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에서 옷을, 요리에서 양념을, 마음에 콕 박힌 사소한 습관까지 빼다 보면,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된다.
빼는 요리 ― 몇 년 전 자연 요리가 문성희 선생의 솜씨에 반한 적이 있다. 도토리묵전이나 무전, 두부 채소 지짐에 들어가는 양념이라고는 소금 조금과 현미유 2큰술이 다였다. 그런데도 맛은 황홀했다. <미쉐린 가이드>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본 음식들이 떠올랐다. 흰색 송로버섯을 얇게 잘라 올리는 것도 모자라 오일까지 뿌렸고, 태초의 모양새는 짐작도 안 될 정도로 화려했다. 여러 양념이 한 접시에서 넘실거리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문 선생의 접시는 반대였다.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였다. 설탕을 빼고, 고급 향신료를 뺐다. 소금과 간장은 먼지만큼 들어갔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채소 농축액이었다. 말이 농축액이지 실은 채소 끓인 물이다. 이미 건강식에 관심이 많은 이들은 자기만의 채수 레시피가 있다. 셀러리, 양배추, 양파, 당근 등 여러 채소를 큰 냄비에 쌓듯이 넣고 그 위에 채소들이 살짝 잠길 정도 양의 물만 부은 다음 중불에 끓이면 된다. 물이 끓은 뒤 30분 정도만 약불에 더 끓이면 완성이다. 내가 배운 레시피다. 조리법이 너무 간단해 비법이라고 하기에도 부끄럽지만, 거기엔 “버리기만 해도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얘기하는 정리의 여왕 곤도 마리에식 빛나는 인생이 숨어 있다. 양념이 잔뜩 묻은 치킨 한 조각을 뜯고 난 다음 허무감이 든 적은 없는가? 소스에 압도당해 닭고기 본연의 맛은 기억도 나지 않았던가? 양념에 허우적대다 식탁을 쓰레기 처리장으로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 “설레지 않는 양념은 버려라!’
박미향(<한겨레> ESC 음식문화기자)
버림으로써 디자인이 되는 것들 ― 그래픽 디자인 영역에서 ‘버리기의 기술’은 시대와 양식을 넘나들며 다양한 얼굴로 존재했다. 예컨대, 사물의 본질만을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요소들을 버리기, 윗세대가 성취한 요소들과 결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버리기, 그리고 단지 시각적 단순함을 추구하기 위한 버리기 등. 몇 가지 사례가 있다. 동시대 시각 예술가들의 경험과 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자기 조직화’에 관한 각기 다른 해석을 담은 책 <스스로 조직하기>의 디자인 작업은 고민스러웠다. 자기 조직화에 관한 각기 다른 해석을 시각적으로 표현할 방법이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고, 극단적 선택을 하기 이르렀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반사 재질의 표지 용지를 그저 비워두는 것이었다. 전략적으로 ‘그래픽 디자인’을 버리기만 했을 뿐인데 효과는 상당했다. 책 표지는 저마다 다른 독자들의 얼굴을 거울처럼 비추게 될 것이고, 이로 인해 ‘자기 조직화’라는 책의 주제를 시각적 경험을 통해 완성시킨다. 버리기가 디자인이 된 사례다. 아시아 영화 잡지 <낭>의 디자인에서도 버리기의 기술은 사용됐다. ‘낭’이라는 제목은 그림자 인형극에 사용되는 인형으로, 부채 같은 모양에 구멍을 뚫어 그림자 효과를 노린 점이 인상적이다. 이 점을 디자인 아이덴티티로 삼았다. 잡지의 표제를 레이저 커팅 기법으로 과감하게 뚫어 종이 면을 버렸다. 구멍 너머로 색상이 보였다. 오래되고 보편적인 버리기의 기술은 여전히 유효한 전략임을 깨닫는다. 그래픽 디자인에서의 ‘버리기’는 수단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목적이 되기도 한다. ‘버리기’로 평소에 놓쳤던 것들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간을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신동혁(그래픽 디자이너)
옷장을 비운다는 것 ― 언제나 옷이 문제다. 집이 어질러지는 것도, 여행에서 짐 가방이 커지는 것도, 카드값이 늘어나는 것도 다 옷 때문이다. 처음엔 얇은 옷걸이를 대량으로 사서, 두꺼운 옷걸이를 모조리 대체하는 걸로 시작했다. 그러나 옷장 수납이 두 배로 늘어도 공간은 모자랐다. 아니 집이 모자라기 시작했다. 옷을 정리한다는 건, 곧 옷을 버리는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 그렇게 수년이 걸렸다. 혼다 사오리의 말처럼 가슴이 두근거리는 옷들부터 골라냈지만, 대부분이 떨리는 옷들이었다. 모두 내보낼 수 없는 지지부진한 마음을 정리하려면 유예기간이 필요했다. 우선 지난 1년 내에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부터 구분했다. 그중 정말로 버릴 수 없는 옷, 큰마음 먹고 산 코트나 셔츠, 소재가 특별히 좋고, 색이 어두운 계열인 것들은 두고, 나머지를 따로 모았다. 그사이 지인들과 플리마켓도 하고, 명절에 사촌 동생들에게 나눠주며 서서히 보냈다. 더러는 ‘아름다운 가게’에 보냈고, 중고 물품 서비스 ‘주마’를 불러 수거하기도 했다. 여전히 유예기간을 둔 행거도 있다. 파리 꼴레트가 문 닫기 전 구입한, 핑크 은박지색 립스틱도 박스 째 존재한다. 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물건은 여전히 많다. 지금은 헬로 키티와 컨버스 척 테일러 커스터마이즈를 애타게 기다리는 중이다. 같은 버전의 보라색도 샀다. 이것들을 들이려면, 이제 운동화를 내보낼 차례다.
