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드디어 서울에도 식물원이 생겼다. 그곳엔 수양버들이 무럭무럭 자라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물원은 생태식물원이다. 생태식물원은 식물과 식물, 식물과 사람 등 모든 생명체 간 평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곳이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마곡동로 161에 위치한 서울식물원에 도착하지마자 식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식물문화센터의 온실이었다. 그릇 형태로 만든 온실에 들어서자마자 고무나무와 마주했다. 고무나무는 나무에서 고무를 생산하기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 열대 지역에서 자라는 것은 키가 아주 크다. 그러나 온실에서 만난 고무나무는 몸집은 컸지만 가지를 자른 탓에 야생동물을 우리에서 키우는 동물원의 사자처럼 본성을 잃은 모습이었다. 누군가는 인도 보리수를 보고 석가모니가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장면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온실에서 만난 식물 대부분은 지중해와 열대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는 귀한 존재다. 부모의 손을 잡은 한 아이는 다양한 모양의 선인장을 보면서 “엄마, 저 선인장은 아령을 잡고 운동하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많은 관람객이 더운 나라에서 온 낯선 식물들을 보며 저마다의 상상을 하고 있었다.
서울식물원의 식물들이 이국의 심상만을 불러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주제 정원 중 사색의 정원에는 한옥인 다정茶亭을 중심으로 한국을 상징하는 소나무가 있다. 매화, 대나무와 더불어 세한삼우 중 하나인 소나무는 민족의 삶과 역사를 이해하는데 필수다. 한민족이 소나무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는 소나무를 의미하는 ‘솔’이 ‘으뜸’을 의미한다는 데서 짐작할 수 있다. 소나무는 경복궁과 창덕궁 등 고궁은 물론 전통 목조 건물,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판옥선과 거북선을 만드는 데 사용한 나무로, 이 공간에서는 한국적인 멋에 빠져볼 수 있다.
하늘을 품은 물가 쉼터는 서울식물원을 돋보이게 하는 공간이다. 수변 가로수 중 물을 좋아하고 물을 정화하는 수양버들은 이 공간을 특별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다만 더 많은 수양버들을 심는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수양버들을 비롯한 버드나무들은 강인한 생명력을 갖고 있어 옛 사람들은 이별할 때 건강하게 살아 돌아오라는 뜻에서 버드나무 가지를 꺾어주었다. 버드나무를 의미하는 한자 양楊과 가지를 의미하는 지枝는 양치의 어원이기도 하다. 버드나무 가지로 피리를 만들고 버드나무 가지로 양치하는 상상을 하며 늦가을을 만끽했다. 한참 걷다 보니 가을 햇살이 목덜미를 뜨겁게 데웠지만 주변을 살펴봐도 몸을 피할 만한 숲은 찾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미완인 탓이거니 했지만 나무의 종류와 나무 간의 간격, 지형 등을 보니 시간이 지나더라도 큰 차이가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여름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서울식물원에서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만 할 것이다. 개선이 필요한 지점이다.
내년 5월 정식 개장하기에 아직 온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서울식물원은 서울에 식물원을 지었다는 발상 자체로 높이 살 만하다. 서울처럼 땅값이 높게 치솟은 지역에 여의도 공원의 2.2배에 달하는 드넓은 규모의 땅을 식물원으로 조성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 깊은 공간은 숲 정원과 씨앗 도서관으로, 한반도의 자생 식물에 대한 중요성을 일깨우는 곳이다. 한 국가의 영토에서 나고 자란 식물은 민족의 정체성과 깊이 관계한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한반도의 식물 연구에 착수했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다른 곳 아닌 ‘서울’ 식물원에서 한반도의 다양한 자생 식물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지금도 지금이지만, 앞으로 더 큰 가치를 지닐 것이다. 글 / 강판권(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
-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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