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바흐 작품번호 971번, 이탈리안 콘체르토.
이유도 없이 질려서 머리가 저릿한 날이 있습니다. 아까 만난 사람 때문인지, 어제부터 안 풀리는 그 일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듣는 연주가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가 연주하는 바흐는 따뜻하고 정확합니다. 단정하고 쾌활하기도 합니다. 찔 것 같이 덥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도 하는 날, 그의 연주를 들으면 마음이 기지개를 켜는 것 같습니다. 잔뜩 긴장해서 생겼던 주름이 하나하나 펴지는 걸 느끼면서 이 벅찬 노래를 가만히 배경 삼는 호사를 누리기도 합니다. 사무실이나 지하철 안에서라도 이어폰만 있다면 누릴 수 있는 시간, 12분 정도입니다.
그런가하면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이런 연주는 또 어떤가요? 첫 음의 힘, 이후의 기세로부터 완전히 다른 우주가 펼쳐진다면 어떨까요? 이 연주를 자유분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피아노 소리 저 너머로 흥얼거리는 글렌 굴드의 목소리는 오늘 어떻게 들립니까? 가만히, 4분 5초 즈음, 2악장이 시작하는 순간에는 숨이 멎을 듯 했습니다. 이 연주는 약 15분 남짓 이어집니다.
- 에디터
- 정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