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넷의 앤설 엘고트는 젊고 건강하고, 동시에 신중하고 사려 깊다. 꽃을 건네듯 다정하게 말하고, 돌연 우레처럼 웃는다.
촬영 때 나온 음악이 다 앤설의 플레이리스트였죠? 처음에 튼 버브의 ‘비터스위트 심포니’는 가족들과 버몬트주로 스키 타러 갈 때 차에서 들었던 노래예요. 라디오에서 자주 나왔거든요. 전 그때 두 살이었어요.
두 살 때 들었던 노래가 기억난다고요? 어릴 때부터 모든 장르의 음악이 다 좋았어요. 아버지가 뮤지컬 음악과 재즈 넘버들을 골라서 CD로 만들어주시기도 했어요.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에이콘의 2008년 노래는 춤과 함께 몸이 기억하고요. 저만의 ‘50 top songs of all time’을 만들고 있는데 지금 40곡 정도 모았어요. 천천히, 신중하게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 중이에요.
퀸 노래도 많이 틀던데 <보헤미안 랩소디> 봤어요? 원래부터 퀸의 팬이었어요. 라이브 에이드 실황도 유튜브에서 여러 번 찾아봤고요. 영화 속 콘서트를 재현한 장면에서 살짝 울었어요. 저도 그런 규모의 공연을 해보는 게 꿈이에요.
여러 장의 싱글 앨범을 냈죠? 어떤건 굉장히 즉흥적으로 만들었어요. 지금은 좀 더 차분하고 계획적으로 작업하고 있고요. 중요한 건 유행하는 사운드가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독특한 사운드를 찾는 거예요. 요즘 한창 새 앨범 후반 작업 중인데 바로소 조금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어요. 내가 원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에 가까워진 것 같아서요. CD와 LP로도 발매할 계획이고, 라이브 밴드와 콘서트도 하려고요. 뉴욕이랑 브라질, 어쩌면 서울도?
새 앨범은 어떤 장르예요? 정확히 규정짓기 어렵네요. 뮤지컬 시어터 적인 면도 있고 보컬을 편집 없이 긴 테이크로 작업하기도 했어요. 아버지의 연주를 들으면서 자란 기억을 살려서 트럼펫 연주도 많이 넣었고요. 악기 연주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요. 전 피아노도 유튜브 보면서 혼자 배웠어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준비하고 있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촬영은 여름에 시작하지만 뮤지컬이어서 발성 연습을 많이 해야 되거든요. 아직까지는 다른 배역이 결정되지 않아서 혼자 하고 있지만 댄스 연습도 벌써 시작했어요. 내가 맡은 토니는 갱단 출신이에요. 그래서 터프한 분위기가 풍기는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대해 연구 중이에요. UFC 선수들이 링 안에서 걸어 다니는 모습도 참고하고 있어요.
몇 작품엔 제작자로 참여했죠? 내가 출연한 소규모 작품의 제작만 몇 편 했어요. 작은 영화에 믿음을 갖고 투자할 사람은 드물거든요. 아직 영화를 연출할 준비는 안 됐어요. 모두가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가 되기엔 제 자신이 한참 모자라요. 먼 미래에는 할 수 있을까요?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요.
형(워렌 엘고트)은 영화감독이고, 누나(소피 엘고트)는 사진작가죠? 형제들이 모이면 서로의 작업에 대해 얘길 많이 해요. 조언도 해주고 남들은 도저히 못 할 얘기도 하죠.
아버지(아서 엘고트)와는 어때요? 정말 유명한 사진가시죠. 아버지하고 아주 친해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늘 조언을 해주시는데, 그분의 삶 자체가 제겐 교훈이에요. 아버지는 훌륭한 사진가 이전에 멋진 어른이에요. 작업 중엔 모든 사람을 배려하고, 충분한 대화를 하고, 뭔가 불편해하면 절대 강압적으로 시키지 않으세요.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어주는데 그게 참 대단해요. 프로젝트의 리더로 사람들과 대화하는 법도 아버지에게 배웠어요.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방법도요. 전 그 시간이 고통스럽지 않아요.
기다린다는 말을 많이 하네요. 그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죠. 원하지 않는 작품을 하는 게 진짜 시간 낭비예요. 사진 촬영만 해도 <베이비 드라이버> 이후 처음 하는 거예요. 아버지나 형이랑 같이 사진을 찍긴 했지만 제대로 된 촬영은 오랜만이네요. 오늘 촬영은 진짜 행복했어요. 이번 사진 촬영 때문에 어제 머리 색깔도 바꿨어요. 최선을 다하고 싶었거든요. 새로운 모습으로. 다행히 오늘 옷이랑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패션을 좋아해요? 사랑하죠.
언제부터요? 늘, 항상.
어릴 땐 똑같은 체육복 바지만 입고 다녔다고 들었어요. 그건 어릴 때고요. 라과디아 예술고등학교를 다닐 때, 내가 맡은 역할의 의상도 스스로 해결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 패션에도 관심을 갖게 됐죠. 작품을 떠나서 생활 속에서 입는 옷도 단순히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을 보여주는 힌트라고 생각해요.
