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d&drink

낮술하기 좋은 술과 안주

2019.06.25GQ

여름엔 낮술이 행복이다. 가볍고 간단한 안주가 있으면 행복은 더 부푼다.

파인애플과 라임 모양의 컵홀더 튜브, 빅마우스.

옴니플로 토비아스 IPA 나라를 넘나들며, 양조장을 폴짝거리며 맥주를 양조하는 집시 브루어리 ‘옴니플로’의 세션 IPA다. 잔에 따르고 코를 가져다대는 순간, 자몽과 닮은 시트러스 향과 파인애플과 비슷한 열대과일의 향이 팡팡 튀어 오른다. 입에 넣으면 새콤한 맛이 혀 뒤를 단단히 자극해 음식에 곁들이기에도 좋다.

맥주와 채소 요리 맥주 안주라고 하면 아직도 튀김부터 떠올리는 이가 많지만, 그러기엔 맥주 맛의 세계는 이미 한없이 팽창했다. 초콜릿 케이크 맛이 나는 맥주부터 식초처럼 새콤한 맥주까지, ‘치킨’과 ‘감튀’만으로는 재미도 없고 멋도 없을 정도로 다채로워졌다. 이제 맥주 안주도 더 분방해질 필요가 있다. 낮술 맥주 한 잔에 한 가지 채소로 한 접시를 꽉 채운 안주를 곁들여본다. 충분히 근사하고 넘치게 묵직하다. 미니 당근에 강황, 큐민, 으깬 펜넬 시드 혼합 가루를 살짝 뿌리고 올리브 오일를 양껏 둘러 200도 오븐에 20분을 익히면, 독특한 향의 당근 요리가 완성된다. 당근의 단맛과 향신료의 고소함이 손가락만 한 당근 하나에 응축된다. 짙은 맛의 포터부터 씁쓸한 IPA까지 두루 어울린다. 쌉쌀한 루콜라 샐러드도 맥주와 합이 좋다. 루콜라에 소금, 후추 간을 충분하게 한 다음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를 눈송이처럼 양껏 갈아 올린다. 가벼운 페일 라거나 와인 잔에 즐기는 새콤한 맥주와도 잘 맞는다.

전화번호를 묻는 멘트가 적힌 프리스비, 브릭스톤 at 소품 Sopooom. 컬러풀한 그래픽 패턴이 들어간 원반, 칼하트 at 소품 Sopooom. 구불구불한 곡선의 트레이, 마자무 at 루밍.

(왼쪽부터) 주스티노스 마데이라 10년 세르시알 주스티노스는 마데이라를 대표하는 생산자 중 하나다. 검은 병에 흰색 레터링이 크게 들어간 레이블 역시 마데이라 와인을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마데이라를 만드는 5가지 품종 중에서 세르시알은 가장 드라이한 맛을 낸다. 칸테이로 방식으로 오크통에서 10년 숙성했다. 토미 시프 드루프 토미 시프는 지금 네덜란드에서 뜨겁게 인기를 얻고 있는 와일드 에일 양조장이다. 국내에도 이제 막 수입이 시작됐다. 과일이 들어간 람빅 맥주와는 다른 방식으로, 포도를 양조 과정에서 사용해 내추럴 와인과 맥주, 그 묘한 경계의 맛을 낸다. 새콤한 맛이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처럼 상쾌하다.

마데이라와 구운 아보카도 마데이라는 포르투갈령의 섬으로 포르투갈보다는 아프리카 쪽에 더 가깝다. 호날두의 고향으로도 알려진 곳이지만, 술 애호가들에겐 주정강화 와인으로 기억되는 곳이기도 하다. 와인에 주정을 추가하는 방식은 다른 주정강화 와인과 비슷하지만, 30~35도의 뜨거운 태양열 아래 있는 오크통에 숙성한다거나 스테인리스 통에 넣은 뒤 45도의 열을 3개월 간 가하는 독특한 과정은 마데이라만의 산화된 뉘앙스와 산미를 완성시킨다. 작은 와인 잔에 따라 정수리가 뜨끈뜨끈해질 정도로 내리쬐는 태양 아래에서 마시면 발 끝까지 기분이 좋아지는 술이다. 마데이라 와인에는 견과류 안주가 찰떡처럼 맞는데, 양진원 와인 에듀케이터가 마데이라의 대표적인 양조장 주스티노스의 와인메이커에게 전수받은 특급 안주를 참고하면 그 맛의 조합을 이해할 수 있다. 태우듯 구운 아보카도를 한 숟가락 퍼먹고 마데이라 한 잔을 마신다. 입 안에 착 감기는 안주의 고소함이 동시에 폭발하고, 툭 치고 지나가는 산미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술이 올라간 서핑보드 모양의 튜브, 인텍스. 휴대전화나 소지품을 넣으면 완벽히 방수되는 드라이박스, 오터 박스 at 루밍. 스푼과 포크가 합쳐진 스포크, 라이트마이파이어 at 루밍.

