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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 3세대 카이엔의 저력

2019.04.14GQ

모양은 달라도 달리는 폼은 영락없이 포르쉐다. SUV와 스포츠카의 경계에 교묘하게 걸친 3세대 카이엔이 나왔다.

PORSCHE CAYENNE
크기 L4918 × W1985 × H1696mm
휠베이스 2895mm
공차중량 2135kg
엔진형식 V6 가솔린, 터보
배기량 2995cc
변속기 8단 자동 서스펜션 (앞/뒤) (모두) 멀티링크 타이어 (앞) 255/55 ZR 19, (뒤) 274/40 ZR 19
구동방식 AWD 0→100km/h 5.9초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45.9kg·m
복합연비 7.3km/l
가격 1억 20만원부터

벌써 17년 전이다. 포르쉐가 카이엔을 처음 출시한 2002년은 자동차 역사에서 꽤나 의미 있는 시기로 남을 것이다. 스포츠카만 만들던 포르쉐가 처음으로 SUV를 출시한 해였으니까. 카이엔은 등장하자마자 여기저기서 변절자 소리를 들었다. 확고한 지지층을 거느린 포르쉐지만, 팬들 사이에서도 좋은 평가만 나오진 않았다. 엔진을 차체 앞에 심은 포르쉐, 퉁실퉁실하게 살집이 붙은 포르쉐를 당시로선 인정하기 어려웠던 모양이다. 911의 엔진이 공랭식에서 수랭식으로 바뀌었을 때만큼이나 포르쉐를 둘러싼 이야기로 한동안 시끌벅적했다.

사실 포르쉐가 카이엔을 만든 건 궁여지책이었다. 1990년대, 간판 내릴 걱정을 할 정도로 재정 위기에 내몰리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포르쉐 진입 장벽을 낮춘 박스터로 일단 급한 불은 껐지만, 더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당시는 도심형 SUV 시장이 덩치를 불리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포르쉐는 SUV를 만들기로 결정하고 흐름에 운을 걸었다. 배팅은 완벽하게 성공했다. 카이엔 판매를 시작하자 언론의 쓴소리와 전문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혹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폭발적으로 팔려나갔다.

포르쉐는 재정난 극복을 넘어서 어마어마한 수익을 거둬들였다. 2010년에 나온 두 번째 카이엔마저도 성공을 거뒀다. 포르쉐를 상징하는 차는 여전히 911이었지만, 가장 큰돈을 벌어오는 차를 두고 정체성이나 적통을 따지는 건 이미 무의미한 일이 되어버렸다. SUV 개발은 더 이상 자존심과 연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카이엔의 ‘연타석 홈런’은 프리미엄 브랜드가 SUV를 만들기로 결정하는 데 큰 자극을 줬다. 마세라티와 벤틀리, 롤스로이스가 SUV를 출시했고, 람보르기니도 이 판에 뛰어들었다. 애스턴 마틴은 물론 페라리도 줄을 섰다. 럭셔리 세단과 슈퍼카를 만들던 서로 다른 이력이 SUV 앞에서 조용히 통일됐다.

2019년, 풀체인지 된 카이엔이 출시됐다. 세 번째 카이엔이다. 그런데 포르쉐 팬이 아니라면 한눈에 달라진 점을 찾기 어렵다. 크기부터 굴곡까지 기존 카이엔과 큰 차이가 없다. 그나마 눈에 띄는 건 911을 응용한 테일램프. 이 정도면 사실 페이스 리프트 수준의 변화다. 하지만 진보를 선행하지 않고 차세대를 자처할 순 없다. 포르쉐는 디자인보다 보이지 않는 곳의 변화에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목표는 ‘더 포르쉐다운 카이엔’이었다.

스포츠카의 기본은 가벼운 무게와 넉넉한 힘이다. 카이엔도 기본 원리를 따른다. 새롭게 탑재한 V6 3.0리터 엔진의 최고출력은 전보다 40마력 상승한 340마력이고, 최대토크는 45.9kg·m에 달한다. 한껏 끌어올린 힘은 65킬로그램을 덜어낸 무게와 만나 동력 성능을 훌쩍 높였다. 더 산뜻하게 치고 나가고, 더 끈질기게 속도를 높인다.

노멀 시작으로 스포츠와 스포츠 플러스로 주행 모드가 나뉜다. 스포츠 플러스까지 올리면 완전히 스포츠카로 완전히 돌변한다. 높은 엔진 회전수를 유지하는 동시에 에어 서스펜션이 팽팽하게 긴장한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엔진과 조향에 따라 섬세하게 움직이는 차체, 믿음직스러운 서스펜션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SUV라는 사실을 잊는다. 포르쉐의 욕심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기능도 있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을 누르면 레이싱 게임에서 ‘부스터’를 켠 것처럼 20초 동안 ‘초 각성 상태’로 돌입한다.

