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지각변동은 영화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유효하다. 영화에 대한 ‘글’보다 ‘말’이 쏟아지는 지금, <씨네21> 김성훈 기자가 영화 유튜브를 뜯어봤다.
인기 유튜브 채널에 한 독립영화의 리뷰가 뜨자, 입소문이 났다. 이 영화는 생명을 한 달 동안 연장했고, 리뷰는 영화가 극장에 걸려 있는 동안 640만 건의 조회수를 올렸다. 이 사실을 들은 영화 마케터들은 남다른 비결을 알아내기 위해 너도나도 이 영상을 클릭했다. 하지만 박스오피스 역주행이라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 영화는 한 달가량 극장에서 상영되면서 총 5,762명(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집계)의 관객을 불러모으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유튜브에 올라간 리뷰가 많은 관객에게 이 독립영화의 존재를 알렸고, 그들 중 일부를 극장으로 움직이게 했다는 점에서 이것은 충분히 놀라운 사건이었다. 수많은 한국 독립영화가 개봉 첫 주부터 극장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소수의 스크린일지라도 한 달 동안 관객을 만날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이 리뷰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지난해 개봉한 <박화영>이고, 이 영화의 리뷰를 올려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한 유튜브 채널은 ‘고몽’이다.
<박화영> 이전에, 충무로에서 ‘유튜브’발 변화의 바람이 분 지는 꽤 됐다. ‘영국남자’는 내한한 할리우드 스타들과 ‘먹방’을 선보였다. 지난해 4월에는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출연진과 함께 김밥, 한라봉을, 한 달 뒤인 5월에는 <데드풀>에 출연한 배우 라이언 레이놀즈와 해물파전을 먹었다. 9월에는 <킹스맨 : 골든서클>에 출연한 배우 태런 에저턴과 마크 스트롱과 ‘치맥’을 즐겼다. 이것이 영화를 알리기 위한 이벤트라면, 기존 언론이 가곤 했던 해외 프레스 정킷에 참여한 유튜버도 있다. ‘천재 이승국’은 지난해 <쥬라기 월드 : 폴른 킹덤> 중국 상하이 정킷에 참여해 배우 크리스 프랫,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를 인터뷰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언론 매체가 아닌 유튜브에서 할리우드 배우 인터뷰를 볼 수 있게 된 셈이다. 최근에는 유튜버가 기존 언론처럼 내한한 영화감독을 인터뷰한 사례도 있다. ‘고몽’과 ‘김시선’은 지난 1월 16일 개봉한 일본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따로 만났다. 유튜버가 단순한 광고 효과를 노린 이벤트뿐만 아니라 기존 언론의 취재 영역에까지 들어온 것이다.
포털 사이트 대신 유튜브를 검색 엔진으로 즐겨 사용하는 지금 젊은 세대들에게 전문가 평점, 관객 평점, 기대지수는 더 이상 영화를 고르는 기준이 아니다. 이들은 인기 유튜브 채널을 보고 극장에서 볼 영화를 고른다. 긴 평론 글을 읽는 대신 인기 유튜버의 말을 듣고 공감한다. 인기 유튜브 채널에서 선보이는 콘텐츠 대부분 영화의 줄거리를 상세하게 소개하는 형식을 기본으로 한다. 앞에서 짧게 언급한 고몽은 최근 개봉한 <마약왕>을 소개하기 위해 <범죄와의 전쟁>, <베테랑>, <불한당>, <독전> 등 마약이 등장하는 한국영화들을 종으로, 횡으로 언급한 뒤 <마약왕>이 어떤 이야기인지 친절하게 풀어 설명한다. 역시 인기 유튜버인 ‘리뷰엉이 : Owl’s Review’ 또한 <월 스트리트>,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 <빅 쇼트> 등 금융을 소재로 다룬 할리우드 영화 몇 편을 언급하면서 <국가부도의 날>의 줄거리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러면서 영화 관전 포인트, 해당 영화에 대한 자신의 인상과 평가를 덧붙인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방식은 사실 주말 오전에 공중파 3사에서 방영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인상적인 장면을 하나 골라 등장인물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 뒤, 사건 배경과 사건을 차례대로 소개하며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방송을 맛깔 나게 진행하기 위해 성우처럼 특정 단어나 단락을 힘주어 얘기하고, 감탄사를 극적으로 활용하기도 한다. 또 종종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영화를 깊이 있게 다루기보다 재미를 추구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최신 개봉 영화의 리뷰나 마블을 포함한 슈퍼 히어로 콘텐츠를 주로 다루는 대부분의 유튜버와 달리, 고전 영화를 소개하거나 한 영화만 깊이 파는 유튜버들도 있다. ‘김시선’은 ‘한국 스릴러 영화 베스트 1위’라는 제목의 영상에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와 김기영 감독을 소개한 바 있다. 웬만한 언론 기사 못지않게 자료를 꼼꼼하게 공부해 만든 흔적이 역력한 영상이다. 알프레드 히치콕이 연출한 <이창>에서 사진작가 제프가 카메라로 이웃집 사람들을 훔쳐보는 시선을 통해 <하녀>의 카메라 움직임과 공간 구성 방식을 비유하는 장면은 영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무척 쉬운 설명이다.
