 기록으로서도 중요해요. 철저히 ‘나’로 3집을 만들면 4집부터는 좀 더 넓어지겠죠.
3집이 끝나면 다른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현재 작업의 윤곽이 어느 정도 나오면 다음을 항상 염두에 둬요. 4집은 더 막 나갈 거예요. 대중성이 없으면 성공적이지 못한 음악인이라는 시각에 부정적이에요. 여기가 다양성이 존중받지 못하는 문화라는 뜻이죠. 다양성이 커지는 게 한국이 더 재밌어지는 길인 것 같고, 그런 책임감 때문에라도 더 엇나가고 싶어요.
하지만 <Unity>는 굉장히 정제돼 있었고, 저는 서사무엘이 여기까지 너무 빨리 오지 않았나 했죠. 그건 음반이라기보다 하나의 움직임이었어요. 늘 예산 때문에 그렇게 많은 연주자를 부르기가 어려웠는데, 상상마당이라는 좋은 곳에서 투자가 들어왔거든요. 돈 있을 때 해야죠. 하하.
그럼 이 앨범에 외전 이상의 의미는 없나요? 연주자가 빛을 보는 음악 신이었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어요. 그들 각자의 음악이 있는데 가사가 없다는 이유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아쉬웠어요. 이런 훌륭한 연주자들이 있다는 단서를 주고 싶었죠.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도 처음으로 출연했어요. <브레이커스>요. 스태프들이 어떻게 사는지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너무나 열심히 살고 있었죠. 열심히 사는 건 정말이지 멋있어요. 찍어주는 사람이 각광받아도 멋있는 신일 것 같아요.
연주자가 관심받기를 바라는 것과 비슷하네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대가를 받는 게 제 이상향이에요.
그럼 서사무엘의 세계관을 압축한 곡은, 우린 모두 고요하다고 노래하는 ‘GOYO’겠네요? 아직은 그렇죠. 나이 먹으면 더 괜찮은 걸 만들 거예요.
<브레이커스>에 출연한 서사무엘이 저는 아주 좋았어요. 음악이나 무대를 보면 프라이드가 있어 보이는데, 실제 말할 때나 가사에서는 늘 움츠러들어 있잖아요? 그게 없었거든요. 항상 그렇죠. 자존감이 낮아요. 내가 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내가 사진에서 멋있게 나왔다면 개나 소나 멋있게 나온다고요. 하지만 그 방송에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먹었어요. 거기 함께 출연했던 사람들은 얼마든지 그런 기회가 있는 사람들이지만, 저한테는 그런 기회가 흔치 않거든요. 그런데 분량도 안 나오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았어요. 공연은, 이 사람들 다 나 보러 왔는데 잠깐만 주인공 할까?, 염치 없게 한발 슬쩍 올려놓는 거예요.
그렇게 마음먹으면 된다는 것도 신기한대요. 하다 보니까 되더라고요. 옛날엔 어느 수준이었냐면. 이거 입장료가 얼마니까, 내가 이만큼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을 나한테 낸 건데 내가 여기서 해도 되나?, 이 수준까지 갔어요. 무대뿐만 아니라 알게 모르게 소리에도 묻어났죠. 더 과감해질 수 있는 부분에서 과감하게 못 했어요. 3집은 그래서 다 버렸어요. 내가 주인공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다 할 거야, 예요.
사실 잘 보이긴 했어요. 항상 부자연스럽달까. 저러지 않는다면 더 좋을 텐데, 생각했죠. 저도 알아요. 여과가 없으면 좋을 거예요. 근데 이 부자연스러운 게 난데 어떡해. 굳이 숨길 필요도 없고, 다음엔 더 나아지겠지, 라는 생각이 저겐 더 중요해요.
최선이라는 건 아는데, 그게 끝나기를, 넘어서길 바라는 거죠. <Unity>를 들으니까 더 그렇더라고요. 그렇게 하나하나 자기를 증명하듯이 하지 않아도 잘 하네? 어릴 때부터 좋은 얘기 많이 듣고 자랐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저는 딱 중학교 때까지만 좋았어요. 이후로는 지옥이었죠. 제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집단 린치를 당한 적도 있었고. 이런 게 너무 오래 가더라고요. 내려놔야지, 내려놔야지 하는데 없어지지 않는 응어리가 있어요.
