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 않다 했다. 두려운 것도 없다 했다. 과연 류승룡은 거침없었다. 그리고 오늘은 부드러움을 말했다.
<고지전>과 <최종병기 활>에서 당신이 처음 등장하던 장면을 떠올리건대, 배우의 존재감을 새삼 생각했다. 보자마자 굳었달까?
나도 내가 나오는 첫 장면을 본다. 새 학기에 반을 배정받은 것처럼, 첫사랑처럼 설렌다.
거기엔 일말의 여지조차 배제하겠다는 벽이 있었다. 보는 게 힘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좋은 내 스펙 중 하나인데, 그것만 너무 부각되는 부분이 있다. 다른 모습이 묻히는 게 배우로서 좋진 않다. 그래서 차기작 선택할 때 그런 조율을 좀 하려고 한다.
이제부터?
올해 그런 조율을 안 하다 보니까 너무 강하게만 갔다. 다른 것을 좀 보여드리고 싶고, 그래야 할 단계라고 생각한다.
갈등도 있나?
<최종병기 활>이 크게 흥행해서 좋은 부분도 있지만, 부담감도 있다. 버젯이 적고, 비중이 작아도, 영화적으로 좀 재미있고 작품성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그런데 어떤 기대치들이 높아져서…. 결국 여태껏 해온 대로, 소신껏 나가면 될 것 같다.
말을 맺는 투가 매섭다. 매니저가 “형, 되게 웃겨요”라던데, 그러다 갑자기 주먹을 날릴 수도 있는 그런 걸까?
에이, 그러진 않는다.
요즘은 모든 게 엔터테인먼트의 속성 속에서 소화된다. 영화라고 따로 떨어지지 않는다. ‘명품조연’ 같은 말을 해석하는 것도 여러 측면이 있을 수 있다. 당신은 <1박2일> 출연을 거절했다.
‘명품조연이 모였다’는 타이틀 때문에 거절한 건 아니다. 그전에 <무릎팍도사>도 거절했다. 언젠가 나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영화로, 연기로 보여주기에도 매뉴얼이 빠듯하다.
어떤 부끄러움 때문일까?
아니다. 재밌게 잘할 자신도 있다. 아직은 보호하고 싶다.
배우의 장악력은 멋지지만, 너무 강하면 매력의 여지가 떨어지지 않나?
굳이 분류하자면, 별로 보이고 싶지 않다는 쪽인가? 그렇지는 않다.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고, 상업 영화를 하는 곳이니까, 일단 검증 받은 캐릭터를 계속 하는 것이 여기 풍토다. 어찌됐든 꾸준히 작품을 하면서, 방귀가 잦으면 뭐 나온다고, 좋은 작품을 만나면서 그 동안 못했던 것들, 하고 싶었던 유연함들을 보여드리게 될 거라고 본다. 과정이다.
꽃미남이 아니라면, 무조건 연기를 잘할 거라는 선입견은 참 쉽게도 작용한다. 류승룡에겐 어떤가?
대학교 때 은사님이 이왕 꽃이 만개하려면 늦게 피는 게 좋다고 하셨다. 그때 얼굴이 내내 지금 얼굴이다. 너는 이삼십 대 초반엔 절대 안 된다, 대기만성이다, 마흔 넘어야 된다, 그랬다.
- 에디터
- 장우철
- 포토그래퍼
- 유영규
- 스탭
- 스타일리스트 / 박지석, 메이크업/ 이가빈, 김수정, 어시스턴트 / 정혜원