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광속 연애의 시대에도 불변의 진리는 존재한다. 손을 잡는다는 건 마음을 내준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손 잡는 타이밍을 이렇게나 정중하게, 낭만적으로 고민한다.
영화관 편
이제 주말 스케줄에 서로를 끼워 넣어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면 첫번째 임무는 영화 약속이다. 보통 팔걸이를 공유하며 팝콘을 같이 먹다가 두 사람의 손이 스치는 장면을 떠올리게 될 텐데, 팝콘 기름 묻은 손으로 ‘첫 손’을 튼다는 건 결코 낭만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물티슈로 손을 닦아준 다음에 잡는 것도 영 그림이 안나온다. 우선, 영화 광고도 나가기 전 환한 극장에 미리부터 자리 잡고 앉아있는 우를 범하지 말기 바란다. 되도록 마지막 광고가 나가고 영화 상영이 시작될 무렵 팝콘과 콜라를 둘이 적당히 나눠 들고, 겉옷처럼 거추장스러운 방해물이 손에 들려있는지 잘 확인한 뒤 “H12,13이면 저기네” 라며 슬쩍 손을 내밀어 잡는다. 어두 컴컴한 극장에서 자리 안내를 위한 손잡기. 더군다나 미리 화장실을 다녀왔다면 깨끗하고 보송보송한 상태로 손을 잡을 수 있다.
식당 편
이 케이스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하는 식당’이라는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맛있게 음식과 즐거운 대화로 식사를 마치고 일어서면서 신발을 신는 그 타이밍을 노려야 한다. 이때 괜히 운동화 끈 풀고 처음부터 다시 묶어야 하는 애매한 신발 말고, 한 번에 꿰어 차 신을 수 있는 형태의 신속한 신발을 준비하는 것이 필수다. “잠깐 팔 좀 빌려줄래?” 라는 말과 함께 상대방의 팔을 잡고 신발을 신는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팔을 잡았으니까 식당을 나서면서 자연스레 손을 잡는 것까지 이어나갈 수 있게 된다.
횡단보도 편
클래식이라면 클래식이고, 클리쉐라면 클리쉐. 파란 신호등 깜빡이가 7초 정도 남은 애매한 상황에서, “우리 건널 수 있어!”라는 격려의 말을 외치며 상대방의 손을 잡는 거다. 단, 상대방이 불편한 신발을 신고 있거나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은 옷차림이라면 그 한 번의 손잡기가 관계의 마지막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놀이공원 편
단 둘이 놀이공원을 놀러갈 정도라면 ‘손 잡는 타이밍’을 깊이 고민하지 않아도 괜찮다. 동물 머리띠를 ‘커플템’처럼 하고 솜사탕이나 츄러스를 한 입 씩 나눠 먹는다는 것은 언제고 손을 잡아도 ‘스르르 빠져나가는 손’이나 ‘침묵’ 같은 불상사로 이어지진 않는다. 따라서 놀이공원은 손 잡는 타이밍이 적재적소에 널려있는 최적의 장소가 될 수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어질어질 휘청 거리며 내려올 때, 또는 후렌치 레볼루션을 타러 올라가는 계단에서, 에스코트를 하며 살짝 손을 잡으면 된다. 놀이공원 인파 속에서 일행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 손을 잡는다. 사파리 버스를 타러가기 위해 눈은 지도에 고정한 채 무심하게 “어, 저쪽 방향이다” 라는 말과 함께 상대의 손을 잡는, 이보다 더 자연스러운 타이밍이 또 있을까.
천재지변 편
비나 눈, 혹은 미친듯한 폭염과 추위 등도 둘 사이를 더 가깝게 묶는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나 눈의 경우, 편의점에서 우산을 꼭 하나만 산다. 하나로 나눠 쓰는 우산은 자연스레 어깨동무로 이어지긴 하지만 손을 잡아야 하니까, 여기서 약간 비틀어준다. 잠깐 짐을 챙기는 척 하면서 상대방에게 “우산 좀 들어줄래?” 요청하는거다. 대강 짐을 정리한 뒤 다시 우산을 잡으면서 이미 우산을 들고 있는 그 사람의 손도 함께 잡는 것. 폭염에는 아이스크림이 등장할 수 있다. 상대방 먼저 먹으라고 권한 뒤 “나도 한 입 먹어볼게” 하면서 그 사람의 손과 함께 아이스크림을 잡고 먹는다. 강추위는 더 쉽다. 손 난로를 준비해 자연스럽게 쥐어주면 되니까.
바래다주는 집앞 편
넓은 대로 변에 살고 있다면 조금 애매할 수 있긴 하다. 만약 그렇다면 일부러 근처 좁은 골목길로 돌아가는 방법도 있다. 핵심은, 좁은 골목을 함께 걷다 자동차가 등장하는 타이밍이다. 꼭 굳이 골목길에서 과속을 하는 차들이 있는데 이때 상대방을 감싸면서 놀란 틈을 타 손을 잡아본다. 집 근처에 공원이 있다면 “저녁을 많이 먹었으니까 소화 시킬 겸 산책하자”고 운을 띄워 본다. 요즘은 미세먼지 때문에 산책 시간이 길지 않으니 최대한 짧은 거리를 걸으며 손이 스치는 타이밍을 살핀다. 걷다보면 자연스레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손이 부딪치게 된다면 그 틈을 놓치지 말고 꽉 잡는다.
- 에디터
- 글/ 서동현(프리랜스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