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류현진의 멘털 따라잡기

2019.07.10GQ

류현진은 ‘어차피 100퍼센트는 불가능하다’라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른다. 빅리그를 지배한 류현진의 멘털을 가진다면 조금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류현진이 메이저리그 5월의 투수가 됐다. 6월 5일에는 시즌 9승을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은 1.35까지 내려갔다. 이날 기준으로 다승, 평균자책점 부문에서 모두 메이저리그 1위다. 하지만 숫자만으로는 류현진의 현재를 제대로 실감할 수 없다. 류현진의 이번 시즌 활약 가운데 지금의 류현진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보여준 경기는 지난 5월 13일 열린 워싱턴 내셔널스전이었다. 류현진은 8회 무실점으로 승리를 기록했다. 1피안타 1볼넷 9탈삼진. 운이 따라주었다면 노히트 노런 기록을 세울 수 있었다. 이 경기가 놀라웠던 이유는 류현진의 바로 전 등판 성적 때문이다. 5월 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전에서 류현진은 9이닝 무실점 완봉승을 기록했다. 선동열과 최동원이 맞붙어 15회까지 완투하던 시절과 비교하지 말자. 투수의 분업화가 이루어진 현대 야구에서 완봉승, 노히트 노런, 완투승은 투수에게 매우 기념비적인 기록이다. 하지만 완투 이후의 후폭풍을 이겨내는 투수는 별로 없다.

KBO 리그의 최근 사례를 보자. 삼성 라이온즈의 덱 맥과이어는 4월 21일,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완봉승을 거두었지만, 이후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5이닝 6실점을 했다. 롯데 자이언츠 제이크 톰슨도 그랬다. 5월 14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완봉승을 기록한 후, 다음 경기인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2이닝 7실점을 했다. SK 와이번스의 염경엽 감독은 “(투수에게) 완투는 독”이라고 말한다. “선발 투수의 의무는 7이닝이 최대치”인데, 그 이유는 “8이닝을 던져도 대미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미 많은 공을 던진 상황에서 9회 완봉, 완투 기록을 위해 더 강한 공, 더 빠른 공을 던지고 나면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류현진은 완봉승 다음 경기에서 노히트 노런에 가까운 투구를 보여준 것이다. KBO 리그에서는 ‘괴물’ 투수로 불렸고, 메이저리그에서는 ‘코리아 몬스터’로 불렸지만, 왼쪽 어깨 회전근 수술 후 재활을 거쳐 복귀한 지금의 류현진이 진짜 괴물이다. 찌르고 때려도 쓰러지기는커녕 더 강력하게 부활하는 괴물. 그사이 류현진은 배지현 아나운서와 결혼했고, 김용일 트레이너 코치를 개인 코치로 영입했다. 몸과 마음이 예전보다 더 좋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걸까? 지금의 숫자를 만들어낸 변화가 그것뿐이라면, 류현진처럼 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수 있다.

야구 전문가들은 올 시즌 류현진의 활약에 대해 발전한 볼 배합과 제구력, 여전히 최고인 체인지업 덕분이라고 말한다. 야구 전문가가 아닌 입장에서는 잘 모르겠다. 태평양 너머의 직장인 야구팬 입장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류현진의 ‘말’이었다. 노히트 노런이 될 뻔했던 바로 그 경기에서 기록이 깨진 건, 8회에 맞은 2루타 때문이었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타자가 잘 친 것이다. (나는) 그쪽으로 공을 던지려고 했다. 타자가 잘 대응했다.” 6월 5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벡스와의 경기에서는 팀 야수들의 실책이 많았다. 그래도 류현진은 7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류현진은 “실책은 경기의 일부다. (다저스에서는) 실책이 자주 나오지도 않는다”며, “내 등 뒤에 있는 야수들은 올 시즌 내내 놀라운 경기력으로 나를 도왔다. 실책이 나온 뒤에도 동료 야수를 믿었고, 정확하게 공을 던지고자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또한 “늘 말하지만 나는 타자를 구위로 누르는 파워 피처가 아니다. 내 공을 정확하게 던지는 데 주력했다”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로만 보자면, 류현진은 공을 어디로 어떻게 던져야 하는지만 생각한다. 안타를 맞아도 상대가 자신의 공을 잘 친 것이지, 자신의 실수가 아니라고 받아들인다. 야수들의 실책에 대해서는 ‘그럴 수 있는 것’이라고 넘긴다. 그러고는 내 할 일을 제대로 하면 된다는 식으로 다시 공을 던진다. 스스로 파워 피처가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어차피 나는 야구 만화에나 나오는 강속구 투수가 아니야. 그래서 나는 내가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져.