김경민(‘대중소’ 대표, 스타일리스트)
숨은그림찾기 ― 반짝이거나 조형적인 소품을 지나칠 수 없었다. 더 이상 소품을 둘 곳이 없으면 선반을 설치해서라도 올려뒀다. 모노톤의 벽지와 가구로 바탕을 만들고, ‘키 포인트’가 될 만한 색이나 물건에 무게 중심을 싣는 건 가장 손쉽게 간소한 인테리어를 꾸미는 방법이다. 하지만 아무리 무채색의 배경이 담담하게 집을 둘러싸고 있다고 해도 여기저기 난립하는 소품은 공간은 뒤틀리게 보이게 할 뿐이다. 결단 끝에 집을 비우기로 하고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집 곳곳을 넓은 화각으로 찍어 사진으로 현상했다. 불필요한 물건을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사진 위에 표시했다. 2차원 평면에 담긴 익숙한 공간은 ‘낯선 시각’을 제공한다. 내가 치워줘야 할 남의 집처럼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무작정 버리기보단 기준을 정해두는 게 좋다. 버릴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해도 추억이 없는 소품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추억이 깃든 물건은 5개 이하로만 장식해도 충분하다. 그 외의 ‘추억 소품’은 전용 보관함을 만들어 다음에 꺼내놓을 순번을 매긴다. 또한 6개월 이상 쓴 적이 없는 물건은 앞으로도 거의 사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집 구석 어딘가에 숨기는 게 아니라 없애야 한다. 모든 걸 비우고 나서야 집이 여유로워졌다. 정리해야 할 것이 줄었으니 청소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으로 돌릴 수 있었다. 모든 건 집에 소품이 아닌 여백을 들이면서부터 가능한 일이었다.
선혜림(리빙 스타일리스트)
직장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 ― 현대 직장인의 삶이란, 필요한 게 참 많기도 했다. 가방에 온갖 잡동사니를 넣은 채 지하철과 버스에서 이리저리 부대끼다 사무실에 도착해, 정글 같은 책상에 파묻혀 허덕이다 다시 무거운 가방을 짊어진 채 집으로 향하는 여정이다. 고단한 숙명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덜어내려면, 출퇴근용 가방을 거꾸로 들고 한번 흔들어보자. 최근 한 번도 꺼낸 적 없으면서 의무감에 넣고 다녔던 물건이 우수수 떨어질 것이다. 업무 환경을 간단하게 만드는 건 유형의 것을 무형으로 바꾸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무실에선 IT 기술의 진보를 마음껏 누릴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자. 책상 위에 상주하는 건 펜 하나면 충분하다. 달력과 계산기 등은 노트북과 스마트폰으로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 명함첩도 공간만 차지할 뿐이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명함을 찍으면 번호가 자동으로 저장되는 앱까지 등장한 세상인데, 아직도 굵직한 전화번호부처럼 서랍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서류는 현재 진행 중인 것만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나머지는 스캔한 뒤 미련 없이 버리는 게 좋다. 언젠가 필요할 같아서 잔뜩 쌓아두는 건 현재보다 미래의 일에 업무의 초점을 둔다는 의미다. 먼 훗날까지 내다보며 일하기엔 어차피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는 세상 아닌가.
탁진현(<가장 단순한 것의 힘> 저자)
정체성 버리기 ― 실존심리치료학자인 제임스 부겐탈은 비동일시 연습이라는 상담 방법을 제안한다. 여덟 장의 종이에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체성을 적는다. 대학생 또는 직장인, 여자 또는 남자, 남편 또는 아내. 핵심과 가까운 정체성을 가장 아래 두고 순서대로 종이를 쌓는다. 그리고 위부터 종이를 하나씩 버리면서 이러한 정체성이 없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인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다른 곳에도 적용할 수 있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쓰고 그걸 버린다면? 인물, 사건, 배경, 심지어 문장. 연인에게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건? 유머 감각, 키, 얼굴, 배려심, 속궁합? 비동일시를 통해 우리는 우리를 규정하고 있는 생각과 만날 수 있다. 그 생각들은 사회가 우리에게 부과한 역할이나 고정관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때 비동일시 연습의 장점은 두 가지다. 첫째, 내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 둘째, 그게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운이 좋다면). 버리기 전에는 불필요함을 알 수 없다.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 족쇄이기도 하다. 그것이 정체성일 때는 더욱 그렇다.
정지돈(소설가)
- 에디터
- 이예지, 이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