가을에 개봉 예정인 영화 <더 골드핀치>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어요? 니콜 키드먼, 아뉴린 바나드, 애슐리 커밍스, 윌라 피츠제럴드…. 함께한 배우들이 모두 굉장했고, 특히 존 크롤리 감독과의 작업이 좋았어요. 존은 원래 연극무대 출신이라 대충 넘어가는 게 없어요. 테오도르는 지금까지 맡았던 캐릭터 중 가장 어려운 역할이었는데, 비극적이고 어둡고 복잡한 남자를 연기하는데 그의 도움이 없었으면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여러 편의 뮤지컬을 했죠? 고등학교 프로덕션이라고는 하지만 라과디아 예술고는 1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규모 시어터에서 라이브 오케스트라와 함께 공연을 하거든요. 거기서 <헤어스프레이>, <아가씨와 건달들>을 공연하다 보면 실제 브로드웨이에서 연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발레를 배운 게 공연에 도움이 되던가요? 그럼요. 몸의 중심을 잡아주니까 자세도 그렇고, 움직임도 달라져요. 자세가 바르면 발성도 좋아지는 거 아시죠. 요즘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때문에 자세를 좀 더 세밀하게 가다듬고 있어요.
언제 행복해요? 음악이든 영화든 피규어든, 뭔가 만들 때요. 또 하이킹이나 수영할 때도. 묵상하는 것도 좋아해요. 바다에 가면 가만히 앉아서 파도 소리를 들어요. 그러면서 호흡을 천천히 정리하는 거예요.
뉴욕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어디예요? 블리커 스트리트에 ‘피쉬‘라는 레스토랑이 있어요. 그 동네를 무척 좋아해요. ‘워 해머 스토어’라고 미니어처 가게도 자주 가고요. 피규어 색칠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렇지만 제일 자주 가는 곳은 아버지의 스튜디오예요. 그랜드 스트리트 근처인데, 아버지와 형이 작업하는 걸 보면서 시간을 보내면 편해져요. 어릴 적부터 놀이터처럼 가던 곳이라 옛날 생각도 나고요. 거기 있으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전의 보통의 나로 돌아간 것 같죠. 늘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건 건강에도 좋지 않거든요. 하하.
그래도 유명인의 힘은 아주 크죠. 당신의 인기를 어떻게 사용하고 싶어요? 사실 요즘 생각이 많아요. 특히 환경에 대해서요.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수, 진보 양쪽과 토론이라도 하고 싶어요. 환경 문제는 정치적 이슈가 아닌데 정치적인 양극화 때문에 희생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 문제만이라도 정치적인 면을 떠나서 의견을 모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논쟁의 핵심이 뭔지 정확히 말하지 않으면서 서로를 거짓말쟁이로 몰아가는 건 정말 그만하면 좋겠어요.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는 게 시작일 거예요.
SNS를 적극 활용하나요? 요즘은 자주 안 해요. 스마트폰을 가끔 일상에서 완전히 잘라내는 게 필요해요. 예전엔 아침에 일어나면 제일 먼저 전화기부터 찾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아래층에 놔두고 2층의 침실로 가요. 일어나면 천장을 보고 심호흡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해요. 샤워를 하고 전화기 없이 커피를 사러 가죠. 내 주변 세상을 필터 없이 받아들이고 싶어서예요.
그랬더니 어땠어요?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라고 지시하는 사람이 없어진 느낌이에요.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으면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자신의 의지로 행동할 수 있게 돼요. 오늘 사진 촬영을 하면서 한 번도 스마트폰을 보지 않았어요. 스튜디오에서 음악 작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집중하고 싶을 땐 그게 최고의 방법이에요. 곧 하와이 여행을 갈 건데 거기도 가져가지 않을 거고요.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인 것 같아요. 비판적인 편이죠. 누구나 잘못을 하잖아요. 그걸 인정해야 나아질 수 있어요. 저는 꽤 성공적으로 해오고는 있지만 아직 멀었다고 늘 생각해요. 크리스찬 베일이나 톰 하디, 호아킨 피닉스 같은 ‘리얼한 배우’를 볼 때마다 뼈저리게 느끼죠. 그렇지만 나에 대한 비판이 스스로를 고문하기 위한 건 아니에요.
BTS 팬이라고 들었어요. 아주 좋아해요. 댄스도 멋있고 스타일도 좋죠. 신선하고 새롭고 모던하고 당당하고. BTS 때문에 다른 케이팝 아티스트도 궁금해졌는데 아직 다른 그룹은 잘 모르겠어요. BTS 멤버들 팬 페이지까지 다 팔로우하다 보니 좀 겨를이 없었달까요. BTS의 이 댄스도 멋있죠. 스튜디오 스태프들도 같이 한번 춰보면 좋겠어요. 이건 여럿이 춰야 진짜 멋져요. 하하하.
- 에디터
- 박나나
- 포토그래퍼
- 목나정
- 헤어
- Fred Van De Bunt at Art Department
- 메이크업
- Janice Kinjo at Starworks Artists
- 글
- 양지현
- 프로덕션
- Visual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