한편, SUV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한 면도 있다. 스티어링 휠의 조작에 따라 뒷바퀴까지 각도를 바꾸는 ‘리어 액슬 스티어링’ 기능이 카이엔에 처음으로 달린다. 저속에선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향하는데, 주차할 때나 방향을 크게 전환할 때 차가 움직여야 하는 회전 반경을 줄여 효율적이다. 반면 고속에선 앞바퀴와 같은 쪽으로 각도를 튼다. 차의 앞머리가 향하는 방향으로 차체 뒷부분도 함께 움직여 더 공격적이고 예리하게 코너를 돌 수 있다. 장애물이 앞에 놓여 긴급하게 회피해야 하는 등의 돌발 상황에서 더 차분하게 거동한다는 사실도 실험을 통해 입증된 결과다. 911을 비롯한 고성능 스포츠카에 주로 넣는 기능인데, 카이엔에선 2백90만원을 더하면 선택 사양으로 고를 수 있다.

차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디자인이 된 시대다. 세대를 거듭날수록 전작을 지워버릴 만큼 화려하고 과감하게 변하는 게 요즘 추세다. ‘얼마나 예뻐졌는지’가 진보를 평가하는 잣대라면, 3세대 카이엔은 분명 매력적인 차가 아니다. 하지만 포르쉐는 포르쉐가 가장 잘하는 방법을 택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철저히 엔지니어의 시각으로 접근했다. 911의 어떤 기능을 카이엔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 새로운 엔진과 서스펜션은 어떻게 조율해야 커다란 SUV와 어울릴지 고민했다. 공학적인 관점을 차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카이엔의 변화는 전보다 더 성공적이다.

911를 변형해 만든 테일램프는 당분간 포르쉐 패밀리 룩이 될 것이다. 파나메라에 이어 신형 카이엔에도 비슷한 테일램프를 그려 넣었다.

인테리어는 신형 파나메라와 비슷하다. 12.3인치의 디스플레이가 놓이고, 대시보드엔 랩타임을 측정하는 ‘크로노그래프’가 달린다.

포르쉐는 카이엔에서도 ‘1기능 1버튼’을 고집했다. 다만 버튼이 터치 식으로 바뀌었고, 진동으로 입력에 응답하는 ‘햅틱’ 방식을 채용했다.

CAYENNE E-HYDRID

우리도 있어요
국내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기본 모델인 ‘카이엔’이다. 이미 차고 넘치는 성능이지만 더 강력한 모델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올해 하반기 출시가 확정된 것은 V6 2.9리터 바이터보 엔진을 실은 ‘카이엔 S’와 V8 4.0리터 바이터보 엔진의 ‘카이엔 터보’다. 각각 440마력과 550마력의 최고출력을 낸다. 기존의 ‘카이엔 디젤’은 ‘카이엔 E-하이브리드’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V6 3.0리터 엔진과 전기 모터가 결합돼 시스템 최고출력 462마력을 내는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다.

브레이크도 차세대
카이엔에 처음으로 장착된 기능 중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브레이크 시스템이다. 언뜻 보면 일반 브레이크 디스크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포르쉐가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개발한 역작이다. 지구상에서 다이아몬드 다음으로 경도가 높은 광물인 ‘탄화 텅스텐’으로 디스크의 표면을 덮었는데, 포르쉐에선 PSCB(Porsche Surface Coated Brake)라고 이름 지었다. 실험 결과에 따르면 최상의 제동력을 보장하는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못지않게 열에 강하고, 성능도 버금간다고 한다. 심지어 녹도 슬지 않는다. 디스크 로터를 조여 차를 멈추는 브레이크 패드의 표면도 얇은 탄화 텅스텐 막으로 감쌌다. 일반 브레이크 패드를 끼우면 마찰력을 견디기 버거워 빨리 닳고 마는데, 코팅 처리를 통해 내구성이 향샹되어 패드 교체 주기를 획기적으로 늦춘다. 포르쉐는 새로운 브레이크 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을 캘리퍼의 색깔로 표현했다. 보통 고성능 브레이크의 캘리퍼는 빨간색이나 노란색으로 칠하는데, PSCB의 캘리퍼는 하얀색이다. 일반 브레이크와 비교해 분진이 10퍼센트 정도만 발생해 캘리퍼가 잘 더러워지지 않는다는 걸 보이려는 의도다. PSCB의 발명이 획기적인 건 가격 때문이기도 하다. 카이엔에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를 장착하려면 1천2백50만원을 더해야 하는데, PSCB를 선택하면 4백20만원으로 가격이 뚝 떨어진다.

    에디터
    이재현
    사진
    Courtesy Of Porsch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