스포츠 팬들은 응원하는 팀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주기를 원한다. 최선을 다해도 끝내 졌을 때는 눈물이라도 흘려주기를 원한다. 팬들이 원하는 스포츠의 서사란 그렇게 드라마틱한 것이다. 이왕이면 100퍼센트를 해줄 것, 끝내 100퍼센트를 하지 못하더라도 100퍼센트를 짜내줄 것. 야구 만화 속 투수들이 대부분 강속구 투수인 이유도 그렇다. 하지만 류현진은 ‘어차피 100퍼센트는 불가능하다’라는 걸 인정한다. 내가 최고의 공을 던져도 안타는 맞을 수 있는 것이고, 땅볼을 끌어내도 수비수들이 못 잡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경기는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다. 류현진의 투구 스타일에서도 그의 멘털이 보인다. 과거 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는 시속 160킬로미터 공으로 타자를 제압했다. 류현진은 느린 변화구로 정면대결을 피하고, 땅볼이나 뜬공을 유도해 타자를 아웃시킨다. 파워 피처가 아니니 굳이 맞설 필요가 없다는 태도와 수비수들이 알아서 잡아줄 거란 믿음이 있어 가능한 스타일이다. 어쩌면 매일 경기가 열리니 오늘 지면 내일 이기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야구에서나 가능한 마인드일지도 모른다.

한화 이글스 시절의 류현진은 지금과 같은 멘털을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유명한 ‘짤’이 있다. 류현진이 유소년 야구선수에게 투수로서 가져야 할 마인드를 묻고는 “수비수들을 믿고 던진다”는 답변이 나오자, “그러면 안 되지, 수비를 믿으면 안 돼. 네가 다 잡아야지”라고 말하는 상황이다. 한화 이글스 시절의 류현진은 정말 혼자 책임져야 했다. 하지만 야구는 투수 혼자 할 수 있는 경기가 아니다. 삼진 13개를 잡았는데도 그날의 승리투수가 되지 못한 적도 있다. 류현진의 삼진 쇼는 그렇게 기획됐다. 수비를 믿을 수 없으니 맞춰 잡을 수 없었고, 그래서 무조건 삼진을 잡아야 했고, 그러다 보니 괴물이 됐다는 슬픈 사연. 2019년 LA 다저스의 류현진은 6월 초까지 9승을 기록했지만, 2012년 한화 이글스의 류현진은 시즌 10승을 채우지 못했고, 등번호인 99번과 통산 승수를 맞추고 싶다던 소망도 이루지 못했다. 류현진이 과거의 그 소년을 다시 만난다면, 말을 바꿀지도 모른다. “수비수를 믿고 너는 너의 공을 던져. 물론 형에게는 코디 벨린저 같은 외야수와 코리 시거 같은 유격수, 맥스 먼시 같은 3루수가 있단다.”

어차피 100퍼센트의 결과는 없다는 것. 류현진 같은 멘털이면 류현진처럼 살지는 못해도 지금보다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속구 투수와 자신을 비교하며 자격지심을 느낄 필요 없다. 노히트 노런을 못 했다고 해서 눈물을 흘릴 필요도 없다. 동료들의 실수 때문에 결과가 안 좋아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아도 된다. 살다 보니 느끼는 것이지만, 인생의 불행은 어떤 예기치 않은 사건보다는 다른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될 때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슬프게도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해서 100퍼센트의 결과를 요구받는 일반인은 류현진처럼 생각하고 말하기가 어렵다. “실적은 좋지 않게 나왔지만,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당장 직장 상사에게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해보자. 상사는 당신의 멘털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또라이’라고 생각할 거다. 동료의 실수가 발생했을 때,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면? 실수한 동료와 동급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한화 이글스 시절 류현진의 멘털은 어떨까? “수비를 믿으면 안 돼. 네가 다 잡아야지.” 직장 상사는 좋아할 거다. 하지만 팀원들은 시기와 질투를 할 거다. 한화 이글스 시절의 수비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알을 까면 류현진에게 미안해했다. 직장 동료들은 일부러 알을 깔지도 모른다. 초고속 승진은 그만큼 많은 적을 만들고, 그만큼 퇴사 시기를 앞당긴다. 임원이 되면, 실적에 더 얽매이게 되고, 책임져야 하는 일이 커진다. 물론 류현진이 사는 스포츠의 세계는 다르다. 초고속 연봉 인상은 그냥 좋은 거다. 잘해서 메이저리그에도 갈 수 있고, 갔다가 실패해서 돌아와도 환영받는다. 직장에서는 영웅이 있을 수 없지만, 스포츠에는 영웅이 있다. 그러니 류현진의 멘털보다는 그냥 반성의 언어가 더 편한 것이다. “그건 제 실투였습니다. 이번 경기를 잘 복기해서 다음 경기 잘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류현진과 같은 멘털로 류현진처럼 살기 위해서는 류현진이 될 수밖에 없다. 그는 100퍼센트는 없다는 걸 받아들이면서도 100퍼센트의 경기를 만들어내는 희귀 사례이니 말이다. 글 / 강병진(<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에디터
    김영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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