‘겨울서점 Winter Bookstore’ 속 코너인 영화관 옆 책방은 진행자 두 명이 한 영화를 선정해 한 시간 넘게 떠드는 형식이다. 팟캐스트 방송의 유튜브 버전처럼 보이는 것도 영화 정보와 해석들을 자유롭게 주고받는 이야기가 많은 까닭이다. <아가씨>, <캐롤>, <블레이드 러너> 등 ‘팬심’을 자극하는 영화들을 선정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전략도 좋다. 어쨌거나 조회수도, 다루는 영화도, 영화를 다루는 방식도, 콘텐츠 완성도도 저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건 유튜브발 영화 콘텐츠가 이미 영화 저널의 영역을 넘어왔다는 사실이다.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유튜브 영화 콘텐츠는 기존 언론과 다른 역할을 수행하는 동시에 기존 언론의 영역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개봉할 때 유튜버가 기자 대신 해외 감독이나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사례가 많아진 것이 대표적 예다. 그 배경은 ‘김영란법’으로 알려진, 2016년 11월 30일 시행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하 청탁금지법)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과거엔 영화사나 직배사가 매체에 항공권과 숙박비가 포함된 프레스 정킷 행사의 취재 비용을 제공했으나, 청탁금지법으로 인해 매체에 소속되지 않은 유튜버와 블로거 등이 행사에 초청 받게 됐다. 이제 현지 취재는 전통적인 언론매체가 아닌 유튜버 같은 인플루언서들이 맡게 됐고, 결과적으로 기사보다는 이벤트나 광고 위주의 콘텐츠가 중심이 된 것이다.
시장도 전통적인 언론과 인기 유튜버 같은 인플루언서를 구분해 접근한다. 영화 마케터 A씨는 “인기 유튜버나 페이스북 계정은 광고로 분류하고 있다. 영화의 성격에 따라 언론 매체와 인플루언서의 비중을 다르게 둔다. 많은 관객을 동원해야 하는 오락 영화는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진행하고, 영화의 세계와 감독의 연출을 이해해야 서사를 즐길 수 있는 영화는 언론 매체에 신경 쓴다”고 귀띔했다. 영화 마케터 B씨는 “가장 이상적인 마케팅은 언론 매체와 인플루언서를 동시에 활용하는 방안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둘 중 하나에 더 비중을 둘 수밖에 없다”며, “특히 해외 정킷은 청탁금지법 때문에 언론 매체보다는 인플루언서를 보내 기사가 아닌 광고성 콘텐츠를 만들게 하고, 언론 매체가 필요한 경우에는 매체의 현지 특파원을 투입하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제 유튜버는 언론 매체가 했던 역할로까지 영역을 점점 더 확장해나가고 있다. 앞에서 짧게 언급한 일본 애니메이션 <미래의 미라이>를 연출한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유튜버가 인터뷰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정된 스크린 숫자를 두고 경쟁작이 갈수록 많아지는 반면, 홍보 마케팅 비용(P&A 비용)이 한정되어 있고, 특히 ‘되는 영화’만 보러 가는 관객의 관람 패턴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광고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조회수가 많은 인기 유튜버를 섭외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선례가 현상이 되는 건 시간 문제다. 유튜브 바람이 기존의 언론 매체의 영향력을 상대적으로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이러한 움직임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유튜브의 영화 콘텐츠가 일으킨 바람이 기존 언론 매체를 대신할 수 있을 만큼 파괴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수긍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영향력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는 동시에, 리스크 또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유튜버 보겸이 디즈니의 <스타워즈> 레고를 조립하면서 “마블 홍보대사를 하고 싶었는데 강제로 <스타워즈> 홍보대사를 하게 됐다”고 무례한 발언을 꺼내자, 디즈니코리아는 페이스북에 공식 사과문을 게재하고 관련 영상을 삭제한 바 있다. 정제되지 않은, 취재 윤리나 신뢰성을 담보할 수 없는 비전문가의 말들은 때론 문제의 소지를 지니기 마련이다.
이런 사례만 보면 유튜브가 엄격한 취재 윤리와 신뢰성을 가지고, 평소 꾸준하게 관리하는 취재원들로부터 얻은 고급 정보를 가진 기존의 언론 매체를 당장 대체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고몽은 지난해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영화를 둘러싼 깊이 있는 정보 전달이나 해석은 우리가 할 수 없다. 쉽게 말해 평론가의 영역은 우리가 건드릴 수 없다”며 “우리는 전문가의 곁가지에 머물면서 즐거운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낼 것이다. 감독의 의도를 뚜렷하게 들여다보지는 못하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을 자신은 있다. 그 색깔을 유지해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콘텐츠들을 만들어내는 유튜버들의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유튜브를 바라보는 감정이 이래저래 복합적인 가운데, 개인적으로 유튜브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주목하는 이유는 기존의 언론 환경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튜브가 기존 언론 매체에 위기인 동시에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래서다. 70~80여 개에 달하는 영화 매체들이 매일 비슷한 기사를 찍어내듯 ‘생산’하는 상황에서, 유튜브라는 새롭고 강력한 플랫폼의 등장은 네이버라는 대형 포털 사이트에 ‘간택’되는 기사(영화뿐만 아니라 전 사회 분야의 기사들)만 노출되는 기형적이고 획일화된 한국 언론 환경의 시스템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기회라 할 만하다. 빠르게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 속, 무엇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글보다 말에 귀를 더 연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글 / 김성훈 <씨네21> 기자
- 에디터
- 이예지
- 페이퍼 아티스트
- 박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