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 중사는 오늘을 위한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재규어 중사는 실제 중사 출신이다. 그게 영광스러워서 지은 이름은 아니다. 데뷔곡 ‘안 될 것 같은’을 발표할 때, 그는 내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름 역시 앞으로 ‘크게 될 것 같은’ 예감 없이 지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음악을 하고 있고,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 장의 싱글 이후, 재규어 중사라는 이름이 여러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물론 음악 좀 듣는 사람들이 “재규어 중사 들어봤냐?”고 언급하는 수준이었다. 그중에는 방탄소년단이 “여러분 재규어 중사 들으세요”라고 올린 트위터 포스팅도 있었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위상은 아니었던 2015년이었다.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는 현실적인 보상이 전혀 되지 않았지만, 음악가로서의 미래를 그리기도 했고, 뜻하지 않은 개인적인 불행으로 음악을 잠시 떠나있기도 했다. 모두 전역 후 받은 퇴직금을 무모하게 악기에 쏟아 부으면서 시작된 일이다.
“기타 두 대, 베이스, 스티비 원더가 쓴다는 신시사이저, 컴퓨터를 샀어요. 악기도 다룰 줄 몰랐는데, 기타 한 대만도 3백만원이 넘는 고급 장비들이었죠.”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여러 가지 근거를 댔다. “자동차나 시계 같은 온갖 블링블링한 물건에 관심이 없었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으니까 악기에는 관심이 있었거든요. 제가 워낙 즉흥적이기도 하고요. 밴드는 인연을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서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이 결정을 이해하고 싶다면 그의 말보다는 그의 음악을 듣는 게 낫다.
“응 여보세요 응 웬일이야 그 한마디가 왜 기쁠까” 같은 90년대식 표현이 낯뜨겁지 않은 ‘안 될 것 같은’의 순정한 분위기, 극적인 감정을 천천히 곱씹게 만드는 ‘0911’의 후렴구와 매 구간이 새로운 그 전개 방식. 좋아하는 사람을 쥐 같다는 낯선 발상에서 출발해 간결하고도 소박하게 이를 설득하는 ‘쥐’의 가사를 들어보길 권한다. 발음이 샌다거나 사운드가 단출하다거나 연주가 유려하지 않다는 것이 딱히 문제가 되지 않는 노래들이다. 어쩌면 악기를 사기 전에 이미 재규어 중사의 음악은 있었던 것 같다.
그의 음악적 배경을 꼽는다면 힙합과 소울, 훵크라고 할 수 있지만 사람들로부터 좀 더 많이 듣는 수식은 “90년대”다. “90년대를 모든 시대 가운데 가장 좋아하고 가장 멋있다고 보는 건 맞지만 향수로 접근하는 건 아니에요. 90년대의 겨울 풍경을 발라드 만들 때 많이 생각해요. 인터넷도 없고, 휴대 전화도 없었잖아요. 다른 사람들이 무슨 생각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누군가를 만나면 순수하게 설레던 모습이랄까.”
하지만 그의 노래가 “90년대의 겨울 풍경”처럼 순수하게 들리는 건 단지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재규어 중사는 뛰어난 작사가이기도 하다. 일상적인 단어들로 온전히 전달하는 한순간의 감정, 한 편의 이야기로서의 완결성, 그 사이에서 문득 건져 올리는 아이러니. 그럼에도 이 가사들이 도식적으로 들리지 않는 건 종종 눈에 들어오는 낯선 구절들 덕분이다.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한 곡들에서 그 예를 찾자면, “기분을 던져(‘Ball’)”, “넌 좋아하나봐 적혀 있으니까(‘재규어’)”, “총도 안 쏴본 것처럼 큰 눈알이 깨끗해(‘빛’)”가 있다. “멀쩡한 청바지를 일부러 찢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 해요.” 그러니까 그는 순수할 뿐만 아니라 멋쟁이였다. “하지만 제 노래가 사랑 노래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스스로의 소유욕과 열등감에 관한 노래죠.” 작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자기 객관화다.
그는 지난 12월, 실로 오랜만의 신곡 ‘계단 앞’을 발표했다. 올해엔 두 장의 앨범을 예정하고 있다. 한 장은 에잇볼타운의 프로듀서 브론즈의 트랙을 제공받아 만들어질 것이다. 또 한 장은 지금까지 그가 써놓은 발표곡, 미발표곡을 아우르는 앨범이다. 아직 어떤 기준으로 구성할지는 정하지 못했다. 일단은 작업 속도도 빠르고 트렌디한 곡도 잘 아는 프로듀서 브론즈와의 작업이 먼저다. 이 앨범은 지금까지 해온 그의 틀 바깥으로 나가는 첫 번째 시도가 될 것이다.
“노래만 할 거면 음악 안 한다고 생각해왔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가 1백 퍼센트 원하지 않는 것을 하더라도 삶의 한 부분이자 과정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이 말만 들어보면 그는 매우 원숙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그런데 그는 “기린 형이 같이 하자고 하지 않았으면 아마 음악 안 했을 거예요. 오늘 음악 하다가 내일 끝날 수도 있다는 걸 알아요. 언제까지 음악 할지 모르는데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부정 속에서 아주 가느다란 긍정을 붙잡고 있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하지만, 재규어 중사는 자신을 아티스트라고 여기지 않는다.
“저는 음악을 아주 무겁고 깊게 생각해요. 작업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죠. 아마추어인 거예요.” 그리고 오늘 가장 확신에 찬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아요.” 어떤 아티스트보다 순정한 노래를 만들고 부르는 아마추어. 어쩌면 그는 자기 자신만 아티스트라고 부르지 않는 아티스트로 남을 수도 있겠다. 인터뷰가 모두 끝난 뒤, 그가 물었다. “저기 근데 질문 있어요. DIY가 뭐예요?”
- 에디터
- 정우영
- 포토그래퍼
- 박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