줄타기 하고 있는 거죠. 서사무엘의 결코 고칠 수 없는 내면이 있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런 걸 보자고 음악을 듣거나 티브이를 켜지 않으니까.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지만 그들은 좀 더 ‘딥’한 걸 찾고요. 그걸 없앨 수는 없겠지만 그 짐짝과 함께 있어도 하나도 불편하지 않을 수는 있을 거예요. 그럼 결국 자연스러워 보이겠죠. 제 생각엔 그런 순간이 3집에 올 것 같아요.
김아일과 함께한 <Elbow>도 하나의 가능성처럼 보였어요. 저한테는 안 하던 거라서 플러스였지만 아일 형에게도 그 앨범이 플러스였을까, 생각해요.
그 앨범 역시 기존의 서사무엘과 다르면서 좋죠. 이런 것도 잘 하네? 근데 자기 앨범은 왜 고행이지? 책 쓰듯이 앨범을 만들어요. 제 앨범은 책 읽는 느낌을 받게 하고 싶지만 외부 작업은 재밌게 하고 싶다는 차이? 지금 ‘고행’이라는 단어가 나와서 속으로 3집 수록곡을 짚어봤거든요. 근데 고행이 없어요! 갑자기 아쉽네요. 옛날에는 하나도 안 기뻤거든요. “왜 이것밖에 못 하지” 했는데, 지금은 이만큼 했으니까 앞으로는 이만큼 더 재밌는 걸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어요. 그래서 결과도 기쁘고 과정도 재밌어요.
근데 지큐 디지털 영상에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앨범 안 내기”라고 했어요. 뭐죠? 앨범 안 내기는 말이 안 되죠. 앨범 내는 낙으로 사는 사람인데. 하하. 지독하게 자르셨네, 했습니다. 나중에 영화의 방식을 차용해서 음악을 발표하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극장이라는 특수한 장소에서 음악을 듣게 하고 이후에 기념품으로 음반을 내는 거죠. 음악이 너무 소비적으로 변하면서, 음악이 주는 다른 재미, 소리가 만드는 전율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아요. 음악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서 전시하는 거죠. 아니, 전시라는 말은 쓰고 싶지 않고.
흥미롭네요. 시디 한 장을 만들어서 고가에 판매하는 음악가가 더러 있었죠. 그 음악가는 음반을 미술 작품처럼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서사무엘은 음악이 미술 작품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어쨌든 전 앨범을 냅니다! 이건 40대쯤에 할 거예요.
서사무엘을 좀 오해했네요. 이렇게 공정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줄 몰랐어요. 자기 증명 욕구로 가득해 보였거든요. 틀린 말은 아니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 유독 강조됐잖아요. 그런 말만 실리더라고요. 오늘 했던 얘기, 다른 데서도 했어요. 근데 유독 그것만 다 자르시더라고요. 하하.
종종 자신이 음악가라고 불리지 않길 바란다고 말하는 건 좀 과해 보여요. 음악가라는 타이틀을 붙이기에 제가 부족하고 아직 일러요. 사는 걸 풀어내는 방법으로 음악을 쓰는 것뿐이에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 즐거운 게 음악뿐이니까. 하지만 제 음악이 완성되려면 앞으로 40년은 봐야 해요.
음악가라는 호칭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것 아니에요? 단순히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제게 음악은 그 이상이에요. 저는 뭐든 학문처럼 접근하거든요. 왜 이렇게 돼야 하는지 파고들어요. 음악 공부할 것 너무 많죠, 아무리 노력해도 제가 세계 1등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알고요. 하지만 죽기 전에 그런 말은 듣고 싶어요. 아, 이 사람은 음악가였다. 실력만으로는 안 돼요.
레이 찰스 같은 사람이 음악가라는 건가요? 네. 후대에도 명작이라고 불릴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3집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겠네요.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냈다는 것? 그거면 만족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밴드의 3집 같은 평가를 받고 싶은 것 아니에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명반을 목표로 작업했을 것 같지 않아요. 1, 2집의 경험이 쌓이면서 3집이라는 여과물이 나올 걸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 같아요. 저도 한번 경험해보고 싶어요. 이만큼 투명한 게 나왔다, 이거 하나면 돼요.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황혜정
- 스타일리스트
- 김강민
- 헤어 & 메이크엄
- 윤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