(왼쪽부터) 노니노 아마로 너도나도 큰 소리로 외치는 듯한 강한 쓴맛의 아마로 브랜드들과 비교하면 노니노는 부드럽고 조용한 편이다. 그라파를 만드는 증류소의 술이라 포도 증류주에 다양한 허브를 섞어서 만들며, 처음에는 오렌지 향이 퍼지며 단 맛이 부각되다가 뒤로 갈수록 은은한 쓴맛이 퍼진다.  페르넷 블랑카 칵테일 재료로 바텐더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아마로인 페르넷 블랑카는 이탈리아를 넘어 핀란드, 아르헨티나 등지에서도 인기가 높다. 아르헨티나에선 페르넷 블랑카에 코카콜라를 1:3 비율로 섞은 페르넷 앤 코크가 인기다. ‘페르넷 콘 코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젠 서울의 바에서도 주문할 수 있다.

아마로와 오렌지 샐러드 아마로는 이탈리아의 식후주 중 한 종류를 일컫는 말로 허브 계열로 만들어 쌉쌀한 맛이 나는 술을 두루 포함한다. 복수형으로 ‘아마리’라고 지칭하는 경우도 있지만, 북부 이탈리아의 쌉쌀한 와인 아마로네와는 다른 술이다. 아마로는 이마를 탁 치는 듯한 놀라운 쓴맛이 매력적인 술이지만 처음엔 약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이탈리아인이 된 기분으로, 든든하게 점심을 챙겨 먹은 뒤 소화제라 생각하고 아마로를 마시다 보면 어느새 첨벙 빠져든다. 북창동의 바 랫롬에는 여러 종류의 아마로를 한 데 섞은 짙은 한약색의 ‘인생의 쓴맛’이라는 칵테일도 있다. 아마로는 그 자체로 안주이자 술 같은 한잔이지만, 안주를 곁들인다면 아마로 칵테일에 활용되는 식재료인 오렌지가 좋겠다. 껍질과 흰 부분을 제거한 오렌지를 툭툭 썰고 소금, 후추, 올리브 오일을 듬뿍 뿌려 먹는 시칠리안 오렌지 샐러드를 만든다. 적양파, 블랙 올리브, 타라곤을 추가로 올리거나 작은 얼음을 올려 함께 씹어 먹어도 좋다.

(왼쪽부터) 마레농 페투라 로제 루베롱 지역의 로제 와인으로, 시라 품종과 그르나슈 품종을 섞어서 만들었다. 보드라운 딸기 향과 시원한 수박 향이 나고 향신료의 기운도 슬쩍 스친다. 가볍고 상쾌하게 즐길 수 있는 로제 와인으로 한낮의 갈증 해소용 와인으로도 제격이다. 도멘 오트 샤토 로마상 방돌 로제 포도밭 주변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한 특유의 병 모양으로도 널리 알려진 로제 와인이다. 잘 만든 로제 와인으로 프로방스 전체의 인식을 바꾼 선도적인 와이너리라, 로제 와인을 접할 때 면 반드시 짚고 넘어가게 되는 와인이기도 하다.

로제 와인과 태양의 채소 로제 와인은 로즈데이의 와인이나 분위기 내는 연말용 와인이 아니라, 뜨거운 여름날의 술이다. 여름이면 남프랑스의 볕 좋은 어디를 가도 로제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화이트 와인이 물처럼 느껴질 때, 레드 와인이 코트처럼 덥게 다가올 때는 로제 와인이 2등 없는 1등이다. 파스타부터 가벼운 고기 요리까지 두루 잘 어울리는데, ‘여름’으로 주파수를 맞추자면 태양의 채소로 불리는 토마토를 안주로 고른다. 토마토는 간편한 식재료지만 은근히 와인 페어링이 까다롭다.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오크 향이 강한 샤르도네의 묵직함은 토마토의 산미를 뭉갤 수도 있지만 로제 앞에선 고민이 없다. 구운 빵 위에 잘게 썬 생 토마토를 올리고 정어리 필레 통조림에서 정어리를 꺼내 올린다. 구운 마늘을 더해 브루스케타로 만들면 토마토의 시원한 신맛과 정어리의 쿰쿰한 맛이 조화를 이룬다. 토마토와 양파를 구워 맛을 응축시키고 초리소와 세라노 햄, 달갈을 더해 오븐에서 익히는 스페인 요리 ‘우에보스 아라 플라멩카’도 든든한 안주다.

    에디터
    프리랜스 에디터 / 손기은
    포토그래퍼
    이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